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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노자의 도론(道論)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4. 5. 22.

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초짜 철학도의 분투기

 

 

 

 

 

 

도(道)와 덕(德)을

중심 사상으로 세운

노자를 공부 중이다.

 

유가의 도는

‘인간으로서의 올바른 도리’

‘사람의 도(人之道)’를

전제로 하지만,

 

노자는

인간의 존재 이전의

우주의 본원이며

만물의 생성과

존재의 법칙으로

도를 설명한다.

 

이러한 노자의 도의 성격 중에

오늘 아침 나에게 다가온 구절은

“부드럽고 약함이 억세고 강함을 이긴다.”

(柔弱勝剛强)라는

구절이다.

 

살아오면서

때론 스스로의 울분에

가슴을 치고

 

때론

타인을 향한 원망에

잠 못 드는 때도 있지만

 

마음만은

부드럽게,

본성만은

약함을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시간,

 

모든 시간을 뒤로하고

내 앞에 펼쳐진

시간을 바라보며

끝 간 데 모를

내 인생의 숙제들을 향해

아득한 꿈을 꾸게 된다.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나날들이다.

 

 

 

 

참고 문헌: 노자와 도가사상

김학주 저, 명문당

 

<노자의 도론(道論)>

 

1) 도(道)와 덕(德)

『노자』는 『도덕경』이라고도 부르며, 그 책의 내용은 도경과 덕경의 상, 하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상편의 첫머리가 도에 관한 얘기로 시작되고 하편의 첫머리는 덕에 관한 말로 시작되고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사마천이 『사기』에서 『노자』는 “도와 덕의 뜻을 얘기한 5천 언(言)으로 이루어졌다.”고 얘기하고 있듯이 노자의 중심 사상이 도와 덕으로써 이루어져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유가에서도 그 함축적인 의미는 다르지만 역시 도와 덕에 대하여 설교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자가 생각하던 도와 덕은 어떤 것이며 유가의 그것들에 대한 개념과는 어떻게 서로 다른가? 도란 유가든 도가든 그들이 생각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를 뜻하고 덕이란 도를 따라 사람들이나 사물을 통하여 발휘되는 ‘훌륭한 성능’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덕이란 도가 겉으로 드러난 것이기 때문에 덕의 성격은 도에 의해 결정된다.

 

공자의 도는 결국 인(仁), 지(知), 용(勇), 서(恕) 등 여러 가지 유가의 덕목을 통하여 발휘되는 ‘올바른 도리’인 것이다. 곧 공자의 도는 인간으로서는 인으로 발휘되고 사리를 판단하여야만 할 때에는 지로서 발휘되고, 불의와 대처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용으로 발휘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경우에 따라 사람을 통하여 발휘되는 ‘도의 효틍’이 곧 덕인 것이다. 곧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훌륭한 행위를 통털어 덕이라 부르는 것이다.

 

노자의 도는 공자의 그것에 비하여 더욱 절대적이고 본원적인 것이다. 그것은 사람에 관계되는 올바른 도리 뿐만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인간과 만물과 우주 전체의 본체를 뜻한다. 유가의 『역경』 계사전(繫辭傳)에도 “일음(一陰) 일양(一陽)을 도라고 말한다.”라고 말하고 있고 『중용』에서는 인간으로서의 도뿐만이 아니라 ‘하늘의 도(天之道)’에 대하여도 말한 대목이 있지만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도에 대한 유가의 개념은 전국 말엽 이후에 생겨난 것일 것이다.

 

어떻든 유가의 이러한 도에 대한 개념조차도 모두 ‘인간으로서의 올바른 도리’ 곧 ‘사람의 도(人之道)’를 전제로 한 것이다. 이에 비하여 노자의 도는 인간의 존재 이전의 우주의 본원이며 만물의 생성과 존재의 법칙인 것이다.

