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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에피소드 49 - 노래 부탁해요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6. 1.

   며칠 만에 아침까지 잤어요. 물론 자다 깨다를 반복했지만.

   어제는 하루 종일 갤갤갤...다행히 손님이 다섯밖에 없었어요. 몸이 가라앉아서 앉아 있을 수도 없을 지경. 금요일 그 아이 소식을 들은 이후로 밥이 안 넘어갔어요. 가게 문을 열어야 하니까 꾸역꾸역 밥을 몰아넣었지만 모래알 씹는 기분. 토하기도 하고. 왠지 내가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그 아이에게 미안하단 기분에 내 몸이 그런 반응을 보였나봐요. 덕분에 남산 만했던 배가 뒷동산쯤으로 내려오긴 했지만요. 겨우 오후 늦게 정신 차리고 메일 쓰고 저녁이 오자 산책을 나갔어요. 그리고 그 아이와 오랫동안 통화를 했어요. 의외로 담담하더군요. 신앙이 두터운 아이라 잘 견디고 있구나, 고마웠어요. 보훈가족이라 병원비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계속 검사를 받고 있었는데 아산병원으로 다시 옮길까 고려중이라네요. 수술은 무조건 해야 되고 열었을 때 보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기꺼이 감수할 태세를 준비하고 있더군요. 워낙 똑똑한 아이라 나름 치열하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내 이야기도 했어요. 이틀 밤을 꼬박 새운 이야기, ㅎㅎ. 감동 받더라고요. 자기가 설렌다고. 처음으로 언니 색깔과 맞는 사람과 만난 것 같아 기쁘다고. 그동안 내 사연들을 모다 알고 있는 아이이기 때문에... ㅎㅎ 축하한다고. 내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도 20대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 들고. soul mate로서 오랜 인연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면서 충고 했어요. 너무 메일 자주 쓰지 말라고. 설사 썼다하더라도 가끔씩만 보내라네요. 물론 애인들 사이의 밀당은 아니지만 인간인지라 적당한 밀당이 관계의 신비를 위해 도움이 된다나, 어쩐다나. ㅎㅎ 그 애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나는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지혜롭지 못한, 모자란 사람이라는 뜻도 되고요. 어떤 것이 지혜로운지, 저에게 이득인지 알면서도 그걸 취하기보다는 내 마음의 결을 따라 흐르고자 하는 사람. 뭐 설령 그것이 싫어 외면을 당한다고 해도 그것은 상대의 역량이고 그 만큼밖에 걸칠 수 없는 서로의 운명이라는 생각이에요.

   그 아이한테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계속 어지러운 꿈을 꾸게 되었어요. 2018년쯤 페루에 가신다고 했던 날, 혼자 누워서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들었어요. 눈물도 찔끔. 참 웃기죠. 아무 사이도 아니고 겨우 한 번 만났을 뿐인데 이런 내가 참말로 웃겼어요. 제 인생에 말이죠. 함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날을 샐 수 있는 사람을 처음 만난 것 때문이에요. 오랫동안 꿈 꿔왔던 풍경이었어요. 내 알량한 단편지식을 뇌까리며 잘난척하는 내가 나를 비웃으면서도 좋았어요. 들려주는 제가 잘 몰랐던 곡들이 계곡의 시냇물처럼 졸졸졸 내 마음으로, 가슴으로 어쩌면 영혼으로까지 흘러들어왔어요. 눈부신 은빛 물결위로 살랑살랑 바람을 이고. 아마도 언젠가 이런 순간들의 감동이 제 글속의 배경이 되겠지요.

저에게 선물 하나 해주세요. 다음번에 오셨을 때 그 노래 불러주세요.‘널 보고 있으면’ ㅎㅎ. 한국에 안 계실 때, 메일로도 닿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미리 녹음해두고 싶어요. 목마른 ** 목마른 영혼, 그게 꼭 나였거든요. 어쩌면 가사처럼 나를 투명하게 비워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어요.

   얼마 전 제 글쓰기 선생님이 걱정스레 전화를 걸어오셨더군요. 요즈음 제가 염려된다고. 갱년기 여성에게 찾아오는 조울증 증상이 있는 것 같다고. 무조건 밖에 나가 사람들과 쓸데없는 수다라도 피우라고. 정신이 건강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선생님은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 정신분석학을 깊이 공부하셨고 그 사례들을 많이 체험한터라 나름 저를 분석하시고 계셨나 보드라고요. 제가 웃었어요. 저는 마음이 안 끌리는 것은 절대 못하는 사람이라서. 또 시작했다고 해도 견디질 못하는 스탈이라서 그것은 좀 힘들겠지만 저를 객관화시켜 보려고 노력하겠다고 염려하지 마시라고 답해드렸어요. 물론 저 아주 건강해요. 그리고 아마 틀림없이 천수를 누릴 거예요. 제 깊은 곳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지옥에 간다는 두려움이 아직은 저를 통제하고 있다고 감히. 에잇, 뭐야. 아침부터 우울한 이야기...

 

  Mr. 通, 이제부터 통아저씨라고 부를게요. 통아저씨. ㅎㅎㅎ 재밌다. 제 선물 잊지 마세요. 안 주시면 담에 오셨을 때 삐쳐서 맛있는 거 생략...

  널 보고 있으면. 꼭꼭꼭!!!

   마지막으로 아부 하나, 전 사람들의 목소리를 참 좋아해요. 해서 제 시디의 80프로이상이 보컬이에요. 목소리 아주, 아주 좋아요. 리듬감도 있고 젠틀하고 신뢰감도 엿보이고. 거기에 약간 낮은 톤까지...반한 거 아니에요. 사실이니까.

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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