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애는 그 경험을 추적하고 있었다. 익숙했던 삶을 버리고 전혀 낯선 곳, 아무도 모르는 이곳까지 미애를 끌고 오는 그 어떤 것. 야릇한 흥분사이로 날선 두려움이 끼어들었다. 미애는 퍼뜩 프리다를 생각했다.
하얀 캔버스 위엔 말끔히 삭발된 머리의 뒤쪽부분을 전면에 두고 뒷목과 어깨 까지가 그려져 있었다. 그녀의 남자 디에고의 뒷목을 닮은 두상은 캔버스를 가득 채운 덕분인지 뭔지 모를 무게감을 주었다. 두상의 반 정도가 열려있었다. 마치 푸드 카빙 연습생이 잘못 잘나놓은 수박처럼, 할로윈 축제를 위해 칼질 서툰 아빠가 아이를 위해 호박을 잘라 놓은 것처럼, 머리의 중간부분은 톱니바퀴처럼 뾰족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번뜩였다.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톱니바퀴로 감싸진 두상의 안부분엔 키가 다른 식물의 초록 잎들이 역시 하늘을 향해 뻗쳐있었다. 초록 잎들 사이에 검붉은 큰 꽃잎이 숨은 듯 박혀있었고 군데군데 노란, 파란, 보라색 꽃들이 틈을 매우고 있었다. 희귀한 선인장처럼 보이는 식물 몇도 보였다.
미애는 버스 좌석에 반쯤 몸을 누이고 줄곧 깜깜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희미한 버스안의 불빛을 반사한 버스 창문에 미애의 몸 전체가 그림자처럼 아른댔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달리는 내내 미애는 그 그림에 대해 생각했다. 참 모를 일이었다. 초현실주의의 극단을 보여주는 열린 두상의 그림은 미애가 경험했던 어떤 순간을 그대로 재현해주고 있었다. 아니 그 그림이 재현해주고 있는 자신의 어떤 경험은 미애로 하여금 지금 낯선 곳으로 가라고 명령했고 미애는 그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레이하운드 버스 안 승객은 서 너 명에 불과했다. 미애가 앉은 좌석은 맨 뒷좌석의 바로 앞이었다. 미애의 좌석 주변으로 미애의 가방으로부터 빠져나온 물건들이 어지럽게 방치되어있었다. 미처 손쓸 겨를도 없이 미애의 물건 몇은 이리저리 좌석 아래로 굴러 다녔지만 생각에 빠져 미애는 그것마저 눈치를 채지 못한 듯했다.
희미하던 버스 안 불빛이 몇 번 깜빡거리더니 조도를 높였다. 연이어 5분 후에 도착한다는 버스기사의 안내멘트가 흘렀다. 그제야 미애는 몸을 일으키며 가방을 찾아 두리번거렸고 자신의 흩어진 물건들을 눈치 챈 듯 눕혀있던 좌석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도 몇 분을 또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무심한 듯 바깥을 응시했다. 또르르 물건이 구르는 소리가 미애를 깨웠다. 미애는 좌석에서 일어나 열려있던 숄더백을 집어 들어 안을 살폈다. 숄더백 안에서 작은 프라스틱 가방을 하나 꺼냈다. 미애는 쪼그리고 앉아 버스의 바닥을 살피며 굴러다니고 있는 자신의 물건들을 집어 들었다. 버스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미애를 관찰하고 있었다. 백밀러엔 꽉 낀 청바지에 감춰진 미애의 엉덩이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한 참을 이쪽저쪽으로 몸을 돌리며 물건을 집던 미애가 한숨을 푹 쉬더니 일어섰다. 미애는 숄더백과 숄더백에서 꺼낸 작은 플라스틱 가방을 꼼꼼히 확인하는 눈치다. 변속기를 잘못 누른 듯 갑자기 몸체가 큰 버스가 한 번 덜컹거렸다. 서 있던 미애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 좌석을 꽉 잡았다. 버스는 다시 미끄러지듯 달리는 가 싶더니 브레이크가 작동되었는지 스르르 속도를 낮추더니 곧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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