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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24년 1학기말시험, 국문학 개론 요약본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4. 6. 16.

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초짜 철학도의 분투기

 

 

 

 

국문학 개론 기말 대비 정리

 

1. 경기체가(景幾體歌)

특징: 1) 신진사대부나 지방 호족 세력들이 주로 지었다.

2) 자부심, 득의에 차 있는 자기 과시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웠다.

3) 조선 철종 때까지 전해진다.

4) 제4행과 6행에 일경하여(一景何如)가 들어있다.: 이러한 관용어 때문에 ‘경기체가’라 명명했다.

5) 형태상으로는 의문형이지만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과시, 찬양의 설의적 표현으로 ‘아 아, 광경, 그것이 과연 어떠한 고! 굉장하지 않는가’라는 의미를 완곡하게 혹은 더 자 랑할 것이 얼마든지 있어 계속해볼까, 하는 거드름을 효과적으로 표현

6) 교술과 서정의 혼합이나 교술로 보자고 이론과 서경적인 면도 있다.

7) 총 27곡 중 불교의 포교용으로 쓴 작품들도 있다.

8) 조선 철종 때까지 27 작품 중 예외 없이 작가가 있다.

9) 경기체가 전성기는 고려 후기이다.

10) 자생설, 중국 시가를 이식했다는 외래설, 이 둘을 배합하여 탄생시켰다는 절충해서

시작되었다는 절충설에 관심

효시: 한림별곡(翰林別曲): 明나라까지 소문이 났고 임란 후까지 전승됨.

소속: 1) 고려 속요로 보는 경향

靑山別曲類와 동일한 갈래가 아닌가?

경기체가는 귀족 문학(한자 어구 나열로 구체적 현실을 존중하면서도 이상적 조화 의 차원으로 관념화했던 사대부층의 세계관과 미의식을 영탄으로 노래)

고려 속요는 평민 문학(순수한 우리말로 내용이 서정적)

둘은 시어가 달라 수사 기교가 다르다.

경기체가가 인기를 누리지 못한 이유

1) 지배층이 주로 사용하는 한자로 됨

2) 자기 과시적 내용이 많다.

3) 형식이 지나치게 엄격했다.

그러나 한림별곡 같은 경기체가는 고려를 대표하는 장르로서 정격, 문학성이 뛰어났다고 평가

 

2. 악장(樂章)

1) 조선도 고려의 궁중 음악을 이어 받았으나 조선시대에 만든 궁중 음악을 악장이라 한다.

2) 음악의 내용으로는 임금의 업적이나 국가가 대단하다는 등, 송축의 노래로 성리학과 불교 의 이념을 품고 있다.

3) 악장의 용어가 악곡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궁정문학(宮廷文學)

4) 내용이나 목적에서 ’칭송하고 기리는‘ 동일한 성격을 지니는 특징을 가짐.

5) 악장은 기본적으로 장시(長詩)를 기본으로 한다.

6) 한시악장(조선시대 악장의 기본형), 국문악자(세종 이후에 발달), 한시현토악장으로 분류

7) 세계를 자아화하여 시적 화자의 내면적 정서를 표출하는 개인적인 서정과는 일정한 거리 가 있는 새로운 왕조의 정치적 목적과 아울러 칭송하는 내용과 교훈적 성격이 중심.

8) 작품 외적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을 이해해야 하는 교술적인 시가의 일인 종

9) 첫 악장은 정도전 (?~1398)의 태조 2년(1393)의 납씨곡인 한시악장이나 뒤에 현토악장으 로 바뀜.

10) 조선 전기의 고위급 문인

11) 향유 계층은 악장이 궁중에서 나라의 공식적인 행사에 쓰였던 노래이기 때문에 공식행 사에 참여하는 사람에 한정

12) 악장은 장시라는 기본적인 속성을 지니어서 기능적인 성격이 중심이기 때문에 일정한 형식이 없음.

13) 악장의 형식적 특성은 하나의 장에서도 앞부분과 뒷부분으로 갈라진다는 분절이 특징.

14) 악장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칭송하고 기리는 것‘: 찬왕, 찬문물제도, 찬도, 규잠, 참설, 송황은, 감군은, 태평송, 찬불 중에 찬왕이 가장 많다.

