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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9. 6. 5.

 

 

 

 

 

2,3년전쯤이리라 짐작된다. 빨간책방의 이동진씨의 추천으로 읽었던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 독후감으로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왜 그랬을까,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며 이유를 알았다.

 

곧 닥쳐올 노년의 나, 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하고 싶지 않았다가 솔직한 답...

 

 

 

 

 

이하, 알라딘의 책 소개.

 

해마다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수상 후보로 점쳐지고, 1998년 퓰리처상 수상, 전미도서상과 전미비평가협회상을 각각 두 번, 그리고 펜/포크너 상을 유일하게 세 번 수상한 작가, 필립 로스의 장편소설. 오래전 해적판으로 몇몇 소설이 소개되기도 했으나, 판권 계약을 통해 정식으로 국내에 출간되는 것은 <에브리맨>이 처음이다.

 

2006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필립 로스의 스물일곱번째 장편소설이며, 작가에게 세번째로 펜/포크너 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다. 한 남자가 늙고 병들어 죽는 이야기인 이 소설을 통해 필립 로스는 삶과 죽음, 나이듦과 상실이라는 문제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소설은 황폐한 공동묘지에서 시작한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거나 친구들이다. 그들은 막 세상을 떠난 한 사람을 추억하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이 장례식의 당사자인 ''이다. 소설은 노년 시절의 ''의 삶에 초점을 맞춰, 그의 인생 전반을 돌아보며, 삶과 죽음,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건강과 젊음이 떠나고 쇠잔해지는 육체. 찬란했던 지난 시절에 대한 추억을 곱씹으며 곧 찾아올 영원한 망각을 기다리는 삶. 서글프고 애닲지만 그것이 바로 늙어가는 것임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삶의 일부임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이 소설은 이야기한다. 그것은 특별할 것도 없고, 그저 우리가 맞아야 할 삶의 한 부분이라고.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삶의 태도에 대한 비난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보통 사람들의 욕망에 충실하고자했던 너무 솔직해서 머쓱했던 장면들이었다. 또한 그가 죽음을 상기하며 두려워하는 모습이 바로 내 모습임을 자각하고 내린 결론은 역시...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 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83)

 

 

한없이 고적하고, 얼마간은 치졸한 삶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야했고, 살아갈 것이고,

곧 죽음으로 끝나겠지.

 

그럼에도, 그럼에도,

매 순간, 나는 결코 죽음에 지배당하지 않고, 삶의 희열을 희구할 수 있기를...

책을 덮으며, 왠지 남아있는 나의 생이 더 애닮아졌고, 간절해지기 시작한다...

 

 

이하는 책 속에서 인상적이었던 글들...

 

장례식 날 딸 낸시가 흙을 관에 던지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좌우명처럼 여겼던 말을 기억하고 울기 시작했다. “현실을 다시 만들 수는 없어요.” 낸시는 아버지에게 그 말을 돌려주었다.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13)

 

 

 

그는 어떤 일이든지, 무슨 일이든지 멋대로 하고 다닐 자유에 굶주렸던 것이 아니다. 정반대였다. 그는 자신이 놓인 처지를 혐오하면서 내내 뭔가 안정된 것에 굶주려 있었다. 그는 두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순응에 따르는 한계나 그것이 주는 안락 어느 쪽에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그저 질질 끄는 수치스러운 결혼 전쟁이 잔뜩 낳아놓은 그 모든 추한 생각을 마음에서 비워버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특별하고자 한 적이 없었다. 다만 나약했고 공격에 무방비 상태였고 혼란에 빠져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인생의 반을 발광 상태에서 살지 않으려다보니 죄 없는 자식들에게 큰 박탈감을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자신도 사면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확신했다. (39)

 

