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 고종팔(송금수의 아들)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함. 횃 눈썹 가진 날카로운 이미지의 얼굴.
단단하며 고집이 세며 책임감이 강하고 말수가 적으며 내면은 감성적이고 따뜻하며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에 소질이 있는 인물.
- 송금수(고종팔의 어머니)
중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지고 있고 늘 쪽진 머리를 하고 있으며 동양형 미인. 16살에 군산 소화권번의 새끼기생으로 출발하여 춤과 소리에 능해 군산최고의 기생으로 성장해 민살풀이 춤의 명인이 된다.
- 최태풍(군산그랜드파의 오야붕. 송금수를 사모하는 인물)
작은 키에 뚱뚱한 체격을 가지고 있으며 배운 것은 없으나 소설낭독 듣기를 좋아하는 서정적이고 넉넉하고 넉살 좋으며 따뜻하고 불도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16살 이래로 평생을 송금수를 가슴에 품고 사는 순정파적 인물.
- 곽일표( 군산경찰서장)
중키에 바짝 마른 몸매로 비열하고 야비한 인상의 소유자. 탐욕스럽고 음흉한 인물로 기생인 송금수를 짝사랑하며 평생을 괴롭힘.
- 곽중근(곽일표의 아들)
중키에 단단한 체격을 가지고 있고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하며 말 수가 적고 영민하고 교활함, 출세 지향적 인물로서 고종팔에게서 받은 상처를 평생 달고 다니며 고종팔을 괴롭히는 인물
- 고석동(고종팔의 호적상의 아버지. 송금수의 남편)
큰 키에 마른형의 몸매를 가지고 있으며 하얀 얼굴에 신경질적이며 날카로운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단단하고 고집이 세며 영민하나 속을 알 수 없는 인물. 평생을 첫사랑 송금수를 잊지 못하나 6.25 이후 북한으로 넘어가는 인물
- 홍금보(송금수의 의붓동생)
큰 키에 남성다운 몸매를 가지고 있으며 말 수가 적고 고집불통. 똑똑하고 의지가 굳으며 내면이 따뜻한 인물.
- 조연화(고종팔의 처)
작은 키에 여린 몸매를 가지고 있으며 착하고 순정파적 기질이 있으나 야무지고 감성적인 인물. 기구한 팔자를 가진 인물로 사창가를 전전하다 고종팔과 결혼하나 곧 자궁암에 걸리는 인물.
- 오봉댁(송금수의 계모이자 홍금보의 친모)
음흉하고 자기만 아는 속물근성의 여자. 여릿한 몸매. 나이 들어가면서 금수와 화해
- 그 외 인물들
박필대 오봉댁 구로즈미 겐조 히또미 박종대 째보황씨 이서운 권번장 공숙희. 흐엉 김갑순. 김연화 공태수 공은희 심재술 장씨. 시장통 아주머니. 지은 등등
시놉시스
너른 논산 벌과 강경을 지나온 금강의 황톳물은 느긋한 물살을 육지에 대기위해 부단히 철벅거리던 서해 짠물을 만나, 활처럼 휘어져 Y 자 모양의 포구를 이루었다. 그곳에 째보선창이 있었다. 하루하루 먹기 살기위해 전국에서 몰려온 어중이떠중이들이 살을 부비는 선창가 객줏집 사이사이, 허름한 오두막들이 빼곡 들어 차 있었다. 포구 주변 선창을 따라 옥구, 만경, 삼례, 김제 심지어 정읍평야에서 거둬들인 볏 가마들이 그득히 쌓여 있었다. 그 뒤로는 볏 가마를 제분할 대형 정미소들과 일본으로 실려 갈 쌀가마로 가득 찬 창고들이 위용을 자랑했다. 강경까지 올라갔다가 화물을 싣고 내려온 중선들이 즐비하게 정박되어 있는 째보선창으로 크고 작은 목선들이 저마다 당당하게 오색 깃발을 휘날리며 선창가로 빽빽이 밀고 들어왔다. 배를 맞이하기 위해 쏜살같이 달려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잠시나마 세상시름을 잊은 설렘이 넘실거렸다.
군산 째보선창에 사는 14살 송금수는 병든 아버지와 동생들을 위해 계모 오봉댁의 손에 의해 소화권번 새끼 기생으로 입적하여 소리와 춤을 배워 2년 만에 일등으로 기생시험을 치르고 기생이 된다. 벚꽃이 분분히 날리는 날 기생합격 소식을 가지고 째보선창 본가에 간 날 집주인 째보 황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기 직전 도망쳐 나오며 기구한 운명을 시작한다. 째보 황씨는 금수의 첫사랑 황선주의 아비였다.
김갑순의 도움과 춤과 소리에 뛰어났던 금수는 명월관, 만수장, 근화관등의 요릿집을 드나들며 조선인 한량들과 일본인의 추앙을 받으며 군산 최고의 기생으로 거듭난다. 그런 금수에게 침을 흘리는 군산경찰서장 다카끼는 금수에 대한 분노로 금수를 정신대로 발탁한다. 금수는 정신대를 피하기 위해 군산최고의 부자 일본인 구로즈미의 첩이 되어 개정 구로즈미의 개정 별장으로 들어간다.
개정별장엔 조선인 서기 고석동이 드나들며 일본인 아주머니 히또미가 거주하고 있었고 정작 구로즈미는 정읍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다. 구로즈미의 군산 땅을 관리하는 조선인 서기 고석동은 중학교 시절 황선주의 친구였으며 째보선창에서의 첫만남부터 금수를 짝사랑하던 남자였다. 예기치 않은 장소와 상황에서 금수를 만난 고석동은 오매불망 금수에게 접근하지만 금수는 첫사랑 황선주의 친구였기에, 자신이 구로즈미의 첩의 입장이 되어 있으므로 고석동을 멀리한다.
정작 구로즈미는 송금수를 건들이지 않고 구로즈미의 비서인 젊은 겐조와 사랑을 나눠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해방이 되고 구로즈미가 일본으로 떠나고 남겠다는 겐조를 위해 금동을 찾아 가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삼일장을 치룬 후에 돌아와 보니 이미 겐조는 떠났고 혼자 남은 송금수는 고석동에 의해 강간을 당하며 자살을 결심하나 배속 아이를 생각해 다시 살고자 결심한다.
그 와중에 의붓동생 송금동이 고석동의 사람 됨됨을 전하며 송금수에게 고석동을 의지하라고 하지만 임신한 자신을 겁탈한 고석동에 대한 분노로 송금수는 쉽게 고석동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방되던 해 11월 금수는 아들을 낳고 고석동의 호적에 올리게 되며 고석동과 송금수는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다. 고석동은 구로즈미와 겐조가 떠나자 구로즈미의 재산을 조선건국자금으로 흡수하는데 일조를 하고 자신 또한 구로즈미의 재산 얼마를 개인재산으로 가로채 금수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나 금수가 마음으로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자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며 갈등하며 금수를 돌보지 않으려 한다.
쌀독에 쌀이 떨어지자 금수는 젖먹이 아들을 안고 다시 요릿집을 전전하며 돈을 벌지만 남편 고석동은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며 금수를 구박하게 되고 금수는 고석동을 피해 의붓동생 금동과 함께 서울로 떠난다.
곧이어 6.25가 터지자 남로당 활동을 했던 금동을 서울에 두고 금수는 아들 종팔과 함께 다시 째보선창 계모 오봉댁의 오두막으로 돌아오게 되며 두 남동생이 이미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나간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반동분자로 몰리게 된 상황에 처한 오봉댁과 금수에게 빨간 완장을 찬 고석동이 나타나 쌀과 옷과 보석을 나눠주며 다시 환심을 사려하지만 곧 수세에 몰린 남로당 출신의 고석동은 오봉댁에게 금수에게 전해주라는 물건을 남기고 사라지고 욕심이 눈이 먼 오봉댁은 고석동이 옥정리 고씨 문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죽었을 것이라는 거짓말을 하며 고석동이 금수에게 남긴 물건을 가로챈다.
전쟁이 끝나자 먹고살기 힘들었던 오봉댁은 째보 황씨의 집으로 들어가고 금수는 아들 종팔을 데리고 해망동으로 이사한다.
기생 금수의 재주를 기억하고 있던 장판소가 해망동 선창에서 생선일을 하고 있는 금수를 찾아와 다시 금수는 기생의 신분으로 돌아가 춤과 소리를 하나 머리가 커진 아들 종팔은 어머니의 기생 노릇에 상처를 받으며 어머니를 만류한다. 금수는 아들의 마음을 알지만 아들 몰래 군산의 요릿집 대신에 멀리, 전주, 이리, 김제. 만경지역의 잔칫집을 전전한다.
자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금수가 소리와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16살 종팔은 어머니대신 돈을 벌기위해 친구 종대의 아버지의 조깃배를 타고 나갔다가 북한으로 납치를 당하고 만다.
아들의 배가 돌아오지 않자 금수는 아들을 찾아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6개월이 지난 후에야 겨우 아들의 배가 납북되었고 인천으로 돌아왔지만 간첩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들을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금수는 기생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다카끼. 이제는 곽일표란 이름의 군산경찰서장을 찾아가 호소를 하게 된다. 곽일표는 금수에게 인공시절 남편 고석동이 저지른 만행을 언급하며 종팔이 빨갱이 새끼라는 말로 금수룰 불안케 한다. 곽일표는 금수의 처지를 이용해 금수의 몸을 탐하고 아들 종팔이 군산으로 호송되어 다시 재조사를 받고 풀려나지만 아들 종팔은 멍한 얼굴로 바다만 바라볼 뿐 납북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정신을 놓고 살자 금수는 불안하기만 했다.
한 달만에 아들 종팔이 할머니 오봉댁을 가겠다고 하자 그제야 안심이 된 금수는 멀어져가는 아들 종팔의 뒷모습에서 종팔의 친부 겐조를 떠올리게 된다.
할머니 오봉댁을 찾은 종팔은 금수에게 하지 못한 말을 전한다. 아버지라 알고 있는 고석동과 외삼촌 둘이 북한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할머니에게 전하며 어머니에게 하지 못한 답답한 속내를 드러내며 자신의 상황에 두려움을 느낀다. 할머니집을 나오며 종팔은 자신의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금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불안감과 두려움과 빨갱이 자식이라는 비밀을 안고 사는 종팔은 친구 종대를 찾아 새로운 인생을 계획하게 되고 종대의 사촌형 필대의 소개로 군산의 그랜드파 최태풍의 부하로 들어가게 된다. 최태풍은 금수보다 서, 너 살 아래인 순창 진메 출신으로 14살에 고향 진메를 떠나 군산에 정착했다가 20살 무렵 깡패가 되어 그랜드파의 두목으로 성장한다.
비록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최태풍이었지만 지적욕구가 있는 성품으로 소설낭독을 즐겨 듣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종팔이 부르는 양키노래에 홀딱 반하는 낭만적이고 따뜻한 정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최태풍과 금수는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술자리에서 다카끼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만 금수가 명월관으로 가기위해 대기해놓은 인력거를 타려고 할 때 금수를 뒤 따라 나온 다카끼가 금수에 대한 화풀이를 인력거꾼인 최태풍에게 하게 되어 최태풍의 얼굴이 피범벅이 되었고 다카끼에게서 멀어지자 금수가 자신의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내주고 팁으로 번 돈을 쥐어 쥐자 최태풍은 그날 이후로 금수를 오매불망 사모하게 된 인물이다.
종팔이 금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최태풍은 금수를 찾아내 자신이 접수한 다방을 맡아 줄 것을 부탁하고 아들 종팔의 눈치를 살피던 금수는 마지못해 승낙하는 아들 종팔을 보고 영화동의 다방 아네모네의 마담이 된다.
최태풍은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던 다카끼가 사실은 한국인이었으며 곽일표란 이름으로 군산경찰서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복수를 다짐하는데 때마침 곽일표가 국회의원에 출마로 도움을 청하자 복수의 기회로 삼고 곽일표의 과거를 상대편에게 흘려 곽일표를 낙선시킨다. 금수와 최태풍은 통쾌한 복수의 결과에 취해 둘만의 웃음을 흘리지만...
종팔은 어머니 금수가 깡패인 최태풍과 가까이 지내는 것에 불만을 느끼며 돈을 벌기위해 필대를 따라 월남전에 참전했다 돌아오지만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흐엉이란 여자의 죽음과 수많은 주검을 목격했던 전쟁의 상흔에 괴로워한다.
금수의 아네모네 다방엔 깜치라는 별명을 가진 공숙희라는 19살 처녀가 과묵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종팔에게 반해 종팔을 유혹하지만 종팔은 좀체 어머니와 다른 여염집 요조숙녀를 아내로 맞이할 계획이었기에 공숙희를 안타깝게만 한다.