15) 정조전의 국문악장 신도가(新都歌)

서경별곡과 정읍사에 사용된 여음구 ’아으 다롱다리‘를 쓰고 형식적인 면에서는 장시체 로 되어있지 않고 단련체로 되어 있으며 ’아으다롱다리‘를 경계로 하여 앞부분과 둣부 분으로 갈라진다.

16) 악장의 대표인 용비어천가는 권 제, 정인지. 안 지등이 모두 125장의 장편으로 지은 것: 우리말 노래가 앞서고 한시가 이허지며 그 다음으로 주해가 자세하게 나온다,

17) 월인천강지곡은 왕과 문물에 대한 칭송이라는 악장의 성격과 차이가 있는 ’부처를 찬양‘ 한다는 점이고 상중하 현재 194장으로 된 상권만 전한다.

 

3. 시조(時調)

1) 시조는 원래 음악의 노랫말로 전승 발달되어 왔기 때문에 시조를 가리키는 명칭들도 음악 과 관련이 있어, 단가(短歌), 가곡(歌曲), 가요(歌謠), 영언(永言), 신성(新聲), 신조(新調), 신번(新飜), 시절가(時節歌), 시절가조(時節歌調), 시조(時調)등으로 음악과 관련.

2) 시조라는 명칭 이전의 시조를 지칭하는 단가(短歌)에서 시작되어 18세기의 가객들이 사용

3)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시조는 물론이고 한시(漢詩)와 판소리 허두까지로 단가로 부름.

4) 조선조에 들어와 시조가 이 단가를 대표하는 명칭으로 사용됨

5) 가곡(歌曲)은 시조를 얹어서 창하는 가곡창을 의미하지만 처음에는 일반적인 노래라는 뜻 으로 더 많이 사용

6) 시조라는 말이 처음 나타나는 문헌은 이형상(李衡祥)의 악학습령(樂學拾零)이나 오늘날의 일반적인 시조의 뜻과는 다르다. 이 말은 당시의 사용하던 새로운 곡조란 의미

7) 오늘날 시조창을 의미하는 시조(時調)라는 용어가 나타나는 것은 18세기 영조조(英祖朝)이 후.

8) 시조라는 창조(晿調) 명칭이 문학 장르의 명칭으로 사용된 것은 시조 부흥 운동이 본격화 된 1926년 무렵부터

9) 오늘날 시조 문학의 장르 명칭으로 사용되는 ’시조‘라는 용어도 처음에는 음악의 창조 명칭 이었으나 뒤에 문학 장르 명칭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현재에도 음악적으로는 ’시조창‘을 의미하고 동시에 문학적으로는 ’4음 보격 3행시‘형식의 시조 장르를 지칭하는 두가지 개념 을 함께 지닌다.

10) 시조의 기원은 외래 시가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외래기원설(外來起源說과 우리의 전통 시 가를 모태로 하여 생성되었다는 재래기원설(在來起源說)

11) 외래 기원설: 한시(漢詩)의 영향

12) 재래기원설: 시조 형식의 모태를 노랫가락, 민요, 향가, 고려 속요 등에서 찾는데 향가 기 원설

13) 향가가 의미상 3개의 단락으로 나뉘어 진다는 점, 均如傳에서 崔行歸가 향가의 형식에 관 해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三句六名‘이 시조의 형식인 三章六句와 흡사하다는 점, 향가의 낙구와 시조 종장 제 1음보가 감탄구가 서로 비슷하다는 점

14) 고려 속요 기원설은 고려 속요의 分章이 독립하거나 고려 시가가 붕괴되면서 시조가 형성 되었다는 설,

15) 그러나 시조의 기원을 이처럼 형식에만 중점을 두어 유사한 시 형식에서만 그 연원을 찾 게 될 경우 시조 3악장 형식에 대한 설명은 가는하지만 종장의 특이성은 설명할 수 없다.

16) 시조의 발생 시기는 고려중엽 발생설과 조선중엽 16세기 발생설이 있다.

17) 장시조의 발생은 사대부들이 시조를 연행하던 현장과 관련시켜 단시조와 장시조가 생성의 현장을 같이 한다는 견해가 있다, 장시조는 가곡창을 향유하던 사대부층 계층이 술잔치의 오락적 분위기에 걸맞게 말수를 늘이거나 이념적 긴장을 풀므로써 그에 약간의 변형을 가 해 형성된 평시조의 종속 장르로 15세기에 발생했다.

