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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긴 호흡/메리 올리버/마음산책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2. 1.

 

책 추천
긴 호흡(메리 올리버/마음산책)

바람은 몹시 불었으나 상쾌했고
햇살을 받은 해수면은
은빛 구슬을 풀어놓은 듯
리듬을 타며
쉼 없이 일렁이는 한낮

수평선 위로
갈매기 한 마리가 활강하며
해수면을 차고 날자
반짝이는 것들이
“잘 있지요?”
물 찬 낱말처럼 튀어 오른다

물의 구슬들이 이루는 말들이
그토록 소소하다니!
무한 반복되는 무한대의 인사라니!

“잘 있어요, 곧 만나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

“충분했지요? 그럼요, 충분했지요”
바람의 멜로디가 다정도 한
오후의 바닷가에서

난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긴 호흡”을 뒤적였다.

 

 

 

 

 

 

 

 

 

 

“나는 시가 단지 존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말하기 위해, 동무가 되기 위해 쓰인다는 걸 배웠다.” (92쪽) 라는 그의 말에 가만 귀를 기울였더니,

“시인의 목소리는 첫 사례로 만난 시들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행하고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기존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로잡혀야 한다.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시 한 편을, 그다음엔 몇 편을 사랑해야만 한다. (125쪽) ”고 속삭인다.

문학소녀였던 시절부터 쭈욱 언젠가 시를 쓰겠다던 야망이 왜 꺾였을까? 물었더니 “어려웠던 거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서”라는 대답이 되돌아왔고, 그래 언제부터인가 나는 시를 더 이상 읽지 않았지, 그런데 말이야. 참 신기하지, 올리버님의 “서쪽 바람”과 “천 개의 아침”을 씹고 나니 나도 뭔가를 쓸 수 있을 것 같아. 어렵지 않은 낱말들로 어렵지 않은 내 마음을 모아 “우리가 숙고를 거쳐 구축하는 관념은 무엇보다도 우리 앞의 본보기들, 특히 저 막강한 첫 본보기들에서 받은 인상에 토대를 둔다. 우리는 반응하고, 모방하고, 상상하고, 창조한다. (141쪽)”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날인가 그럴 듯한 “시”를 쓸 수 있겠지, 이 무한 긍정과 자만의 시간이라니!
아니야, 올리버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
“우리들 각자가 시에, 움직이는 펜에 무수한 메아리들을 반영한다. (140쪽)”
우선 내 메아리들을 반영해서 써보면 어떨까?

“나는 시들이 내게 기여해주기를 기대한다. 시들이 내 삶 속에서 막간의 여흥이나 따로 떨어진 장소가 아니라 진행 중인 존재이기를. 그것들이 긴요하고, 정보를 제공해주고, 지지적이기를 – 내 삶을 확장시키는 ‘제현, 체험’을 지지해주기를 – 기대한다. 늘 우아하거나 현명하거나 단순할 필요는 없다. 삶 자체가 그러하듯 공포, 죽음의 작은 신들이 아닌 생명의 주(lord of life)를 대신하여 분투해야 한다. 정체가 아닌 나아감의 시들이어야 한다. (142쪽)”

그래, 내 삶을 확장시키는 제현 혹은 체험을, 내 삶 자체를, 정체가 아닌 나아감을 쓰면 될 것 같아, 혹시 알아? 어느 날 내가 쓴 시에도 올리버님이 말씀하시는 시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을지?

