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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통속의 뇌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4. 7. 3.

 

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초짜 철학도의 분투기

 

 

 

 

23년, 2학기 전필로

유럽의 문화와 사상을 수강했는데요.

 

이 배움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진실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이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라

아폴론 신을 모시는

고대 그리스 델포이 신전의

프나오스(앞마당)에 새겨진

글귀라는 것이고

당시 신전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신의 뜻을 전달하거나

교훈이나 조언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고 해요.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고 알고 있는

이 명언은

실은 소크라테스가 이 글귀를 자주 인용해

자신의 철학적 사고에 적용했기 때문에

그와 밀접하게 연결하려는

오류를 범하는 것 같아요.

 

즉 소크라테스는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진정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너 자신을 알라"는

단순히 자신의 이름이나 외모를 아는 것을 넘어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이해하고,

끊임없이 성장,

발전하기 위한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어요.

 

즉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은

소크라테스가 직접 만든 말은 아니지만,

그의 철학과 깊이 연결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요.

 

철학 공부를 통해

이런 오류들을 깨닫는 것은

흥미롭기도 해요.

 

한편으로는

철학자들의 낯선 사유를

따라가기가 버겁기도 해요.

 

바로 ‘통 속의 뇌’ 같은 개념이죠.

 

 

 

 

 

 

힐러리 화이트홀 퍼트넘(Hilary Whitehall Putnam)

(1926년 7월 31일 ~ 2016년 3월 10일)은

현대 미국의 철학자이며 수학자인데요.

 

 

 

 

 

그는 시카고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1951년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한스 라이헨바흐의 지도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65년 이래로

하버드에서 교수로 재직했다가

2000년 6월 은퇴했다고 해요.

 

그는 1960년대 이래로

분석 철학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심리 철학,

언어 철학,

과학 철학 분야에서 활약했는데

 

특히

심리 철학에서,

퍼트넘은

마음의 다중 실현 가능성에 대해

그의 가설에 기초한

정신적, 육체적 상태의

유형 정체성에 대한 주장과

심신 문제에 관한 영향력 있는 이론인

기능주의의 개념에 대해 언급했죠.

 

더불어 언어 철학에서

솔 크립키 같은 사람들과 함께

인과적 지시 이론(en:causal theory of reference)을 개발하고,

독창적인 의미론을 만들어냈으며,

쌍둥이 지구라고 불리는

사고 실험에 기초한

의미에 대한 외재론의 개념을 도입했고요.

 

수학 철학에서는

동료인 윌러드 밴 오먼 콰인과 함께

수학 실체의 실재론에 대한 논증을 개발했다고 하죠.

 

그의 사상적 특징은

끝없는 자기비판과 수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이 제창한

기능주의나

형이상학적 실재론을 버렸고

내재적 실재론을 제창했는데

이것은 그가 형이상학적 실재론이라고 부른

전통적인 객관주의와

극단적인 상대주의 사이의 이분법을

극복하기 위한 제3의 길이었다고 하지만

이 또한 말년의 실용주의적 전환을 통해

지양되고 있답니다.

 

 

 

 

 

 

 

 

 

 

 

 

저는

앞서 언급한 그의

"통 속의 뇌(Brain in a Vat)" 사고 실험을

인식론을 배울 때

접했어요.

 

이는 회의론 중

가장 극단적인 이론으로

내가 아예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상상하는 것으로 가정하죠.

 

어떤 사악한 과학자가

나의 두뇌 곳곳에

전선을 연결하여

감각 경험을 하는 것처럼

환각을 만들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인데

 

혹은 어떤 미친 과학자가

사람의 뇌를 분리해 통 속에 담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뇌만 남아서

통 속에 담긴 상태가 되었다고 가정하죠.

 

세상에 존재하는 물건들은

오직 통 속에 담긴 뇌, 통,
그리고 슈퍼컴퓨터들이 있는

실험실이라고 가정에서 출발하는데요.

