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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네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내가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우린 우린거야. 맞지야?“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8. 6. 18.

"저 애는 오늘도 비싸게 군다."

벼르던 노을을 보러 갔더니만 구름에 가려 이마만 보여주는 석양이 좀 얄미웠던 날이었다. 날씨 탓이었을까? 인적 드문 해변엔 갯내마저 걷어낸 바람이 상쾌했다.

"이만하면 책임감 있는 인생이라 할 수 있지 않니?“

"충분해.“

동의를 구하고 싶은 물음에 흔쾌히 답해준다. 위안이자 격려였다.

"날 기다려줘서 고마워

사실은 그 말이 하고 싶었지만, 꿀꺽 삼키고 말았다. 내 형편을 고려해 마음을 써준 답례를 무엇으로 할 수 있을까?

"밥 같이 먹자.“

내가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성의 표시였다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혼자서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처럼만, 이란 화두가 위로가 되는 즈음이다. 지난 6개월의 삶은 충분히 고단했지만 또 한편으론 마음의 안정을 찾고 다시 ""를 정비하는 기간이었다. 몇 년 만에 벼르던 짧은 여행도 하고, 핑계 삼아 새벽까지 수다를 피우다보니 어느 새 우리 사이에 찔레꽃 향기가 감돌았다.


이제 남은 생,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지금처럼만 여유를 가지고, 지금처럼 가끔 밥도 같이 먹고, 1년에 한두 번만이라도 럭셔리한 여행을 꿈꾸자, 남해 힐튼? 아니면 증도의 엘도라도? 아니면 거제, 어디라도...

 

"네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내가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우린 우린거야. 맞지야?“

애써 혼자서 변명을 찾았지만, 차마 발설하지 못했다. 영원히 글을 쓰지 못할까봐? 아직 생에 대한 마지막 미련을 버리지 않아 다행이다. 이 새벽 내가 나를 건너다보며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충남 서천군 장항 송림해변






경상남도 마천면 벽송사


나의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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