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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에피소드 56. 내가 너를 느끼는 방식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6. 4.

 

6월, 어느 오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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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꽃 진한 향기가 코를 벌룸거리게 합니다. 습습한 6월의 바람은 어딘가로 떠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어디라도 좋지만 또 꼭 그곳이어서 더 좋은 곳이  있습니다. 핸들은 스스로 제 갈길을 고릅니다.  음악의 볼륨은 공간을 가르며 높아집니다.  고즈넉한 호수가 지척입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열병식을 끝내지 못한 벚나무들이 긴 그림자를 눕히고 있습니다. 작은 새들이 배쫑거리며 나무들 사이를 오락가락합니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노인들은 시간을 낚습니다. 유모차속 아이는 아직 꿈나라를 서성입니다. 짝을 이룬 연인들의 발걸음은 느리기만 합니다. 6월, 오후의 공원은 지극히 한가롭습니다. 백밀러에 뒤따르는 차는 보이지 않습니다.  느리게, 느리게, 속도를 조절합니다. 이런 한가로움이 얼마 만인가 , 저절로 입 꼬리가 올라갑디다.

  한 바퀴를 채 돌기 전에 즐겨 찾는 그곳에 갑니다. 소설 미진자항의 배경 중의 하나였던 ‘꽃과 나비’라는 카페가 있었음직한 그 장소. 키 큰 메타스퀘어 아래 놓인 빈 벤치, 즐비한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습습한 바람, 한가롭게 떠있는 하늘의 새털구름. 힘 잃은 오후 4시의 햇살이 잔잔히 일렁이는 호수의 은빛 물결을 더듬습니다. 그대가 물결 위로 아른댑니다.

   막 면도를 끝낸 그대의 풋풋한 비누냄새를 연상시키는 초록 짙한 풀들의 냄새와  나른한 오후의 햇살을  깨우며 홱 창공을 가로지르는 새 한 마리가 숨죽인 오후의 적요를 배반합니다. 그대의 이름을 가만 불러봅니다.  수줍은 미소가 꼬리를 감추기 전, 그대의 여의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가  리듬을 타며 박자를 고릅니다. 적절한 온도로 내 마음에 스며드는가 싶더니 또  쓰^^윽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바람이 그대의 체취마저 훑고 갑니다. 다시 불러 올 기력도 없습니다. 덩그마니 놓여있는 호숫가 벤치에 엉덩이를 부칩니다. 초점을 잃은 시선은 저 혼자 방향을 잃고 표류합니다. 저 멀리엔  부드럽게 반짝이는 윤슬 위로 미끄러지는 카누들이 보입니다. 리드미컬한 동작으로 쉴새없이 노를 젓는 사람들위로 6월의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지며 그들의 리듬 안으로 내려섭니다.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는데 그대가 거기 있었습니다. 그대가 거기 있어 오래도록 내 마음도 거기에 머뭅니다. 좋습니다. 내일이 없어도, 흔적 없이 마모될 마음 한 조각의 순간일지라도, 그대가 있어 잠시 사는 일의 시름을 내려놓습니다. 생각 또한 저 혼자 질주하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텅빈 空의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집니다.

  꿈일까?  그대의 그림자가 긴 꼬리를 끌더니 내 옆으로 앉습니다. 살짝 어깨를 기댑니다. 따뜻해져 옵니다. 졸음이 몰려오고 이제 내 몸은 조금씩 조금씩 내려 앉습니다.  그대의 그림자를 더듬습니다. 곰살맞은 그대의 허벅다리위에  고개를 얹습니다. 작고 부드러운 손이 내 머리칼을 쓰다듬습니다.  눈꺼풀이 무게를 못이겨 스르르 감깁니다.  적요로운 호수의 물 위로 잠자리 한 마리가 수면을 튕기며 작은 소용돌이를 만듭니다. 바람이 이 모든 풍경을 만지고 갑니다.


  "너는 왔네, 나에게로 붉은 입술에 장미꽃 물고 ..."


  아득한 그대의 목소리가 자장가로 걸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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