군상상고와 부산고등학교의 야구 결승전의 승리에 취해 종팔은 유혹하는 공숙희를 취하지만 다음날 공숙희로부터 도망치고 때마침 다방 아네모네가 문을 닫게 되자 공숙희도 떠나고 종팔은 공숙희를 잊으려 한다.
월남에서 돌아온 종팔을 위해 최태풍은 아메리카타운을 관리하는 일을 종팔에게 맡기고 어느 날 마리라는 여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데 마리가 공숙희라는 사실을 알고 절규하게 된다. 양색시 마리와 마리의 친구 써니가 미국 병사 마이클에 의한 사망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마이클의 구속이 늦어지자 분노한 양색시들과 종팔은 마산방죽을 지나 미군부대까지 돌격하며 미군 부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차에 방화를 하다 구속돼 종팔은 2년형을 언도 받는다.
출소한 종팔은 곽일표와 곽중근의 농간으로 최태풍과 함께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모진 고문으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때마침 필대의 도움으로 최태풍은 탈영을 하게 되고 종팔은 6개월의 훈련기간을 마치고 군산으로 돌아와 숭림사에 있는 최태풍을 만나게 된다. 최태풍은 자신을 삼청교육대에 보낸 곽일표와 곽중근의 복수를 다짐하지만 종팔은 깡패생활을 접고 평범한 삶을 택하겠다고 다짐하며 최태풍의 제안을 거절한다.최태풍은 필대를 시켜 곽일표를 살해하지만 증거가 없어 곽일표의 죽음은 묻히게 된다.
어느 날 종팔은 어머니의 아네모네 다방에서 친부라는 일본에서온 겐조를 만나게 되어 일주일을 함께 보내며 어머니와 겐조와의 사연을 듣게 되고 늘 북한에 있는 고석동을 아버지라 생각해 불안하기만 했던 마음을 달래게 된다. 하지만 곽일표의 아들 곽중근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과 종팔이 관계가 있다는 오해를 하고 얼마전에 다녀간 겐조가 조총련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미끼로 복수의 차원으로 종팔에게 간첩누명을 씌워 10년형을 언도받게 한다.
어머니 금수는 감옥에 있는 종팔을 위해 민살풀이 춤의 명인으로서 공연을 하던 중 우연히 정전이 된 무대에서 애끓는 육자배기를 통해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마음을 호소하게 되고 대통령의 마음을 사게되어 종팔은 특사를 받게 되고 7년 만에 출소하게 된다. 감옥에 있는 동안 종팔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되고 자신이 간첩누명을 쓴 경위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만 최태풍도 그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최태풍이 삼청 교육대로 끌려간 사이 최태풍의 그랜드파를 대신해 신생 주먹그룹은 백안관파가 곽중근을 등에 업고 최태풍의 그랜드파를 위협하게 되고 최태풍은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된다.
출소한 종팔은 최태풍의 권유로 대명동 양키시장에서 작은 점포를 운영하는데 양키시장 옆 쉬파리골목의 수정궁에서 일하는 조연화라는 색시가 종팔에게 관심을 보인다. 옆가게 장씨는 조연화의 어머니는 쉬파리골목의 전신인 감도가에서 막걸리집을 운영하다 어린 딸 연화를 데리고 당시 군산경찰서장 곽일표의 첩으로 들어갔다가 본부인의 폭정에 못이긴 연화의 어머니가 자살하고 연화마저 곽일표의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아이를 유산하였다가 쫒겨 나자 술집을 전전해 결국 다시 쉬파리골목으로 돌아온 사연을 알려주며 종팔에게 연화와의 결합을 종용한다.
하지만 종팔은 연화가 과거 곽중근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망설이던 중 연화가 백안관파의 깡패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연화를 구하게 되는데 백안관파 일당은 종팔을 그랜드파의 일원으로 오해해 호시탐탐 복수의 때를 기다리는데...
군산경찰서장이 되어 나타난 곽중근은 백안관파를 사주해 그랜드파를 ‘군산아편밀수사건’으로 엮어 최태풍을 제외한 일당을 감옥으로 보내며 복수를 하게 된다. 필대를 비롯한 수족을 잃어버린 최태풍은 자신이 죽을 날이 얼마남아 있지 않음을 알고 자신의 수정궁건물을 종팔앞으로 등기를 하고 얼마간의 현금을 금수앞으로 돌려 놓으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뜯어보라는 부탁을 하며 금수에게 서류가 든 봉투를 건네게 된다.
연화와의 결합을 망설이던 종팔은 연화에게서 죽은 흐엉과 공숙희의 모습을 보며 속죄와 연민의 마음을 붙잡고 연화와 결혼하기로 작정을 하며 마지막 인사로 연화가 일하던 수정궁을 찾게 되는데 하필 종팔과 연화가 다녀간 수정궁에 불이 나는 바람에 곤란한 지경에 처하고 만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최태풍이 곽중근의 차와 충돌해 최태풍도 곽중근도 즉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며 망연자실한 어머니 금수와 함께 최태풍의 장례를 치르며 최태풍이 남긴 서류봉투와 필대를 통해 최태풍이 자신을 대신해 복수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최태풍이 유언으로 종팔에게 공숙희가 종팔의 딸을 낳았다는 사실을 토로한다 이제 종팔은 그 딸이 공숙희의 남동생 공태수검사 밑에서 잘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차마 딸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금수는 죽기 전에 핏줄의 얼굴을 꼭 보아야겠다고 종팔에게 사정을 하고 종팔은 이리저리 수소문하지만 결국 어머니 금수는 종팔의 딸을 찾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된다.
어머니 금수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 연화마저 자궁암 3기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종팔은 절룩거리는 모습으로 아내를 픽업트럭에 태워 시장과 골목을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게 된다.
이제 종팔은 아픈 아내 연화를 휠체어에 태우고 절룩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벚꽃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전국노래자랑 출현을 위해 집을 나서고 있다.
종팔의 딸 공은희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10살 때에 하제를 떠나 외삼촌 공태수 검사의 딸로 입적되어 훌륭한 교육을 받고 무대 연출가로서의 커리어를 쌓게 되는데 벚꽃이 분분한 어느 4월 중순 모처럼 만에 친구 지은과 함께 갯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자 군산을 향하게 된다.
“군산이란 도시에 대한 기억, 벚꽃이 나풀거리듯 그렇게 춤추는 여인이 있었다네. 그 할머니가 생각나더라.”
옆 좌석의 친구 지은이 떠는 수다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공은희는 군산이라는 도시의 팻말이 보이자 두근두근 자신의 가슴에도 팝콘이 터지듯 벚꽃이 분분히 날리는 이미지를 그리게 된다.
시나리오
1. 전주, 군산 전용도로 대야구간(오전 10시)
화창하고 약간 바람이 부는, 하늘엔 두둥실 뭉게구름.
제법 한가한 전용도로에 빨간색 컨버터블 오픈된 채 GM대우 선전판 스치며 달리는 차.
긴 머리를 나부끼며 은희는 운전석에 지은은 그 옆 좌석에.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 노래가 스피커를 타고 흐르고.
지은: (양손을 하늘로 뻗으며 바람을 느끼며)
야호, 지대로 왔군.
은희:(살짝 지은을 돌아보며)
그만 음악 좀 바꾸면 안 될까?
지은:(터질 듯 미소)
뭘 그래, 좋기만 한데.
은희:(미간을 찡그리며)
헐, 벌써 몇 시간 째야?
지은:난 범준이 목소리 넘 좋아.
은희:(설득조로) 해도 너무 하잖아.
지은:(말을 돌리기라도 하듯, 은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어디부터?
은희:(살짝 미소)
뭘, 어디부터야. 하제 그리고 은파 유원지지.
지은:하제는 석양 무렵에 가야 좋다든데.
블로그 보니깐.(스마트 폰으로 뒤적뒤적 블로그를 찾는 중)
은희 (생각에 잠긴 듯)
CUT TO(은희의 회상)
오전 10시 은희네 거실.
피아졸라 음악이 낮게 흐르고 있음(cafe 1930/Javier Albares, 첼로
Marisa Gomes. 기타.)
엄마(외숙모)의 손에 신경림 시집 ‘사진관집 이층’ 들려있고.
앞 쪽에 커피 잔.
은희가 쇼파에 앉은 엄마의 무릎아래 턱을 괴고 무엇인가 간청.
은희:(잔뜩 애교를 떨며) 플리즈, 맘. 제발.
엄마:(못 들은 척, 눈을 시집에 고정한 채)
은희:(얼굴을 엄마의 얼굴 밑으로 가져다 대며)
응, 응, 응
엄마:(여전히 같은 자세)
은희:그래. 커피 박물관 가서 터키쉬 커피 끓이는 방법 배워 올게.
응, 엄마아.(간들어지게)
엄마:(시집을 내려놓고 엷은 미소 띠며 은희를 지긋이 바라본다)
정말이지? 확실히 지은이지?
은희:(간절한 어조로)
엄마, 나 못 믿어? 처음으로 지은이랑 단 둘이 외박이잖아.
지은이도 나도 공연이 없는 주말이잖아.
이번 못 가면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어?
우리 역사에 이런 날이 몇 번이나 있겠냐구?
못 믿겠으면 지은네 엄마에게 전화해봐.
엄마:(근엄한 얼굴로) 알았어. 이번뿐이다. 절대 다음엔 안 돼.
은희:(신이 난 듯) 알써 알써.(일어서며 엄마를 안고 볼을 부빈다.)
CUT TO
지은:(기쁜 듯, 스마트 폰을 은희에게 들이대며) 찾았어. 찾았어.
Jigo's Friday란 블로그가 화면에 보이고
지은:뭐라 써있는 줄 알아.
(스마트 폰을 들여다 보며)
“흐릿한 구름 뒤로 숨바꼭질하는 뿌연 해.
배경으로 부는 바람,
저만치 물러난 바다가 풍기는 냄새에 끌려가다 만난 풍경들...
갯 내음 성성하고 석양을 인 바다가 천상을 노래한다.”
은희:(살짝 미소)
그려. 그렇다면 이따 석양 무렵.
지은:(신이 난 듯) 콜.
INS(은희의 회상)
은희 10살 무렵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 외삼촌 손에 이끌려
승용차를 뒷좌석에 타고 가며 되돌아보던 하제 풍경을 회상.
주황색 노을 낀 하늘에 수평선으로 침몰하던 이글거리던 태양
CUTTO
은희와 지은이 탄 차가 전용도롤 빠져나오며 은파 호수공원 팻말
음악을 줄이고 호수 공원 안으로 차를 돌려 진입한다.
은희와 지은이 탄 차체 위로 벚꽃이 분분이 날리고...
타이틀 <벚꽃>이 서서히 떠올랐다가 서서히 사라진다.
타이틀 위로 벚꽃이 분분히 날리고...
2. 째보선창(오후 2시경)
짙은 해무가 내려앉은 포구에 비가 내리고 있음.
바다에서 선창가를 향해 오색 깃발을 단 조깃배들이 하나, 둘 등장.
선창가 주위로 장돌뱅이. 지게꾼, 선주, 객줏집 색시, 아이들, 개들이 선창가를 향해 일제히 몰려감.
소년 하나가 “배가 들어온다.” 소리침.
그들 뒤 객줏집 처마 밑에 오봉댁과 째보황씨가 선창을 바라보고 서있음.
째보황씨:만선인가 봅소. 모다 오색 깃발을 꽂은 걸 봉께.
오봉댁:(황씨에게 몸을 바짝 기대며 콧소리를 내며)
벚꽃이 안 젖던 가비요.
해마다 이만 때면 조기떼가 몰려오곤 했응께로.
보릿고개 넘기라고 하늘이 우덜을 살리는 것이지유.
어르신네 요정도 한 바탕 난리가 날 것 이지만.
지도 한 몫 두둑이 챙겨야 쓰것는디유.
이참에 물건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어른께서 쬐매 신경 써 주시면 그 은혜 평생 잊지 않것쓰유.
째보황씨: (입을 헤벌쭉거리며)
약조 하나만 허면 내가 자네 청 쪼까 못 들어 주것는가?
금수더러 한 번 황모정에 들르라고 허던가.
오봉댁:(미간을 찌푸리며)
글씨, 고것이유. 아직 배우는 처지라서. 권번에서 알면 쫓겨난다고 혀서유. 지가 그렇지 않아도 몇 번 갸한티 황씨 어른에 대해 말을 붙였는디.
갸가 그렇게 대답혀니 지도 어쩔 방도가 없어서...
(말끝을 흐린다.)
째보황씨:(짜증이 배인 듯한 목소리로)
권번 갸들 몰래 한 밤중에 잠껀만 들르라고 허랑께.