18) 작가와 향유 계층은 관직에 오른 작가, 기녀들, 18세기에는 가객들이 나타나 시조문학이 활발하게 전개했고 가단을 결성하고 가집을 편찬하고 시조의 다양한 창법을 개발해 시조 의 발달에 크게 기여,

19) 시조의 형식은 첫째, 3줄짜리 3행시이다. 무가 중 고정 레퍼토리는 3줄짜리 노랫말이다.

둘째로는 1행이 4음보이다. (거의 90퍼센트 이상은 두 번째 음보가 글자 수가 많다.)

셋째로 마지막 행의 첫은 소음보 + 과음보 + 평음보 + 소음보 종결 문법을 보여주지만 현대 시조는 이 관행이 없다.

넷째로 종장의 첫 번째 음보는 감탄사 또는 감탄적 성격이 있는 문구만 들어간다.

다섯 번째로 종장의 전반부가 소음보 + 과음보의 불균형의 구조는 시적 긴장이 모이도록 효과를 발휘해 후반부는 여기에 이어지는 이완의 흐름을 형성하여 한 편의 작품을 마무리 하도록 정형화되어 있다. (평시조)

20) 시조의 내용상 특징은 다양하나 평시조는 양반사대부들이 주로 지었고, 성리학의 가치, 충효 사상, 천명, 수신제가, 풍류, 안빈낙도 등을 노래했다. 자연과 한정을 노래한 강호가 류는 자연 속에서의 유유자적하는 삶으로 시조 작품 수가 가장 많고 사화, 당쟁이 많았던 16.17세기에 가장 성행했으며 강호가류(江湖歌類)는 자연에 내재한 ’理‘를 찾아내서 그것 과 합일함으로써 자신의 심성을 닦고 인격을 수양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따라서 강호 가류는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 조화 상태인 天人合一을 주로 노래했다. 오륜가류(五倫歌 類)는 유교적 윤리 덕목인 오륜을 실생활 속에서 실천할 것을 백성들에게 교화하는 내용 인데 이 오륜가는 바로 사대부들의 경국제민(經國濟民)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21)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시조 문학은 내용상 큰 변화가 일어난다. 시조 문학의 향유 계층이 양반 사대부층에서 중인 가객층으로 바뀜에 따라 앞 시대의 사대부 문학은 계승되지 못했 으며 가객들의 작품에 나타난 특징은 단시조에서보다는 장시조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 다. 장시조는 첫째 남녀 문제를 다룬 것, 둘째 중국 문화에 적셔져 있는 것, 셋째 인생의 허무를 노래하고 있는 것, 넷째 인간 문제에 모티브가 있는 것, 마지막으로 물상(物象) 및 생물(生物)을 테마로 한 것 등이 전반적인 내용인데 미학적 원리인 해학을 바탕으로 지어졌고 함축적이고 세련된 시어보다는 일상어, 비속어는 물론 재담이나 욕설까지도 마구 사용해 서정시로서의 새로운 미학을 창조하는 데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4. 가사(歌辭)

1) 가사의 명칭은 장가(長歌), 가사(歌詞), 가사(歌辭주로 학계에서) 등 세 종류

2) 가사는 이론적 장르로는 경기체가, 수필, 일기, 편지 등의 교술의 형태로 본다.

3) 가사는 형식적 제약이 한 줄이 4음보이기만 하면 된다. 가사는 외형적으로는 시가처럼 정 제적이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

4) 가사의 발생은 시조에서, 경기체가에서, 속요의 영향에서 발생해 어느 하나를 규정할 수는 없다.

5) 나옹화상의 서왕가를 가사 양식의 효시라 봄

6) 가사는 시조보다 작가층이나 형식이 광범위하다. 가사는 4음보이기만 하면 된다. 가사의 작품은 굉장히 많다.

