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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허은실 작가의 시 낭독회/군산 월명동 마리서사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7. 9. 17.



저녁의 호명 / 허은실



제 식구를 부르는 새들
부리가 숲을 들어올린다

저녁빛 속을 떠도는 허밍
다녀왔니
뒷목에 와 닿는 숨결
돌아보면
다시 너는 없고
주저앉아 뼈를 추리는 사람처럼
나는 획을 모은다

어디로 가는가 무엇이 되는가
속으로만 부리는 것들은

네 이름이 내 심장을 죄어온다

소풍이라 말하려 했는데
슬픔이 와 있다

도요라든가 저어라든가
새들도 떠난 물가에서
나는 부른다
검은 물 어둠에다 대고
이름을 부른다

돌멩이처럼 날아오는
내 이름을 내가 맞고서
엎드려 간다 가마
묻는다
묻지 못한다

쭈그리고 앉아
마른세수를 하는 사람아
지난 계절 조그맣게 울던
풀벌레들은 어디로 갔는가
거미줄에 빛나던 물방울들
물방울에 맺혔던 얼굴들은

바다는 다시 저물어
저녁에는
이름을 부른다



『나는 잠깐 설웁다』,허은실 , 문학동네, 2017년, 12~13쪽


어젯밤은 기대하던 허작가님의 시 낭독회로 외출,

안단테 안단테로 부는 9월의 바람처럼 사뿐사뿐,

3분 거리에 있는 마리서사로 가는 발걸음은 리드미컬하다.


팟캐스트 빨간 책방의 애청자로서

오프닝 멘트를 책임지고 있는 작가를 만난다는 설렘,

아주 오랜만에 詩情을 가득 안고,

불빛 그윽한 마리서사에 도착,

영화 "워낭소리"의 음악 감독이란 분의 기타 음들이 불빛과 함께 고즈넉히 부서진다.


한 편의 수묵화를, 흑백 영화를  보는 감흥에 젖어

인상주의적 기품있는  시를 낭송하는 허작가의 목소리에서

삶의 균열 속에 피어나는 꽃 송이들이 품어대는

향기를 들이킨다.


이건 수국의 향일까,

아니다,

양지든 바위틈이든 가릴 것 없는

노지에 무참히 피고 지는

구절초의 쫀쫀하면서도 달콤한 향이다.

작가의 인상이 그랬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제 스스로 피었다가

오롯한 향기를 만방에 뿌리며

슬며시

다음 가을을 기약하는,

억센 듯, 여릿한 그 몸매 또한

허작가였다.


"김은 님,

설움은 잠깐,

사랑은 오래이길요!"

시인은 샤먼의 역할을 자청한다.

하루종일,

지끈지끈

설움에 목이 메였는데,

이런 문구를...


빨간 책방,

"임자는 뉘시요?"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늘,


어젯밤

낭랑하던 그녀를 기억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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