 

노자의 도는 공자처럼 인간의 당위법칙으로서의 범주를 뛰어넘어 우주의 생성보다도 앞선, 그리고 “천하의 모체”가 되는 그런 절대적인 것이다. 곧 우주의 모든 존재는 도를 바탕으로하여 이루어졌고 도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란 인간의 지성의 한계를 초월한 절대적인 것이어서 사람으로서는 그 존재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어렵고 말로써 그것을 표현하기도 어려운 것이라는 것이다.

 

어떻듯 이러한 도에 대한 인식은 노자의 학문 내용을 도에 관한 추구가 중심이 되게 하였고 그의 사상의 전개는 도에 대한 순종의 길을 모색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노자의 학파를 도가라 부르고 이들의 사상을 ‘도가 사상’이라 부르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자의 도에 관한 이런 성격 때문에 ‘도가 드러나는 것’인 덕도 따라서 공자의 덕과는 그 성격이 판이해진다. 노자의 도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도가 인가능ㄹ 통하여 발현되어 덕으로 드러날 때에도 그것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판단이나 상식을 초월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공자는 사람을 통하여 발휘되는 올바르고 훌륭한 효능이 곧 덕이라 생각하였지만 노자의 덕은 인간의 올바르다는 판단이나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행위를 초월한 것이 된다. 노자는 인간들의 올바르다, 그르다는 판단이나 모든 의식적인 행위 자체가 도에 어긋나는 그릇된 것이라 생각하였다.

 

곧 덕이란 도가 우주를 생성하고 존재케 하고 있는 상태와 같이 극히 자연스럽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이어야만 하며 저기에는 아무런 인간의 의식적인 작위도 가하여지지 않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자 사상의 기본 개념 때문에 공자의 유가 사상이 현실주의적이라면 노자의 도가 사상은 초현실적이다. 노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성이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데서 인간의 모든 갈등과 불행이 생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노자는 도라는 절대적인 원리를 추구함으로써 사회의 부조리뿐만 아니라 인간이 타고난 모든 불행의 요인으로부터 해방되자는 것이다.

 

곧 노자 사상의 근본 목표는 도가 지나는 무위하고 자연스런 덕을 터득함으로써 우주의 한 구성 요소로서의 인간 본연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의 이성이나 감정 또는 욕망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켜 인간의 완전한 자유 곧 완벽한 행복을 이룩하자는 것이다.

 

2) 우주의 본원으로서의 도

『노자』에 의하면 도란 바로 우주의 본원이다. 하늘이며 땅이며 온 만물이 도를 바탕으로 하여 이룩되었다는 것이다. 도란 하늘과 땅보다도 앞서 존재하는 것이며 우주 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모체로서 영원히 변함없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도의 존재나 성격은 사람의 이성으로서는 정확히 파악할 수도 없는 것이며 적당한 명칭도 없어 임시로 도라 부르기로 하였지만 그 위대한 작용에서 볼 때에는 대라 불러도 좋을 듯한 것이라는 것이다.

 

노자에게 도란 사람의 지각으로 파악했을 때는 이미 진정한 의미의 도가 못 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사람들의 도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이미 진정한 도를 지칭하는 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을 통해서 볼 때에는 유보다 무쪽이 도에 더 가깝다. 도는 이처럼 사람으로서는 그 존재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 작용은 오묘하기 이를 데가 없다는 것이다.

 

3) 만물의 존재 원리로서의 도 – 무위. 자연

도는 만물 생성의 본원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변화케 하고 존재케 하는 기본 원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면 우주의 만물을 생성하고 존재케 하고 있는 도는 어떠한 원리에 입각하여 작용하고 있는가?

 

위대한 도는 어디에나 있으면서 만물을 생성케 하고 또 그것을 존재케 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그러한 능력이나 공로를 내세우는 일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의 존재조차도 소홀히 하기 쉽다. 도는 실체가 무일 뿐만이 아니라 그 작위까지도 무인 것이다.