내 말을 그리 못 알아듣소?”
오봉댁:(윽박지를 태세로)
알것구먼유. 지가 한 번 더 수고허야겠구먼유.
그나저나 마선주님 배에 실린 참조기가 씨알도 분명 굵을 것인디.
(발채만한 입을 씰룩거린다.)
째보황씨:(목소리에 힘을 주며 오봉댁을 흘겨본다.)
자네혀고 나혀고 비밀로 혀고 요번 시험 합격혀면 금수 우리 황모정도 좀 들락거리게 현다고 약조만 혀소.
선주 마씨에게는 내 말을 건네 볼팅게.
오봉댁:(주눅이 든 목소리에 애교를 떨며)
약조혀지유. 갸,
금수가 지 애미 말이라면 인당수라도 빠질 것이고만유.
약조허죠. 암먼유.
째보황씨:(단호한 목소리로)
그럼 그 약조만 믿고 내 선주 마씨에게 갔다 올팅게.
자네는 배 대는 데서 좀 기다려 보소.
황씨가 총총히 사라짐.
오봉댁은 가슴을 쓸며 살찐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선창가로 내달림.
3. 명월관 중정(오전 10시. 기생시험장)
20여명의 색동한복차림의 새끼 기생들이 멍석위에 앉아있음..
그들 앞으로 제복을 입은 군산경찰서장 다카끼와 옥구군수 허화수, 대지주 구로즈미, 권번장 세명이 몸을 제킨 채로 의자위에 앉고
그들 뒤로 구경나온 기생들과 관계자들이 서있고.
장구와 북을 앞에 둔 악단 네 명이 멍석위에 앉아있음.
명월관서기:(우렁찬 목소리로) 송금수차례요.
다카끼:(거드름이 묻어난 목소리로. 일본말로)
몇 살?
금수:(주눅 들지 않는 낭창낭창한 일본말로)
열 여섯입니다.
구로즈미:(안경을 쓰고 살짝 미소를 보이며 일본말로)
몇 년을 공부했오?
금수:(구로즈미에게 눈을 마주치더니 황망히 눈을 내리깔며 일본말로)
2년입니다.
명월관서기:(악단에게)
장단을 맞추시오.
장구소리와 북소리가 울림.
색동한복을 입고 쪽진 머리를 한 금수가 어깨를 들먹이며 춤을 춤.
심사관들과 구경꾼들 모두 춤에 홀린 표정.
구로즈미:(춤이 끝나자마자 벌떡 의자에서 일어서며)
사이꼬!
심사관들도 눈치를 보며 어정쩡한 박수갈채.
구로즈미의 얼굴이 번뜩임.
콧수염을 기르고 신식안경을 쓴 구로즈미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금수는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황망히 눈을 내리 깜.
명월관 서기:송금수가 제일이요.
명월관 서기가 소리에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의 박수를 침.
금수의 얼굴이 붉어지며 득의만면의 표정 뒤에 씁쓸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감.
화면위로 하늘하늘 벚꽃 잎이 날아와 떨어짐.
4. 째보선창 입구(기생시험을 치른 오후3시)
금수가 색동옷을 입고 째보선창을 향해 급한 발걸음.
금수가 달리는 쪽에서 불쑥 째보 황씨 등장.
째보황씨:(휘둥그레 눈을 뜨며)
어야, 금수 아닌감?
금수:(고개를 다소곳이 숙이며)
네, 어르신. 그간 별고 없으셨겠지유?”
째보황씨: (게슴츠레 눈을 뜨며)
참으로 곱고만. 오늘 기생시험에서 일등을 혔다고?
금수: (눈도 마주치지 못하며)
그렸구먼유.
째보황씨: 잘혔고만.
내 오봉댁에게도 언질을 주기사혔지만 언자 우리 황모정에도 한 번 인사나 오것는가?
금수:(몸을 사리는 표정과 기어드는 목소리로)
고것이, 지가 대답혈수가 없는 문제인디유.
우리 권번장님께서 허락이 있으셔야 혀서...
째보황씨:도리야 그렇기는 혀지만 눈치 못 채게 쬐께 다녀가면 될 것 아닌가비.(목소리에 노염기를 품어내며)
내 혀고 자네 어머니가 약조헌 것이 있응께
어머니와 상의혀 보고 천천히 생각혀 보드라고.
(금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그럼, 어서 가 보드라고.
조만간 꼭 한 번은 보아야 쓰겄구먼.
금수: (고개를 들지 못하고 묵묵부답)
황씨는 못을 박 듯 마지막 말을 던지고 바쁜 듯 먼저 돌아섬.
그제야 안심이 된 듯 금수도 집을 향해 총총거림.
몇 발자국 먼저 돌아섰던 황씨가 몸을 돌려 금수의 뒷모습을 훑어보더니 게슴츠레 실눈을 뜨며 입맛을 다심.
5. 째보선창 송금수의 본가(오후3시경)
방 두 칸에 부엌 한 칸인 초가지붕인 인 오두막.
싸리문을 밀치며 색동한복을 입은 금수가 마당으로 들어섬.
금수: (숨 차하며 큰소리로) 아부지이, 아부지이.
인기척이 없자 금수는 차례로 방문을 열어봄.
안방으로 들어서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방안을 둘러봄.
벽 위 못에 걸린 무명 한복으로 갈아입고.
아랫목에 깔린 누더기 이불을 마당으로 들고나가 싸리 울타리에.
방문을 제킨 후에 손에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방안을 청소한 후 부엌문을 염. 씻겨 지지 않은 그릇들이 어수선히 널려있고 많은 파리들이 밥그릇마다 붙어있음.
금수의 얼굴 찌푸림.
쌀독과 물독을 열어본 후 크게 한 숨을 쉼.
손을 걷어붙이고 그릇을 씻고 정리를 한 후 방안으로.
피곤한 기색으로 그대로 방안에 누워 스르르 눈을 감고 쌕쌕 잠.
째보 황씨가 살금살금 음흉한 미소를 띠고 금수의 저고리 옷고름을 풀고 있음.
인기척을 느낀 금수가 놀라 벌떡 일어남.
째보 황씨가 잽싸게 금수위에 엎드려 금수를 누르고.
금수가 버둥거리며 사력을 다해 황씨를 밀침.
황씨가 윗목으로 나 둥글고.
금수가 버선발로 방밖으로 뛰쳐나가고.
황씨가 무엇인가 소리치려다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심.
6. 째보선창 주변 작은 골목(오후4시경)
산발하고 버선발과 옷고름을 풀어 헤친 금수가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옴. 뒤로 돌아보더니 인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땀과 눈물로 범벅 진 금수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통곡.
통곡을 하던 금수가 옷매무새를 고치더니 긴 한숨을 쉬며 앉아있고.
일어서며 째보선창 집 쪽으로 발길을 돌림.
집안을 기웃거리다 재빨리 입고 왔던 색동옷으로 갈아입고.
부엌 쌀 둑에 지전 몇 장 넣어놓고 집을 나오며 두리번거리다 빠른 걸음으로 달림
7. 권번 방 안
한복을 입은 갑순과 금수가 마주보고 앉음.
금수:(울먹이며)
갑순 언니, 참말로 떠나야 혀?
(그렁그렁한 눈물. 금수가 갑순의 손을 잡고 있다.)
갑순:(울먹이며 잡은 금수의 손을 쓰다듬으며)
이 도리밖에 없응께 그랴제.
금수와 갑순은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갑순:(금수에게 바짝 다가앉으며)
금수야. 꼭 명심혀.
니 짝은 하늘에서 내려 줄 것잉께.
이 남자다 생각혀면 평생 일부 종사혀라.
비록 기생 팔자지만 곧 그런 짝이 반드시 나타날 것잉께.
잊을 사람은 잊고 꼭 내 말 명심혀라, 알것제.
금수:(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렁그렁 눈물을 매단 채 고개만 끄덕끄덕)
갑순:그려. 내도 비록 팔려가는 신세지만 워낙 가진 것도 많다고 혀고. 전실 자석들도 모두 서울로 공부혀로 갔데니께.
식솔도 단출혀고.
그랴니 걱정 안 혀도 쓰것어야.
가끔씩 영감헌티 부탁혀서 이짝로 나들이도 나올팅게
너무 섭섭혀다 말고 잘 있을 것 이제?
알 것는가, 동상.
갑순도 목이 메는지 자꾸 컹컹거리며 애꿎은 담배를 뻐금거리고.
갑순:(당부하는 낮은 목소리로)
그려. 기생이라 혀더라도 함부로 몸을 굴리면 안 되는 법이여.
예기란 말이여. 예기란 모름지기 소리와 춤도 능숙혀야 혀지만 기개가 있어야 할 것잉께.
그러니 절대 연화랑은 상종혀들 말고.
금수:(고개만 끄덕거림)
8. 권번 중정(자정이 넘은 시각. 하늘엔 초승달. 바람에 정원 벚꽃 잎이 흩날림)
금수 홀로 정원에 나와 달빛 아래에 서있고.
깊은 한 숨을 쉬며 나직이 읊조린다.
금수:아득하다 하늘 끝 홀로 선 자리
오색구름 초승달 비껴가는데
바람 따라 검불 같은 이 한 몸
어디 메로 흘러갈꼬.
금수는 하늘을 쳐다보며 몇 번의 깊은 한숨을 쉬다 급기야 눈물을 훔치고. 방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라 정원 구석에서 훌쩍거리는 소리를 듣고 발을 멈추고. 희연 여인네의 뒷모습이 보이고 금수가 헛기침을 한다. 인기척에 울음소리 멈추자 금수는 다시 방안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김연화:(울먹이는 소리로)금수야. 나 연화여.
금수는 인물가까이로 걸어가 연화를 확인.
아슴푸레 초승달빛에 비친 연화의 눈물범벅된 얼굴.
금수가 놀란다.
김연화:놀라지 마라. 오늘 일은 누구에게도 전혀지 말고.
연화의 울먹이는 목소리.
금수가 연화를 품에 안는다.
금수의 품에 안긴 연화는 채 끝내지 못한 마지막 울음을 삼킨다.
연화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금수는 가만 가만 연화의 등을 토닥거린다. 연화의 울음은 계속되고 연화를 안은 금수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둘은 서로를 부등 켜 안고.
금수:무신 일이다요?
김연화:(여전히 울먹이며)
무신 일 이겄어?
날보고 죽고 못 산다고 현 놈이 변심을 헌 것이제.
권번에서 꺼내 주고 일부종사 혀겠다고 약조만 혀면 서울로 돌아가 가세를 정리 혀서 군산에 내려와 살림을 차리겠다고 철석같이 맹세하고 떠나 간 양반이 두 달째 감감 무소식 아닌감?
금수:(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곧 기별이 오것지유.
김연화:고것이 말이여.
반년이나 명월관에서 기숙하다 조기 살 돈마저 날렸다고 한 숨을 토 혀길래 내가 조기 살 돈 융통혀 준다고 이천 원이나 안 맹글어 주었는가.
그것도 뽓지 영감에게 부탁혀서. 근디 말여.
조기 사서 서울 댕겨 온다고, 일주일 아니면 너끈히 보름만 기다려 달라던 약조 혔던 양반인디.
벌써 두 달째여.
와야 할 달거리도 없는 것을 봉께 내 몸도 수상혀고.
금수:(한 참을 망설이다) 조금 더 기다려 볼 것 이구먼유.
김연화:누가 뭐라 혔어도 내 마음은 진정이었구먼.
이 지긋지긋한 기생의 업에서 도망치고 싶었당께.
인력거 안을 기웃거리며 기생이라고 놀려대는 짓궂은 장난에 기생 질 현 것을 얼마나 후회혀며 살았능가,
금수는 내 속을 알 것잉께.
(설움이 복받치는 듯 목소리가 커지며)
그랴서, 그 양반 마음만 믿었구먼. 부자가 아니었어도 내 만 예뻐해 준다면야 그 약조 철석같이 믿지 안 혔는가?
금수:(회상에 잠기는 표정)
갑순(E):사내들 현티 속지 말거라, 금수야.
사내는 모름지기 언 놈 하나 여색을 좋아 혀지 않는 놈이 없거늘. 사내 가슴속을 보려거든 세월을 겪어야 혀고.
그 세월만큼 정분이 쌓이면 속에 고인 정분의 십분 지 일만 보여 줘야 현단다.
금수:(하늘의 초승달을 바라본다. 깊은 한 숨을 내쉰다.)
김연화:낼, 모레면 내도 삼십을 바라보는 나이 아닌감.
마지막 남자라고 생각혔지.
그 양반 혀고 살림을 차릴 소화통 기와집도 한 채 일찌감치
보아 두었는디.