7) 고려말에서 형성되어 조선 초기에 활약했던 나옹화상은 불교의 포교를 위해 승원가(僧元歌), 서왕가(西往歌), 등의 종교적 색채를 띤 가사를 창작했고 유가의 신득청(申得淸의 이두 표기인 歷代轉理歌는 중국 역대의 무도한 제왕 사적을 공민왕에게 알려서 선정을 꾀한 교훈적인 가사) 이 지었고 조선 성종 때부터 선조 임란 전까지에 가사 체계의 확립 및 발달기로 볼 수 있는데 작품으로는 정극인의 상춘곡, 양반 가사, 허난설원의 규원기 등이 유명하며 사대부가사의 발전기인 선조 임란 후부터 영조조까지는 전기의 작품을 계승하여 질양으로 융성을 보였고 광해군의 난정, 임오의 변을 겪으면서 엄격했던 신분이 난후 다소간 누구러진 때였으모 강호생활의 작품이 창작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양반 가사, 평민가사(서민가사는 장편화 되고 서정, 서사, 교술 등이 극대화), 규방가사가 주를 이루다 개화기에는 동학, 서학, 불교 가사등이 있다.

 

5. 고소설

1) 소설은 신화, 전설, 민담, 판소리, 서사민요, 서사무가, 야담 등과 함께 서사 문학(敍事文 學)의 한 하위 갈래이다.

2) 한문(漢文)을 공용어문으로 문자 생활을 영위했던 중세 동양 문화권에서 ’소설(小說)‘이란 말이 지닌 용례의 의미를 장르적 변별성을 염두에 두고 추상해 보면 1) 經, 史에 비해 격 이 낮은 신변잡기류의 자질구레한 글이란 뜻과 2) 허구적 장, 단편 작품, 3) 특정 작가에 의한 의도적 제작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처럼 小說이란 말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 는 바와 같은 장르적 개념의 용어가 아닌 것으로 ’대설(大說 성현의 말씀)이 못되는 잡다 한 이야기로서의 소설이었고 장르 개념으로서의 소설의 의미는 오히려 전기(傳奇), 연의소 설(演義小說:演義, 演史), 通俗小說, 淫戲小說 등의 새로운 양식이 출현하면서 복합적 모습 을 일구게 된다.

3) 소설이란 용례의 각 항목이 지닌 내표적 속성과 외연적 범위를 보면 1) 소설은 주장, 사상 을 직접 피력한 경전(經典), 논설(論說)등의 글과 구별되며 2)와 3)은 각각 소설과 역사, 소 설과 설화를 구분하는 근거가 되며 1)에서 서사문학 이외에 교술적인 것들을 제외하고 2) 와 3)을 함께 고려함으로써 우리는 소설의 개념을 ‘특정 작가의 의도에 의해 제작된 허구 의 장, 단편의 서사문학 작품으로 한정 할 수 있다.

4) 소설이 종종 강담사(講談師)나 전기수(傳奇叟)에 의해 낭독되거나 구연되기도 함.

5) 고소설의 범위를 나말려초의 전기에서부터 애국 계몽기의 신소설 이전까지의 것으로 한정

6) 小說이란 용어의 장르적 성격을 바탕으로 고소설의 범위를 나말여초(羅末麗初)의 傳奇에서 부터 애국계몽기의 新小說 이전까지의 것으로 한정하고 여기에는 설화, 서사무가 등의 구 비물(口碑物)과 역사 기록, 교술 산문 등의 기록물이 포함되지 않는다.

7) 설화의 문자적 정착은 신이적 환상적 흥미 요소 중심으로 이루어지거나 역사 기록의 일부 로 이입되기도 하고 때로는 종교적 영험에 관련된 연기설화적(緣起說話的) 모습으로 개변 되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활발한 운동을 보이던 설화 모티프나 역사고사 등을 바탕 으로 하고 높은 수준의 한문 창작 및 해독 능력을 갖춘 지식인들에 의해 설화와는 다른 새 로운 형태의 서사장르가 창출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傳奇이다.

8) 금오신화(金鰲新話)를 한국 최초의 소설 작품으로 하고 그 결과 한국 소설의 발생 기점은 15세기 후반으로 설정, 금오신화 이전에도 이에 견줄 만한 유형의 소설 작품이 존재하였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시작되고 그 결과 우리 소설의 발생 시기를 나말려초(羅末麗初)로 잡고 해당할 수 있는 작품으로 조신몽(調信夢), 김현감호(金現感虎), 수삽석남(首插石枏), 최치원 전(崔致遠傳)등이 거론되는데 이 소설상의 가장 인정받은 작품은 최치원전이어서 이 작품 을 기점으로 하여 우리의 고소설이 시작되고 있다는 주장.

