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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2022년 12월 30일 군산 비응도 마파지길을 걷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2. 12. 30.

 

 

 

 

 

고등학교 시절

난 청마 유치환을 사랑했다.

 

특히 바위라는 시를 종종 낭송하며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精)

함묵(緘默)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生命)

망각(忘却) 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애정과 연민 희로애락에서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굳은 선언처럼

내 삶도 그렇게 의연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난 또 내 호를 유치환님의 청마(靑馬)를 따,

청파(靑波)라고 지으며

 

이승의 소풍을 마감할 때까지

푸른 파도처럼 한 곳(의식과 공간 모두)에 머물지 않고

늘 출렁거리며 살아가야지, 라는

모순적인 다짐을 했다.

 

대학 때

내 친구 문정선은

청파라는 나의 호를 듣더니

새끼 고양이를 바라보듯

말간 눈동자로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이제 수십 년이 흘러

내 미래를 예언이라도 했듯

 

정말 나는 푸른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살았다.

 

 

때론 파도보다 더 힘이 센

해일을 겪어내고

그 질곡의 시간들을 건너며

 

한때 뱃놈의 애인이었다가

지금은 뱃사람의 아내가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참 신기하게도

바다의 소리와 냄새와

정답고 때론 새초롬한 그 풍경들에

나는 또 한없이 매혹될까?

 

혹시 전생에 듀공은 아니었을까?

 

 

바다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옆구리를 더듬고

햇살을 나누자고

애교를 부리며

 

나는 오늘도 오랫동안 바닷가를 어슬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