9. 권번 사무실( 오전 11시)
고리대금업자인 뽓지영감이 화난 표정으로 서둘러 밖으로 나가다 금수와 부딪히고. 권번장이 사무실의 문을 열며 투덜거린다.
권번장: (걱정스런 표정으로)
금수야.
연화에게 뭔 사단이 난 것도 같은디.
소화통 뽓지 영감이 연화를 만나러 안 왔겄냐.
금수:긍께요. 지도 걱정이 되고만요.
10. 근화관 앞( 밤 아홉시경)
희미한 달빛을 받으며 인력거 세대가 근화관 앞에 기다리고 있음.
금수가 피곤한 표정과 빠른 걸음으로 나오며 인력거꾼에게 손짓.
인력거꾼(최태풍) 하나가 서둘러 인력거를 끌며 금수 곁으로 달려옴. 금수를 뒤따라 경찰서장 다카끼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따라 나옴
다카끼:(인력거꾼을 향해 씩씩대며 다짜고짜 화를 내며)
빠가야로, 조센징.
태풍:(놀라며 뻥한 눈으로 다카끼를 쳐다볼 뿐)
다카끼가 인력거꾼의 얼굴을 군화 신을 발로 치려다 뒤로 나둥글고.
인력거꾼 최태풍과 금수가 웃음을 참는 표정. 화난표정의 다카끼
일어나자마자 시뻘개진 얼굴로 최태풍의 얼굴에 주먹을 날림.
최태풍이 얼굴을 감싸며 물러난다. 금수는 인력거꾼과 다카끼를
쳐다본다. 여전히 다카끼 씩씩거린다.
금수:(서둘러인력거를 타며 최태풍을 향해)
어서 갑소..
최태풍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주억거리다 서둘러 인력거를 끌고 .
몇 분을 달린 후에 금수가 인력거꾼을 멈추게 한다.
금수: (인력거에서 내리며)
얼굴 좀 보소.
태풍:(피가 줄줄 새는 얼굴을 맨손으로 감싸며)
괘안혀유.
금수: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며 최태풍의 얼굴을 닦아내며)
미안허구먼.
나한테 화풀이를 헐 것을 그만.(울먹)
태풍:(얼굴을 닦아주는 금수의 손을 두손으로 잡으며 엉엉운다.)
금수:(한 손으로 최태풍의 등을 토닥이며)
그려. 내 동상 생각나서.
(속곳에서 지전을 꺼내며 최태풍의 손에 쥐어쥐며)
몇 푼 되지 않지만 고약이라도 사서 발라야 쓰것구먼.
태풍:(금수를 향해 고개만 주억거리며 눈물을 참는 듯)
금수:(인력거에 타며) 얼른 가세. 명월관잉께.
금수를 태운 인력거가 멀어진다.
11. 권번 방안(자정이 넘은 시각)
방안으로 금수가 들어오자 기생들 서 너 명 훌쩍거리고 있다.
기생1:(울먹이며 의아한 표정의 금수를 보며)
연화언니가 목을 멨디야.
금수:(놀라며 털썩 주저 앉는다)
참말여?
기생2.:(고개를 끄덕이며 울음소리를 더 높인다.)
금수(E):(결연한 표정으로 속으로만)
난 그렇게는 안 죽을겨.
개처럼 죽진 않을 것잉께.
12. 월명동 대로(자정이 넘은 시각, 보름달이 휘영청)
구로즈미와 금수가 나란히 걷고 있고.
그들 뒤로 검은 지프차 한 대가 보임.
구로즈미:(앞을 보며)
며칠 전 편지를 받았네. 연로하신 어머님으로부터.
한 번 보고 싶다는.
추수가 끝나고 가겠다는 답장을 했는디
그만.(구로즈미 안경 밑으로 눈물을 닦음)
금수:(놀라는 표정으로 발을 멈추고 구로즈미를 지긋이 바라봄)
구로즈미:(눈물을 닦고 난 후 하늘을 바라봄)
금수:(구로즈미를 측은히 바라보다 구로즈미를 따라 하늘에 시선)
구로즈미:(앞을 보며 천천히 걷다가)
오늘 고향에서 전화를 받았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자네는 참 우리 어머님을 많이 닮았네.
우리 어머님도 춤을 잘 추셨지.
드문 일이었지만 조선옷을 입고 발과 어깨와 손가락으로만 추는 춤은 여느 일본 춤과 달랐네.
어머님의 선조는 조선 사람이었네.
조선 사람들은 임진왜란이라고 부른다고 하더군.
그때 당시 어머님의 조상중의 하나가 이 전라도 땅에서 나가사키까지 잡혀왔다고 했는데.
내 몸에도 조선 피가 흐르고 있는 셈이지.
금수:(흘끗 구로즈미를 훔쳐보며 연민의 표정)
그들 뒤로 지프차가 천천히 따라오며...
13. 권번장사무실(오후 2시경)
권번장과 금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앉아있음.
권번장:금수야, 이를 어쩌냐?
군산 경찰서 순사과장이 왔다 갔는디.
먼저 모범을 보여야 현다고 특별히 너를 지목혔는디.
어찌하면 좋겄냐?
엊그제 일 때문인 것 같은디.
INS(금수의 회상)
다카끼와 구로즈미등 5명쯤의 일본인 손님과 기생 5명이 상을 앞에 두고 앉아있고. 장구와 북을 가진 악단. 막 소리를 끝낸 금수가 서있고. 다카끼 벌떡 일어서더니,
다카끼:(황홀한 표정으로)
유카, 월명산 복사꽃이 하늘하늘 지는 구나.
(감격의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우악스레 금수의 손을 잡는다)
금수:(놀라, 징그럽다는 듯 다카끼의 손을 훽 뿌리친다.)
다카끼:(순식간에 표정 일그러뜨리며 금수의 뺨을 향해 손을 든다.)
구로즈미: (재빨리 일어나 다카끼의 손목을 쥐며 빠른 일본말로 화를내며
나무라는 듯)
금수:(재빨리 구로즈미 뒤로 숨고)
구로즈미:(화난 표정을 풀며 금수의 등을 토닥이며 자리에 앉히고)
악단:(빠른 장구장단 발림으로 흥을 돋구고)
다카끼:(붉어진 얼굴에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표독한 눈초리로 금수에게)
CUT TO
금수:(회상을 끝낸 금수, 권번장의 시선을 똑바로 받으며)
그 수밖에 없는 것 같으요.
권번장:(고개를 끄덕거리며)
근디 구로즈미가 정읍에 살고 있어서.
하루라도 급한디.
보름 안에 가야현다고 혀더라.
금수:(놀라며) 그렇게 빨리유?
(입술을 앙 다물고)
그 수밖에 없는 것 같으요.
권번장:(결심이 선 듯)
그랴. 그럼 내가 밖에 나가 방도를 알아봄세.
금수:(애처로운 표정으로 권번장을 쳐다보다 한 숨을 쉬고)
권번장이 서둘러 나가고. 금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깊은 한숨을 쉬고 나가는 권번장에게 시선을.
14. 개정 구로즈미의 여름 별장(오후 3시)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고 인력거에서 내리는 금수.
고석동이 정원의 나무를 손질하다가 놀라 금수를 쳐다봄.
금수 정원안을 기웃거림.
고석동이 서둘러 대문을 열고 금수를 맞이함.
석동:(허둥대며)
저?
금수:(상기된 표정과 의혹의 눈길로 고석동을 바라봄)
석동: 째보선창?
금수:(놀라고 멍한 표정)
석동:(표정을 풀며 온화하게)
황선주 친구입니다.
금수:(소스라치게 놀라며 표정이 굳으며 살짝 넘어지려고 한다.)
석동:(금수를 붙들며)
선주랑 같은 중학교를 나왔습니다.
가끔 선주 집에 놀라갔었죠.
그 때 만난 적이 있었는디.
금수:(미간을 찡그리며 생각하는 표정. 생각났다는 듯 놀라며)
아, 그때 그 까까머리?
석동:(환하게 웃는 얼굴로)
선주가 지가 좋아하던 여자가 있다믄서,
말을 한 번도 부쳐보지 못혔다고.
함께 가달라고 부탁에 부탁을 혀싸서.
금수:(얼굴을 붉히며 당황스런 기색)
석동:그 뒤 선주 갸가 고등학교를 서울로 갔고 지는 상고에.
금수:(식은땀을 닦아내며 안절부절)
석동:선주, 갸가 군산을 뜬 뒤에도 가끔씩 째보선창을 가봤는디.
(뜸을 들이다가)
금수씨라고 혔지유?
금수:(침을 꿀꺽 삼키며 마지못해) 네.
석동:(신이난 듯)
지가 그 뒤에도 금수씨를 찾았는디 권번에 들어가셨다고 혀서.
(아쉬운 표정으로 금수의 표정을 살피며)
이짝으로.
(집안으로 안내한다)
금수:(연신 땀을 훔치며 고석동의 안내에 실내로 진입)
15. 구로즈미 여름별장. 다다미 거실(오후 4시경)
송금수가 다소곶이 안아 있다. 고석동이 물 한 대접을 송금수 앞에 놓고 쭈뼛거리다 밖으로 나간다. 고석동이 나간 것을 확인한 금수가 물을 벌컥거린다. 금수는 입을 훔치고 편한 자세로 앉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졸음이 오는 듯. 구로즈미가 나타나고 금수를 내려다본다. 금수가 화들짝 놀라 일어선다.
구로즈미:(앉으며 태연하게)
무슨 일인가?
금수:(망설이며 대답하지 못한다.)
구로즈미:(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빤히 금수를 쳐다보며)
오늘 밤, 나만을 위해 춤춰 주겠나?
금수:(놀란 표정으로 구로즈미와 눈길을 부딪힘)
구로즈미:(살짝 미소)
자넬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고 했지 않았나?
기모노를 입은 히토미가 차를 내온다. 구로즈미가 차를 천천히 따르며 금수를 지긋이 바라보다 금수 앞으로 찻잔 내밈.
금수:(다소 안심된 표정)
보름 이내에 정신대에 가라는 통지를 받았구먼유.
구로즈미:(고개를 끄덕이며 물끄러미 금수를 바라다보다)
이곳에 와서 살겠나?
금수:(고개를 들지 못하고 더러운 버선코에 뚝뚝 눈물이 떨어짐)
구로즈미:(천천히 차를 마시며)
내, 다카끼에게 말을 넣겠네.
16. 구로즈미의 여름별장 거실(새벽 3시. 실내에 달빛이 비침)
금수 화장실문을 나와 자신의 방 문 앞에. 2층에서 실내복을 입은 겐조 내려오고 흐뜨러진 옷매무새와 땀으로 범벅 진 겐조의 모습에 금수 놀람. 겐조 황급히 방안으로 들어감. 겐조의 문이 닫히는 모습을 보고 금수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의 방으로 살짝
17. 금수의 방(낮)
금수가 수틀에 수를 놓고 있다.
히토미가 금수 옆에 앉아 금수가 수놓은 것을 지켜보고 있다.
히토미: (감탄하며 일본어로)
대단해요.
금수:(멈춰 히토미를 쳐다보며)
아무 것도 아니에유.(얼굴 붉힘)
히토미:(금수를 지긋이 바라보며 일본말로)
유카상, 겐조는 제 아들이에요.
금수:(놀라며 수틀을 떨어뜨리고)
그러시군요.(일본어로)
히토미:(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미소 짓고)
겐조의 아비는 사미센 연주가였소,
겐조가 3살 때 돌아가셨고 그 후 구로즈미상의 양아들이 되었소.
구로즈미상이 조선으로 온다 했을 때 함께 왔소.
금수:(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18. 구로즈미의 여름 별장 정원(자정이 지난 시각. 휘영청 달빛)
부르릉 차 소리에 금수 누었다가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정원으로 나간다. 겐조 혼자 달빛을 받고 등을 지고 서있고. 금수 놀라며 멈칫하다가 방안으로 들어갔다 담요하나를 가지고 나온다. 겐조 똑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가 금수의 소리를 듣고 뒤돌아본다.
금수 조용히 걸어와 겐조에게 담요를 건넨다.
겐조:(서툰 한국말로)
고마스므니다.(허리를 잔뜩 굽혀 금수에게 절하고)
금수:(당황해 겐조만큼 허리를 굽히다 일어나며 천천히)
저 구로즈미상은?
겐조:(빤히 금수를 쳐다보며 서툰 한국말로)
네, 일본에 가셨스무니다.
한 달 뒤에나 돌아오실 계획이무니다.
금수:(푹 한숨을 쉰다)
겐조:(날카롭게 금수를 쳐다보며)
유카!
금수:(망연히 겐조를 바라본다)
겐조:(걸어와 담요를 금수의 어깨에 걸쳐주며)
그만 들어가시오.