“시의 목적은 독자가 개인적이고 사적인 방식으로 체험과 직관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 말들의 배열을 제공하는 것이다. 오직 그렇게 해서만 시는 독자에게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남길 수 있다. 오직 그렇게 해서만 시는 독자 자신의 삶에 지속적으로 남을 수 있다. 독자는 유연한 지력과 진심을 가지고 시 안으로 들어가서 이전의 자신과 조금 그리고 영원히 달라져서 나오게 된다. 그 어떤 시도 우리 중 하나 혹은 일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 관한 것이다. 시는 우리 종(種)에 관한 긴 기록의 일부다. 모든 시는 내 삶에 관한 것인 동시에 당신의 삶에 관한 것이고, 미래의 무수한 삶에 관한 것이다. 한 사람이 그걸 썼다는 사실은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사실만큼 그렇게 중요하거나 흥미로운 건 결코 아니다. (139쪽)

단 두 권의 올리버님의 시집과 산문집 두 권을 읽었을 뿐인데, 내가 왜 그의 시들을 필사했으며 알베르 카뮈의 티파사에서의 결혼에 나오는 문장들을 왜 그리 반복해 필사했는지를 내 유전자 속에 내재된 내 색깔이 이거였구나, 새벽종이 울리듯 나를 깨우다니

오랫동안 좌절을 반복하며 소설을 써왔지만 늘 ”시“쓰기에 마음 한쪽이 울렁댔던 ”나“가 비로소 보인다니,

신비의 마술사, 메리 올리버님,
고맙습니다.


 

(책 속의 문장들)

 

 

창작은 고독을 요한다. 방해 없는 집중을, 그것이 열망하는 확실성에 이를 때까지, 반드시 즉각 얻어지는 것은 아닌 그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지켜보는 눈 없이 홀로 날아다닐 수 있는 하늘을. 그리고 프라이버시와 따로 떨어진 장소 서성이고, 연필을 질겅질겅 씹고, 휘갈겨 쓰고 지우고 다시 휘갈겨 쓸 장소를. 방해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인 경우도, 더 많진 않더라고 그 못지않게 많다. 자기 안의 다른 자아가 휘파람을 불고, 문을 쾅쾅 두드리고, 사색의 연못으로 풍덩 뛰어든다. 그 다른 자아가 하는 말이란? 치과 의사에게 전화해야지, 겨자가 떨어졌어, 스탠리 삼촌 생일 이 주 남았어. 물론 당신은 반응을 보인다. 그런 다음 작업을 다시 시작하지만, 아이디어의 요정은 이미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린 뒤다. (13)

 

 

예술가들이 하는 모든 종류의 창작은 세상이 돌아가도록 돕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우려는 것이다. 그것은 평범함과는 다르다. 창작은 평범함을 부정하진 않는다. 단순히 다른 것일 뿐이다. (16)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업은 다른 방식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고 예술에 몸 바친 이에게 가끔의 성공은 그 모든 노력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 세상에서 가장 애석한 사람들은 창작에 사명을 느끼고 창조력이 안달하며 솟구치는 걸 감지하면서 거기에 힘도 시간도 들이지 않는 이들이다. (20)

 

 

속기나 문구는 모두 기록한 순간과 장소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이건 매우 엄밀한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기록은 그게 무엇이든 내가 그걸 쓴 이유가 아닌 느낌의 체험으로 나를 데려간다. 이건 중요하다. 그러면 나는 그 아이디어, 곧 그 사건의 의미에 대해 돌이켜 생각하기보다는 아이디어가 나오기 이전부터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내가 공책에서 포착하고자 하는 건 논평이나 생각이 아니라 그 순간이다. (22)

 

 

시는 인간과 세상 사이의 관계 속에 존재하며 쓰인다. 시의 3요소: 우주의 신비, 영적 호기심, 언어의 에너지. (40)

 

 

시를 읽는 사람들이 너무 적은 것은, 이 겁에 질리고 돈을 사랑하는 세상에서 시의 영향력이 너무도 미미한 것은, 시의 잘못이 아니다. 결국 시는 기적이 아니다. 개인적 순간들을 형식화(의식화)하여 그 순간들의 초월적 효과를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음악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시는 우리 종()의 노래다. 42)

 

 

