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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마루야마 겐지/바다출판사)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9. 6. 19.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마루야마 겐지/바다출판사)

 

당신은 정말 소설을 쓰고 싶은가?”

고독과 은둔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가 다가올 소설가에게 건네는 조언...

 

 

마루야마 겐지의 달에 울다를 읽은 후 내가 쓰는 소설의 지향점을 찾게 되었다. 현실과 재능 혹은 노력은 어디까지나 이상에 불과한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리지만 묵묵히 내 길을 가야겠노라고, 게으른 나는 오늘도 용기를...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고 평가에 의존하지 말자는 결심은 내 졸작에 대한 변명에 불과함을 인지하며 부끄러움과 동시에 절망에 허우적거릴 때마다 그의 다음 말들을 되새김질하자.

 

 

 

영혼을 들여다보는 예술

 

영혼이라는 말은 너무도 추상적이고 애매한 표현이지만 달리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으니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예술이란 요컨대 이 영혼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영혼은 오감보다, 의식보다 본능에 좌우되는 심층 심리보다 훨씬 깊은 곳에 숨어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탓에, 원한다고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욕망이 채워진 행복감에 젖어 있을 때나 불편하지 않은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때, 만사가 원하는 대로 진행될 때, 또는 인생을 완전히 포기하고 돌아 섰을 때는 영혼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어떤 장기가 병이 들어서야 그 장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불행이나 비극에 처했을 때 우리는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독에 찬 나날을 보내다보면 비극이나 불행 없이도 아주 냉철하게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행이나 비극에 처했을 때와는 다르게 말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불교적인 냄새가 나서 꺼림칙하지만 사실입니다. 시도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경지와는 거리가 상당히 멀지만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꿈이나 환영보다 훨씬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진지하게 창작의 길을 걷는게 아니면 매일 같이 영혼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습니다. 매일 영혼과 대치한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행위입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을 향해 한없이 내려가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지요. 심연을 들여다보는 정도에 그친다면 몰라도, 그 심연을 향해 내려가는 것은 훨씬 더 위험합니다. 그저 매력적이라는 이유로 각오를 다지지 않고 시도하다가 자살로 인생을 마감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예술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그 각오와 강인한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예민한 감각을 믿고 함부로 그 영역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그 심연의 존재를 알고 그 가치를 발견했다면, 내려가기 전에 나름의 각오를 다지고 굳건한 자세로 임하도록 하십시오. 그저 그쪽에서 이끄는 대로 내려가는 것은 평범한 사람도 가능합니다. 자살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 그 심연을 끝없이 내려가기만 하는 것은 창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도승들이 하는 것임을 알아 두십시오. 당신은 어디까지나 소설가입니다. 거기에서 느낀 것을 언어로 표현해서 작품으로 완성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자면 한없이 내려가기만 해서는 안 되고, 다시 원래 위치까지 올라올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일반인의 통상적인 사고 수준까지 돌아오지 않고는 작품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한 번으로는 부족합니다.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고 또 다시 내려가기를 몇 번 거듭하면서 인간의 본질과 그 존재 의의를 두 눈으로 똑바로 응시한 후에, 작품을 완성하십시오. 그렇게 하려면 상당한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것과 흥미로운 일에 충동적으로 뛰어들어 그날그날을 들떠서 보내는 소설가는 할 수 없는 일이지요.(136-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