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戀書시리즈 - 독후감

방정환님의 “칠칠단의 비밀”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5. 10.

 

 

#책을 읽고 난 후에 느리게 도착하는 어수선하고 기꺼이 미완성인 편지들...

 

 

 



  어린이날을 만들고 어린이의 복지 향상을 위해 활동한 작가인 소파 방정환(1899. 11. 9, - 1931. 7. 23,)은 어려서 계모 밑에서 자랐으며, 1917년 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딸과 결혼하면서 손병희의 영향을 받아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1920년 일본 도요대학에서 아동문학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했으며, 이듬해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하고 소년 운동을 전개했다.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하고, 세계 명작 동화집 “사랑의 선물”과 순수 아동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어린이'라는 명칭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동화창작과 번역, 구연, 강연 등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으나 과로와 고혈압으로 인해 33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그의 아동문화 운동은 어린이들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 시키기 위한 소년운동과 아동문학의 발전을 위한 문필활동으로 나누어진다. 1920년대 한국 사회 전반에 나타나 있던 어린이에 대한 불합리한 의식을 계몽하는 활동을 펼치는 한편 유교적 가부장제 아래에서 희노애락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었던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감성의 해방을 추구했다. 이 같은 목적을 위해 그는 “어린이” 등 여러 아동 잡지에 창작작품은 물론 해외 아동문학 작품을 번역해서 실었다. 그의 번역작품은 선량, 정직·, 노력 등 권선징악의 교훈을 바탕으로 한 해학과 풍자를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그의 작품이 사회교화와 어린이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창작동화는 비록 양적으로는 번역동화에 미치지 못하나 가난과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명랑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제의 지배와 유교적 전통 아래에서 고통받는 어린이에 대한 독자의 인식을 일깨워주는 노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불우한 어린이들은 불합리한 현실을 극복해나가려는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주지 못한 채 독자들의 감상에 호소함으로써 소극적인 감상주의를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번역동화와 창작동화에서 나타나는 경향은 어린이를 지나치게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존재로 보았는데, 이는 1920년대 한국 아동문학의 일반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1940년 5월 1일에 마해송(馬海松)·최영주(崔泳柱)가 “소파전집”을 펴냈고, 1957년 '새싹회'에서 그의 아동 문화운동과 아동문학의 업적을 기리는 '소파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1978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고, 1980년 건국포장을 수여했다. 1998년에는 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이 설립되어 그의 유업을 기리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남산 외곽의 소파길은 그를 기리기 위해 명명된 길이다. (다음 백과 사전에서)

 

 

 


   저는 주로 번역가들에 의해 번역된 외국 동화를 읽으며 자랐고 어른이 된 후에는 미국의 시인이자 작가였던 셸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 1930년 9월 25일 - 1999년 5월 10일)의 동화책을 좋아하는 편이고 많은 어린이용 동화책은 읽은 적은 없다. 
  이번 방정환님의 “칠칠단의 비밀”을 읽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어린이 독서 연구회의 신입 회원으로서의 의무였다. 그의 장편 “칠칠단의 비밀”은 1926년부터 1927년까지 어린이 잡지에 연재한 탐정 소설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곡마단에서 자란 상호와 순자는 서울에 공연을 하러 왔다가, 어느 날 한 조선 노인을 만나 자신들이 조선 사람이라는 것과 친남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노인과 상호가 만나는 모습을 본 곡마단 단장은 서둘러 서울을 떠나 중국으로 가기로 한다. 그날 밤 상호는 순자와 함께 곡마단을 탈출하려고 하지만 순자는 탈출에 실패하고, 상호는 한기호라는 학생과 함께 순자를 되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으로 건너가 칠칠단의 소굴로 들어간다. 상호는 고난을 이겨 내고 순자를 빼내는 데 성공했으나 다시 곡마단 단장에게 잡히고 만다. 그 사이 한기호는 중국에 살고 있는 상호의 아버지를 찾아내고, 많은 조선인들의 도움으로 상호와 순자는 무사히 구출된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방정환님의 작품에 등장하는 불우한 어린이들은 불합리한 현실을 극복해나가려는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주지 못한 채 독자들의 감상에 호소함으로써 소극적인 감상주의를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는데 오늘의 책 칠칠단의 비밀의 주인공인 상호는 자신의 여동생 순자를 구하기 위해서 용감하고 적극적인 행동들을 감행한다. 죽음을 개의치 않는 그의 무모하리만큼 용감한 행동들을 과연 열여섯 살 소년이 감행할 수 있었을까, 현실과 좀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이 말은 작가가 이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목적이 너무 드러나는 좀 신파조 같았고, 그것은 제가 어른으로서 이 동화를 읽었기 때문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또한 스토리를 쓰는 작가는 중립적인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작가의 감정이 훤히 드러나는 어휘들, 예를 들자면 “단장놈”“문지기놈” “여러 연놈” “이 놈의 집속” “불쌍한 순자”등의 어휘들은 작가의 감상주의적인 면을 너무 드러내는 것, 즉 작가가 곧 상호를 대변하는 것 같은 거슬림이 있었다. 또한 상호를 돕는 기호가 봉천까지 따라와 목숨을 거는 행동을 함께하는 것에 대한 개연성이 드러나지 않았다. 우정과 의리라고 한다면 무엇인가 분명한 스토리가 한두 줄은 나와야만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러한 거슬림들은 1926년 27년, 우리 아동문학의 초기 단계에서 거쳐야 할 경로였지 않았을까, 라는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문학의 본질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며, 정서적, 미적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방정환님의 칠칠단의 비밀은 당시 어린아이들에게 조국에 대한, 가족에 대한 친구에 대한 의미를 사유하도록 하는 기능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미적 기능으로서의 문학적 묘사가 뛰어난 곳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무거운 쇠밤망이가 되어 상ㅎ의 가슴을 때리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의 몸은 지금 거미줄에 얽힌 것 같아 까딱하면 독수리의 발톱에 새 새끼가 치이듯이 붙잡힐 것을 생각하니, 한 발 한 걸음을 내딛기가 무시무시하였습니다.”(77쪽)을 군데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었고 스토리의 쾌락적 기능으로서 호기심을 충분히 끌어낼 만한 이야기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어린이가 아니고 어른의 입장으로 이 책을 읽은 소감은 이러한데, 과연 현재의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감상평이 나올지 무척 궁금하다. 회원들 누군가의 아이들이 이 책을 읽은 소감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