9) 최치원전의 작품 구조 분석 결과로 볼 때 그것이 설화적인 수준을 넘는 개인 창작 작품으 로서의 소설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금호신화와 대동소이하는 것이다. 둘째 발생 구조론적 측면에서 최치원전이 창작된 당시의 상황이 모두 역사적 변환기이자 중세 사회의 재편기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나말려초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 관계가 만만치 않은 갈등 용 인을 배태하고 있었던 시대라는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문화적 수수관계(授受關 係)가 빈번했던 나말여초의 중세적 상황과 이의 영향 관계로 인한 전기소설(傳奇小說)의 제 작과 수용 가능성을 들수 있다. 넷째 전기(傳奇)의 소설성 문제를 설화와의 비교 내지는 소 설의 개념 문제와 관련지어 살핀다든지 설화가 소설로 상승하는 과정을 중시하면서 발생기 와 소설이 어떻게 설화 속에서 자신의 독자성을 확보해 나갔는가를 추론할 수 있다는 점이 다.

10) 역사적 관습 장르로서의 고소설의 출발을 전기(傳奇)로 잡는 것이 타당

11) 15세기 한글의 창제와 함께 서사적 표현능력이 확대되면서 우리말로 된 국문소설이 생김.

12) 석보상절(釋譜詳節1447), 월인석보(月印釋譜1459) 등에 번역 내지는 번안으로 수록된 불 교계 국문소설로는 안락국태자담, 목련구모담, 선우태자담 등을 들 수 있다.

13) 15, 16세기 불교계 국문 소설 중 왕랑반혼전과 유사한 불교계 소설의 일종으로 추정되는 작품인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 작품은 훈구파 대신인 채수(蔡壽) 에 의해 처음부터 명백한 한문소설로 창작되었고 이것이 유전되면서 향유 조건에 따라 한 문 그대로 읽히거나 때로는 국문으로 번역 보급되기도 했다.

14) 15세기 우리 소설사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일은 금오신화(金鰲新話)

15) 김시습보다 더 반곡이었던 임제(林悌1549~1587)는 수성지(愁城志: 심성을 의인화한 작품) 와 함께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을 지었다, 원생몽유록은 역사 사건과 직접 관련되는 몽 중 현실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현실 비판적 성격이 보다 강렬하다.

16) 15, 6세기의 한글 표기 소설은 대체로 불교 관계 고사나 위경(僞經) 내지는 변문류(變文 類의 번역, 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17세기에 접어들면서는 처음부터 직접 한글로 창작 한 소설이 등장하게 되었다.

17) 홍길동전은 허균(許筠 1569~1618)이 지었으며 지금까지 확인 가능한 연주 자료로 볼 때 최초의 한글 창작 소설이다. - 금호신화 후 100년 정도 후. 17세기에는 한글 소설이 많 이 나옴. 구운몽, 사씨남정기, 창성강의록

18) 17세기 후반 우리 소설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구운몽(九雲夢), 사씨남정기, 그리고 창선감의록이다. 구운몽에서 보이는 사대부의 이상적인 삶에 대한 양면적 모습과 이를 통 합할 수 있는 의미에 대한 진지한 탐색의 과정은 바로 서포(西浦) 그 자신이 지녔던 인간 과 사회에 대한 끝없는 물음이자 깊이 있는 성찰이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서포는 중세적 가족 제도의 가정내적 문제점과 이로 인한 정치, 사회적 갈등관계로의 파급에 따르는 힘 의 균형 상실을 상정하고 이를 권선징악적 필치로 글냄으로써 여성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 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양반 사대부들에 있어서 우리 고소설의 효용성을 긍정하는 한 기중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조성기(趙聖期1638~1689)의 창 선감의록은 사씨남정기의 가정 소설적 성격과 구운몽의 이상주의적 성격을 복합적으로 드 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조성기가 소설을 좋아하는 그의 어머니에게 읽어줄 목 적으로 지었다 하였으니 본래의 표기가 국문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사씨남정기는 김춘택 (金春澤)이 남긴 기록으로 보아 국문으로 창작되었음이 분명하다.

