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젖힌 창문으로 스며드는 새벽바람은 습기를 잔뜩 머금고 슬그머니 창문턱을 넘습니다. 어둠 속에서 무거운 바람이 나를 만지는 걸 느끼며 모로 누웠습니다.
“조금만 더 자야겠어요.”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였습니다.
어젯밤은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어 일찍 잤습니다. 인간사 저토록 허망한가, 인간이 무섭다는 생각이 온 몸을 내리눌렀지만 푹 자고 나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곧 5시가 되고 창문 옆으로 심어 놓은 콩잎을 때리는 빗소리. 하나, 둘, 하나, 둘, 느리게 툭툭 떨어지던 것이 갑자기, 셋, 넷, 다섯, 속도를 냅니다.
벌떡 일어나 창문 앞에 섰습니다. ‘훅’ 쏟아지는 비에 일어나는 흙냄새가 촉수를 뻗쳐옵니다. 초록 풀잎의 냄새, 마른 흙냄새, 여름의 비 냄새. 한껏 코를 벌렁거리며 이 모든 냄새들을 들이킵니다. 내 몸의 후각이 온통 춤을 추는 듯합니다. 눈 앞쪽으로 펼쳐진 산 등허리에 운무가 서려있었습니다. 신비롭기까지 하다니. 야트막한 동네 산에도 운무가 걸쳐있네, 혼자 빙긋 웃습니다. 운무가 아니라 비안개였을까요?
후드득거리는 빗소리를 시작으로 동네의 닭들이 이곳저곳에서 연달아 홰를 칩니다. 강아지 컹컹거리며 응답을 하고 풀벌레 소리도 한 옥타브 높아집니다. 요란하게 후려치는 빗소리에 경쟁이라도 하는 것일까요? 대숲에서 들리는 참새소리는 귀엽기만 합니다.
생명들이 부스스 잠을 깨어 움직이는 바람에 나도 한 마리의 짐승이 되었습니다. 떨어지는 비에 세수를 하는 풀들처럼, 나도 찬 우물물에 낯을 씻습니다. 상쾌함이 온 몸을 감쌉니다.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떠오르는 거야.”
가만 나 자신에게 주지시킵니다.
“어제까지만 스트레스 받는 걸로 하자, 오늘 부터는 다시 평정심!”
무엇인가 아직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있는 나를 가만 다독입니다.
<“어제 나는 여기 있었고, 오늘 나는 저기 있다. 맙소사! 이 모든 사람들이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인가.“지드/지상의 양식>
오늘은 하루 종일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헐떡거리는 대지에 스며든 빗물이 스펀지처럼 물씬물씬 해지길 빌어봅니다. 하여 먼지처럼 푸석거렸던 내 마음도 차분히 적셔지길...
Avishai Cohen Trio - Rememb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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