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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 국내가요 등

To. 엘리엇 8/ 때론 자책!/ 흘러간다/이한철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8. 2.

  월명산 한 중심에 자그마한 호수가 앉아있습니다. 호숫가를 따라 걷다보면 보이는 정경들도 쉬엄쉬엄 그렇게 걷는 속도만큼 마음 안으로 들어옵니다. 요사이는 소나무 병충해가 심해 호숫가 숲이 온통 헐벗었습니다. 뭔가 허전해 예전 숲으로 울창했던 시절을 상상하며 걷다보면 물가 한 켠에 아직은 아름드리 편백나무 몇 그루가 건장한 사내들 마냥 떡 버티고 있고 그들 곁엔 평상이 놓여 있습니다.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히려 평상위에 앉아 편백나무에 가만 기대봅니다. 땀을 식히며 앉아 있으려니 솔솔 실바람이 불어 편백나무 잎 몇이 나에게로 떨어져 따끔거리기도 합니다.

   이어폰을 낀 채 한가히 그곳에 누워 하늘을 보다가 때론 팟캐스트 속 수다삼매경에 빠져 혼자 실없이 웃어도 봅니다. 때론 심심하여 발로 툭툭 편백나무를 건드려도 봅니다. 턱턱 맨발로 느껴지는 진동이 내 온몸으로 흐릅니다. 이놈은 나에게 지금 피톤치드를 내뿜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해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생에 대한 본능, 나도 그에겐 단지 한 마리의 해충으로 여겨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빙긋 웃음이 절로 납니다. 장자가 나비가 되는 것인지, 나비가 장자가 되는 것인지, 참으로 모를 일인 것을. 뭘 그렇게 애걸복걸 사는 일에 목을 매는 것인가, 잠시 자문해 봅니다.

   때론 편백나무에 기댄 채로 호수를 건너다보며 불현듯 이런 생각도 합니다. 내 살아생전 한가롭게 호수를 바라다보며 당신과 함께 앉아있을 그런 순간이 있기라도 할 것인가, 그저 상상뿐인데 마음을 싸하게 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혼자서 이러쿵저러쿵 호숫가 오롯이 서있는 편백나무 몇 그루를 빌어 잠시 사는 일의 시름을 달래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싱숭생숭 마음 갈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받침의 모서리가 닳으면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사각이 원이 되는 기적이다. 그러기위해서는 우선 말을 좀 들어야 한다. 네 말이 내 모서리를 갉아먹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너의 사연을 먼저 수락하지 않고서는 내가 네게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신형철/느낌의 공동체>

 

  문득 지난밤에 읽은 이 구절들이 마음속으로 밀고 들어옵니다. 내가 무엇을 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었더군요. 사각이 원이 되기 위해선 우선 너의 말을 좀 들어야하는데, 네 말이 먼저 내 모서리를 갉아먹도록 기회를 주었어야 했는데, 너의 사연을 내가 먼저 수락했어야 했는데, 나는 내말이 먼저 하고 싶었고, 내가 너의 모서리를 억지로 갉아먹으려 했으니...

   나는 왜 늘 이렇게 현명하지 못한 것일까요? 자책의 시간이 늘어만 갑니다.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지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묻고 또 묻고 있습니다. 분명 무엇인가 나를 이 길고 지루한 자책의 늪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만 같은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좀 더 시간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내가 나를 더 이상 자책하지 않고 위로할 시간을, 진심이었던 내 마음을 스스로 증명할 시간과 기회가 오기만을.

   헐떡이는 여름 속으로 벌써 수줍은 가을이 스며드는 모양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선들선들 불어오는 바람에 내 마음도 함께 선드러지길 빌어보는 시간입니다.





이한철 -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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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나에게 거친 풍랑 같던
낯선 풍경들이 저만치 스치네
바람이 부는 대로 난 떠나가네
나의 꿈이 항해하는 곳

흘러간다. 헤엄치지 않고,
둘러보지 않고, 흘러간다
속살 같은 물길을 따라
시간의 방향을 흘러간다

두리 번 둘러봐도 끝없는 바다 위
비교할 이, 시기할 이 없는 곳
바람이 닿는 곳, 그 어딘가로
나의 꿈이, 나의 바람이, 나의 사랑하는 이
향해 가는 곳

흘러간다. 바람을 타고
물길을 따라 흘러간다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는 척 눈물을 닦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