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초짜 철학도의 분투기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은
법과 자연을 사유하며
이들의 대비를 부각한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법(nomos)
자연 그대로인 자연(physis)
nomos는
nomizetai(믿어지다, ~라고 여겨지다)가
어원이며
nomizetai는 nemetai(분배, 할당되다)가
어원이다.
nomos는
어떤 사회에서 믿어지고
그것에 따라 옳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두루 지칭하는 단어로
전통, 관습, 행위 규범, 법규 등을 포괄하지만
일단 “법”에 대한 통칭이며
또한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법은 할당되고 배당되어
옳다고 여겨지는 것으로,
그 의미 속에
“어떤 지적 주체”가 전제되어 있다.
종교가 사회 규범 체계를
형성한다면, 그 주체는 신이 되어
신으로부터 유래하고
신의 권위에 의해
뒷받침되는 법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법의 관념을
갖추게 된다.
반면에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의
다양한 관습과 규범 체계는
신으로부터 유래한 법,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구속력을 갖는 법과
충돌하게 되며
이 과정 중에
법의 근거와 원천에 대한
유명한 프로타고라스의 연설이 나왔고,
이에 반한 다른 소피스트들의 주장도 나왔겠다.
앞에 언급된
법(nomos)와 다른 축인
자연 physis는
phyomai(자라다)에서 파생된 명사로
그 뿌리에는
동적인 측면,
즉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세계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안에 운동과 정지의 원리를 갖는 것”
이라고 설명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중
안티폰(Antiphon)이라는
이름을 가진
웅변가 안티폰과
소피스트 안티폰이 있는데
아직까지도
두 명의 안티폰에 대한
학문적 논쟁이 남아있는데
이 둘을 한 명으로
웅변가이면서도 소피스트 안티폰이라는
견해도 있다.
여하튼
여기에선
법과 자연을 대비해서
사유한 안티폰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이 정의를 자신에게 가장 이롭게 사용하는 것은,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 때는 법들을 존중하지만, 지켜보는 사람이 없을 때는 자연적인 것들을 중요시할 때이다. 왜냐하면 법적인 것들은 덧보태진 것들인 반면, 자연적인 것들은 필수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적인 것들은 합의된 것이지 자연히 생겨나는 것이 아닌 반면, 자연적인 것들은 자연히 생겨나는 것이지 합의된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진리에 관하여 단편A, B44)
제시된 윗글을 통해 안티폰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① 법의 상대성: 법적인 것들에 연관된 이로움과 해로움은 상대적. 누가 지켜 볼 때는 지키면 이롭고, 어기면 해롭다. <=> 아무도 지켜보지 않으면, 이롭거나 해롭거나 하지 않음. => 법의 영역에서는 ‘누군가 지켜볼 때’만 신경 쓰면 이롭게 살 수 있다.
② 자연의 절대성: 자연적인 것들과 관련, 이로움과 해로움은 절대적. => 자연 영역에서는 보 는 사람과 무관하게 그에 따라 사는 것은 이롭고, 거스르는 것은 해롭다. (자연에 대한 옹 호)
다음은 안티폰에 대해 이것저것을 검색하다 발견한 글이다.
출처: https://2kalon.tistory.com/192 [χαλεπὰ τὰ καλά:티스토리]
당대의 소피스트는 nomos가 영원하지도 않고 보편타당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규약에 의해서 생겨나며, 합의에 의해서 존속된다. 따라서 그것은 자연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은 중대한 결과를 낳는다. 안티폰은 nomos를 위반해도 좋지만, 다만 아무도 그것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국가적인 구속도 무의미한 것이라 생각한다. 알키다마스는 노예들도 평등하다고 덧붙였다. 마침내 종교적인 규범도 파괴된다. (프로타고라스, 프로디코스, 크리티아스) 안티폰은 nomos와는 달리, 누가 보느냐와 상관없이 "자연적으로 우리들과 더불어 성장해 온 한 가지의 법률"을 억지로 침범할 경우 반드시 화를 입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피스트들의 자연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것이다. 영원히 타당성을 갖는 '신의 불문율(자연법)'인가? (히피아스) 아니면 그 배후에 감춰져 있는 것은 법률에 대해서 게으름을 피우는 태도(예거)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닌가? 이 태도는 당파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시대에 뒤떨어지고 모순 투성이가 된 여러 규정에 진력내는 것이고, 당파의 자의가 아니라 자연의 의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안티폰은 자연적인 것을 유익한 것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자연법이 본질적으로 욕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단순한 몇 구절을 읽으니 안티폰이 마치 동양 철학의 장자의 무위(無爲)의 도(道)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르기도 했는데요. 해서 Chat Gpt에게 물었다.
ChatGPT장자의 자연과 안티폰의 자연 개념을 비교 설명해라.
장자(莊子)와 안티폰은 각각 중국과 고대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에서 자연에 대한 접근 방식을 다르게 표현했습니다.