첫 번째 축복인 자연계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자연은 아름다움과 흥미로움, 신비로 가득했고 행운과 불운은 있었지만 남용은 없었다. 두 번째 축복인 문학의 세계는 형식의 즐거움을 준 것 외에도 감정이입(키츠가 부정적 능력이라고 부른 것의 첫 단계)이라는 자양분을 제공했고, 나는 그걸 향해 달려갔다. 나는 그 안에서 휴식을 취했다. 기꺼이, 기쁘게 모든 것다른 사람들, 나무들, 구름들의 대역을 맡았다. 그로 인해 다름 속에 서게 되면서, 세상의 다름은 혼란의 해독제임을 깨달았다. 바깥의 들판이나 책 속 깊은 곳에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신비가, 최악의 아픔을 겪은 마음에 고귀함을 되찾아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 (45)

 

 

나는 열심히 책을 읽으며 기술을 연마하고 확실성을 얻어갔다. 나는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헤엄치는 것처럼 읽었다. 그리고 그렇게 글을 썼다. (47)

 

 

삶이 쉽다거나 확신에 차 있다는 건 아니다. 완강한 수치심의 그루터기들, 수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도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슬픔, 아무리 춤과 가벼운 발걸음을 요구하는 시간이라 할지라도 어디를 가든 늘 지고 다니는 돌 자루가 있다. 하지만 우리를 부르는 세상, 경탄할 만한 에너지들을 가진 세상도있다. 분노보다 낫고 비통함보다 나은, 더 흥미로워서 더 많은위안이 되는 세상. 그리고 우리가 하는 것, 우리가 다루는 바늘, 일이 있으며 그 일 안에 기회 - 뜨거운 무정형의 생각들을 취하여 그것들을 보기 좋고 열을 유지하는 형상 안에 집어넣는 느리고 세심한 노력을 기울일 - 가 있다. 신들 혹은 자연 혹은 시간의 소리 없는 바퀴가 부드러운, 휘어진 우주 전체의 형상들을 만들어온 것처럼, , 나는 내 삶을 주장하기로 결심함으로써 일과 사랑을 통해 멋진 삶을 만들어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51)

 

 

내 삶은 나의 것이다. 내가 만들었다. 그걸 가지고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다. 내 삶을 사는 것. 그리고 언젠가 비통한 마음 없이 그걸 야생의 잡초 우거진 모래언덕에 돌려주는 것.(53)

 

 

한때 이것은 굶주린 초록 벌레였다. 그러다 깊디깊은 잠이라는 병목 구간을 지나 바람의 그물을 통과하여 따뜻한 들판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이제 과거의 빛나는 쓰레기가 되었다. 이것의 공허함은 완전하다. 그리고 끔찍하다. (61)

 

 

야생장미의 소임은 우연히 모래언덕에 발길이 닿은 우리 모두를 한동안 완전히 사로잡고 단순한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는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 상상력의 기지개가, 그 균형이 마음을 희롱하게 하라. 지금 나는 머리 위에서 큰뿔부엉이가 검은 날개를 펼치는 소리에 움찔한다. 얼마 전까지는 모래언덕에 앉아 하릴없이 장미들의 도시를 들여다보던 나였다. (67)

 

 

물론 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친구들을 만난 적이 없다. 그들은 낯선 존재들이었고, 그들의 글 속에서만 살았다. 그들은 그림자 동무들이었을지언정 변함없고, 강력하며, 놀라웠다. 그들은 경이로운 이야기들을 했고, 내겐 그 이야기가 세상을 바꿨다. (89)

 

 

나는 시가 단지 존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말하기 위해, 동무가 되기 위해 쓰인다는 걸 배웠다. (92)

 

 

