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 필담의 2023년 두 번째 책은 창비에서 펴낸 정지아 작가의 장편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이다.
흔한 빨치산 이야기이겠거니 짐작했던 까닭에 인스타 광고를 보고도 동네 작은 서점에서 정지아 작가와 함께하는 북 토크가 열린다는 소식에도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읽어야 할 책들이 넘치는 요즈음 읽을 책을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아 미루게 되었지만 독서 모임을 인연으로 다행히 정독하게 되었다.
책은,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라고 시작한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장례를 치루는 동안 아버지의 얽히고설킨 인연들을 만나 그들이 들려주는 아버지의 추억을 더듬으며 해방 이후 70 여년 간의 우리 현대사의 한 부분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어디선가 모든 소설들은 인간들의 성장기이다, 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이야말로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오류들을 맞닥뜨리며 얼마쯤은 반항하며 얼마쯤은 비난하던 아버지의 삶을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자신이 발견하지 못했던 다양한, 매우 인간적인 아버지의 진면목을 엿보며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라는 아버지의 십팔번을 받아들이며 그간의 오만을 무례를 어리석음을 용서해주시길 바라게 되는 화자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일반 책들보다 작은 판형에 겉표지의 일러스트가 다소 가벼워 쉽게 읽히리라 생각했는데 책장을 넘기면서 허투루 읽지 않아야 할 문장들을 수없이 만났다. 밑줄을 그었던 문장들이 점차 늘어나며 나는 어딘가에서 저절로 눈물이 맺혔고 또 어디쯤에선 나도 모르게 빙긋 미소가 삐져나왔다. 또한 늦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몰아치다가도 봄빛을 머금은 따스한 햇살들이 문장들 사이에 가득 차오르며 나를 데울 것만 같았다. 책장을 덮고도 먹먹한 가슴을 어쩌지 못해 나는 한참을 창문 밖으로 눈길을 주었다. 막 지고 난 벚꽃 잎들이 흩날리며 내 시선 속으로 걸어와 그림을 그리듯 소설 속 에피소드들이 꽃비처럼 내 가슴으로 스며들어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 파문들 속으로 오래전에 떠난 그러나 아직 보내지 못한 내 아버지가 걸어 들어올 것만 같았다.
“부끄러움을 견디며 오늘을 살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내가 반성할 줄 아는 인간인 덕분이다. 친구들은 나를 반성주의자(反省主義者) 또는 성장애주의자(成長愛主義子)라고 부른다. 반성하고 성장하는 것이 내 특기라나 뭐라나, 잘하는 것이라곤 그 둘뿐이다.”라는 고백을 하는 작가는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데(책 속 작가의 말) 나는 여전히 성장애주의자로서 비실비실 버거운 삶의 여정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된다.
더불어 끊임없이 책 속의 글귀들이 나지막이 속삭이며 작고 소소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소박한 삶들의, 그 소박한 신념들이 그려내는 세상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데,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묻게 된다. 내가 끔꾸는 것들이 어느 날 궁극의 행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불안에도 나는 멈출 수 없는데, 없는데 …… 라며 살며시 작가에게 반기를 들어본다.
<책 속 밑줄 긋기>
만우절은 아니었다. 만우절이라 한들 그런 장난이나 유머가 오가는 집안도 아니었다. 유머라니. 유머는 우리 집안에서 일종의 금기였다. 그렇다고 유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유머일 수밖에 없고 유머여야 하는 순간에도 내 부모는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처럼 진지했고, 그게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니 우리 집안에 유머가 있었다기보다 혁명을 목전에 둔 듯 진지한 그들의 어떤 행위나 삶의 방식이 유머일 수밖에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원인이야 어찌 됐든 웃기긴 했다. (7 – 8쪽)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사정이, 나에게는 나의 사정이, 작은아버지에게는 작은아버지의 사정이, 어떤 사정은 자신밖에는 알지 못하고, 또 어떤 사정은 자기 자신조차 알지 못한다. (33쪽)
탓을 하는 인생은 이미 루저다, 라고 아버지 닮아 냉정한 고등학생쯤의 나는 판단했고, 그 이후 작은아버지를 소 닭 보듯 보았다. (40쪽)
작은아버지는 평생 형이라는 고삐에 묶인 소였다. 그 고삐가 풀렸다. 이제 작은아버지는 어떻게 살까? 작은아버지는 지금쯤 빈속에 깡소주를 들이붓고 있을 것이다. 일흔 가까운 나이에 처음으로 마주친 형 없는 세상, 탓할 사람 없는 세상이 두려워서, 두려움을 이기고 작은아버지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찾아와줄까, 설령 오지 않는다 해도 아버지는, 마루에 우두커니 앉아 동생의 모진 말을 묵묵히 견뎌내던 아버지는 이번에도 타는 속을 소주로 달래며, 나는 모르는 씁쓸한 인생의 무언가를 되새기지 않으려나, 하면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았는데, 아버지는 당연히 그거사 니 사정이제, 모르쇠로, 나는 어디닞 모를 어딘가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중략) 사람이란 누군가의 알 수 업슨ㄴ 사정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아버지는 그렇게 모르쇠로 딴 데만 보고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42쪽)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44족)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는 잘 못 참는 사람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가 득세하는 것도 참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라는 봉건잔재도 참지 못했으며, 가진 자들의 횡포도 참지 못했다. 