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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Ryuichi Sakamoto를 듣는 아침은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5. 27.

 

 

 

 

 

Ryuichi Sakamoto를 듣는 아침은

온통 초록인 세상이

참으로 고요하다.

 

 

 

 

연휴의 여유가

나를 깨어있게 하고

무엇인가 일상의 의미를 찾게 한다.

 

다시 니체다.

 

 

 

 

 

권여선의 각각의 계절(문학동네, 2023)을 읽다가

이 소설집을 영원회귀의 노래라고 해설하는

평론가 권희철님의 글은

다시 한 번

니체를 생각하게 한다.

 

 

 

 

 

 

 

 

 

'한정된 공간'의 에너지는

무한한 시간 속에서

결국 동일한 순서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와 미래에 맞닿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

과거와 미래 보다 우선 '현재의 삶'

우리 자신만의 창조적인 가치로 채워나가는 게 필요하며

주어진 '이 순간'은 나에게 가장 소중하다.

 

그러니,

나의 삶 속에서 '단 한 번'뿐인 시간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운명을 사랑하고(amor fati)

이 순간이 영원이 되게 하라는

 

우리의 생각이 지나가는 과거나 지나갈 미래에 놓여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현재로 나아가(과거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동시에

매 순간 현재로 되돌아가(미래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

'지금 이 순간'의 현재에 집중해야 비로소 과거나 현재가 빛이 날 수 있다는 것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

나를 위로하며

사유하게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초록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초록초록 물들어

다홍다홍 빛나는 시간을 즐기라고,

흰 눈내리는 겨울이 올지라도

또 봄은 오고 말 것이라고,

 

이런 속삭임은

사카모토의 리듬이 들려주는 이야기일까?

 

 

 

 

다음은 영겁회귀에 대한 나무위키의 글을 빌려왔다.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에서 '영원회귀'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기본 개념' 또는 '기본 아이디어'라고 주장했다. , 니체는 스스로 '영원회귀'야말로 그의 가장 중요한 생각이라고 말했었지만, 니체는 이를 더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놓지는 않았다. 문맥적으로 해석해보자면, "세계의 모든 사건들은 일련의 순환을 통해 동일한 순서로 영원히 반복된다."는 아이디어이지만, 정작 니체의 텍스트만으로는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해석하기란 어렵다. 또한 니체의 책에서 영원회귀에 대한 표현은 '가설적'이고, '극도로 상징적이고 은유적'이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니체의 문제의식을 따라가 보면, 니체의 의도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다. 니체에 따르면, 신이라는 절대적 가치의 사라짐은 인간에게 목적의식을 잃고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들었다. 절대주의(신에 대한 믿음)의 무너짐은 상대주의를 말하는 것이고, 상대주의는 '기준의 부재'로 인해 삶의 허무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체는 이제 그러한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현실에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자신의 가치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어떤 조건이 마련되어야, 우리의 '' 속에서 그러한 '가치를 창조'해낼 수 있는가? 답을 미리 밝히자면, 그것은 절대주의나 상대주의에 맞서, 우리의 삶의 필요에 의해서 "영원에 걸쳐서 물릴 줄 모르고 '처음부터 다시(da capo)'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원회귀'.

 

이는 일종의 사고실험, 또는 형이상학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펼쳐지는 영원한 동일반복의 사고실험 속에서 수많은 선택의 기회를 얻게 된다. 우리가 어떤 삶의 문제에 대해 확실한 답을 얻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라고 외치고선 그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관점들을 자유롭게 제시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답이 정해져 있다고 믿어지는 이상 세계(천국)에서는, 단 하나의 옳은 가치만 선택할 수 있었으리라. 반면에 영원회귀 사유에서는 동일반복을 통해 삶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또 다른 다양한 기회들을 찾을 수 있으며, 이 기회의 긍정은 우리에게 선택의 폭을 무한하게 넓혀주어 우리의 현실적인 삶에서 창조가 발생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작동될 수 있다.

 

신으로 대표되는 절대주의에서는 특정 도덕의 삶을 따라하라고 강요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없어진다. 반대로 상대주의에서는 어떤 기준도 무의미 하기때문에 인간은 도리어 허무주의에 빠진다. 이 둘을 지양하면서 '삶의 필요에의해서' 우리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해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자체에 '영원'과 비슷한 무게의 의미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한다. , 영원 회귀 사상에서는 절대주의에서의 문제점인 '외부의 강요'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추구할 수 있으며, 상대주의에서의 문제점인 '기준의 부재'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삶'이라는 기준을 세울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러한 영원회귀 사상이 불합리하게 보일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영원'은 언뜻 보기에 상반된 가치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체의 '관점주의'에 따르면, 우리가 평소에 상반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치들이, 사실은 대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들은 각각의 충동(정념)들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 충동들을 나중에 찾은 근거들로 정당화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영원' 역시도 마찬가지며,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가 어떤 충동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연결해서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게 니체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다시 상대주의가 아닌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으면 우리는 또다시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영원회귀가 일반적인 상대주의와 다른 점은, 그것이 '우리의 삶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는 점이다. 니체는 '기준의 강요''기준의 부재'의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절실한 필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원회귀 사유를 제시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영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영원회귀를 말하는 부분에서 '과거''미래'가 만나는 곳으로서의 '지금 이 순간'을 강조한다. 여기서 '지금 이 순간'은 나의 삶 속에서 '단 한 번'뿐인 시간이다. 그런데 이 한 번뿐인 시간이 그 자신에게만큼은 '영원'토록 진리가 될 수 있다는 것, 우리의 생각이 지나가는 과거나 지나갈 미래에 놓여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현재로 나아가(과거에서 현재를 바라 보는 입장) 동시에 매 순간 현재로 되돌아가(미래에서 현재를 바라 보는 입장)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 '지금 이 순간'의 현재에 집중해야 비로소 과거나 현재가 빛이 날 수 있다는 것, ㅡ 이것이 니체가 영원회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인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만 집착하면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누리며 살지 못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무작정 미래의 희망을 위해서만 달린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와 미래에 맞닿아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사고가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음은 명백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라도, 과거와 미래 보다 우선 '현재의 삶'을 우리 자신만의 창조적인 가치로 채워나가는 게 필요하다. 이 말은 과거와 미래를 배제해버리자는 말이 아니다. 우선 순위가 '현재'가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후에 고려되는 과거와 미래는 우리의 삶을 더욱 충만하게 만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나에게 주어진 '이 순간'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될 나의 창조적 시간이다!

 

'지금 이 순간''영원'처럼 여겨지는 영원회귀의 사유에 의해서, '지금 이 순간'을 자신만의 창조적 가치로 채워나가는 것은 스스로에게 항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 역시 제각각 자신의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중요하다고 외칠 수 있다. , 자신의 삶이 중요하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것처럼 남 역시 자신의 삶이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서로의 가치가 더 높은 곳을 향해 경쟁하는 것이 힘에의 의지가 된다. 또한 지금 이 순간의 현재가 중요하다는 것은, 스스로의 성공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몰락'마저 긍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니체는 곧잘 진리를 '태양'에 비유하곤 했는데, 이제 인간 각자는 스스로의 태양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그 태양이 항상 정오인 이상에 '몰락'은 운명에 가깝다. 꼭대기에 이르 른 태양은 내려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찬란한 '정오'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몰락'(비극)을 긍정할 줄 알아야 한다. , 영원회귀 사상은 '필연적인 것을 긍정'하고자하는 아모르파티 개념으로 이어진다. 니체가 자신의 책에서 '몰락'을 자주 말하는 것도, '황혼'이나 '아침놀', '정오' 등을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