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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에피소드 60. 떠나야만 했던 이유에 대한 어떤 고찰 2.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6. 6.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그는 내가 관심을 갖는 유일한 대상이 된다.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이 어디 있을까. 나의 온전한 주의가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을 때 그는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틱낫한>



  쓰나미가 지나간 것처럼 마음은 이곳저곳 온통 흔적과 쓰레기투성이로 어질러졌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하고 삶에 대한 어떤 희열로 가득 차 있다. 검센 햇살에도 한껏 검붉은 자태를 뽐내며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는 넝쿨장미가 유난히 시선을 끄는 것은 이 또한 그 어떤 시련에도 내 자세를 잃지 않겠다는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는 어떤 신성성이리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도 의미를 찾으며 그 의미를 되새김질하고 삶의 모든 것을 껴안으려했던 30대의 나가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면 이제 나는 그때의 愚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지나치게 가벼워서 또 쉽게 잃었던. 이젠 인내하고 노력하며 나를 변화시키리라. 마치 내 마지막 삶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처럼.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헛되게 낭비하지 않고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내 마음이 흐르는 결에 따라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그렇게 걸어가리라.

   미애는 순간, 그가 있던 곳을 떠나오면서 끼적거렸던 문구들과 결심했던 생각들을 되새김질 했다. 양손에 가방을 하나씩 들고 버스를 내리자, 낯선 땅의 나른한 오후의 공기가 온 몸을 감쌌다. 캄캄한 창밖을 응시하며 줄곧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오후라니, 미애는 자신이 꿈을 꾸며 오지 않았나, 잠깐 헛갈렸다. 어쩌면 지난 밤 어둠 속에서 출발했던 그 순간만이 미애가 인식했던 관념 속의 시간이었는지도 몰랐다. 까마득히 아침이 오고 있다는 것조차 미애는 모를 만큼 자신의 깊은 심연을 더듬고 왔을지도.

  “저, 저랑 밥이라도 함께.”

    남자는 쑥스러운 듯 멈칫거리며 말을 걸었다. 잠시 미애는 눈앞이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재빨리 눈을 감았다 떴다. 낯익은 유니폼이 먼저 들어왔지만 도시 짐작되지 않았다.

  “저”

   남자는 여전히 주저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줄곧 보고 왔습니다. 혹시라도 사고라도 날까봐.”

   그제야 미애는 백미러를 통해 자신을 줄곧 관찰했을 남자를 떠올렸다. 희미한 미소가 저절로 입 꼬리를 올렸다.

   “무슨 사고요?”

  “너무 심각한 표정이어서.”

   남자가 안심이 되었다는 표정과 동시에 쑥스럽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그랬었나요? 전혀요.”

   미애는 남자가 자신을 걱정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좀 미안하기도 했다.

   “가끔씩 사고가 있어서. 늘 신경이 여간 쓰이는 게 아닙니다.”

   남자의 쳐진 눈꼬리가 참 순한 인상을 풍겼다. 저런 남자라면 낯설지라도 뭐 식사 한 끼 같이 해도 되겠다는 신뢰심이 일었다. 남자의 유니폼과 쳐진 눈 꼬리를 통해 미애는 낯선 곳에 혼자 내 팽개쳐진 듯한 기분에서 회복될 수 있었다. 비록 그의 목소리에 끌려 아니 그의 목소리를 따라 이곳에 왔어야만 했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