물론 두시간의 노동도 참지 못했다. 그런데 얼어 죽을 것 같은 고통은 굶어 죽을 뻔한 고통은,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은 동료들이 바로 곁에서 죽어가는 고통은 어떻게 견뎠을까? 신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내려와봤자 기다리고 이는 건 죽음뿐이라는 지극히 절망적인 현실 인식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68쪽)
사회가 개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묻는 게 옳은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빨갱이 새끼들은 다 때려죽여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렀고, 아직도 휴전 중인 데다 남북의 이데올로기가 다르니 의견의 합치름 보기는 진작에 글러먹은 일, 게다가 나는 옳고 그름을 따질 만한 주제도 아니다. (76쪽)
고요한 눈빛으로, 아버지의 죽음뿐만 아니라 곧 닥칠 자신의 죽음까지 덤덤하게 수긍한, 아니 죽음 저편의 공허를 이미 봐버린 눈빛이었다. 그 눈빛 앞에서 차마 더는 울어지지 않았다. 내 울음이 사치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본디 눈물과는 친하지 않기도 했다. (85쪽)
삶이란 것이 오빠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오빠가 밝은 햇빛 속으로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오빠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조문을 마치고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85쪽)
그러니까 아버지는 고씨 집안의 자랑인 동시에 고씨 집안 몰락의 원흉인 것이다. (90쪽)
아버지는 내가 아는 한 단 한순간도 유물론자가 아닌 적이 없었다. 먼지에서 시작된 생명은 땅을 살찌우는 한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이것이 유물론자 아버지의 올곧은 철학이었다. 쓸쓸한 철학이었다. 그 쓸쓸함을 견디기 어려워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사후의 세계를 창조했는지도 모른다. (98쪽)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 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이 아니나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터를 받는다. (102쪽)
만에 하나 어머니가 월북했다면 자기 농사에 심혈을 기울이다 진작에 숙청당했을 거라고, 그것이 당신들이 믿는 사회주의의 실체라고. (103쪽)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110쪽)
아버지는 알았을까? 자기보다 한참 어린 막내가 면당 위원장인 당신을 그렇게나 자랑스러워했다는 걸, 그 자랑이 당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걸, 그게 평생의 한이 되어 자라이었던 형을 원수로 삼았다는 걸, 어쩐지 아버지는 알고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는 수시로 작은 아버지의 악다구니를 들으면서도 돌부처처럼 묵묵히 우리 집이나 작은집 마루에 걸터앉아 담배만 뻐끔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는 몰랐을 수도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은 그날의 진실을, 그날 작은아버지 홀로 견뎠어야 할 공포와 죄책감을, 보지 않은 누군들 안다고 할 수 있으랴. 억시 작은아버지에게는 작은아버지만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ᅟᅡᆮ. 독한 소주에 취하지 않고는 한시도 견딜 수 없었던 그러한 사정이 (131쪽)
죽음 앞에서도 용서되지 않는 죄란 무엇인가 해는 더 높아지고 볕은 더 따가워졌다. (134쪽)
잘 죽었다고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과 아버지는 어떻게 술을 마시며 살아온 것일까? 들을수 없는 답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대답을 알 것 같았다.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실수토성이인 인간이 싫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관계를 맺지 않았다. 사람에게 늘 뒤통수 맞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인지도 몰랐다. (138쪽)
사회주의자라면 농민 자식, 노동자 자식을 자랑 삼아야 되는 것 아닌가, 박사라고 좋아하기는, 이러니 사회주의가 망했지, 뭐 그런 정도의 생각을 하면서 나는 기개가 조금도 꺽이지 않은 혁명가처럼 지리산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는 아버지를 내심 비아냥거렸다. (160쪽)
봄을 일으킨 여자가 바람 없는 날 떨어지는 벚꽃잎처럼 고요히 다가왔다. 그러고는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162쪽)
현대사의 비극이 어떤 지점을 비틀어, 뒤엉킨 사람들의 인연이 총출동한 흔하디흔한 자리일 뿐이다. (169쪽)