존 뮤어는 그의 책 알래스카 여행 Travels in Alaska”에서 뮤어 빙하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이 장엄한 얼음 강을 걸어 올라가는 것이 몹시도 즐거웠다. 깊이 갈라진 틈들과 빙하구혈들, 샘들 속 연푸른색의 형언할 수 없으리만치 고운 빛, 하늘색 얼음 분지들 안의 무수한 하늘색 웅덩이들, 마찰 없는 수로들의 연결망을 이루며 경이롭도록 우아한 동작으로 미끄러지듯 흐르거나 소용돌이치는 크고 작은 빙류(冰流)……아멘. 하지만 이건 그저 하나의 문장일 뿐이다. 더 많은 것을 만날 준비가 되었는가? 존 뮤어는 준비가 되어 있다. 안달하며 단 하루도 게으름에 넘겨주고 싶어 하지 않는 그는 늘 기어오르고, 관찰하고, 묘사하면서 움직인다. 등산지팡이와 늘 허기진 마음을 지닌 청년, 성인, 노인. 뮤어 빙하에서 그는 빛 때문에 눈에 염증을 얻는다. 그래서 거의 볼 수가 없다. 그는 눈()으로 습포를 만들고 고글도 만든다. 작은 깡통에 불을 밝혀 작은, 내가 이제껏 만들거나 본 중에서 가장 작은 캠프파이어를 만들고 차 한 잔을 마신다. 그리고 곧 기력을 되찾고일어나서 다시 빙하의 빛나는 표면을 탐사한다. “나는 12마일(19킬로미터)을 걸은 뒤 크래커 한 개를 먹고 야영 계획을 세웠다라고 그는 다른 날 말한다. 하늘에선 북녘의 빛들이 흐르고 그러자 나는 잠이 싹 달아나서 내 오두막으로 달려 들어가 모포를 들고 나와 빙퇴석 위에 누워, 내 시야에 닿는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밤하늘의 경이들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동이 틀 때까지 하늘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 또한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압도되고, 기력을 되찾는다. 더 이상 너무 바쁘지도, 지치지도 않는다. 가까운 장래에 또 빙하가, 바다가,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시골이, 검은 개울이, 18마일(29킬로미터) 걷기가 있을까? 물론이다. 그리고 그런 최고의 동반자와 함께라면 나는 어디든 갈 준비가 되어 있다. (98)

 

 

나는 심장이 몸의 문간에서 긴 돌계단을 내려가 홀로 이 세상에서 나가는 걸 느낀다. (115)

 

 

목록들과 동사들은, 당신을 많은 곳에 데려다준다. 모방하느냐, 모방하지 않느냐 이 질문의 답은 쉽게 얻을 수 있다. 모방하지 않는 것의 위험이 모방하는 것의 위험보다. 늘 기억하라 말은 말하는 자가 하는 게 아니다. 말이 하는 것이다. 동사들의 근육을, 형용사들의 엄정함을 추구하라. 아이디어가 말들을 몰아야 한다. 말들이 아이디어를 몰면 솜, 억지 해석, 공들임, 공기 방울, 불순물, 겉치레, 유행에 뒤진 여자, 매춘밖에 되지 못한다. 시를 덮을 때는 펼칠 때와 달라야 한다. 당신 이름이 블레이크이고 호랑이에 관한 시를 쓴 게 아니라면. (123)

 

인간은 독창성으로 그 이름을 떨친다. 독창성이야말로 우리 종의 트레이드 마크다. 모든 인간은 열심히 활동하기를 갈망하며, 하루의 일은 무엇이든 새로운 것이다. 거기에 부와 명성, 행복에의 약속이 있다. 그 누구라도 주의의 낡은 재료들을 모아 그것들을 분해하고 잘라서 새로운 방식으로 붙여 변형된 물질, 전에는 본 적 없는 바람개비, 새로운 색깔의 꽃, 네모난 달걀, 혹은 시 낡은 감정이 변화된 어법으로 다루어져서 낡은 것과 새것이 결합된 시 를 세상에 선사한다면 권태로울 이유가 없고 신적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새 창조물을 갖게 된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124)

 

 

그러니까 시인의 목소리는 첫 사례로 만난 시들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행하고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기존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로잡혀야 한다.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시 한 편을, 그다음엔 몇 편을 사랑해야만 한다. (125)

 

 

