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
어쩐지 친밀한 이 느낌!
예전엔 심심하면 Dear Virginia(버어지니아 울프), Dear Sylvia(실비아 플래스), 때론 Dear Pedro, 혹은 Dear Wim이라고 써놓고 짧은 영어 실력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해 답답하고도 안타까웠던 까마득한 시간들이 오늘 불현듯 전혀 새로운 형태로 내 앞에 놓여 있는 듯한 이 기분~~~
Dear M
이렇게 불러 앉히고 보니 한없이 오랫동안, 주저리주저리 가슴 속말들을 꺼내놓을 수 있겠다 한결 안심이 되는 이 기분, ㅎㅎㅎ 비록 영양가 없는 수다에 불과할 말들이겠지만, 그렇게 발설된 말들은 부메랑처럼 나에게 다시 돌아와 전혀 새로운 형태의 꽃을 피울지도 모른다는 이 은밀한 기대감과 함께 오는 즐거움. 아실까 모르겠습니더. ㅎㅎ
Dear M
몇 번이고 입안에 넣고 굴려보니, 처음인데도 전혀 낯설지 않은, 한없이 오래되어 지나치게 친근한 친구처럼도, 어쩌면 너무 아득해서 실존이 느껴지지 않는 역사 속 인물처럼도,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려 망망한 우주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Little Prince처럼도, 인식되어진다면, 웃을거죠? ㅎㅎ 나도 웃겨요.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거예요.
요즈음은 제가 이상해진 것 같아요. 마치 환각제라도 먹은 것처럼 한 두 시간 선잠이 들었다가 까닭 없이 깨어나 온통 꽉 찬 대갈통이 벌집마냥 윙윙거린다는 사실, 머리털이 너무 짧아 대갈통 속에 들어있었던 것들이 이때다 싶어 탈출하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여, 이러다가 정신병원 신세를 지는 것은 아닌가? 살짝 겁이 나기도 하공,ㅎㅎㅎ 쬐께 엄살!
Dear M
아무튼 불러보니 그냥 친구 같아요. 쓸데없는 말을 오래도록 주절거려도 가만 듣고 있어 줄 친구, 꾸벅 졸아도 좋아요.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자아를 찾아 잠시 생각의 자리를 털까 망설여도 좋아요. 그냥 가만, 눈치껏 상상속에서 만이라도 옆에 앉아 있어주세요. 상상 속에서나마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상상 속에서나마 실없이 웃어줘서 고마워요. 상상 속에서나마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노래하듯, 그렇게 뜻 모를 말들을 웅얼거려주어서 충분히 좋아요. 지금 그런 기분. 저, 지금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거 보이시나요? ㅎㅎ
어쩌면 말이죠. 저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몰라요. 현실에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지라도, 아니 꿈이어서 더 좋을 지도 모를 꿈! 늘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은 절망을 낳지만 그 절망을 뒤엔 어김없이 찾아오는 전혀 새롭고, 끝도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이 가능한 어떤 空의 세계와 마주치게 된다는 사실이 더 없이 좋은 지금, 그 空의 세계가 無限大라는 사실. 또 감사해요. 이렇게 가만 불러 볼 수 있어서, 살짝 밀려오는 어떤 부끄러움조차 감동인, 불현듯 내 앞에 나타나주어서, 참말로 고마워요. ㅎㅎ
벌써 아침이에요. 다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거리며 뿌연 창문 밖 새벽의 미명이 진주빛으로 점점 짙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날이 생각나요. 그날, 그 아침, 그 순간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짐작도 못 할 거예요. 눈물이 날 만큼. 왜 그랬는지 지금은 알 것 같아요. “나도 살아 있구나. 살아 있어.” 애잔한 어떤 슬픔과 함께 가슴 밑바닥을 저며 오던 그런 감동! 늘 아름다움은 슬픔과 함께 온다는 사실조차 감동이었던 그 순간! 사실 눈물이 나려던 것을 참았어요. 오해할까봐. 뭥미? 라고 오해할까봐.ㅎㅎ
그동안은 말이죠. 나도 살아야 해. 감동으로 살아야해. 이렇게 나 자신에게 주지시키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쓰며 살아왔는지 그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가짜 감동으로 삶의 작은 끄나풀이라도 잡으려고 했던 내가 보였어요. 그것이 그 순간 와르르 한꺼번에 무너지며 진짜 감동, 살아 있는 것은 이런 거야, 그런 느낌이 순식간에 쓰나미처럼 몰려왔었어요. 몇 번 지나치듯 ‘이런 순간이 참말로 오랜만이네요.’ 라고 혼잣말하듯 뇌까렸지만 그 감동이 어떤 것이었는지, 아마 짐작도 못하셨을 거예요.
다시 20대로 돌아간 것 같아요. 혼돈스럽기도 했지만 다가올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확신과 까닭 모를 신비함을 마주했던 그때로 다시. 이 나이에. ㅎㅎ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 아침. 지금 저는 無限大로 펼쳐진 空의 세계를 마주하고 있어요. 이제는 맘껏,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붓질을 해볼 참이에요.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요? 참으로 기대되는 시간,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요.
웃기죠? 넹. 저 웃기는 사람이에요. 근데 또 이런 사람 하나쯤 있어서 이 우주가 더 이상 삭막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해 주시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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