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처럼 쏟아지는 마리오 란자의 볼륨을 한껏 높이며 혼자서 달렸던 2시간여. 차 문화 축제와 맞물려 예상했던 교통 혼잡은 기우였다. 오히려 주말답지 않게 한가한 27번국도. 백운산의 그림자를 품은 섬진강의 초록물, 지리산 깊은 골을 따라 흘러온 습습한 바람, 나무의 우듬지를 더듬다가 제멋대로 턱하니 도로에 몸을 뉘인 햇살의 긴 그림자, 무성한 초록 잎을 살랑거리는 벚나무들의 퍼레이드.
“환장하겠네.”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앞으로 몇 번이나 이 길을 달릴 수 있을까?
자연이 주는 소소한 것들에 취해 더할 수 없이 좋은 시간들.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때때로 년 만에 한 번, 이렇게 스쳐가다가도 때론 오랫동안 머물 인연이어서 좋을 사람들. 넉넉한 인심과 푸짐한 먹거리, 때론 모자란 듯 넘쳐나는 알코올에 취해 횡설수설 뱉어내는 이야기들.
“어떤 이는 사는 게
성긴 모래를 옆으로 밟고 가는 ‘게’ 같다고 하고,
다른 이는 도시, 아파트 베란다에 매어 둔 ‘개’ 같다고 했다.“
고 노래하는 이샘.
“1987
봄은 사랑이 찾아왔고
여름은 뜨거웠으며
가을은 슬펐고
겨울은 시작된 사랑으로 행복하였다.
고 염장질하는 박샘.
“LOVE FOREVER L.I.F.E
아래서 박동치는 심장“
이라고 창녀였던 인생조차 살아있는 것이 기쁜 것 아니냐며 억지 주장을 펼치는 나.
“좋은 시는 아슬아슬한 경계에 피는 꽃!
여의 이시인님의 명 강의는 백미중의 백미.
“아이고, 이것으로 충분해. 더할 것이 또 있을랑가?”
가만 잠자리에 누워 있으려니, 스며드는 이야기, 깔깔거리는 웃음과 서툰 노랫소리에 스스로 묻지 않을 수밖에 없는 밤이었다.
차 문화 축제에 비죽 얼굴을 내밀어 인사하고 먼 길 떠나기 전 밥 한 끼나 하자는 박샘과의 점심 후 다음 달을 기약하며 부랴부랴 서두르는 발걸음.
“스님, 어느 절에 머무십니까? 놀러가도 됩니까?”
느닷없이 앞을 막아서는 남자는 다짜고짜 합장을 하며 묻는다. 남자의 갑작스런 질문과 행동에 답하기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순간, 가벼운 합장을 하며 스님의 코스프레를 하는 나.
“스님, 스님”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총총거리면서도 입가가 올라가며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는다. 남자는 몇 발자국 더 따라오며 스님을 애타게 부른다. 차라리 이참에 절에라도 들어가 공양보살이라도? 못하라는 법도 없으려니, 또 스쳐가는 생각들들들...
'여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내가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우린 우린거야. 맞지야?“ (0) | 2018.06.18 |
---|---|
유홍준 교수와 함께 했던 백제 문화 유산 답사 사진 (0) | 2016.06.03 |
지리산 행복학교 문창반 (0) | 2016.03.30 |
사랑을 잃어도 쓰일까? (0) | 2016.03.07 |
서천 판교 오성초에서 (0) | 2015.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