장자의 자연 개념:
장자는 자연을 변화의 흐름으로 이해했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자연은 무한한 우주적 흐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며, 그 흐름은 절대적인데 변화는 상대적입니다. 이러한 자연의 흐름에는 개체들이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하며, 변화하고 순환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인간은 이러한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여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봅니다.
안티폰의 자연 개념:
안티폰은 자연을 상대적이고 변화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는 자연을 고정된 법칙이나 도덕적 원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규범이 결합된 결과물로,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봤습니다.
장자는 자연의 변화와 순환을 강조하여 인간이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에 안티폰은 자연을 상대적이며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규범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두 철학가의 자연 개념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글들을 읽었는데도 아직, 장자와 안티폰의 자연에 대한 개념이 확 와닿지 않는다. 수업 중 질문을 해야겠다.
아랫글은 위키에서 빌려온 것이다.)
Sophistic works of Antiphon
소피스트 안티폰(/ˈæntəˌfɒn, -ən/; 그리스어: Ἀντιόῶν)이라는 이름은 여러 소피스트 논문의 작가를 가리키는 데 사용됩니다. 그는 기원전 5세기 마지막 20년 동안 아테네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이 소피스트 논문의 저자가 다름 아닌 웅변가 안티폰인지, 아니면 소피스트 안티폰이 실제로 별개의 인물인지는 고대부터 논쟁이 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여전히 활발한 학문적 논쟁으로 남아 있습니다. 최근 편집자 Gagarin, Laks 및 Most는 단 하나의 Antiphon이 있다고 믿는 반면, G. J. Pendrick은 두 명의 개별 개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논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On Truth로, 현재 남아 있는 단편은 천문학과 수학에서 도덕과 윤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Concord와 Politicus에 관한 논문의 단편도 보존되었습니다. 이 단편들은 때때로 소피스트보다는 웅변가의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Antiphon이라는 이름의 꿈 해석에 관한 논문이 소피스트 Antiphon이 쓴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Antiphon이 쓴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Pendrick과 Laks 및 Most의 판은 이 논문이 Sophistic 작품과 동일한 Antiphon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근거로 진행됩니다.
소피스트 안티폰
On Truth(P.Oxy. XI 1364 fr. 1, cols. v–vii)의 첫 번째 책에 귀속되는 3세기 AD 파피루스
단편만 남아 있는 진실론(On Truth)이라는 논문은 소피스트 안티폰(Antiphon the Sophist)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권 이론의 선구자로 보이기 때문에 정치 이론에 큰 가치가 있습니다. 여기에 표현된 견해는 그 저자가 람누스의 안티폰과 같은 사람일 수 없음을 암시합니다. 왜냐하면 그 글은 민주주의에 적합한 강력한 평등주의와 자유주의 원칙을 확언하는 것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입니다. Rhamnus의 Antiphon과 같은 411년의 민주적 쿠데타. 1984년에 발견된 On Truth의 새로운 텍스트 조각에 비추어 그러한 해석이 쓸모없다고 주장되어 왔습니다. 새로운 증거는 아마도 텍스트에 대한 평등주의적 해석을 배제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음 구절은 소피스트 안티폰의 강력한 자유주의적 약속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연'에는 자유가 필요하다
On Truth는 관습과 법의 억압적인 성격(νόμος)을 "자연"(ύσις), 특히 인간의 본성과 병치합니다. 자연은 제도에 의해 부과되는 종종 불필요한 제한과 달리 자발성과 자유를 요구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법적으로 정의로운 대부분의 것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 자연에 해롭습니다. 눈에는 무엇을 보아야 할지, 무엇을 보지 말아야 할지가 율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귀에는 들어야 할 것과 듣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혀가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말하지 말아야 하는지; 손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그리고 마음에는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말아야 하는지.
억압은 고통을 의미하지만, 고통을 피하는 것은 본성(인간의 본성)이다.
다른 곳에서 Antiphon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인생은 짧은 철야와 같고, 인생의 지속 기간은 말하자면 단 하루와 같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눈을 들어 빛을 보고 우리를 계승할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Mario 운터슈타이너는 다음과 같이 논평합니다. "만약 죽음이 자연에 따라온다면, 그 반대인 생명, 즉 자연에 따른 똑같이 고통을 받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비극적 존재 법칙에 호소함으로써 안티폰은 인류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떨쳐버리기를 원합니다. 개인의 개성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안티폰은 공공 아고라에 부스를 설치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수학
Antiphon은 또한 유능한 수학자였습니다. 안티폰은 그의 동료 헤라클레아의 브라이슨(Bryson of Heraclea)과 함께 원 주위에 다각형을 내접하고 외접하고 마지막으로 다각형의 면적을 계산함으로써 파이 값의 상한과 하한을 최초로 제공했습니다. 이 방법은 원을 제곱하는 문제에 적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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