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시리즈 25 - 만학도의 고민

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시리즈 25

<만학도의 고민>

일요일 아침의 한가로움을 틈타 수다 삼매경!

  주중에는 학교 다니느라 바쁜 나를 위해 아침상을 차리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상쇄시키려 토요일 일요일만은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려 한다. 때론 도시락을 싸들고 청암산으로 월명산으로, 오늘은 신시도와 무녀도 장자도를 계획했는데!
  남편 덕분에 내 일상이 평안하니까, 어떤 의무감도 있어야 하므로, 시험 준비에 마음은 바쁘지만 최소한의 도리로서 시간을 나누는 영리한 아내, ㅎㅎ
  어젠 친정 식구들과 저녁밥을 먹고 난 후 은파에 있는 르락에서 한 숨 돌리는데 나는 아이스크림을 남편은 호기 있게 커피를 마시더니만,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 이른 아침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현상 덕분에 오늘 아침 내 자유 시간이 왕창 쏟아졌다.
  으와, 동양 사상 입문 시험 대비를 위해 정리를 하다, 머리에 열이 펄펄, 80학번으로 3년 간 중어 중문학을 전공했던 나였는데 새삼 이 과목이 제일 어렵다. 양도 엄청나다. 어디에 초점을 맞춰 시험 대비를 해야 하는지, 아직 감도 못 잡았다. 전공이 같은 젊은 친구들에게 스터디 같이 하자고 말이라도 해볼까 생각했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이 주저하는 마음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영화와 정신분석이라는 강의는 60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동시 수강하는데, 간혹 영화를 본 후 정신, 혹은 심리를 분석하는 경험을 한다. 이 시간은 타 강의보다 일찍 강의실 좌석을 확보해야 하고 전 강의가 늦게 끝나면 뒷자리 혹은 옆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라면 영화를 보기가 몹시 불편하다.
  그날은 전 강의가 늦게 끝나 헐레벌떡 영화와 정신분석 강의실에 도착했는데 중앙 쪽으로는 빈자리가 거의 없고 양쪽 가장자리만 휑했다. 마침 3번째 줄 빈자리가 있길래, 옆에 앉아 있던 학생에게 물었다.
  “여기 앉아도 될까요?”
  “아니오, 앉을 사람 있어요.”
  그 학생의 야멸찬 대답을 듣고 좀 머쓱했고 수업 내내 스크린 옆에서 영화를 보아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했다. 한편으론 정말 그녀의 옆 좌석에 누가 앉았을까, 흘긋거리는 내가 좀 쪼잖았지만,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녀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열나, 만학도와 옆에 앉는 것이 그녀 역시 불편했으리라, 마음이 쓰라리지만, 어찌하겠나, 그것이 그 세대들의 공통된 마음이거늘,
  나 역시 풀풀 쉰내가 풍기는 아저씨가 옆자리에 앉겠다면 싫을 것이다. 그러나 차마 싫다는 말을 못하고, “괜찮아요. 앉으세요.”라고 진짜 속마음을 숨기고 불편함을 감추겠지.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MZ세대들보다 자신의 싫은 마음을 숨기고 어쩔 수 없이 감내하는 나의 세대의 선택이 옳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지난 금요일, 비전있는 대학 생활이라는 강의의 담당 교수님은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몇 번이고 강조하셨다. 나는 이런 제안을 하고 싶었다.
  “혹시라도 영어 기초가 부족한 학생이 있다면 스터디그룹을 만드세요. 그럼 제가 힘을 보태겠어요.”
초, 중, 때론 고등학생들에게 10여 년이 넘게 영어 과외를 해온 경험이 있기에 일주일에 한 두 시간쯤 헌신할 수 있는데, 라는 내 속마음을 가만 덮어 두었다. 옆에서 그냥 지켜만 보라는 교수님의 충고를 절대 잊지 말자고, 먼저 다가가지 말라는 그 말씀을 다시 새기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는 어떻게, 혹은 얼마쯤의 시간이 경과 해야 메꾸어질 수 있을까?
어쩌면 그 간격은 영원히 지속되겠지만 다만 간격의 거리는 충분히 조정될 수 있는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보자, 창문으로 슬며시 넘나드는 아침 햇살 마냥, 내가 너에게로, 네가 나에게로 흐르는 그 마음을 머뭇거림으로 낭비하지 말았으면, 오늘 아침 내 수다는 이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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