그는 모든 종교가 불쾌했으며, 그 미신적인 허튼 수작이 의미 없고 유치하다고 생각했고, 그 지독하게 어른스럽지 못한 면 그 젖비린내 나는 이야기와 독선과 양떼, 그 게걸스러운 신자들 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에게 죽음과 신에 관한 야바위나 천국이라는 낡은 공상이 통하지 않았다, 그저 우미 몸만 있을 뿐이었다. 태어나서 우리에 앞서 살다 죽어간 몸들이 결정한 조건에 따라 살고 죽는 몸, 그가 그 자신을 이한 철학적 틈새를 찾아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틈새였다. 그는 일찌감치 직관적으로 그 철학과 마주쳤으며, 그것이 아무리 초보적이라 해도 그에게는 그게 전부였다 만에 하나 자서전을 쓰는 일이 생긴다면, 그 제목은 <남성 육체의 삶과 죽음>이라고 부를 터였다 그러나 그는 퇴직 후에 작가가 아니라 화가라 되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일년의 추상화에 그 제목을 붙였다.(58)

 

왼쪽 경동맥 수술을 할 당시 그는 국부 마취를 선택했다. 그것은 실수였다. 그는 간신히 무너지지 않고 실수이 대가를 감당할 수 있었다. 수술은 두 시간 동안 계속되었고, 그의 머리는 밀폐공포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천에 완전히 둘러사여 있었고, 자르고 긁는 소리가 귀와 너무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바람에 마치 반향실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그들의 도구가 움직이는 소리를 빼놓지 않고 다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싸울 수도 없었다. 그냥 받아들이고 견뎌야 했다. 그 일이 계속되는 동안 그냥 자신을 내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76)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 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83)

 

 

 

젊을 때는 중요한 게 몸의 외부지. 겉으로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거야. 하지만 나이가 들면 중요한 건 내부야.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데는 관심을 갖지 않아.(89)

 

자신을 돌볼 수 없다는 거, 궁상맞게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런 건 전혀 창피한 게 아니죠.”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은 몰라요. 의존, 무력감, 고립, 두려움......그게 다 아주 무섭고 창피해요. 통증이 있으면 자신을 겁내게 돼요. 그 완전한 이질감이 정말 끔찍해요.”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이 부끄러운 거로구나. 그는 생각했다 자신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초라한 거겠지. 하지만 누군들 안 그럴까? 그들 모두 자신이 지금 이런 꼴이 된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안 그런가? 신체의 변화가 부끄러웠다. 남자의 힘이 줄어든 것이 부끄러웠다. 그를 비틀어버린 오류들이 그를 기형으로 만든 충격들 스스로 가한 것과 외부에서 온 것 모두 이 부끄러웠다. 밀리선트 크레이머가 겪는 축소의 과정에 무시무시한 웅장함이 아주 작아 보이게 만드는 것은 물론 그녀가 겪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심지어 손자들의 사진,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통 집 사방에 걸어놓고 있는 그런 사진들, 어쩌면 이 여자는 이제 그런 것도 안 볼지 몰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통증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97)

 

긴 저녁의 외로움 때문에 아들에게 전화하고 싶은 유혹에 굴복하고 나면, 그 뒤에는 늘 슬픔이 찾아왔다. 슬프고 기진맥진했다.(98)

 

노인이 되어서야 그는 질투하는 사람에게서 평온, 아가서 심지어 현실적인 태도까지 빼앗아가는 감정 상태를 발견했다.(106)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외로운 상태의 가장 나쁜 점은 그것을 어떻게든 견디어야 한다는 것이다 (107)

 

모든 사람에게 그렇듯이 자신에게도 삶이 우연히, 예기치 않게 주어졌으며, 그것도 한 번만 주어졌으며, 거기에는 알려진 또는 알 수 있는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131)

 

 

 

그가 알게 된 것은 삶의 종말이라고 피할 수 없는 맹공격이 가져온 결과 전체와 비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긴 직장생활 동안 사귄 모든 사람의 괴로운 사투를 알았다면, 각각의 사람들의 후회와 상실과 인내가 담긴, 공포와 공황과 고립과 두려움이 담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았다면 이제 그들이 떠나야 할 것, 한때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그 모든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체계적으로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알았다면, 그는 하루 종일, 또 밤늦도록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적어도 수백 통은 해야 했을 것이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