우리는 호기심과 관심, 직면 그리고 모방에 의해 배운다. 그런 체험과 노력을 통해 지성과 정신은 힘을 얻고 개성을 향해 나아간다. (125)

 

 

나는 시 안으로 들어가서 시의 화자가 되고, 마치 내가 체험자인 것처럼 그 시를 재현하는 걸 내가 체험자인 것처럼 그 시를 재현하는 걸 내 의무로 받아들였다. 그 시는 저자의 개인적 역사가 독자의 이런 참여를 막고 독자에게 오직 독자의 역할만 하도록 의도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시들이 저자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체(停滯)에 관한 것이 아니고 체험, 그리고 나아감에 관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듣는 이들의 말 탄 사람이 되었다. 나는 들판에서 반나절씩동물들을 보았다. 시간에 대해, 아름다운 것에 대해 사색한 것도 나였다. 그리하여 나는 이런 믿음에 이르게 되었다. 시의 목적은 독자가 개인적이고 사적인 방식으로 체험과 직관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 말들의 배열을 제공하는 것이다. 오직 그렇게 해서만 시는 독자에게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남길 수 있다. 오직 그렇게 해서만 시는 독자 자신의 삶에 지속적으로 남을 수 있다. 독자는 유연한 지력과 진심을 가지고 시 안으로 들어가서 이전의 자신과 조금 그리고 영원히 달라져서 나오게 된다. 그 어떤 시도 우리 중 하나 혹은 일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 관한 것이다. 시는 우리 종()에 관한 긴 기록의 일부다. 모든 시는 내 삶에 관한 것인 동시에 당신의 삶에 관한 것이고, 미래의 무수한 삶에 관한 것이다. 한 사람이 그걸 썼다는 사실은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사실만큼 그렇게 중요하거나 흥미로운 건 결코 아니다. (138 139)

 

 

우리들 각자가 시에, 움직이는 펜에 무수한 메아리들을 반영한다. (140)

 

 

우리가 숙고를 거쳐 구축하는 관념은 무엇보다도 우리 앞의 본보기들, 특히 저 막강한 첫 본보기들에서 받은 인상에 토대를 둔다. 우리는 반응하고, 모방하고, 상상하고, 창조한다. (141)

 

재현이 시의 귀중한 핵심으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 시들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게 기여하지 않는다. 나는 시들이 내게 기여해주기를 기대한다. 시들이 내 삶 속에서 막간의 여흥이나 따로 떨어진 장소가 아니라 진행 중인 존재이기를. 그것들이 긴요하고, 정보를 제공해주고, 지지적이기를 내 삶을 확장시키는 제현, 체험을 지지해주기를 기대한다. 늘 우아하거나 현명하거나 단순할 필요는 없다. 삶 자체가 그러하듯 공포, 죽음의 작은 신들이 아닌 생명의 주(lord of life)를 대신하여 분투해야 한다. 정체가 아닌 나아감의 시들이어야 한다. (142)

 

 

시인의 내는 목소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여러 해에 걸쳐 소중히 간직되고 형성되고 다듬어지며, 어떤 목소리나 그러하듯 하나의 태도와 하나의 감성 어쩌면 타자의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을 나타낸다. 어느 시인이든 이 타자와 강렬한 관계를 맺고 벗하여 살아간다. 사실 시인은 이 목소리를 다른 어떤 목소리보다 많이 들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시인은 이 내면의 벗이자 목소리를 자극하고, 기쁘게 하고, 약동하게 해줄 영향력들, 활동들, 생각들에 이끌리기 쉽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겠는가? 시인이 내는 목소리가 여러 해에 걸쳐 시인을 창조하는 게 아닌 것처럼 시인이 그 목소리를 창조하는 것도 아니다. 의심할 바 없이 나는 평생 이 내면의 목소리에 영향에 근거하여 이런저런 결정들을 내려왔다. 나는 이 권위자와 함께 더없이 강렬하고 기껍게 살고 있다.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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