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은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어요. 거의 2년 만에 채팅수업이 부활했거든요. 장편소설을 쓰는 여섯과 지도 선생님까지 7명의 멤버로 구성된 '대작' 이라는 카페를 통해 주로 쓰고 있는 작품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나누는 그런 시간이에요. 어제는 겨우 5명만이 수업에 참석했지만 나름 유익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 밤 10시, 저처럼 좀 고독한 종자들은 이런 시간이 기다려지거든요. 어쩌면 일주일을 버틸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요. 비슷한 고민들을 하면서 상대의 작품을 진지하게 읽어주고 애정을 가지고 비판하는, 그 바탕엔 상대의 글과 비판에 대한 신뢰가 가득해요. 사람의 관계 중에서 애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신뢰심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요. 인간성에 대한 신뢰보다는 서로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진심어린 비판에 대한 신뢰성이겠지만.(사실 개인적으로 서로 아는 것은 거의 없어요. 일 년에 한두 번의 만남에 불과하죠. 저 같은 경우엔 겨우 2번 만났을 뿐이니까. 6월 마지막 주 일요일 서울 홍대근처에서 만남이 예정되어 있어 지금 마음이 두근두근. 제가 이 모임의 리더예요. 한 8개월 정도. 우린 교장이라고 불러요. ㅎㅎ.)
어제 저는 입을 열지 못했어요. 250매 중편(가제, 검은 옷을 입고 온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제가 작품을 읽지 못했거든요. 요즈음은 남의 글을 거의 못 읽어요. 한 페이지도 안 들어온다면 좀 심각한 편이죠. 아마도 내 머릿속에 내 이야기로 가득차서 그런 것 같아요. 마감을 앞두고 있으니까. 서로들 이해해주어서 그나마 다행이어요. 6월 말까지는 이해해 줄 거예요. 마감을 칠 때는 누구나 같은 처지니까요. 그래서 역지사지란 말을 좋아해요. 누군가에게 이해를 구하고 이해를 받으며 이해를 할 수 있는. 이것 또한 일종의 신뢰성의 문제겠지만요.
그렇게 어제 12시에 수업 끝나고 바로 샤워하고 누었거든요. 잠자려고 누워선 스마트폰으로 이런 저런 기사들 훑어보고 때론 내가 쓴 잡글도 읽어보고 때론 팟캐스트를 듣기도 하고 . 그렇게 스마트 폰을 뒤적거리다 깜짝 놀랐어요. 헐, 그 순간에 제 메일에 수신 알림이 뜨는 거예요. 아마 제 메일 중 하나를 누가 읽고 있었나봐요. "아이고, 귀요미. 이 시간에 컴을 들여다보고 계시는 군요." 생각하니 빙긋 미소가. 그거 알죠, 엄마 미소!!! 친구미소!!! 그리고 뭔가 번쩍하는 '영'의 교류를 느꼈어요. ㅎㅎ. 저 쬐매 과장이 심하죠. 아마 문장가들은 일종의 사기꾼일지도 몰라요. 이런 면에서. 암튼 행복했어요. 함께 깨어 있어 내 세계에 진입해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물큰, 감동도 왔구요. ㅎㅎㅎ 아마 좀 친했더라면, 다이얼을 돌렸을지도 몰라요. 그러기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죠. 예전엔 가끔씩 아주 가끔씩 한 밤중에 새벽에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는 전화를 했던 내가 있었거든요. 그것도 술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하고도 모자라. 상대는 깜짝 놀라죠. 국제 전화를 몇 시간씩 붙들고 있었던 적도 있었는데. 근데 그 시절을 졸업했어요. 그런데도 가끔씩 지금도 그러고 싶을 때도 있어요. 다행인 것은 루마니아에 친한 친구가 있어요. 남편 따라 가 있는데 그곳이 여기보다 7시간이나 늦은 시차 때문에 여기 새벽시간이 그곳 오후여서 카톡으로 잡담을 하죠. 근데 그 애는 늘 언니처럼 날 염려해요. 제가 얼마나 모자란지를 잘 아는 친구니깐요. 대학 1년 때부터 쭉 제 인생을 지켜본. 그 애는 정도를 걸으면서 사는 까닭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불행이라는 사건을 겪어보지 못한 편이라 늘 자신이 지켜보는 내 삶이 위태위태, 조마조마 그런 심정이 되나봅니다. 난 속으로만, "그래, 가시네. 니가 언니해라. 근데 너 그거 알아? 난 충분히 내 삶을 즐기고 있다는 걸." ㅎㅎ 어쩌면 그 친구는 내 삶이 부러울지도 몰라요. 늘 부유하는 듯 보이지만 자유롭고 뭔가 평범하지 않은. 아직도 청춘인 내 삶을! 이건 그냥 제 생각이죠. 물어보진 않았지만. 무척 고마운 친구예요.
저 자랑 또 할게요. 왜 하나님께선 저에게 이런 복을 주셨을까요? 흔히 인복이라고 하잖아요. 남자복만 빼고 인복 하나는 끝내준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느껴요. 의외로 절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아마도 어떤 열등인자에 대한 연민일지도 모르겠고, 또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어떤, 그것을 제가 가지고 있을 수도. 확실한 것은 뭔가 늘 모자란 저를 보면 또 그 뭔가를 채워주고 싶은 그런 욕망들을 가지고 있구나, 그렇게 해석해요. 그래서 결론은 모자란, 한 참 모자란 내가 좋다는 자화자찬!!!ㅋㅋㅋ 휴! 제가 덜 똑똑하고 야무지지 못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것이 내가 사랑 받는 비결중의 하나구나. 이런 위로를... 어쩜 저는 코스프레를 하는지도 모르겠죠. ㅎㅎ 모자란 척, 덜 떨어진 척. 사랑받기 위해. 근데 그건 아니다. ㅎㅎ
요즈음 며칠은 무척 우울해요. 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연이 있는데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왔어요. 6살쯤 아래인, 거의 26년쯤 서로의 인생을 지켜보며 함께 웃고 함께 울며 때론 싸우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왔던. 제 인생의 동반자 중의 하나이죠. 세상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하루에 한 번씩 저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친동생보다 더 귀한. 유방암 완치 확률은 통계상 92프로쯤 된다네요.
"언니, 그 8프로에 내가 속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반추해보니 늘 내 인생은 그 8프로 속에 속해 왔던 것 같아."
라고 지극히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 애의 목소리가 가슴을 먹먹하게 했어요. 지난 금요일이었어요. 며칠 어깨가 무겁게 짓눌리는 그런 우울모드. 지금 내가 누리는 어떤 감동들이 무척 미안하게도 느껴지면서. 통화하자고 카톡이 왔는데 지금 도저히 용기를 못 내겠어요. 아직 내가 그 친구를 위로 할 만큼 마음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 그저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만.
"나는 늘 죽음이 내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 이따 오후에라도. 내일 당장이라도."
이 말이 내가 그 애에게 해준 위로의 말 이었어요.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어요. 어떤 위로를 보내야할 지, 그저 미안하기만 해요.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내일에 대한 설렘과 정체모를 혼돈과 나 자신에 대한 확신, 등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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