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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에피소드 55. 이제 잠시 니체와 작별을 할 시간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6. 3.

  이걸로 니체 이야기는 마지막. 원래는요, 장편이든 단편이든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기 전 밑그림이 분명이 있어야 하거든요. 해서 시놉을 쓰기도 하죠. 어떤 사람은 트리트먼트까지. 정유정 작가는 그림까지 그려서 완벽한 구성을 끝낸 후 글쓰기에 돌입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시놉 쓰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아요. 물론 나이나 연도 등을 맞춰야 할 때 어긋나지 않도록 따로 메모를 하고, 이야기를 쓰기 위한 정보를 따로 모은다거나 그런 밑 작업을 하기는 하지만. 시놉에 대한 신뢰는 약한 것 같아요. 쓰다보면 시놉이 완전 전복 되는 일이 많아 시놉의 효용성을 그닥. 다 자신에게 맡는 스타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편 수업 시는 100프로 시놉부터 시작해 한 달 가량 붙들고 있는데 저는 이 기간이 무척 지루해요. 원래 성격이 규모가 없고 돌진형이라 무조건 시작해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비로소 내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할까요? 좀 어리석다면 어리석을 수 있는데, 뭐 어쩌 겠어요. 제 스탈이 그런 것이라면. 글 작업뿐아니라 제 인생 자체가 돌진 부터하고 그 무모함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하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피를 낭자하게 흘려야 하는 ㅎㅎㅎ

 




  화자를 누구로 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코야, 풋망아지가 이야기의 화자로 땡땡!!! 니체는 말을 많이 하는 아이가 아니고, 또 뽓지 할아버지를 화자로 내세우자니 너무 올드하고.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하자니 유행에 뒤떨어지고.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쓸까, 관찰자 시점으로 쓸까 망설이다가 코야의 입을 통해 모든 것이 전달되는 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결론. ㅎㅎㅎ 그러기 위해선 코야가 꽤 똑똑해야 할 듯 요.

 


"할아버지, 왜 제 가슴은 늘 이렇게 뜨거운가요?"

니체가 자신의 가슴에 한 쪽 손을 대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것은 말이다. 네가 뜨거운 곳에서 왔기 때문이야. 그곳은 무척 뜨거운 곳이거든."

할아버지는 한참이나 니체의 눈을 들여다보더니 아주 천천히 말했다. 니체는 송아지처럼 큰 눈을 몇 번 더 껌뻑였다. 그것은 니체가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표시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니체의 표정, 너무 사랑스러워 꽉 깨물어주고 싶은 니체라니! 난 무엇인가 아는 체를 하지 않고는 베길 수 없었다.

"뜨거운 곳, 어디요? 그럼 니체는 땅 속에서 태어난 아이에요?"

니체는 분명 니체의 엄마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을 내가 아는데 할아버지는 왜 거짓말을 하는 걸까? 할아버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을 참았더니 내 입이 바짝 타들어갔고 누군가 자꾸 내 옆구리를 꼬집는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풍, 내 코에서 소리와 김이 동시에 솟아 나왔다. 감추고만 싶은 이빨도 드러났다. 부끄러워 나는 재빨리 내 몸을 크게 한 번 털어냈다. 할아버지가 뭔가 눈치 챈 듯 두 눈을 크게 깜빡이며 입을 앙다물었다. 그것은 나에게 가만있으라는 무언의 명령이었다. 나는 알았다는 대답대신 어깨를 한 번 으쓱해 주었다. 사실은 나도 니체에게 할아버지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아직 니체는 나보다 어렸다. 진실을 받아들이는 고통을 감수할 만큼 강하지도 않다. 무엇보다도 니체는 할아버지의 말을 무조건 믿는 아이였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그의 세계를 함께 한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그를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니체는 그런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아이라는 것을 내가 아니까. 자화자찬일지라도 나는 니체보다 더 똑똑하니까, 니체보다 더 강하니까, 내가 참는 게 도리가 아니던가? 늘 강자는 약자의 편에 서야한다는 것, 그것은 내 자존을 지키는 원칙이었다. 또한 확신컨대 내가 할아버지의 거짓말을 참아주는 것이 내가 니체를 사랑하는 한 방법이었다. 때론 하얀 거짓말도 사랑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까지 아는 나라서 오늘도 맘껏 각설탕을 먹으리라.




  우선 일단 이렇게 시작해보려고요.



  "한 뼘 내 가슴속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산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중략) 하재봉 시인의 안개와 불 이라는 시인데 제가 좋아하는 시예요. 진짜로 내 가슴 속에 화산들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젊은 시절부터.

  니체가 자기의 가슴이 왜 이렇게 뜨거운가, 묻는 그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고 할아버지는 그것에 대해 어떤 해답들을 제시해 줄까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제 니체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 셈이죠. 할아버지는 대지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하지만 그 뒷이야기가 궁금.ㅎㅎㅎ 이젠 원고를 다 쓴 후에... 10월 이전까지 초고 끝내야 겠지요.

  지금까지 주저리주저리 들어주시느라 고생하셨지요. 담에 뵐 때 만난 커피로 보답해 드릴게요. 생각해보니까 커피 대접도 제대로 못한 것 같아요. 담엔 모카포트로 정성껏, 아니면 핸드드립, 아니면 사이폰으로. ㅎㅎㅎ 또 생각해보니깐 식사 대접한 번 제대로 못한 것이...제가 좀 그래요. 담에 맛있는 식사 대접 한 번 할게요. 기회주세요. 네^^에? 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