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죠.
어젯밤 그 아이하고 통화한 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갑자기 아침밥이 당기는 거예요. 된장 시래기 국에 밥 한 그릇 뚝딱! 맛이 느껴졌어요. 참 신기하죠. 정신도 맑아지고 뭔가 가벼워진 느낌요. 이제까지 제가 제 몸을 너무 혹사시켰구나, 그런 생각도 불현듯. 먹는 것이 늘 수면제 역할을 담당하도록 오랜 세월 나를 방치시켰구나,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나이 먹으면 건강이 최고인데, 지금 부터라고 건강하기 위해 몸 관리라도. 죽는 것은 내일 당장이라도 미련이 없는데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제 막내 동생은 늘 “큰 누나마저 내 책임이?”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왠지 미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한편으론 든든하기도 하고. 지금부터라도 가볍게 죽기 위해서 몸 관리 돌입!!! ㅎㅎㅎ
아침 가벼운 산책을 하는데 여기저기 피어있는 노란 고들빼기 꽃들이 시선을 붙들었어요. 스마트 폰으로 몇 장을 찍으며 쪼그리고 앉아 물었어요.
“너 네들은 어쩜 이렇게 예쁘니?”
그 예쁜 것들이 살랑살랑 고개를 흔들었어요.
“아줌마도 예뻐요.” ㅎㅎ
한 참을 쪼그리고 앉아있는데 문득 예전 제가 블로그에 썼던 글귀가 생각났어요. 돌아와 컴을 켜고 그때의 글을 찾아보았죠. 2012년 5월에 쓴 글이더군요.(莊子에서)
“자연의 실상에는 어느 것 하나도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없으며 오직 다름만이 있을 뿐이므로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각득기의(各得基宜)에 맡기며 자득지장(自得之場)의 삶을 살자고 굳게 다짐하고 살지만 세상 것들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내 자신을 확인한다.”
그때도 제가 좀 똑똑 했었나 봐요. ㅎㅎㅎ 아니 어쩌면 똑똑했다기보다는, 비루한 제 삶에 대한 스스로의 위안이자 흔들리는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한 방편이었을지도. 제가 고들빼기에게 예쁘다고 한 것이나, 고들빼기가 저에게 아줌마도 예쁘다고 말 한 것은 다 각득기의에 따라 자득지장의 삶을 살기 때문이죠. 이렇게 오늘 아침 다시 한 번 저를 다독였어요. 이렇게 이런저런 이유를 껴안으니, 제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진 셈이죠. 사실은 어젯밤 그 아이하고 통화 후 어깨를 짓누르던 부담감을 덜었기 때문에 제 靈이 좀 열렸다는 증거.
아니 실은 아침부터 기분 좋았던 까닭이 또 있었죠. 가게 문 앞에 박스가 하나 있었어요. 박스 안에는 상추를 비롯한 쌈 야채와 마늘 쫑이. 엄마나 동생이 가져왔으면 틀림없이 전화를 했을 텐데, 이렇게 소리 없이 가져다놓은 인물을 떠올리며 빙긋이 감사의 미소가!!! 제가 야채 쌈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며 동시에 주말농장을 하는 사람. 딱 생각났어요. 헐, 가슴이 팽창되며 얼른 전활 걸어 감사인사하고, 이런 소소한 기쁨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니.ㅎㅎㅎ
또 자랑 해야징!!!
며칠 전에 저 선물 받았어요. 하동에 사는 지리산 행복학교의 고 알피엠 여사인 신희지 샘이 자신의 저작인 “그래도 행복해” 책 한권과 하동 박경리 문학관에서 발행한 개관 기념우표 특별 한정판 500매 중 하나를 저에게 보내왔거든요. 귀한 것인뎅. 대한민국에서 500명만이 소유할 수 있고 그 중에 하나가 저였다는 사실...ㅎㅎㅎ 아마도 보내신 분은 저에게 박경리 선생님처럼 좋은 글을 쓰라는 일종의 격려와 기대심이었겠죠. 글쎄요. 그러고 싶지만 내일 제가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분명한 것은 하루하루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다는 기대심에 은근히, 남몰래 팽창하는 가슴!!!
제가 한 때 브라질 작가인 파올로 코엘료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거든요. 특히 코엘료의 오 자히르라는 작품을 좋아했어요.
코엘료는 보르헤스의 단편 '자히르'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을 구상했고 원제 'O Zahir'는 아랍어로, 어떤 대상에 대한 집념, 집착, 탐닉, 미치도록 빠져드는 상태 등을 가리킨다고 해요. 이는 부정적으로는 광기 어린 편집증일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는 어떤 목표를 향해 끝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에너지원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마치 신의 두 얼굴처럼 양면적인 힘, 즉 神聖 과 狂氣에 대한 이야기 일 수도. 표면적으로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내를 찾아서 바람과 사막과 초원을 떠도는 한 남자의 구도의 여정을 담고 있는 내용인데 그 내용중에 '호의은행'이라는 개념에 매혹되었지요. 옛날, 아주 옛날에.
"호의은행은 세상에 가장 강력한 은행으로, 모든 영역에서 작동합니다. 나는 선생님의 계좌에 입금하기 시작할 겁니다. 하지만 돈이 아니라 인맥을 예금합니다. 선생을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선생을 위해 필요한 섭외를 돕기도 할 겁니다. 그 대가로 내가 선생께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선생께서는 내게 빚지고 있다는 걸 아시겠지요.
언젠가 나는 선생께 뭔가를 요구할 겁니다. 물론 선생께선 거절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선생은 나에게 채무가 있다는 것은 알지요. 선생께선 내가 해달라는 일을 하게 될 것이고, 나는 계속해서 선생을 도울 겁니다. 다른 사람들도 선생이 바른 분이라는 것을 알고, 선생에 계좌에 예급을 하겠지요. 그리고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존중하고 지지하겠지요.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선생께서 거미줄 같은 인맥을 펼쳐 놓고,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동시에 선생의 영향력도 점점 커지겠지요." (인용구 P 55)
이런 식의 이야기인데 비판의 여지는 있지만 내가 누구에겐가 도움을 받았으면 나는 호의은행에 빚을 진 셈이고 언젠가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요. 즉 내가 받았던 선물은 꼭 그 사람이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지불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똑 같은 형태가 아니더라도 기본 적인 생각만은 같아야 한다는...
나는 이제 이러한 호의은행으로 부터 대출 받은 거대한 빚을 무엇으로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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