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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소크라테스의 지행 합일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4. 5. 4.

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초짜 철학도의 분투기
 
 

 
 
<소크라테스의 지행 합일설>
 
얼마 전 영화 에세이를 쓰면서 중국 명나라 중기의 철학자이며 양명학의 창시자, 양명(陽明)이란 호로 더 잘 알려진 왕수인(王守仁 1472~1529)의 일원론(一元論)을 언급한 적이 있다.
 
심즉리心卽理설은 일체의 존재가 마음에 섭수(攝受)되는 심론(心論)으로서 성(性)을 理로, 마음을 氣로 보는 주희의 성즉리(性卽理)·심즉기(心卽氣)설과는 대립적 색채를 띠는데 왕수인은 지식과 실천에 관해서도 지식이 선행하고 실천이 뒤따른다는 이른바 선지후행적(先知後行的)인 주희식의 주지주의(主知主義)를 배격하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한 것이다. 이는 주자학의 이론(性卽理)이 주관 관념론에 빠질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실천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편 이러한 심즉리설의 심(眞我)과 리(眞理)에 대한 내재적 합일(心卽理)의 관점은 선()불교의 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데 "선불교에는 심외무불 성외무법(心外無佛 性外無法)이라는 명제를 통해 마음 밖에 부처가 따로 없으므로 성불을 하려면 먼저 불성을 본유(本有)하고 있는 각자의 참 마음부터 찾으라고 말한다." 며 성품 밖에 법이 따로 없으므로 진리의 판단 기준을 외부의 사변적 학문이나 성현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부의 직관적 성찰을 통해 얻어야 함을 강조했는데,
 
어제는 소크라테스 강의를 들으며 소크라테스의 영혼론과 함께 그의 지덕 일치설과 지행합일설과 마주했다. 교수님이 주신 자료이다.
 
<덕과 앎의 중요성> 원전 읽기
 
라케스 : 소크라테스 선생, 나는 말이오, 지레 포기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소. 그렇지만 그와 같은 논변에 내가 익숙하진 않소. 하지만 우리가 나눈 이야기에 대해서는 어떤 승리욕이 나를 사로잡아서 이런 식으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내가 말할 수가 없는가 하고 정말로 난 화가 나오. 난 내가 용기에 관해 그게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그게 방금 내게서 빠져나가 그걸 말로 모아 내지도 못하고 그게 무언지 말하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친애하는 선생님, 훌륭한 사냥꾼은 내버려 두지 말고 쫓아가야 합니다.
 
라케스 : 전적으로 동감이오.
 
소크라테스 : 그럼 여기 이 니키아스님도 이 사냥에 불러들일까요? 우리보다 좀 더 잘 해내실 수 있다면요.
 
라케스 : 좋지요. 어찌 안 좋겠소?
 
소크라테스 : 자, 이리 오시지요, 니키아스 님, 논의에서 폭풍우를 맞아 난관에 처해 있는친구들을 도와주십시오. 뭔가 할 수 있으시다면 말입니다. 우리 상황이 얼마나 난감한 처지인지 보고 계시잖아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용기가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셔서, 우리를 이 난관에서 풀어 주시고 선생님 자신은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들을 말로 확고하게 해 두시지요.
 
니키아스 : 자, 소크라테스 선생, 나는 아까부터 두 분께서 용기를 제대로 규정하지 못하고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소. 내가 이미 선생이 훌륭하게 말하는 걸 들었던 바로 이것을 두 분께서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오.
 
소크라테스 : 어떤 걸 말입니까, 니키아스 님?
 
니키아스 : 나는 종종 선생이, 우리는 각자 자신이 지혜로운 그런 것들에 있어서는 훌륭하지만 자신이 무지한 것들에 있어서는 나쁘다고 말하는 걸 들었소.
 
소크라테스 : 제우스께 맹세코, 선생님 말씀이 정말 맞습니다, 니키아스 님.
 
니키아스 : 그럼, 용감한 자가 훌륭하다고 한다면, 그가 지혜롭다는 것은 분명하오.
 
소크라테스 : 들으셨습니까, 라케스 님?
 
라케스 : 내 듣긴 했소만, 그가 말하는 바를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하겠소.
 
소크라테스 : 하지만 저는 이해했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제겐 저분이 용기를 일종의 지혜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플라톤, 라케스 194a~d)
 
철학의 순교자였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였던 소크라테스 또한 덕(탁월함)과 앎(지식)의 단일성인 지덕일치설, 지행합일설을 주장했다니 세상의 진리는 어느 한쪽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류 모든 이들에게는 마치 합의된 것인 양 어떤 이론들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비슷한 형태로 흐른다는 것을 깨달았던 귀한 시간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지행 합일설에 따르면 인간은 어떤 것이 정녕 좋다는 것을 알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응당 추구하고 행하는데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손상시키고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악행을 선택하지는 않는다는 의지박약(아크라시아) 불가능성)을 거론하며 .그럼에도, 좋지 않은 것을 추구하고 행하는 것으로 보이는 까닭은 사람들이 그것을 일견 어느 측면에서라도 ‘좋다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며 본성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 참되지는 않되 단지 그럴듯해 보이기만 하는 행복과 진정한 행복을 옳게 분간 해내지 못한다면, 즉 이에 대한 무지에 빠져 있다면, 인간은 사실상 좋지 않은 것을 추구하고 행하기도 하는 데 이는 곧 인간의 부덕함이  무지에 기인함을 의미한하며 ‘부덕이 무지’라는 주장은 결국 ‘덕(탁월함)이 지식(앎)’이라는 점을 반증이므로 탁월함 가운데 최고인 좋음[善]과 지(知)는 단일한 것이 된다는 말씀이겠다.
 
이렇듯 알게 되는 어떤 지적 즐거움은 5월의 햇살처럼 내 마음, 영혼을 데운다. 더불어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국엔 행함에 이를 때 그것은 내가 설계하는 ‘공동의 선’을 위해 한 걸음씩 느리게나마 나아가는 길이 되겠다.
 
이렇게 찬란한 5월의 아침,
오늘은 나의 탄생일이기도 하다,
 
오늘 하루
나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을까?
두근두근!!!
 
이제 예쁘게 차려입고
나들이라도 나갈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