19) 17세기 우리의 소설 무대는 당대의 고관대작은 물론 석학(碩學)조차도 국문으로 소설을 지을 정도로 소설의 효용적 지위가 격상되었으며 독자층 또한 양반 사대부로부터 부녀자 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넓혀지고 있음.

20) 18, 9 세기에는 소설이 우리 문학의 주역이고 텍스트의 유통 구조에 있어서도 괄목할 만 화 변화가 있으며 소설 작품이 질량 면에서 다양성을 보인다. 연암(燕巖한문단편만 남김, 허생전), 문무자(文無子)의 소설로 대표되는 각종의 한문단편, 서민문학으로부터 국민문학 으로 승화되는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 국문소설의 장편화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입증한 가문서설(家門小說) 소설 시대의 도도한 물결에 뒤늦게 동참한 보수적 한문 독자들의 복 고 지향적 세계를 흥미 중심의 허구적 이야기로 그린 장편 한문소설등이 그러하다. 18세 기에 오면 민간 업자들이 길거리에서 글자를 새겨 소설을 찍어냄.

이 시기 국문소설의 압권은 판소리의 문자적 정착 즉 판소리계 소설에서 찾을 수 있다. 만화본(晩華本) 춘향가, 냄원고사 등으로 알 수 있듯이 판소리는 18세기 전후로 발생하여 20세기 초까지에 걸쳐 성행한 구비서사문학(口碑敍事文學)이다. 이 시기에 가장 많이 간 행 보급된 소설은 영웅(군담) 소설이다. 가문소설(家門小說)은 큰 범위에서 가정소설의 일 종으로 누대에 걸친 여러 가문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그리고 있다. 이때부터 세책가(貰 冊家)를 통해 구매 및 세대(貰貸)의 방식으로 유통되었다.

21) 소설의 상품화는 강독사(講讀師), 강담사(講談師), 강창사(講唱師)등에 의해 다수의 청중이 모인 구연 현장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있고 세책점, 서점들에서 빌려주거나 팔기 위한 목 적으로 필사 또는 인행(印行)하는 경우의 둘로 나누어진다.

22) 소설이 상품화되는 본격적 모습은 인쇄물에 의해서다. 고소설의 인쇄 유통은 바로 방각본 (坊刻本)을 의미한다. 그 이전에도 관각인쇄에 의한 전등신화(剪燈新話), 삼국지연의(三國 志演義) 등 소설의 간행이 있었으나 이는 상품을 전제로 한 인쇄유통이 아니다. 그리고 소설의 상품화된 간행이 구활자본으로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이는 1910년에 들어서의 일 이다. 현재까지 확인 가능한 방각본 소설의 첫 모습은 1725년 나주에서 간행된 한문본 구운몽(九雲夢)이며 국문 소설로 실물이 확인되는 것은 1848년의 삼설기이며 간행 사실만 확인되고 실물 확인이 안되는 것으로는 1800년 경에 간행된 소대성전이다. 방각본의 독 자는 주로 18, 9세기의 서민들로서 이들과 출판업자를 연결하는 매개자가 바로 세책점, 서점, 책거간꾼, 보부상, 필묵상 등이다.

23) 영웅 소설은 집단의 이념이나 이상적 가치의 수호, 획득을 위해 전란에서 무공을 세우는 등의 비범한 활약상을 보이는 인물에 관련된 이야기를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영웅 소설은 군담 소설과 동의어라 보아 무방하다. 영웅 소설은 역사 영웅류와 창작 영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에는 임경업전, 임진록, 박씨전 등이 있고 후자에는 홍길동전, 조 웅전, 유충렬전, 소대성전, 장풍운전, 장백전, 유문성전 등이 있다.

역사 영웅 소설들은 치욕의 역사 현실을 겪은 후에 갖는 외적에 대한 적개심과 정신적 승 리, 명나라 원병(援兵)에 대한 의미 평가, 외침을 초래한 지배층의 무능 비판 등 양난 이 후에 고양된 민족의식의 소설적 투영이라 이를 만한 것이다.

창작 영웅 소설은 영웅의 일생을 근간 구조로 하여 전개되는 작품군이다.