감옥도 하나의 세상일지 몰랐다. 거기서도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와 사연을 쌓고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할 테니 말이다. (183족)
내 말에는 칼이 숨어 있다. 그런 말을 나는 어디서 배웠을까? 아버지가 감옥에 갇힌 사이 나는 말 속의 칼을 갈며 견뎌냈는지도 모르겠다. (192쪽)
술꾼은 시간을 뛰어넘은 자, 아니 어쩌면 어느 시간에 못 박혀 끊임없이 그 시간으로 회귀하는 자일지 모른다. (193쪽)
아직 사회주의를 모를 때의 아버지, 열댓의 아버지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질곡의 인생을 알지 못한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사진 속 소년 둘은 입산해 빨치산이 되었고, 그중 한 사람은 산에서 목숨을 잃었다. 형들을 쫓아다니던 동생은 형을 잃고 남의 나라에서 제 다리를 잃었다. 사진과 오늘 사이에 놓인 시간이 무겁게 압축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196쪽)
내 부모는 평등한 세상이 곧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산에서 기꺼이 죽은 사람들을 늘 부러워했다. 쭉정이들만 남아서 겨우겨우 살고 있노라,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런 삶이 부러워 미웁기도 했던 것이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마음을 짐작은 할 것 같았다. (196쪽)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술이 불콰한 상태로도 지팡이를 다리처럼 자유롭게 쓰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앗다. 미련 없이 잘 가라는 듯 오늘도 날은 화창했고, 도로변에는 핏빛 영산홍이 불타오르고 있었고, 허벅지 아래로 끊어진 그의 다리에서 새살이 돋아 쑥쑥 자라더니 어느 순간 그는 사진 속 그의 형보다 어린 소년이 되어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197쪽)
세상사의 고통이 근육의 긴장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아버지는 보통 사람도바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 다시는 눈 뜰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198족)
그 순간 나는 내 인생 최초의 깊은 슬품을,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결여를 느꼈다.
아버지에게 있는 것이 나에게는 없다! (200쪽)
네 살 때의 아버지는 나에게 나와 같은 존재였다. 일심동체. 아버지의 알몸을 본 심진강에서 나는 이미 아버지와 분리되었다. 그러니까 내게서 아버지를 빼앗아간 것은 이데올로기나 국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다. 아버지와 다름을 깨닫고 아버지를 닮고자 서서 오줌을 눌 만큼 아버지는 나의 전부였다. 그 아버지를 이데올로기가, 국가가 빼앗아 간 것이다.
어느 쪽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차가운 철제 침대에 누워 수의에 사이고 이쓴ㄴ 저 시신과 내가 적어도 한때는 한 몸이나 같았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우주였다. 그런 존재를, 저 육신을, 이제 다시는 불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시간과 공간의 한 지점을 점령하고 있는 저 육신이 내일이면 몇줌의 먼지로 화할 것이다.
마음 저 밑바닥에서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눈물로 솟구쳐 나오려는 순간 누군가 나보다 먼저 울음을 터뜨렸다. 학수였다. 타인의 눈물이 가문 날의 태양 볕처럼 내 마음에 가득 차오른 습기를 불태웠다. (201족)
베인 것은 글자만이 아니었다. 뭐랄까, 아버지와 나를 잇고 있던, 세월 지날수록 얇아진 어떤 인연, 혹은 마음의 끈이 싹둑 잘려나간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버지는 낫을 휘둘러서는 아니 되었다. 밥값을 하라고 해서도 아니 되었다. 아버지가 해야 했던 것은 빨치산의 딸로 살게 해서 미안하다는 진정한 사과였다. (205쪽)
나는 그 여름 나의 은신처였던 늙은 살구나무 세그루를 일별하고는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빨치산의 딸로 살오온 지난 시간들이, 그 시간 동안 축적된 나의 살이며 뼈 같은 것들까지 숨으로 화하여 내 밖으로 내던져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짧은 기도가 어루어진 듯 몸이 개운했다. 나는 가비얍게 바위 위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206쪽)
작은 아버지는 나를 뒤따라오며 내 등에 얹힌 두 짐을 보았던 것이다. 자기 등에도 평생 얹혀 있었을 두 짐을, 그 짐이 버거워 작은아버지는 떠나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고 술에 취해 한평생을 흘려보낸 것일까? 아버지의 살아남은 유일한 형제를 위해 나는 소주병을 꺼내들었다. (210쪽)
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구의 달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빨치산의 달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 나는 평생을 바쳤다.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225쪽)
사무치게, 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 아빠, 나는 들을 리 없는, 유물론자답게 마음 한줌 남기지 않고 사라져, 그저 빛의 장난에 불과한 영정을 향해 소리 내 불렀다. 당연히 대답도 어떤 파장 따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231 – 232쪽)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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