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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한강의 소설 읽기 문학 평론가 권희철(한강의 소설 ‘흰’ 해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9. 7. 5.

한강의 소설 읽기

 

 

문학 평론가 권희철(한강의 소설 해설)

 

문학 평론가 권희철은 한강의 소설 작품들에 대한 해설을 하며 소설가 한강이 소설을 통해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고 한다.

 

(143)

이토록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를 견딜 수 있는가, 껴안을 있는가(채식주의자 2007)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그것이 가능한가(바람이 분다, 가라 2010)

삶을 살아내야만 한다면, 인간의 어떤 지점을 바라볼 때 그것이 가능한가,(희랍어 시간 2011)

내가 정말 인간을 믿는가, 이미 나는 인간을 믿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이제 와서 인간을 믿겠다고 하는 것일까(소년이 온다 2014)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 이와 같은 질문을 향해 대답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고 평론가는 덧붙인다. 즉 질문은 어떤 대답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대답은 무엇인가를 해명하며 개진 되었을 때, 그 질문을 숙고하고 있는 사유 그 자체가 변화하는데, 바로 그 변화안에 답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질문은 질문 그 자체로, 보다 정확히는 스스로를 밀고 나아가다가 다른 질문이 되고마는 일련의 이행 자체로 작동해야만 한다. 해결책으로서의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답을 찾아냈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오히려 어서 빨리 끝을 보고 싶은 초조함 때문에 질문을 숙고하던 사유가 끝낼 수 없는 초조함 때문에 질문을 숙고하던 사유가 끝낼 수 없는 사유의 운동으로부터 물러서서 자신의 운동을 중단한 순간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간의 한강의 소설들을 다시 읽는 이 자리에서 섬세한 해석을 통해 정확한 을 찾아내기보다, 차라리 질문들 사이의 간격 혹은 변화를 더듬으면서 그 사유의 운동을 우리의 읽기 안에서 다시 발생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164 - 165)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리스 블랑쇼는 조르주 바타유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썼다. “모든 인간 존재의 근본에 어떤 결핍의 원리가 있다.”(모리스 블랑쇼. 장 룩 낭시. 밝힐 수 없는 공동체 17) 그렇게 때문에 인간은 타자를 필요로 한다. 타자를 필요로 하는 존재, 그것이 인간이다. 이 문장을, 인간은 저마다 어딘가 모자란 데가 있으니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모든 인간 존재의 근본에는 어떤 결핍의 원리가 있기 때문에 바로 그 결핍으로 인해서 타자의 이의 제기와 부인에 노출되고, 절대적 내재성(혹은 자율성)에 대한 환상을 포기할 수 있다. 바로 그 노출과 포기 속에서, 타자에 의해 나의 실존이 근본적으로 부단히 의문에 부쳐지고 있다는 바로 그 점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뛰어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결핍은 충만함의 반대가 아니라 오히려 초과로 이어진다. 이 초과를 위해 인간은 타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타자와의 만남이 없을 때,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 갇히게 되며 무감각해질 뿐이다. 타자와의 만남이 없을 때, 절대적 내재성에 대한 환상 속에서, “스스로 자기 고유의 자기 동일성과 자기 결정력을 갖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인간은 순수한 개체적 실재로 스스로를 정립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거기에 겉으로 보아 온전할 뿐 가장 병적인 전체주의의 기원이 있다.”(같은 책 13)

 

그렇다면 어떤 타자가 가장 강력하게 나에게 이의 제기하고 나의 자리를 부인해서 내가 스스로를 초과할 가능성을 이끌어내게끔 하는가? 죽어가는 타인이.(같은 쪽 23)

 

그러므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죽어가는 타인 앞에서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자기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음을 충실히 이해하는 존재, 그것이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