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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소설화

그 날의 하제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6. 27.

  봄철 티파사에는 神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 속에서,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행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한다. 어떤 시간에는 들판이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두 눈으로 그 무엇인가를 보려고 애를 쓰지만 눈에 잡히는 것이란 속눈썹가에 매달려 떨리는 빛과 색채의 작은 덩어리들뿐이다. 엄청난 열기 속에서 향초들의 육감적인 냄새가 목을 긁고 숨을 컥컥 막는다. 풍경 깊숙이, 마을 주변의 언덕들에 뿌리를 내린 슈노아의 시커먼 덩치가 보일락 말락 하더니 이윽고 확고하고 육중한 속도로 털고 일어나서 바닷속으로 가서 웅크려 엎드린다.(티파사에서의 결혼/캬뮈의 에세이)


  캬뮈의 알제에 가고 싶다. 그가 느꼈을 슈노아의 색과, 바람과, 태양과 바다와 폐허, 냄새들, 神들이 내려와 사는 곳은 어떤 곳일까?


  캬뮈의 수노아 대신 나는 달래의 하제 바닷가를 소개해보고 싶다. 그러니깐 새만금이 조성된 그 이전의 하제, 아득한 기억의 고리들을 꿰어 그곳을 추억해본다. 비록 내 고향 해평리와 지척이지만, 어쩌면 친구들 몇몇도 살고 있었으리라 짐작되는 그곳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을 땐 나의 40대쯤이나 되었을까? 갯내가 성성한 작은 포구에 거친 풍랑의 흔적을 당당히 물고 있는 작은 고깃배들이 즐비했고 그 앞쪽으로 각종 조개며 해산물을 파는 오래된 가게와 음식점 몇이 있었을 것이다. 그곳을 조금 지나치면 널따란 언덕위에 서게 되고 무성한 잡풀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갯내와 섞인 이름 모를 꽃들의 향기에 미처 취하기도 전에 망망한 수평선을 마주하게 되는데 마침 석양 무렵이었으니,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그곳, 그 순간 내 앞에 펼쳐진 장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활활 불타는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용의 태양은 막 바닷속으로 자맥질을 하고 있었고 온 하늘은 붉다 못해 핏빛이었다. 그 붉음을 반사한 수 만개의 바다의 물비늘은 핏빛을 먹고도 정작 본인들은 은빛으로 빛났다. 일렁이는 물비늘은 끝 간 데를 모르다가 어렴풋이 땅거미를 이고 서있는 흐릿한 산들에 의해 저지당한 채 수면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바다의 심연으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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