(먼저 실내로 들어가 방문 닫는 소리 들리고)
금수가 무엇에 홀린 듯 꼼짝 못하고 서 있다가 실내로 들어온다.
겐조가 사라진 방 쪽을 흘낏거리다 자신의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방안에 들어온 금수 두근거리는 가슴을 쓴다.
19. 구로즈미의 별장 실내(낮 세 시경. 밖엔 겨울 눈 내림)
자동차 시동 끄는 소리. 금수 방안에서 나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는 듯 표정. 얼굴이 붉어졌고. 겐조가 머리에 눈을 이고 보따리 하나를 들고 실내로 들어온다. 겐조가 금수를 보자 환한 미소를 띰. 금수 어정쩡 붉어진 얼굴로 겐조와 마주친 눈을 내리 깜.
겐조:(보자기를 풀며 흥분한 목소리로. 서툰 한국말)
유카. 이것이 샤미센이요.
(샤미센을 무릎에 놓으며 금수를 지긋이 쳐다보며)
유카, 내 샤미센을 켤 테니 춤을 춰 보겠어요?
금수:(고개를 들고 겐조에게 눈길을 주며 호기심이 가득)
겐조:(흥분된 목소리로)
유카, 당신이 춤추는 것을 몇 번 곁눈으로 보았소.
당신이 춤을 출 때마다 벚꽃이 하늘하늘 지는 꿈을 꾸었소.
언젠가 내 샤미센 소리에 유카가 추는 춤을 보고 싶어서 이렇게 달려왔소.
금수:(머뭇거리다가)
그리 하지요. (조용히 일어선다)
겐조가 현을 튕기며 금수와 악기를 번갈아 쳐다본다. 섬섬옥수 금수의 손이 어깨를 타고 자드락길을 걷듯 미세하게 움직인다.
금수가 신은 버선코가 현의 선율에 급소를 밟듯 오르내린다.
금수를 바라다보는 겐조의 눈길에도, 겐조가 타는 샤미센 선율에도, 금수의 손끝에서도, 금수의 버선코에서도 동짓달 철 잊은 벚꽃이 분분히 날린다.
20. 금수의 방(같은 날 밤 열 한 시경)
밖에선 눈이 휘날리고 칼바람 소리 들리고.
금수 잠자리에서 잠 못 들고 뒤척거리며 한 숨을 들이 내쉬며 가슴을 부여잡고.
겐조:(금수의 방문 밖에서 낮은 목소리로)
유카상
금수:(벌떡 일어나며 침을 꼴깍 삼키는데)
겐조:(대답도 듣지않고 조심스럽게 금수의 방문을 연다.)
금수:(당황하며 파르르 몸을 떤다)
겐조:(금수에게 다가앉으며)
유카 (겐조가 금수를 안는다)
금수:(겐조에게 안기며) 겐조!
둘의 몸이 뒤엉켰다. '타다다닥' 마치 월명산 꽃놀이를 알리는 축포가 터지 듯 둘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꽃들이 사방으로 퍼진다.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동짓달 눈 내리는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칼바람을 타고 늑대의 울음소리.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곧 무엇인가를 물어뜯고 말 기세. 울부짖음은 점점 거칠어지고. 당장이라도 세상을 집어삼킬 듯 맹렬해지던 포효는 금세 잦아짐.
21. 금수의 방(7월 경, 오후 3시)
금수의 기생 이서운과 계모 오봉댁, 금수가 앉아있다. 히토미가 물 대접을 들고 들어온다. 오봉댁이 유심히 히토미를 위, 아래로 훑어본다. 오봉댁이 금수에게 누구냐고 묻는 표정.
금수: (히토미와 오봉댁을 보며) 지 엄니예유.(일본말로)
(오봉댁에게)이분은 구로즈미상의 사촌누이예요.
히토미:(놀라며. 옷매무새를 고치며 활짝 웃음. 일본말로)
그러시군요.
오봉댁:(앉아 고개만 까닥)
이서운:(고개를 끄덕)
금수:(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일본말로)
고마워유.
오봉댁:(거만한 말투로)
야를 잘 부탁혀요. 애를 가진 것 아시죠?
히토미:(표정을 살피다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럼(일본말)
(나간다.)
오봉댁:(의아한 표정으로 금수에게)
저 양반도 아 밴 것 알고 있냐?
금수:(얼굴을 붉히며) 그럼유.
이서운:내 공도 잊지 말거라. 내가 금수 기생엄니니.(으시대는 표정)
오봉댁:(아첨하는 말투로)
그럼. 이 성님 공도 공이고.
내 널 이만큼 키워줬으니, 알겄지야?
금수:(성가신 표정.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봉댁:(과장된 살가움을 표시하며)
아야, 이제 이 애미 고상 끝났는갑다.
이서운:(아첨하는 듯) 그러게유.
이자 오봉댁의 팔자도 피었는가비유.
오봉댁:(목소리를 높이며)
그려 잘혔어야.
이제 니 고상도 끝났응께로.
잘 사는 일만 남았구나.
금수:(안절부절 못하고 얼굴이 붉어지며)
오봉댁:(바짝 금수에게 다가가며)
그나저나 니 신랑 얼굴이라도 이제 한 번 보아야 허지 않겄냐?
동상들도 한 번 인사시키고.
금수:(대꾸하기 싫은 듯)
아부지는 유?
오봉댁:(귀찮다는 듯) 니 아부지 올 가실 못 넘길 것 같다.
(표정을 바꾸며 희색을 띤다)
그려서 하는 말인디,
니 애비 황천길 떠나면 우덜도 이짝으로 이사 오면 안 되겄냐?
금수:(딴전을 피우며 어색해하며 대답하지 않는다)
이서운:(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그려. 금수야. 몸조심 혀야것다.
오봉댁:(금수의 눈치를 살피며)
그려. 몸조심혀고. 아들만 낳아라. 해복간은 내가 해주꾸마.
(더 바짝 금수에게 다가 앉으며 배를 만지려고 손을 뻗는다.)
금수:(몸을 살짝 비틀며 오봉댁의 손길을 피하고. 좌불안석)
오봉댁:(물 대접을 벌컥거리며 속이 타는 모양)
22. 구로즈미 별장 마당( 8월 초 아침 6시)
고석동이 개를 쓰다듬고 있고 개는 인기척을 듣고 대문쪽을 향해 컹컹거림. 고석동이 대문 쪽을 응시하며 일어나고. 홍금보가 대문을 기웃거리며 고석동을 발견하고 크게 아는 체를 한다. 고석동이 대문을 열어주며 반갑게 홍금보를 맞이하고. 홍금보가 숨을 헐떡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서며 큰소리로 “누님, 누님”을 부르자 송금수 재빠르게 마당으로 나오며 놀란 표정. 홍금보가 금수를 보고 달려가 두 손을 잡는다. 홍금보의 얼굴이 땀으로 범벅.
금수:무신 일루다. 동상? 아부지가? (곧 울 것 같은 표정)
금보:아부지는 괘안혀요. 누님.
석동:(뻘쭘 둘을 바라보다 짓는 개를 다독거린다)
금보:(고석동을 보며)선배님. 일전에 말씀드린 지 누님이유.
석동:(일어서며 어색한 표정으로 금수를 쳐다보며)
새삼?
금수:(갑자기 고석동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 어색해하며)
그려, 동상 안으로(자리를 벗어나려 금동의 손을 끈다.)
금보:아니어유. 누님. 지 선배님 헌티 부탁할 말도 있구유.
(고석동을 보며 표정이 굳어진다.)
석동:(홍금보에게 날카로운 눈길)
무신 부탁을?
금보:그러니께유,
선배님. 우리 누님을 부탁혈라구유.
금수:(의아한 표정)
금보:( 밖을 신경쓰며 바 짝 다가앉으며)
곧 있으면 뭔 일이 일어나도 일어날 것 같은디유, 누님.
지도 얻어들은 소문이지만,
저 짝서는 벌써 일본이 패전국이 될 거라고 혀는디유.
지난 5월엔 일본 동맹국이었던 독일도 패망혔고 며칠 전엔 연합군이 히로시마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엊그제는 나카사키에도 그렸다고 허더만유.
조만간 일본천왕이 항복을 발표 현다고 혀든디유.
금수:(무릎위에 올려 논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금보:(금수의 안색을 살피며 걱정스레)
그려서 말인디유. 이자 집으로 가셔야 것어유.
금수:(짐짓 놀라는 척) 집으로?
금보:(다짐이라도 받겠다는 듯)
그려유, 누님. 이곳에 이리 계시다간 뭔 사단이 날지 모릉께유.
혹시라도 혀셔유.
이곳으로 소작농이라도 몰려올까 봐서유.
(확신에 차)
분명히 그럴 거구만유
금수:(한 참을 망설이다 금보에게 눈을 맞추며)
그려, 동상. 동상의 뜻은 내 충분히 알 것도 같지만서두.
내는 이곳을 뜨지 않것어.
아니 못 뜨겄어. 이 아를 생각혀믄.
(배를 쓰다듬는다)
금보:(당황한 듯, 실망스럽게)
누님의 뜻은 알 것구먼유.
지 말이 그려유.
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집으로 가셔야 한당께유.
금수:(결연하게)
내 동상의 뜻은 충분히 알고도 남을 것이고,
고맙기도 혀지만 그럴 순 없지 싶네.
금보:(호소하 듯)
아버지도 누님을 꼭 모시고 오라고 신신당부 혔구만유.
금수:(고개를 끄덕이며)
아부지 뜻도 내 알것고,
혀지만 난 이곳을 떠날 수 없당께.
아 아부지랑 함께 혀야지.
(뜸을 들이다)
동상에게는 참말로 뭐라 면목이 없구만서도.
이게 내 뜻잉께 아부지에게 말씀 전혀드라고.
금보:(한참을 망설이다)
누님, 그렇다면 선배님한티 누님을 부탁혀야것어유.
금수:(당황한 표정)
금보:(아랑곳하지 않고)
사실은유,
저번에 누님이 오셨다 가신 뒤로 지가 선배님에게 말씀을 드렸구만유.
(금수의 안색을 살피며)
근디, 깜짝 놀라시더라구유.
오래 전부터 누님을 알고 있었다하믄서.
금수:(미간을 찌푸리며)
동상,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팅게 괜한 소리 허지말고
아부지와 식구들을 잘 부탁혀.
금보:(답답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누님, 고것이 아니랑께유.
선배님이 누님을 생각허시는 맘이.
금수:(짜증이 배인 목소리)
동상,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만 집에 돌아가는 것이 좋겄어.
Cut to
밖에서 개를 달래는 고석동의 인기척.
금보 벌떡 일어서더니 밖으로 나간다.
Cut to
고석동이 개를 놀리며 뭔가 안채에 신경을 쓰는 듯.
홍금보가 반가운 얼굴로 나오며 고석동에게 아는 척을 한다.
송금수가 허겁지겁 금보를 따라 나온다.
금보:(환하게 웃으며)
선배님, 그간 안녕하셨지유?
고석동이 쓰다듬던 개가 금보를 보더니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개를 달래며 고석동은 금수와 금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석동:(짐짓 태연하게)
어, 왔는가?
금보:선배님, 이곳에서 뵙게 되네유.
말씀드린 것처럼 이분이 지 누님이세유.”
금수:(마지못해)
야가 지 동생이구먼유.
석동:(금수를 무시하며)
어인일로 예까지?
금보:(고석동에게 바짝 다가서며)
누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려구 왔는디.
한사코 가시지 않겄다구 혀셔요.
선배님께라도 누님을 부탁혀야 헐 모양인디.
석동:(금수와 금보를 번갈아 쳐다보며)
고것은 걱정혀지 말고.
일전에도 말혔다시피.
금보:(고석동의 두 손을 움켜 잡으며)
그려유, 선배님. 지는 선배님만 믿고 가겄구먼유.
금수:(서둘러 금보를 돌려보내고 싶은 말투)
그랴, 금보야 내 걱정 혀들 말구,
어서 가서 식구들이나 챙겨야 안 쓰겄냐?
금수가 금보 돌려보내기 위해 일부러 대문 밖으로 나간다.
금보는 고석동의 손을 잡고 부탁하듯 주억거리고 금보가 대문을 나서자 금수는 눈물을 찍어내며 금보의 뒷모습을 본다. 금보 두 번 이나 돌아다보고. 금수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라 고석동이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것을 눈치 채고 흠칫 놀란다. 고석동을 무시하고 금수 황급히 실내로...
23. 구로즈미 별장 (1945. 8월 17일 가랑비 아침7시)
대문밖 동네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들리고 고석동이 소리 묻히고 금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개가 사납게 으르렁거리고 금수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체념하는 표정.
