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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Bohumil Hrabal/1914 – 1997)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9. 7. 2.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사는, , 한탸는 쥐와 파리 떼가 득실대는 지하실에서 삼십오 년째 폐지를 압축하는 상냥한 도살자의 직분에 충실한 삶을 산다.

일에 몰두하며 그는 책을 읽는 행위보다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쏘아 사탕처럼 빨아 먹과,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하게 된 덕분으로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되고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으며 하루에도 열 두 번씩 그 자신으로부터 멀리 떠나 현실과 완전한 다른 세계, 스스로에게 소외된 이방인이 되어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적 삶을 영위한다.

 

이런 한탸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책을 고독의 피신처로 삼았던 시시포스 콤플렉스적인 일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더불어 한탸의 옛 여자 친구인 만차와 나치에 희생당한 어린 집시 여자 이야기를 꺼내는 한탸의 독백을 통해 전쟁과 폭력이 만연했던, 2차 세계 대전과 60년대 공산주의 체제하의 작가 자신의 프라하의 삶에 대한 자전적 영감으로 태어난 소설임을 짐작케 한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그 시대의 사회상을 대놓고 비판하는 것보다 한 세계의 종말을 목격하는 늙은 노동자의 긴 명상기이며 책이 그저 종이쪼가리로 취급받게 된 냉혹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화자의 정신 상태를 섬세한 문체로 그려내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무리가 아닌 개인이 꿈꾸는 사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시적인 명징함으로 표현하며 흐라발 자신은 자신의 삶과 작품 전체를 상징하는, 그가 쓴 책들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고, 그가 세상에 온 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쓰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130쪽 분량의 짧은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 은 생의 루저라고 밖에 볼 수 없는 한 노동자의 일인칭 고백으로 이루어진, 소박하다 못해 비루하기까지 한 일상이 그의 고백을 통해, 칸트의 말을 빌리자면, 일상이 별들로 가득한(책을 읽고, 사랑에 빠지는 행위) 여름밤이 되어 달의 형태(시간의 흐름)가 정점에 이르는 순간 세상에 대한 경멸과 우정, 영원으로 형성된 고도의 감각 속으로 서서히 빠져든다고(압축기의 중압감에 몸을 맡기며), 삶을 예찬하며, 죽음마저 긍정하는 시적 서사라 할 수 있다.

 

 

 

 

보후밀 흐라발 (Bohumil Hrabal/1914 1997)

 

1914년 체코의 브르노에서 태어나 프라하 카렐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젊은 시절, 시를 쓰기도 했으나 독일군에 의해 대학이 폐쇄되자 학교를 떠나 철도원, 보험사 직원, 제철소 잡역부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마흔아홉 살이 되던 해, 뒤늦게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1963년 첫 소설집 바닥의 작은 진주를 출간하며 작가로 데뷔, 이듬해 발표한 첫 장편소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프라하의 봄이후 1989년까지 정부의 검열과 감시로 자신의 많은 작품이 이십여 년간 출판 금지되었음에도 조국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해외 언론과 작가들로부터 체코 소설의 슬픈 왕으로 불리는 한편, 지하 출판을 통한 작품 활동으로 사회 낙오자, 주정뱅이, 가난한 예술가 등 주변부의 삶을 그려냄으로써 체코의 국민작가로 각광받았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현대 작가로 평가받는 흐라발의 작품들은 체코에서만 무려 삼백만 부 이상 팔려나갔고 30여 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또 여덟 편의 작품이 영화화되었는데 그중 이르지 멘젤이 감독한 두 편의 영화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영국 왕을 모셨지>는 각각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 부문(1967)과 체코영화제 사자상(2006), 베를린영화제 국제평론가상(2007)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체코를 방문한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작가가 자주 찾던 선술집을 방문할 정도로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은 흐라발은, 1997년 자신의 소설 속 한 장면처럼 프라하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려다가 5층 창문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주요 작품으로 영국 왕을 모셨지(문학동네, 2009) 너무 시끄러운 고독』 『시간이 멈춘 작은 마을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