 

이 경우,

통 속에 담긴 뇌는

자신이 진짜 사람인지

통 속에 담긴 뇌인지 확신할 수 없으며

외부 세계에 대해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이

거짓일지 아닐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에요.

 

퍼트넘의 이 실험은

마음 철학과 인식론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특히 인식론적 회의주의(epistemological skepticism)에 대한

논의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이 사고 실험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단지 우리의 뇌가 자극받아

만들어진 가상 현실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데,

이는 데카르트의 악마의 논증과 유사하며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켜요.

 

퍼트넘은

이 실험을 통해

의미와 참에 대한 독특한 주장을 제시하는데

이 "뇌 실험"의 상황에서는

'나'라는 개념조차도

가상 현실의 일부로서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지요.

즉, 우리가 "나는 뇌 실험에 있다"고 말할 수 없으며,

만약 그런 상황에 있다면

우리는 그러한 진술을 할 수 없다는 것인데

 

퍼트넘이 이 실험을 통해

반박하려는 것은

진짜 통 속의 뇌는

통 속의 뇌를 경험 할 수 없으며

그저 전기신호 같은 것이 입력되어서

"통속의 뇌인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진짜 통 속의 뇌가

자신이 통 속의 뇌인지 의심하는 건 불가능하다.

진짜 통 속의 뇌는

전기신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이 반박의 문제는,

우리가 '통 속의 뇌가 되기 전'에

통 속의 뇌를 몰라야 이 반박이 성립하는데

만일 통 속의 뇌라는 개념을 알고 있는 A가

어제까지 멀쩡히 살다가

갑자기 납치되어 통 속 뇌가 되고,

전기신호를 받아

'통속의 뇌가 되었나?'라는

생각을 한다면

통 속의 뇌라는 개념을 알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이 "통 속의 뇌인가?"라는

의심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퍼트넘은

이 뇌 실험을 통해

회의주의에 대한 반박을 제시하려고 했는데

우리가 실제로 뇌 실험에 놓여 있다면,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개념조차도

그 상황에서는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요.

 

이러한 사고 실험은

현실, 인식, 언어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전이겠지요.

 

우리가 뇌가 담긴 항아리 속에서 떠다니며

외부 세계에 의해 조작되고 있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사유를 유도하기도 하며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환상일

가능성이 있다는

회의론적 주장이기도 하고

 

또한 언어와 의미가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 결정된다는

"의미의 외재성" 개념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회의론적 의문을 제기하지만

 

한편으로는

 

"통속의 뇌" 상황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경험과 현실을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우리가 가진 지각적 능력과

실용적 사고 능력이

현실 세계를 판단하는 데

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해요.

 

결국

Putnam은 "뇌 실험"이라는

가상의 상황을 통해

우리가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촉구하는데요.

우리가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을

함축적으로 제시한다고 할 수 있지요.

 

결론적으로

퍼트 Putnam의 "통속의 뇌" 사고 실험은

회의론에 대한 단순한 옹호

또는 반박이 아닌,

회의론적 의문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현실 세계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려는

복합적인 입장을 보여준다고 해석해도 될까요?

 

어디 그뿐인가요?

퍼트넘은 '쌍둥이 지구(Twin Earth)'라는

사고 실험을 통해

언어와 의미에 대한

외재성을 주장하며

단어의 의미가

단순히 개인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

결정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죠.

 

이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 형성에 외부 맥락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것으로 확장될 수도 있죠.

 

퍼트넘의 이러한 사유들은

저에게 상당히 충격적이었어요.

 

철학을 한다는 것은

다양한 각도에서

끊임없는 비판적 사고로

세상을, 삶을 바라다보도록

유도하는 학문이구나,

다시 한번 느꼈답니다.

 

그 다양한 각도를 취하기 위해선

다양한 지적 경험 또한

필요로 한다는 것,

 

이 무한한 세계에

막 발을 들여놓고

황홀해 어쩔 줄 모르는

늙깎이 철학도의 미래가

 

오직 죽음뿐이 아니길

희망하는 시간!

 

오늘도 파이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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