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초짜 철학도의 분투기
과목: 영화와 철학
소재: 영화 ‘무간도’ 감상 후 주제를 정하고 에세이 쓰기
살아오면서
영화 감상 후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짧은 후기를 작성해 본 적은 있으나
영화를 통해
철학적 주제를 끄집어내고
그 주제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경험은 처음이다.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주제는
‘인생의 고통에 대비하는 법:
심즉리에 기반한 지행합일(知行合一)’
과제이기 때문에
부담감도 없지 않았지만
새로운 시도는
즐거움을 동반했다.
아직 미숙하지만
내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내 삶의 실천력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
어젯밤 쓰다 만 글들을
다시 꺼내 정리하는 시간,
창밖으로 보이는 신록들이
유난히 짙다.
익어갈 그들의 내일이
스르르 나에게 건너오는 것만 같다.
<인생의 고통에 대비하는 법: 심즉리에 기반한 지행합일(知行合一)>
얼마 전, 동양 철학 수업 시간에 불교철학을 공부하며 석가모니의 8고(八苦)에 대해 배웠다. 8고란 생노병사(生老病死)의 네 가지 고통에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고통),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고통), 구부득고(求不得苦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하는 고통)과 더불어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으로 이루어진 존재인 인간 자신에 대하여 "나"라고 할 수 있는 실체가 있다고 집착함에 의해 비롯되는 오취온고(五取蘊苦) 또는 오음성고(五陰盛苦)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란다.
이렇듯 석가모니는 인간 세상의 고통의 문제를 ‘나의 의욕’과 ‘실제의 상황’의 불일치에서 오는 것에서 출발했구나,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수업을 끝내고 짙푸른 초록과 화사한 철쭉들로 무성한 교정을 천천히 걷자니 얼마 전 영화와 철학 수업에서 감상했던 영화 ‘무간도’가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영화 ‘무간도’의 주인공 중 하나인 유건명(유덕하분)은 삼합회 조직원으로서 경찰에 잠입해 조직에서 깔끔한 일 처리로 상부의 신임을 받는 엘리트 경관이다. 출발은 어둠이었지만 어둠에서 벗어나 밝음을 지향하며 살고 싶은 그는, 그의 신분을 아는 모든 사람들을 죽인다. 조직의 보스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조직의 또 다른 스파이인 경찰마저 죽인다. 그는 경찰 학교에 들어가 훈련을 마치고 황국장의 명령을 받아 범죄조직 삼합회 조직원으로 잠입해 스파이 생활을 오래 해나가면서 완벽한 조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또 다른 축인 진영인(양조위)의 정체를 알고 나서, 그의 비밀 기록을 없애며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진짜 경찰로 살아가려 한다.
또 다른 주인공, 진영인(양조위)은 경찰 학교에 들어가 훈련을 마치고 황국장의 명령을 받아 범죄조직 삼합회 조직원으로 잠입해 경찰의 스파이 생활을 오래 해나가면서 완벽한 삼합회 조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직원이라는 이유로 사랑에도 실패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며 같은 조직의 형제들과 진한 의리를 나누는 조직원으로 살아가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까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한다. 더불어 자신의 신분을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황국장의 죽음으로 유건명의 정체를 알은 후, 자신의 본래 신분을 찾기 위해 孤軍奮鬪하지만 유건명의 방해에 죽임을 당한다.
영화의 도입부와 종결부에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빠진 자는 죽지 않고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된다."라는 불경의 구절이 반복해 나오는데 무간지옥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18층 지옥 중 제일 낮은 곳을 칭하는 용어로, 죽지 않고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는 가장 극심한 지옥을 말한다. 바로 영화의 제목 ‘무간도(無間道)’는 무간지옥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일 것이다. 즉 영화 속 두 주인공 유건명은 ‘현재의 자신’을 확고히 하기 위해 ‘원래의 자신’을 지우려 하고, 현재의 자신’에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은 진영인, 이들은 ‘현재의 자신’이 끌어당기는 강한 자성을 말끔히 털어내지 못하고 그 언저리를 맴돈다. 경찰과 스파이로서 자신의 진짜 삶이 아닌 가짜 삶을 살아가며 그들은 “좋은 사람 같아, 아니면 나쁜 사람인 것 같아?"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선악의 갈림길에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두 주인공의 심리와 행동을 보며 마음(善)과 행동의 불일치가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무간지옥을 향해 가는 고통이겠구나, 그러면 그들이 무간지옥으로 가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고 곧바로 ‘지행합일(知行合一)’이란 문구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지행합일설’은 송의 육구연(陸九淵)과 명의 진헌장(陳獻章)의 심학(心學)을 계승한 중국 명나라 중기의 철학자이자 정치가 및 군인이었던 양명학의 창시자, 양명(陽明)이란 호로 더 잘 알려진 왕수인(王守仁 1472~1529)이 ‘심즉리’설을 밝힌 후 2년 만에(1510) 제창되는 학설이다.
그는 마음(心)이 곧 이(理)라는 기반 위에 知와 行은 마음을 주체로 하기 때문에 知는 심지(心知)가 되고 行도 심행(心行)이 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一念의 발동처가 곧 行이라는 것이다. 지식과 실천은 心을 주체로 하여 성립되기 때문에 知의 주체나 行의 주체가 모두 心에 의하여 통일되는 양지(良知)를 주장하며 양지는 지행의 주체로서 스스로 결단하고 판단하는 영명(靈明)이라고 했으니, 우리 식의 쉬운 말로 ‘영혼의 명’에 따른 실천만이 삶의 궁극적인 태도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겠다.
