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도 열정이 남아있어
때론 덕질을 하고있는 나를 보며
씽긋,
나쁘지 않다.
아직은 살아있다는 증거니깐,
많은 덕질 가운데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에 대한 것은
그의 영화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이 스민
책까지도 슬금슬금 손이 간다.
물론 간다고
모두 소유할 수는 없는 법,
절제의 미덕으로 자제하지만,
마음 산책의 키키 키린의 말에 이어
바다출판사의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에
오늘 소개할 체크포인트 찰리의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까지.
그의 영화 관련 에세이집일까
단순한 호기심과
이 서정적인 책 제목에 낚여,
“사람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제 1 철학으로 삼은 듯한 히로카즈 감독은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이상, 그 삶의 일부는 항상 ‘공공’적인 것이고 개인은 그 ‘공공’에 열린 채 존재한다, 방송이라는 미디어와 취재라는 행위는 바로 그 공공, 장소나 시간 안에서 개인이 타자와 만나고 때로는 충돌을 되풀이하며 성숙해가기 위해 존재한다.(11쪽)는 그의 신념을 밑바탕으로 1992년 “그러나……어느 복지 관료, 죽음의 궤적”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2001년 “관료는 왜 죽음을 택했는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라는 제목으로 변경하여 출판했고 22년 이 논픽션은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로 출판된 셈, 히로카즈는 그의 진정한 출발은 바로 그의 첫 저작인 이 책으로부터라는 언급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야마노우치 도요노리)
그러나……라는
이 말은
끊임없이 내 가슴속에서 중얼거려
지금껏 내 마음속 단 하나의 의지할 곳이었다
내 생명은, 정열은
이 말이 있었기에
나의 자신감은 이 말이었다
하지만
요즈음 이 말이 틀리지 않는다
가슴속에서 거목이 쓰러진 것처럼
이 말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러나…… 라고
이제 이 말은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나……
몇 번이고 중얼거려보지만
그 빛나는 의욕,
그 화려한 정열은
이제 사라져버렸다
‘그러나……’라고
사람들을 향해
그저 혼자 멈춰 서서
석양이 바야흐로 지려 해도
강력하게 외칠 수 있었던 그 자신감을
그래
내게 다시 한번 돌려줘.
이 책의 주인공인 야마노우치 도요노리가 15살 때 처음 쓴 시로 그의 죽음 직전에 다시 적은 듯은 듯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야마노우치의 삶을 대하는 관점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환경청 소속 관료 야마노우치 도요노리.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미나마타병 관련 국가 측 책임자로, 정부와 피해환자 간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물이었다. 관료의 죽음이 사회면 기사에 연신 보도되며 세간의 관심을 받는 사이, 사회복지 문제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던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야마노우치가 과거에 임한 복지 행정 책임자의 직위에 주목해 취재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취재를 거듭할수록 고급 관료가 아닌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라는 한 인간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의 부인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와 작은 노트. 방송 이후에도 취재를 이어나가야 했던 이유가 그 안에 있었다. 야마노우치가 적어 내려간 ‘그러나’라는 말, 그의 마음속 ‘구름’은 무엇을 뜻했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죽음이라는 사태 너머에 바라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는 완성되었다.(출판사제공 책소개)
히로카즈는 책에서 야마노우치의 죽음에 대해 “누군가의 압력이라는 외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 나름대로 그 자신의 미학이랄까, 그 자신의 성실함으로 문제에서 도망치지 않았기 때문에 자폭해버린 거라고 생각합니다.”(242쪽) 라는 결론을 도출해 낸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람은 ‘그러나’라는 말을 자기 안에서 잃어간다, 그리고 그 말을 ‘하지만……’이라는 변명의 말로 바꾸며 살아간다. 야마노우치는 그것을 용서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그러나’라고 말할 수 없게 된 쉰세 살의 자신을 열 다섯 살의 자신으로 심판한 것이 아닐까, “다시 한번 돌려줘”라는 야마노우치의 외침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을까, ‘하지만’이라는 시대를 향한 것이었을까, 현실주의의 시대속에서 ‘그러나’라는 말이 야마노우치 안에서 사라지고, 시대에서 또 하나 ‘그러나’라는 말이 사라졌다.(250쪽)고 개탄하며 이상주의가 현실주의에 압도당하는 현재라는 시대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239쪽)를 고발했던 젊은 히로카즈의 용기에 가슴 뭉클하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던 책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당신이 있어
세상은 더 따뜻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가만가만 속삭여보는 오늘
성긴 눈발 속에서
가만 웃고 있는 먼 이국의 야마노우치 도요노리와
우리 시대의 인물들이 차례차례 오버랩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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