24) 몽유(몽환) 소설 구운몽, 임제의 원생몽류록

25) 애정 소설: 혼사 장애 모티브 – 춘향전

26) 가정소설: 홍길동전

27) 송사 소설: 추리소설

28) 의인소설(의인화된 소설) 고려 때 가전에서 발생(우리나라는 우화가 발전되지 못함)

29) 판소리계 소설: 판소리(구비)가 인기되어 기록으로 보전되었다.

30) 판소리는 원래 12마당이었으나 1) 춘향가, 2) 심청가, 3) 홍보가, 4) 수궁가, 5) 적벽가가 판소리 가창이고 6) 변강쇠가 7) 배비장타령 8) 옹고집타령 9) 짱끼타령은 소설로 인정 되고 10) 왈짜타령, 11) 강릉매화타령, 12) 가짜신선타령은 이름만 전해졌는데 최근에 11), 12)이 판소리 사설의 정착본에 가까운 필사본으로 발견됨으로써 그 구체적 모습을 알게 되었다,

31) 우리 고소설의 출발을 나말여초의 전기로 볼 때 확인 가능한 최초의 작자는 신라수이전 (新羅殊異傳)을 쓴 최치원(崔致遠)이다.

32) 15세기 이후 조선조의 전 시기를 통해서 보더라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고소설의 작자 는 그리 많지 못하다. 그 까닭은 소설이 경사(經史)에 비해 격이 낮은 글이라는 당대 지 식인의 소설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말미암아 작자들이 자기를 드러내 놓기를 꺼려했기 때문이다. 15세기를 대표하는 작자로는 단연 김시습이고 이후 16세기를 대표하는 작자는 허균, 허균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한문 소설로는 권필(權韠)의 주생전(周生傳), 위경천전 (韋敬天傳) 이항복(李恒福)의 유연전(柳淵傳), 신광한(申光漢)의 기제기이(企齊記異), 윤계 선(尹繼善)의 달천몽유록(澾川夢遊錄), 심의(沈義)의 대관제몽유록(大觀齊夢遊錄) 등을 들 수 있다.

33) 17세기는 소설이 좀 더 활발히 창작되었던 시대 김만중의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조성기 (趙聖期)의 창선감의록 있다. 이들 작품은 교훈성과 오락성을 고루 갖추고 있으면서 한문 과 국문으로 함께 유포되었기 때문에 많은 독자를 확보.

34) 18, 9 세기에는 작자의 수가 한층 더 늘어나고 직업적인 작자층이라 할 만한 것이 형성될 정도로 소설이 크게 성행, 대중화되던 시기이다. 한문 단편소설로는 연암 박지원의 양반 전(兩班傳), 허생전(許生傳), 호질(虎叱) 및 문무자 이옥(李鈺)의 심생전(沈生傳), 남령전(南 靈傳) 장복선전(張福先傳)등을 꼽을 수 있다.

 

6. 설화(說話)

1) 신화: 神에 대한 이야기, 신성시 여겨지는 이야기, 주몽 신화, 성경, 국조 신화, 씨조 신화, 무조 신화, 용비어천가, 구체적이고 경외감을 가짐, 시련이 닥쳐도 목표를 이룸(민족, 집단). 신에 관한 이야기, 신만이 아니라 자연 현상이나 사회 현상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 전승집단에 의하여 싯성시되는 이야기

2) 전설: 신은 아닌데 비범한 인물이 주인공, 애기 장수, 지배층의 억압으로 불행하게 끝남, 비장미가 있고 용마 바위, 허구, 증거물, 시공간, 비극적 인물, 장소등이 구체적이고 전설은 진실되다, 는 믿음을 만듬

3) 민담: 주인공이 평범하거나 바보 우연에 의해 능력이 생김(행운), 흥부전의 흥부처럼. 시공 간이 불명확함, 민담은 해학과 긍정적 웃음을 유발하는 골개가 잔뜩 묻어난, 증거물 없음.. 해와 달의 오누이

4) 설화를 삼등분했을 때 문제가 되는 바는 그 변별적 기준이다. 이들 간에 심한 갈래적 혼재 와 변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화가 신성성을 상실하면 전설이 되고 전설이 증 거물이 없어지면 민담으로 변할 뿐 아니라 신화인지 전설인지, 민담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사례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