유학을 집대성하고 성리학을 탄생시킨 남송의 유학자 주희(朱熹1130~1200)는 존재(存在)와 심성(心性)을 이기(理氣)로 이원화하는 데 반해 왕수인은 이는 기의 조리(條理)요, 기는 이의 운용(運用)이라며 이즉기(理卽氣)로 일원화한다. 또, 주희처럼 마음의 理와 사물의 理를 서로 응(應)하는 관계로 파악하지 않고 마음이 곧 理라며 상즉(相卽)하는 관계로 파악하였다.
왕수인은 마음이 곧 이(理)라는 논리에서 이의 외재성을 완전히 부정, 마음을 떠나 理가 없고(心外無理), 마음 밖에 事가 없다(心外無事)는 이론을 세웠다. 주희에게 있어서는 理는 우주 만물의 근원인 음양이 완전히 결합된 상태인 태극(太極)이 만물의 개체에 각각 내재함으로써 그것들의 본성을 이룬다고 주장하는 반면 왕수인에게 있어서는 理가 곧 마음(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사물은 마음밖에 존재할 수 없다는 유심론에 귀착한다. 따라서 그의 일원론(一元論)은 일체의 존재가 마음에 섭수(攝受)되는 심론(心論)으로서 성(性)을 理로, 마음을 氣로 보는 주희의 성즉리(性卽理)·심즉기(心卽氣)설과는 대립적 색채를 띤다. 따라서 지식과 실천에 관해서도 지식이 선행하고 실천이 뒤따른다는 이른바 선지후행적(先知後行的)인 주희식의 주지주의(主知主義)를 배격하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한 것이다.
왕수인이 사망하기 전 바로 직전에 제출되었다던 유명한 그의 사구교(四句敎)를 살펴보자.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은 마음의 본체다. 無善無惡是心之體
선도 있고 악도 있는 것은 생각의 움직임이다. 有善有惡是意之動
선악을 아는 것은 양지이다. 知善知惡是良知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는 것은 격물이다 爲善去惡是格物
위의 세 번째까지는 우리 마음의 구조를 논하고 있고 네 번째는 마음공부 즉 수양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선악은 악이 일차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악이 때가 끼어있는 거울 부분으로 선은 때가 끼지 않은 거울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양지(良知)는 때가 끼어 있는 부분의 때를 제거하고 때가 없는 부분은 때가 끼지 않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치양지(致良知)의 공부가 완성되면 거울에는 때가 낀 부분도 없어지고 당연히 그에 따라 때가 끼지 않은 부분도 사라진다. 때가 끼지 않은 부분은 때가 낀 부분과 대조하여 규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수양이 완성되면 첫 번째의 상태를 회복하게 되고 이 순간 생각도 양지도, 그리고 격물마저도 작동하지 않고 ‘사태가 다가오면 그 사태에 순응하게 되는’ 성인의 경지에 달하게 된다.
(『철학 VS 철학』, 강신주 지음, 오월의 봄)
이렇듯 왕수인은 심즉리설의 입언종지(立言宗旨)를 통해 양명학이 주자학의 이론(性卽理)이 주관 관념론에 빠질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실천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편 이러한 심즉리설의 심(眞我)과 리(眞理)에 대한 내재적 합일(心卽理)의 관점은 선(禪)불교의 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데 "선불교에는 심외무불 성외무법(心外無佛 性外無法)이라는 명제를 통해 마음 밖에 부처가 따로 없으므로 성불을 하려면 먼저 불성을 본유(本有)하고 있는 각자의 참 마음부터 찾으라고 말한다." 며 성품 밖에 법이 따로 없으므로 진리의 판단 기준을 외부의 사변적 학문이나 성현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부의 직관적 성찰을 통해 얻어야 함을 강조한다.
즉 영화 속 주인공들이 자신의 마음을 성찰한 후(그들은 늘 성찰했다.), 그들의 마음에 따른 삶에 충실하기 위해 좀 더 빠른 선택을 했다면, 왕수인이 말한 지행합일(知行合一)에 따르는 삶을 살 수 있었다면, 그들은 더 이상 희생양이 될 수 않았을 것이고 그들이 맞이한 비극도 피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속 목숨을 잃은 진영인의 비극보다 살아남아 죽는 순간까지 무간도를 걷게 될 유건명의 삶이 오늘은 더 측은해 보인다.
유건명의 남은 삶이 더 측은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아직 나의 여분의 삶의 방향, 현실 속에서의 나 또한 무간도를 걷지 않기 위해 부단히 이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정신에 입각한 삶을 살아야 하겠지, 라는 생각일 것이다. 어쩌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인간사의 고행을 경험하게 될 것이 인간의 운명, 나의 운명이라면 성찰하여 깨달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그 고통의 깊이나 길이가 좀 줄어들지 않을까, 라는 소망이 오늘 아침은 짙어가는 5월의 신록의 향기처럼 은은하게 내 마음으로 퍼지는 순간이다. 자, 나는 오늘 당장 지행합일(知行合一)에 입각한 나의 일상에 무엇부터 해야 할 거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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