배를 쓸어본다. 히토미 사색이 된 표정으로 다가와 함께 창밖 응시.
금수:(다소 과장되게, 미세한 떨림)
히토미상, 걱정혀지 마세유.
(침착을 되찾고. 일본말로)
고상이 지켜줄거예유.
히토미:(눈을 휘둥그레) 고상?
금수:(고개를 끄덕이며) 약속 혔어유.
히토미:(다소 안심 고개를 갸웃, 의심스럽고 불안한 눈초리로 시선 밖)
24. 구로즈미의 방(8월 20일 아침 10시)
구로즈미 걱정스런 표정으로 양복을 입고 있고. 겐조. 히토미 무릎을 꿇고 있고. 금수 구로즈미 앞에 앉아있다.
구로즈미:(단호한 목소리로)
유카상, 부탁이 있소.
금수:(구로즈미에 눈을 맞추다 황급히 내리깔고)
구로즈미:(겐조와 히토미를 보며)
겐조와 히토미상을 부탁해요.
금수:(잠자코 고개만 끄덕인다)
구로즈미:나는 일본으로 귀국할 것이요. (간절하게 호소하는 듯)
하지만 겐조와 히토미상은 이곳에 남고 싶어 하오.
금수:(다시 구로즈미의 눈길 부딪히고)
구로즈미:(착착한 얼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겐조와 히토미를 번갈아 시선)
고개 숙인 금수와 겐조. 히토미가 각자의 발등으로 눈물 떨어뜨림.
구로즈미:(목소리를 가라앉히며)
겐조는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요.
하지만 겐조와 히토미상은 조선에 살고 싶어 합니다.
(목이 메이는 지 뜸을 들이다가)
겐조가 조선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 해 두었으니,
유카상이 돌보며 잘 살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고요한 정적. 뚝뚝 눈물 떨어뜨리는 겐조와 히토미와 금수.
구로즈미의 착찹한 얼굴.
구로즈미:(결연히)
곧 다시 조선에 올 거요. 그때까지 꼭 부탁합니다.
금수:(단호히)
걱정하지 마세유, 구로즈미상.
구로즈미상의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겄써유.
창밖으로 후두둑 비가 뿌리고 번개가 치더니 천둥소리. 여름 소나기
25. 구로즈미 별장(8월 21일 아침 6시)
마을 사람들 태극기를 들고 고석동과 함께 대문으로 들어오고.
일부는 정원에. 고석동은 세명의 마을 사람 대동하고 실내로.
거실에 겐조, 히토미. 금수가 불안한 모습으로...
고석동이 결연한 태도로 그들을 훑어보다가...
금수:(고석동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아시다시피, 겐조상은 애 아부지요.
겐조와 히토미는 조선에 남고 싶어 하지유.
석동:(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과장된 목소리로)
돌았는 갑소. 닷새 후엔 모두 떠나야하오.
쪽바리 놈들이 이 땅에 남아있으면 목숨을 내 놓아야할 것이오.
(화가 난 듯 얼굴색 점점 달아오르고)
금수:(간청하듯)
이틀 후에 겐조와 함께 떠나것소. 이틀만 말미를.
고석동은 비웃기라도 하듯 묵묵부담. 송금수와 겐조, 히토미에게 서늘한 눈빛. 금수와 겐조, 히토미 안절부절. 하얗게 질린 얼굴들.
26. 금수의 본가(같은 날 오전 10시)
째보선창 본가의 싸리문 너머로 너, 덧 명의 동네 아주머니들.
금수 땀을 뻘뻘 흘리며 싸릿문을 밀자. 계모와 남동생 울음소리.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당으로 진입하는 금수를 보고 동네 사람들 수군수군. 금수 아버지 방문을 연다. 방안에 아버지 누워있고. 계모와 남동생들이 우는 얼굴로 일제히 금수에게 시선을. 계모 더 크게 울고. 동생들 일어서고 금수 방안으로 올라서고.
계모:(숨 너머 갈 듯 과장되게)
글씨 따님을 보시려고 글케 기다리셨소.
이자 왔으니 그리 가신거유.
금보:(울먹이며) 방금 운명 하셨어유.
금수:(하얗게 질린 얼굴로 털썩 아버지의 주검 옆에 주저앉는다.)
계모의 울음소리가 쇳소리처럼. 동생들 더 크게 울고. 금수의 눈물도 엉기고.
CUT TO
삼일장을 치른 후 가족들 방안에 망연히 앉아있고. 계모 억지 울음.
금수:(금보를 보고)
동상, 안 되겄어. 개정엘 가야것어.
금보:(의아한 표정)
금수:사실은 내 문제를 상의허러 왔었구먼.
고석동이 일본인들은 전부 떠나야 헌다고 혀서,
방도를 마련해 볼 요량이었는디.
금보:(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
삼우제나 치르고 지가 방도를 마련혀 보것어유.
넘 걱정허시지 말구유.(금수의 손을 잡고)
가시면 며칠 간 만 숨어 있으라고 혀서유.
금수:(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선다.)2
27. 구로즈미 개정 별장(오후 2시)
상복을 입은 채로 금수는 대문앞에. 대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고 개들만 달려들고. 금수 고개를 갸웃거리다 알았다는 듯., 낯빛이 하얗게 질리며 서둘러 도로 군산을 향해 내달리고.
28. 군산초등학교 운동장(오후 3시)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있었다. 몰려든 사람들의 손에 깃발이 펄럭였고 누구랄 것도 없이 흥분한 사람들의 입에서 험한 욕설들이 나뒹굴었다. 사람들 너머 운동장 한 가운데 필시 일본인일 것 같은 무리가 무엇인가 검사를 받고 있었다. 사람들의 거친 입에서 품어 나오는 ‘쪽바리’라는말이 난무. 상복을 입은 금수. 사람들을 헤치고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려 안간힘. 사람들이 금수를 힐끔거림. 금수 교문 앞 권번장을 보고 소리쳐 부름. 권번장 금수를 눈치채고 금수를 잡아 끌고 운동장 안으로.
권번장:(놀라며, 금수의 몸을 훑으며)
그려. 몸은 괜찮은가, 고생혔구먼.
금수:(애걸하 듯)
저, 안으로 들어가 누굴 좀 찾아야 쓰것어유.
권번장:(안타깝게)
구로즈미는 없는디.
금수:(난감한 표정. 단호히)
겐조를 찾아 왔구먼유.,
권번장:(놀라며 알았다는 듯)
잠깐 기다려보게나.
서둘러 권번장이 운동장 안으로 들어갔다 금수에게 돌아옴. 금수를
데리고 운동장 안으로. 운동장안의 일본인들 틈으로 금수 겐조를 찾아 서성거림. 이곳저곳에서 일본 아이들 울음소리. 일본 욕설. 아이를 달래는 소리. 간신히 금수 배를 안고 기웃거림. 겐조를 찾았는지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겐조를 크게 부름. 저쪽에서 겐조 금수의 외침을 듣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금수에게로. 금방 누군가 숨이 넘 어가기라도 할 듯, 다급한 목소리로.
금수:겐조상, 히토미상.
겐조:(쉰 목소리로)
유카, 유카
금수와 겐조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히토미가 금수의 등을 안고.
마이크에선 출발이라고 소리치고. 일본인들이 금수와 겐조를 밀치고 운동장 바깥으로 서서히 이동. 맨 끝줄에 남은 금수와 겐조.
겐조:(단호하게, 처절하게)
곧 다시 오리라.”
금수:(울먹이며) 기다릴께유.
겐조:(빠르게, 눈치를 보며).
고상에게 부탁을 했소. 약속했으니.
경찰인 듯 금수와 겐조를 떼놓고 겐조 재촉하고 멀어지는 겐조.
겐조를 놓치지 않으려는 금수. 금수를 붙잡는 권번장. 겐조가 유카유카 울부짓으며 떠나가고. 사람들 사라진 빈 운동장. 먼지 뿌옇게. 금수 뿌연 흙먼지 속에 망연히 주저앉아 겐조가 사라진 쪽들 하염없이 바라보고. 눈이 부어있고. 금수 옆에 고석동이 화난 모습으로
묵묵히 서있고. 고석동 손엔 금수가 예전에 곱게 수놓아 히토미가 선물한 보자기가 들려있고. 금수가 겐조, 겐조 소리 잦아지며 울고.
석동:(기다리다. 금수에게 손을 뻗으며)
가세, 이제 우리의 세상 잉께.
금수가 고석동을 올려다보며 잠시 머뭇대다 배를 안고 고석동의 손을 잡고 일어남. 구월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핏빛 같은 태양이 이글대고. 태양빛을 받은 고석동의 눈도 번들거리고.
29. 째보선창 금수의 본가
금수가 싸리문 앞에서 뒤를 돌아본다. 고석동이 멀찌감치 금수를
바라보다 뒤돌아 간다. 뒤돌아가는 고석동을 확인하고 금수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간다. 방안에 금동과 계모가 앉아있다. 금수를
보며 깜짝 놀란다.
금보:(놀라며) 누님!
금수:(털썩 주저 앉으며) 겐조가 떠났어.
금보:(알겠다는 듯)오늘 배편으로 쫓겨난다고 허딘디.
계모:(얼굴을 희번덕거리며)
그랴, 떡고물이라도 챙겼을 것이니 함께 잘 살아야 허지 않겄냐.
니 애비도 저승길에 바빴고 다들 지 살 궁리 허느라고 그러니,
살아있는 우리끼리 살대가며 그려도 배곯지 않고 살아야 안 쓰겄냐.
금수:(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참는 듯)
그러게유. 근디 살 길이 막막혀서.
계모:(불같이 화를 내며)
그럼 암 것도 냉기지 않고 다 쳐 싸들고 간겨?
금보:(어머니를 나무라 듯)
뭔 정신에유.
가방도 두 개 이상도 안 된다고 혀든디.
그려유, 누님. 이자부터 지가 이 집 가장잉께요.
누님은 걱정혀지 마시고 맘 편히 계셔야지유.
금수:(고개만 끄덕)
계모:(손사레를 치며)야야, 뭔 소리여,
니는 핵교 공부 마치고 펜대 잡으며 살아야 혀지 않겄냐?
금보:아따, 어머닌,
그렇다고 지가 지금 핵교 그만 둔다는 말이 아니구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유.
계모:(금수를 흘겨보며)
이자, 어떻게 헐 요량인지 말혀 보그라.
금수:(죄인이 된 듯 묵묵부답)
계모:지금 그랑께, 니는 그 놈헌티 아무 것도 받지 못혔냐?
씨앗까지 가진 니를 버린 것이냐?
더군다나 그게 누구 씨냐? 쪽바리 놈 씨앗 아닌가벼?
금수:(배를 쓸며 고개 숙이고 묵묵)
계모:(화난 목소리)
그랴면, 니는 시방 우리에게 빌붙어 살 것 다는 것이냐?
(금수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아서라.
내 새끼들 거두기도 내 혼자 몸으로도 섯 빠징께.
니 살 궁리는 니가 혀야 쓰겄다.
CUT TO
금수가 눈물을 흘리며 싸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고
금보가 금수의 뒤를 따라 서둘러 나온다.
금보:누님. 걱정혀지 마세유.
이런 말 허기가 섣부를까 모르지만 곁에 있는 사람을 믿으세유.
송금수:(금보에게 들어가라고 손 짓 하다. 조금 비틀거리며 집밖으로)
30. 개정 구로즈미 별장(저녁무렵)
금수가 대문을 열려고 흔들어보고 금수를 알아챈 개가 낑낑거린다.
인기척 없자 금수 뒤돌아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망연히 하늘을
보고. 저녁노을 붉게 이글거리고. 저쪽에서 고석동이 천천히 걸어
와서 금수를 보고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문을 따고 들어가고.
금수 고석동 뒤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가고. 금수 배가 고픈지
부엌으로 들어가 허겁지겁 밥을 먹고. 고석동이 의뭉스런 눈길로
금수를 쳐다보고. 금수 얹힌 것 인지 끄윽 거리다 화장실로.
체 한 듯 왝왝거리는 소리. 대문 닫히는 소리가 나고 고석동이 집밖으로 사라진 것을 확인한 금수 화장실에서 목욕을 하는 듯. 목욕 후 방안으로 들어가 그대로 쓰러짐. 금수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 보는 고석동. 인기척 느끼고 금수 화들짝 놀라 일어나려고 하자 고석동 억지로 금수 위에 올라타며 옷을 벗기려고 하자 금수 사력을 다해 반항하다 맥이 풀린 듯 손을 놓고 정신을 잃고, 고석동 욕정을
채운 듯. 밖에서 개의 쇠줄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
31. 째보선창가(새벽녁)
금수가 산발한 채 선창가에 앉아 바다를 들여다보고 있고. 물 위에
아버지의 얼굴, 겐조의 얼굴, 금보의 얼굴, 갑순, 연화의 얼굴이
어른대고. 금수는 울고 또 울다 한 참을 울다 결심이 선 듯...
