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내가 그대를 욕망해서 참으로 미안합니다. 신기하게도, 그대는 어느 순간 내 시선 속에 있었고, 나는 그저 내 욕망을 따라 그대를 품었을 뿐입니다. 내 욕망의 대상인 그대를 소유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던 시간은 빠르게 흘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순간 내가 그대를 소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안도의 숨을 내 쉴 수 있었습니다. 더욱더 신기한 것은 내가 욕망하는 그대는 한 곳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내 마음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 그대라서 얼마나 다행입니까? 내가 숨 쉬는 공기 속에, 내 살갗을 더듬는 바람결에, 내가 머무르는 시선 속에, 내가 읽고 있는 책 속에, 음악 속에. 내 자신이 존재하는 그 모든 곳에 다른 색깔과 냄새와 맛을 가진 그대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이 실로 감격스럽습니다.
가난한 내가 부유한 새벽빛 속에서 깨어납니다. 귀를 간질이는 작은 참새들의 지저귐과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의 미명, 그 안에 그대가 있었습니다. 환청처럼 그대의 다정한 목소리와 미소가 내 새날을 시작하게 합니다.
뜨거운 태양이 열기를 더하며 대지를 데울 때, 나 또한 그대를 향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달궈진 나의 모든 열망이 어느 순간 그대로부터 반사되어 더 강렬한 열기와 더 찬란한 색깔로 나에게 다가옵니다. 내가 숨 쉬고 사유하고 감동하도록 그것은 나를 가득 채워 충만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까닭일까요? 내가 그대를 욕망하면 할수록 나는 무엇인가 더 풍요로워지고 더 찬란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준 적 없는 관심과 기쁨을 나는 그대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않았던 나의 이야기들을 누구보다도 더 친밀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맨 처음 그대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오직 그대 하나만을 위해 쓴 글을 그대에게 읽어주고 싶었습니다. 바람이 나를 만질 때마다 나는 미소 지으며 그대의 마음 또한 어루만져줄 수 있을 것이라 희망했습니다.
가난한 내가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그 모든 것, 일상의 감동과, 새로움과, 지극한 정성과 간절함, 그것이 가난한 자의 한 낱 꿈일지라도 그대 또한 기꺼워하며 온전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리라, 기대하는 어느 밤, 중천에 뜬 초승달빛이 내 곁에 있지 않은 그대가 꿈결에 건네 오는 손길처럼 애애히도 창문으로 스며드는 그 밤, 때때로 슬픔과 근심과 괴로움이 나를 엄습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대를 향한 나의 욕망, 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대의 마음과 상관없이 시작한 것이기에 그대의 마음에 크게 의존치 않고도 시간의 흐름 따윈 크게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확신은 일종의 자기기만, 자기변명, 혹은 위안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내 마음을 시리게 합니다.
한여름의 몽상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자신의 열기를 감당할 수 없어 스스로 자멸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열망과, 허무 사이의 간극, 그것은 삶의 부조리이며 그 부조리를 견디기 위해선 무엇인가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떠나는 것이라면 마땅히 떠나야하고 혹은 부조리와 맞서 반항을 하려면 또한 무엇인가를 해야 합니다.
“반항은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 한 생애의 전체에 걸쳐 펼쳐져 있는 반항은 그 삶의 위대함을 회복시킨다.”
카뮈는 시시포스의 신화를 빌어 외칩니다.
“순간에 천착하라, 욕망에 충실해라, 모든 정신적 굴레를 벗어 버려라.”
지드는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영혼의 문을 열고 모든 감각을 통해 자연과 생명을 맞아들이라고 외칩니다.
활짝 핀 꽃보다는 약속이 가득한 꽃망울을, 소유보다는 욕망을, 완성보다는 발전을, 사랑하라는 육체와 정신의 해방 찬가를 마음 가득 담아보고 싶은 시간입니다. 과연 몽상가는 자신의 영혼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맨발에 닿는 세계의 생살을, 순간들의 현존을 느끼며, 욕망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습니다. 이제 선택은 당연히 가난한 몽상가의 몫입니다.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말로 - 서울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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