 

곧 도의 작용은 만물을 생성케 하고 존재케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의식적인 작위도 가해지는 것이 없다. 도는 ‘이름이 없는 것은 천지의 시작’이고 도란 언제나 이름도 없는 것(道常無名)이라 말하고 있듯이 도의 본체는 이름도 없고 형체도 없고 움직이는 모양도 없는 것이며 그 작용 또한 무위한 것이다. 모든 것을 생성하고 존재케 하고 있지만 도는 ‘언제나 욕심이 없음’으로 전혀 만물을 차지하거나 지배하려 들지도 않고 자기의 공을 내세우는 법이 없다.

노자는 도를 만물의 기원으로 지칭했으며,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없지만 그것을 굳이 명명해야 한다면 '도'라고 했다. 또 노자는 도를 '무(無)'라고도 했다. 여기서 무는 존재를 부정하는 의미가 아니라 상대적인 성격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무는 절대적이고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 『도덕경』은 '천하 만물은 유에서 나오고 유는 무에서 나온다'라고 적고 있다. 노자는 무에서 유가 생성되고, 유가 다시 무로 돌아가는 원리에 따라 만물이 생성되고 멸한다고 보았다. 또한 만물의 생성은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불변의 법칙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무위(無爲)의 원리에 따르며, 인간도 천지 만물의 구성체인 만큼 무위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이것이 바로 노자의 정치 사상이다.

 

노자는 무위를 통한 지배를 강조해 사회 진보는 혼란을 야기할 뿐이고, 생산의 발전은 인간의 탐욕을 부추길 뿐이며, 탐욕은 전쟁의 원인이라고 했다. 또한 문화는 지식의 발전을 가져오고, 이는 결국 전쟁에 이용될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문명이 없던 시대, 어리석을 정도로 순박한 자연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노자의 이상적 국가 형태가 '소국과민(小國寡民)'이다.

 

이상과 같이 노자가 말한 도는 무위이고 이 무위는 자연을 따르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데 무위하고 욕심도 없고 사사로움도 없고 내가 없는 상태가 자연이다.

 

4) 도의 성격 – 반(反), 약(弱)

무이며 무위하고 자연스러운 도는 실제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우리 앞에 드러나고 있는가? 노자는 도는 무위하고 자연스럽지만 한편 그 작용은 반(反)이라는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반이란 도의 움직임이다. (反者道之動)”라고 말하는데 이 반이란 도의 움직이는 방향은 두 가지 면에서 파악된다.

 

첫째, 도는 언제나 움직이고 변화하고 있지만 반드시 “근본으로 되돌아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도란 “모든 것에 두루 행하여지며, 천하의 모든 것의 모체가 된다는 것이다.

 

둘째, 도는 ”반이란 도의 움직임이다. (反者道之動)이란 말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의 가치? 또는 <반대의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도는 언제나 무위하지만 하지 않는 일이란 없다.” (道常無爲, 而無不爲) 라는 말은 이러한 도의 성격에 대한 단적인 표현이다. 이는 상대적인 가치를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그릇된 일반적인 가치판단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부드럽고 약함이 억세고 강함을 이긴다.”(柔弱勝剛强유약승강강), “강하고 사나운 자는 제 목숨에 죽지 못한다. (梁(들보량)者, 不得其死), “천하의 부드럽고 약한 것으로는 물보다 더한 것이 없지만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 있어서는 그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억센 것을 이긴다는 것은……” (天下 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 莫知能勝 弱之勝强 柔之勝剛 천하 막유약어수 이공견강자 막지능승 약지승강 유지승강), “천하의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지극히 억센 것을 부리고 있다.” (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천하지지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守柔曰强) 등 도처에 부드러움과 약함의 이론을 내세우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도의 작용 자체가 부드럽고 약한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도의 성격을 이처럼 반과 약의 면에서 파악한 것은 노자의 인생론이나 정치론에도 지극히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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