배를 쓸며 일어서 반대 방향으로 훠이훠이 걸음.
31. 개정 구로즈미 별장
금수 지친 모습으로 대문안으로 들어서고 고석동 낑낑거리는 개를 달래고 있다가 산발된 채 눈물과 땀범벅이 된 금수를 보고 놀라며.
석동:새벽부터, 어디를?
금수가 고석동을 무시하고 집안으로 들어가자 고석동이 쭈뼛거리다
금수를 따라 들어간다.
CUT TO
석동:이자부터 내가 자네를 책임질 것이니 내 뜻대로 허소.
금수:(금수 대답하지 않고 자기방으로 들어가 문으 쾅 닫고)
석동:(금수의 방 밖에서)
이자부터 내 자네와 뱃속아이까지 책임질 것이니 내 만 믿으면 되는 것이요. 알 것는가?
금수:(묵묵부답)
석동:(답답하다는 듯) 허투루 듣지 마소.
이자 내가 책임을 지것소.
내 겐조허고도 약속혔는디.
겐조가 헌 말도 있고 혀서.
금수:(한 참을 기다리다가 싸늘한 말투로)
알았으니께 그만 나가보소.
고석동 문을 열 듯 멈칫거리다 그대로 밖으로 나가고 고석동의 얼굴이 애증이로 일그러진다.
32. 구로즈미 별장. 구로즈미의 방. (오후)
축음기에서 이화자의 화류춘몽이 울리고. 고석동과 계모가 시시덕 거리며 무릎과 발과 손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다. 계모 앞에 풀어헤친 한복천이 널려있고 그 위에 옥비녀와 쌍가락지, 몇 가지 보석들이 놓여있고. 금수가 찬 물 대접을 들고 뒤뚱거리며 들어와 앉는다.
석동:(얼른 물 대접을 받으며) 보다, 내 것이여. 금수 것이랑께.
계모:(신이 난 듯)그려. 금수야. 이자 니 고생도 내 고상도 끝난는 것 갑다. 모다 니 것이라고 안 혀냐? 이 옥비녀는 내 것이만서도.
(옥비녀를 집어 든다)
금수:(관심이 없다는 듯 묵묵부답. 일어서 나가려 한다.)
석동:육시럴.(이를 드러나며 쓴 웃음한참을 웃어대던 고석동의 표정에 일그러지고 부르르 몸을 떰)
나가던 금수는 꼼짝없이 등을 보이며 멈추어 아기 배를 쓰다듬고.
계모 아랑곳 하지 않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비단 한복천을 주어
담고. 고석동 보석을 주어 방 밖으로 집어 던진다. 계모 놀라서 보석을 주어 담고, 금수 모른 척 내려간다.
33.. 구로즈미 별장(오후. 밖에 칼바람 불고 진눈깨비)
아기출산이 임박한 듯. 금수 배를 안고 신음하고 산파할멈이 부산스럽게 힘줘. 힘줘를 외치고 문 밖에선 고석동 안절부절. 마지막 산모의 절규. 아이 울음소리.
산파:(소리쩡쩡하게) 고추여. 실혀!
금수:(까물어치려다 산파가 건네주는 아들을 안고 희미하게 웃고)
개짖는 소리 요란. 장독을 몽둥이로 깨는 소리. 송금수 깜짝 놀라고 산파 허둥대고. 좀 있다 고석동이 뻘겋게 단 얼굴로 안으로 들어오고.
석동: (아이를 들여다보며) 어쩌것어? 내가 자네와 아이를 책임진다고 혔응께, 이제부터 야는 내 아들잉께.
금수:(묵묵부답. 우는 듯)
석동:(깊은 한 숨을 쉬더니)한 가지 약조만 혀소. 정식으로 부부의 연을 ·맺고 내랑 여느 부부처럼 살 수 있어야 항께. 이자부터 야는 고종팔이여. 내 후대가 종자 돌림자잉께. 알았제?
금수:(묵묵부답)
석동:(짜증이 밴 목소리)그려, 그럼 그렇게 알고. 내 이자부터 야를 고종팔이라고 부를팅께 그렇게 아소.
34. 신흥동 양옥(3 년 후. 낮)
이곳저곳 그릇 깨진 것이 널려있고 어수선한 실내. 종팔이 누워있고
금수 망연히 아들을 보고 앉아있다. 밖에서 인기척 듣고 나갔다.
금보와 함께 들어옴. 금보 들어오며 어수선한 모습에 놀라고. 휘휘 둘러보더니 걱정스러운 얼굴.
금보:(목이 메인듯) 누님, 사는 것이 어떠유?
요사이도 매형이 잘 혀주시지유?”
금수:...
금보:누님, 지가 이런 말을 허는 것은유.(망설이다가)
매형이 중핵교 시절부터 누님을 향한 마음이 지극혔다구 혀서유.
(금수의 눈치 살피며) 그렸여유. 선주형님 친구였다믄서유.
매형이. 그때 선주형님 소개로다 누님을 만난 적이 있었는디, 첫눈에 누님을 보고 반혔다면서. 선주형님이 서울로 가자마자 누님을 찾아 권번 주위를 서성이고 명월관, 천수각 주변을 들락거렸다구 허더만유.
CUT TO(금수의 회상)
고석동이 명월관에서 나오는 금수 가마 주위를 맴돈다.
CUT TO
금보:지는 선배님 맴을 좀 알 것어유. 겐조의 아이를 가진 누님을 보면서 그 마음이 어땠을까유?
금수:(무거운 얼굴. 화재를 돌리기 위해)
동상은 무슨 일로 그렇게 바쁜감?
금보:(미안한 표정) 그거시오, 누님. 지금 지가 원청 바빠서.
금수:글씨, 뭐시 그렇게 바빠서 조카얼굴도 보러 못 온 다냐?
금보:(변명하 듯)공부도 혀야 쓰것구.
금수:(야속한 말씨) 학상이면 당연지사. 공부가 일등이구만서도.
금보:고것이사. 지가 건국준비위원회 활동을 좀 혈라고 혀서유.
금수:건국준비위원회라고?
금보:(으쓱한 듯) 뭐냐면유. 해방이 되었잖혀유. 근디 소련과 미국 놈들이 우리나라를 삼팔선으로 갈라 놓았지유. 고것은 우리민족이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구먼유.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단일민족 인디 힘센 지덜 맘대로 허릴 잘라놓고 지랄들 혀고 있어유. 하여 우리 남북 주요 인사덜이 시방 우리덜 힘으로 나라를 일으켜서 한 몸으로 맹글어야 헌다고 다들 힘쓰고 있구먼유. 그려서 지도 이번 참에 나라를 세우는데 힘을 좀 보태려고 혀서유.
금수:(동생을 지긋이 바라보며)
동상의 그 뜻은 내 쬐매 알 것 구만서도 걱정이 되는구만.
금보:누님, 넘 걱정혀지 마세유. 지가 머 앞장 서는 일은 아니구, 쬐매 뒤에서 돕는 일잉께 걱정혀지 않으셔도 되어유. 지도 내년에는 졸업잉께 취직혀서 우선 식구들 부양 혀야겠으니께. 지 나름대로 요량이 있으니 너무 염려혀들 마세유.
(망설이다 금수 눈치를 보며)
저 글구. 요런 말은 누님에게 비밀로 혀라고는 혔지만.
매형이랑 지가 같은 일을 허는 구먼유.
금수:(의심의 눈초리로)
무신 일, 설마 미두장을 출입혀는 것이 아니것고.
금보:참, 누님도. 매형이랑 같은 목적으로 일혀는 구만유.
금수:(화난 목소리)같은 목적이라니?
금보:건국 준비위원회 일유. 지는 쪼무래기이구유. 매형은 깊이 관여하고 있지만서두. 남북인사들이 함께 허는. 사실 매형은 서울로 올라가던가, 평양으로 가셔야 허는디 누님을 두고 갈 수 없다구 혀서. 지금 군산에 머물고 계시구먼유. 매형은 원래 고부 출신이었데유. 아버님이 동학혁명의 선봉장에 섰다가 온 가족이 몰살당할 위기에 먼 친척인 옥정리 고씨네로 보내졌데유. 눈칫밥 먹으며 일꾼처럼 친척집에서 자랐는디 워낙 머리가 좋아 옥정리 고씨 일가가 합심해서 매형을 키웠다더군요. 요참에 매형의 활약이 대단혔구만유. 구로즈미 농장의 일들을 일사천리로 해결혀서 우리 허는 일에 큰 자본을 마련혔고 그 공로로 지들 사이엔 대단한 인물이 되셨지유. 사실 지들한테는 영웅 같으신 분잉께유.
금수:고것보다, 내는 나혀고 종팔에게 잘혀주고 살뜰한 것으로 족혀. 나랏일 같은 것은 내가 꼽을 일은 아닐 것이고.
금보:지는 누님이 쪼께 거시기 헌 것은 있으시겠지만 매형의 마음을 헤·아려 주셨으면 허구유.
금수:고것은 내 일이니, 동상꺼지 나설 필요 없응께.
금보:그려유, 누님, 죄송혀구요.
35. 요릿집
천수각 앞, 두 대의 인력거가 도착. 한 대의 인력거엔 금수가 타고 있었고 한 대의 인력거엔 애기보기 이웃집 정순엄마가 금수의 아들 종팔을 안고. 손님들과 기생들 사이 끼어 있고 상 차려 있고 고수와 장구.장구가락 시작하자 금수의 육자배기.
금수:꽃빛은 고우나 내 맴 빛은 서럽고, 내 맴은 내님 곁에 누었으나 내 몸은 푸른 바다 넘질 못하네.
소리 한 곡, 춤 한 자락을 추고 난 금수는 재빨리 옆방에서 기다리는 아들에게 젖을 물리고.
36. 신흥동 주택(늦은 밤)
종팔 쌔근거리며 자고 고석동이 금수와 마주보고 앉아있고.
석동:미안혀. 낸, 중학교 시절 이후, 한 번도 자네를 잊은 적이 없었다네. 쬐매만 더 참아주소.
다 자네와의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참인께.
낸, 중학교 시절 이후, 한 번도 자네를 잊은 적이 없었다네.
쬐매만 더 참아주소.
다 자네와의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참인께.
CUT TO
다음 날 아침. 부부 싸움이라도 한 듯 돌아서 누워있고 종팔 만
깨어 방긋방긋. 기척에 금수 일어나 종팔에게 젖을 물리자.
석동 일어나 불같이 화를 내며
석동:자석만 사람인교?
아니 아직도 겐조, 그 쪽바리 때문인교?
난데없는 성질에 금수 놀라다 다시 못 들은 척 침착. 여전히 젖을 물리고 석동 무엇인가 물건들을 발로 차며 화낸 기색으로 바깥으로 나가고. 금수의 시름 깊어가고.
37. 째보선창 본가(6.25전쟁 당시)
부엌에서 금수 달그락 거리고. 안방에서 계모 종팔과 노는 소리.
밖이 소란. 턱 하니 돌멩이 몇 개 마당으로 떨어지자.‘반동분자, 반동분자.’외치는 소리 들리자 금수, 계모 놀란 표정으로 마당을 내다보고. 빨간 완장을 찬 고석동 지프차 뒷 좌석에 타고 싸리문 앞까지. 고석동 차에서 내려 마당으로 들어오며.
석동:(의기양양하게) 걱정마소, 장모님.
뒤이어 운전수가 쌀가마와 보따리 두 세 개를 차례로 가져오고.
계모 맨발로 뛰어오고. 종팔도 따라나오나. 부엌의 금수는 아는
척을 하지 않고 계속 일하고. 석동 부엌을 구구다보며 아는 척.
38. 째보선창가(석양무렵)
사방으로 전쟁의 흔적이 즐비한 선창가에 6살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는 종팔. 종팔이 낭창한 목소리로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노래를 부르고 있고 오봉댁이 출현. 종팔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오봉댁:(혀를 끌끌 차며 혼잣말)
지 엄니 새끼 아니라고 누구 허겄어.
전쟁이 휩쓸고 간 상흔들이 곳곳에 남아있었지만 째보선창 목선들은 닻을 올리고. 째보선창 바다갈매기는 여전히 끼룩거렸다. 만월표 고무신을 신은 아이들의 뛰는 소리와 그들을 쫒는 마을 개들의 컹컹거리고. 만선의 깃발을 올린 조깃배들을 향해 선주들의 들뜬 목소리가 우렁차고 객줏집 색시들의 웃음소리. 낯익은 얼굴도, 낯선 얼굴들도 꾸역꾸역 째보선창으로 하나, 둘 다시 모여들기 시작째보선창을 끼고 살아보겠다는 그들은 또 그렇게 금세 아웅 대고.
