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쏟아지는 빗줄기에 잠깐
선잠을 깼지만
자장가인 양
늦은 아침을 맞이했다
잦아든 빗줄기 대신에
청명해진 새들의 노래와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생활 소음들
잔잔한 배경이 되어주는 매미의 울음
이런 곳이
바로 낙원이 아닐까
혼자 빙긋 웃는다.
2021년 노벨문학상의 주인공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낙원”은 어떤 모습일까
참으로 궁금해서 설레기까지 했던 책,
12살 소년 유수프가 집을 떠나면서부터 시작한, 유수프의 성장기이자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책 111쪽)
“낙원이 이럴 거라고 생각하면 기분좋지 않아?” 하미드가 물소리로 가득한 밤공기 속에서 부드럽게 물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폭포들이 있다고 생각해봐. 유수프, 이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걸 상상해봐라. 그곳에서 세상의 모든 물이 흘러나온다는 것을 너는 아니? 낙원에는 네 개의 강이 있단다. 강들은 동서남북 여러 방향으로 흘러서 신의 정원을 사등분하고. 그래서 어디에나 물이 있는 거야. 누각 밑, 과수원 옆, 테라스 옆, 숲 옆의 길에도 물이 있는 거지.”
(책 236쪽)
“산 위에서는 빛이 초록색이었어요.” 내가 상상한 적이 없는 빛이었어요. 그리고 공기는 RoRme이 씻긴 것 같았어요. 아침에 햇빛이 눈 덮인 봉우리를 비추면 영원처럼 느껴졌어요. 결코, 병하지 않을 순간처럼 말이죠. 늦은 오후가 되면 물가에서 목소리가 하늘을 향이 높이 올라가요. 우리는 어느 날 저녁 산을 올라가다가 폭포 옆에서 멈췄어요. 아름다웠어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어요.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거기서는 신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책 305쪽)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여기가 지옥이라면 떠나요. 내가 같이 갈게요. 그들은 우리가 두려워하고 순종적이고, 우리를 학대할 때조차 그들을 존경하도록 키웠어요. 떠나요. 내가 같이 갈게요. 우리 둘 다. 이름도 없는 곳 한가운데에 있어요. 어느 곳이 이보다 더 나쁠 수 있겠어요? 어디를 가든 탄탄한 삼나무들과 끊임없는 수풀들, 과일나무들과 예기치 않게 화사한 꽃들이 있는,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은 없을 거예요. 우리가 낮에 맡을 수 있는 오렌지나무 수액의 쌉싸름한 향과 밤에 우리를 깊이 포옹해주는 재스민향도 없을 거예요. 석류 씨나 가장자리에 난 향긋한 풀들의 향내도 없을 거예요. 웅덩이와 수로에서 나는 물소리도 없을 거고요. 지독히 더운 한낮에 대추나무 숲에서 느끼는 만족감도 없을 거예요.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음악도 없을 거예요. 추방이나 마찬가지겠죠. 그러나 어떻게 이보다 더 나쁠 수 있겠어요?
부모의 빚 대신 팔려 온 소년 유수프
그는 자신이 경험한 일련의 여행과 사건을 통해
(책 229쪽)
유수프는 삶의 얼레가 자신의 손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얼레가 저항을 받지 않고 돌아가게 놔뒀다. 그리고 일어나서 그곳을 떠났다. 그는 부모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지 못했다는 죄의식에 가슴이 멍해져 오랫동안 혼자 조용히 않아 있었다. 부모가 자신을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지, 아직도 살아 계신지 궁금했다. 그는 자신이 그 답을 알아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이 상태에서 떠오르는 다른 기억들에 저항할 수 없었다. 버림받았을 때의 모습들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그들 모두가 그가 스스로를 방치하도록 만들었다. 그의 삶은 사건들로 이뤄져 있었다. 그는 파편들 위로 고개를 들고 있으려 했고 더 가까운 지평선에 눈길을 주며 앞에 놓여 있는 것에 대해 부질없이 알려고 하기보다 무지를 택했다. 자신이 살았던 삶에 대한 속박에서 그를 풀려나게 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중략)
칼릴처럼 신경질적이고 호전적이고, 사방으로부터 포위되고, 의존적이고. 미지의 한복판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 그는 손님들과 주고받는 칼릴의 끝없는 농담과 불가능해 보이는 그의 쾌활함을 떠올리고 실제로는 그것이 숨겨진 상처를 감추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움에 애가 타고 잃어버린 완전함에 대한 생각에서 위로받으며, 악취나는 이런 저런 곳들에 갇혀있는 그들 모두처럼.
유수프의 입을 통해 작가가 그리는 낙원,
”그리움에 애가 타고 잃어버린 완전함에 대한 생각에서 위로받으며, 악취나는 이런 저런 곳들에 갇혀있는,”
현실 속의 낙원을 결코 떠날 수 없는 우리 모두들.
책을 덮으며
싸해오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한참을 창밖을 응시했다.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한다.
내가 머물고 있는 바로 이곳,
나의 낙원이라 애써 생각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시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문체들이 읽는 즐거움을 더했다. 또한 기존의 아프리카에 대한, 흑과 백, 식민주의자와 피식민주의자와의 이분법적 아프리카라는 생각의 범위를 좀더 확장할 수 있는 아프리카엔 아프리카인 뿐만 아니라 아랍인, 인도인, 페르시아인이 공존하는 세계라는 사실을 집어준 소설, 그의 이후 소설이 더 기대된다.
'戀書시리즈 -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유의 힘/장석주/다산책방 (0) | 2022.08.21 |
---|---|
산티아고 감보아 소설 "밤기도", 현대문학 (0) | 2022.07.19 |
유디트 헤르만작 <여름 별장, 그 후> 민음사 (0) | 2022.01.01 |
필립 로스의 새버스의 극장(문학동네) (0) | 2021.12.24 |
필립 로스의 <사실들, 한 소설가의 자서전> (0) | 2021.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