39. 해망동 선창가(낮)
금수가 땡볕에 팔 생선을 앞에 두고 앉아있고. 남자 하나가 금수앞에 쪼그리고 앉아있고.
장판소:(확고하게)긍게, 이 고상혀지 말고 내랑 함께 하소.
아들 눈치 보는 것이라면 군산서 혀지 말고 다른데서 벌리면 되는 것 아니것소.
CUT TO
금수가 장판소와 함께 천석꾼집 환갑잔치 앞마당 멍석위에서
소리를 하고 춤을 추는 장면...
40. 해망동 말랭이 금수의 새로운 오두막 방안(이른 아침)
금수 보따리를 들고 있다 종팔이 눈치 채자 황망히 보따리 감추고.
종팔:(화난 듯)엄니, 저 핵교 때려 치울랍니다.
금수:(놀라 뻥한 눈으로 종팔을 바라보기만 할 뿐)
종팔:지는 공부에는 영 소질 없응께,
돈이라도 벌어서 엄니 고상 그만 시켜야것어유.
금수:(애걸조로)
무신 고상혀냐. 내는 니 반드시 사람 만들고 고등핵교,
대핵교까지 가르쳐야 것다.
종팔:(눈에 힘을 주고 금수를 쏘아보며)
내는 이자 핵교 안갑니다.
(주먹쥐고) 돈 벌랍니다. 그렇께 엄니는 집에만 계셔유.
금수:(과장되게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종팔의 팔을 붙잡고)
종팔:(붙잡힌 팔을 떼내며)
지는 엄니가 그러코롬 춤이나 추고 소리혀는 기생 인 게 죽어도 싫당께유.
(불같이 화내며) 지가 엄니 대신 돈 벌랍니다.
41. 해망동 선창가(초여름. 저녁)
하루해가 수평선 끝으로 막 자맥질을 하려는 순간, 금수 산발한 채 해망동 부둣가에 넋을 놓고 앉아 바다를 노려보고 있고. 오봉댁이 금수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고.
오봉댁: 아야, 이젠 들어가자. 때가 되면 오갔지.
니 몸 돌봐야 갸가 와도 알아볼 것 아니냐?
금수:엄니유,
지는 죽지도 못혀고 이를 어짠데유,
지가 생 아들 죽였구먼유.
틀림없이 죽었으니께 입때까지 소식이 없는 가빈디유.
오봉댁:내는 생짜 같은 아들 셋이나 가슴에 묻어 두었는디도 이렇게 목숨 부지혀고 사는디, 젊은 것이 이러고 있는 것이냐?
니 애미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냐?
금수:그런 소리 허들 마시유. 갸가 어떤 안디유?
갸는 지 목숨보다 소중하당께유.
지 목숨 열 개라도 바꿀 수 없당께유.
차라리 지가 죽어 갸를 살린다면 지가 마땅히 죽지유.
만 번이라도 지 목숨허고 바꿀 수 있당께유.
그때 저쪽에서 발을 절룩거리며 뱃사람 서씨 등장. 서씨 손사레를 치며 금수을 부른다.
서씨:여보시오, 여보시오. 종팔 어무니. 왔대유. 왔어
꼴깍 해가 수평선으로 사라졌고 갯내를 몰고 오는 땅거미가 진진했다. 금수 벌떡 일어나자마자 사내를 향해 먼저 달렸다. 사내 앞에 선 금수 숨을 헐떡이며 말을 하려했다. 말이 막혀 답답한지 사내 손만 우악스럽게 잡고. 오봉댁 힘겹게 따라오고
서씨:종팔어무니, 이자 종팔이가 왔당께유.
납북 되었다가 어제 인천항으로 입항혔딘디유.
시방 인천 경찰서에 있다는디유.
선주 박씨가 인천에 올라 갔응께 쬐매만 기둘리면 될 것 같응께,
고마 들어 가이소.
조만간 기별이 올팅게. 아들 맞을 준비나 혀도 되갔시유.
서씨는 금수가 잡은 손을 가만가만 쓸어가며 힘주어 말하고 금수는 대답조차 못하고 닭똥 같은 눈물만 똑똑 떨어뜨리고. 뒤따르던 오봉댁의 손에 끌려 산발한 여자가 허청허청 해망동 말랭이를 힘겹게 오르고 있고. 땅거미가 내려앉은 해망동 갯벌 위로 한 무리의 갈매기 떼가 끼룩거렸다. 봄빛 저문 월명산 윤사월 꾀꼬리는 지저댔고, 아카시아 꽃이 해풍에 날리고. 가난한 산비탈 빼곡한 오두막집 등성위로 거뭇거뭇 연기가 피워 오르고. 하나 둘, 오두막 촉 낮은 불빛이 퍼지자 수평선을 살라먹은 어둠이 먼 바다를 차례로 잠재우고 급기야 어런더런 북적대던 해망동은 어둠과 침묵.
42. 해망동 금수의 방(밤)
오봉댁이 목욕을 끝낸 머리를 빗겨주고 잠자코 있던 금수 돌아앉으며
금수:엄니, 참 고상하셨소.
오봉댁:(금수를 외면하며 한 참을 묵묵부답)
금수:(울컥 눈물 쏟으며)
말은 허고 못살았어도 지가 어찌 엄니 맘을 헤아리지 않았을 것 같소?
오봉댁:( 와락 금수의 손을 붙잡으며 주섬주섬 속곳에서 물건을 꺼내 금수에게 보여주며)
눈에 익은 것이쟈?
금수:(눈을 휘둥그레 뜨고) 엄니, 무엇이당까유?
오봉댁:(오방색 비단주머니를 내밀며)
그려, 이자사 말혀서 참말로 미안허다.
그려. 이자 내 무신 말을 못허겄냐.
이것 땜시 내가 십년이나 넘게 목에 가시가 걸려 살았지 않았냐!
금수:(오방 주머니를 가슴에 가져다 대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오봉댁:그려. 요것은 말이다.
인공 때 고석동이 니헌티 전해 주라고 내헌티 주고 간 물건이다.
인민군들이 북쪽으로 밀려가기 전 날 밤이었는가비다.
니가 종팔이 찾으러 잠깐 나간사이 고석동이 안 왔겄냐. 어찌나 급하게 니를 찾는지.
시간이 없다면서 니에게 이것을 전혀 주라고 허드라.
금수:(주머니 안을 털어내며)
아따, 엄니, 돌아가실 때꺼징 가지고 계시지 않구선.
(주머니 속에서 쌍가락지와 떨잠이 떨어진다)
오봉댁:(속이 타는지 찬물을 벌컥거리며)
그려야. 몇 번 니 힘들 때 돌려 주고자픈 맴은 꿀떡 같었는디,
내도 가진 것 없어서 고마 내 욕심이었응께 용서혀라.
오죽 혔으면 황영감헌티 내 몸을 맡겼것냐?
금수:(허탈한 듯)
엄니, 이자 엄니와 지 사이에 무신 슝허물을 따지것소.
그 마음이사 이해는 혀지만서두,
이제 이것이 다 무신 소용이겄어유.
오봉댁:고것이 그렇지 않구먼.
참말로 갸가 이제 와서 허는 말이지만 심지가 깊었어야.
니를 생각허는 마음을 내는 알겠더구만.
어찌 니는 갸 마음을 그리 매몰차게 물리쳤는지...
.허면서 갸가 허는 말이 꼭 돌아오겠다고 혀드라.
그 때 돌아오면 지금까지 못한 지 정성을 다 쏟겠노라고.
기다리라고 꼭 전혀 달라면서 어찌나 달기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지,
사내래서 그런지 그 때 갸 눈물은 평생 못 잊겄더라.
내 가끔 갸 꿈도 꾸는디, 니가 갸 야길 꺼내지도 못혀게헝께.
(고석동의 마음이라도 잡히는 양 눈물을 찍어내며)
INS
금수의 친모가 웃으며 6살 금수의 한복에 오방주머니를 달고 있다.
CUT TO(금수의 회상)
해망동 선창가 금수가 생선을 팔고 있고.
권번장 담배피며 금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고.
권번장:아따. 그 시펄놈의 다카끼있잖혀. 그 족속이 입때꺼장 쪽바리인 줄 알았는디. 고것이 아니더만.(가래침을 뱉으며)
금수:(호기심으로 권번장을 쳐다보며 미소)
권번장:그 육시럴 놈이 글씨 군산경찰서장 노릇을 지금도 혀고 있더라고.
곽일표란 이름으로. (다시 기껍다는 듯 가래침 뱉고)
금수:(살짝 놀라며. 표시를 내지 않고)
CUT TO
금수가 주머니의 쌍가락지를 챙겨 속곳에 넣고 일어설 채비.
오봉댁이 놀라 금수를 올려다보고.
금수:엄니. 지 잠깐 다녀 올 데가 있구먼유.
대답도 듣지 않고 금수 나가자 오봉댁 일어나 금수가 골목을 바삐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깊은 한숨.
43. 군산 경찰서 실내(낮)
삼삼오오 경찰들이 업무보고 있고 경찰서장 곽일표가 .문으로 들어서는 금수를 보고 놀라고. 금수는 곽일표를 찾아 두리번 거리고. 금수 곽일표 앞으로.
일표:(게슴츠레 눈을 뜨며 호들갑스럽게)우야, 이게 누구신가, 금수씨 아닌가비?금수씨 소식은 가끔 들었는디 어짠 일이시유?
실내에 있던 시선들이 일제히 금수에게 쏟아지고.
금수:(과장되게 반가운 척) 영전하셨다는 소식은 들었구만유.
일표:(금수의 위, 아래를 훑어보며 능글맞게)
오메, 금수씨, 을마나 많이 찾았는지 아는감?
금수:지한티 종팔이라고, 열여섯 먹은 아들이 한 명 있는디유.
일표:(거드름을 피우며) 아, 그 쪽발이 구로즈미 아들 말인감?
그아가 고석동의 아들로 둔갑혔든디. 빨갱이 고석동.
금수:(움찔. 난감한 표정. 천연덕스럽게)
갸가유. 지 엄니 고상 안시키것다고 배를 탔는디유.
일표:갸가, 벌써 배를 탈 나이가 됐던가비네?
금수:(미간을 찌푸리며 애써 참는 듯) 올해 열여섯 살이 됐구먼유.
일표:참말로 세월이 빠르기도 허지.
근디 금수씨는 아직도 이렇게 낭창낭창 하구만서도.
금수:갸가 해망동에서 배를 탔는디.
일표:근디 지금은 어디 요릿집 출근하는감? 내 금수씨를 찾아 볼라꼬 요리조리 물어 봤는디 당최 찾을 수가 없었는디. 옛 정분도 있는디 한 번 만나야 허지 않겄어?
금수:지는 이제 소리도 춤도 그만 두었응께유. 근디 지 아들이, 요번에 갸가 탄배가 한 달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유.
일표:(얼굴표정 굳어지며) 그람, 해망동에서 이북으로 건너간 간첩선에 금수씨 아들도 끼여 있었단 말인가비네?
금수:(속곳에 넣던 손을 그냥 빼며)
뭐시라고유, 간첩선이라니?
일표:긍께, 고것이 요번에 선주 박씨네 배가 북으로 넘어 갔다는디. 고것들이 간첩질을 혔다고 혀서.
금수:9식은 땀을 닦아내며)끌려간 것이지,
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신 간첩이라꼬?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뱃놈들이 뭣을 안 다구.
일표:아따, 금수씨는 아들이 간첩질을 허고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눈치도 못챘는가비네.
금수:(목소리 높이며 화를 내듯)
갸는 지 속으로 난 아들이구먼유.
그 쬐깐 것이 뭔 요량이 있어 간첩을 운운허는 것인지 통 모르것지만.
갸는 절대 그럴 아가 아니니께유.
이번 참에 서장님께서 잘 힘을 좀 써서 얼른 갸를 좀 이짝으로 데려와야 안 쓰것어유?
지 사정을 서장님이 아시니께 이렇게 온 것이 아니겄서유.
일표:뭐 내 금수씨에 대한 그간의 일들을 모다 꿰매고 있지만서두.
(느물거리며) 내 마음 알것는가, 금수씨?
갸, 아비 고석동이 인공 끝나고 북으로 넘어갔단 소식도 들리드만, 혹시 금수씨도 갸하고 내통허는 것은 아니것지?
갸 밑에서 금수씨는 부역도 피하고 잘도 살았다믄서?
금수:(얼굴이 달아오르며 불안감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일표:갸, 고석동이 인공시절 어찌혔는가?
갸 땜시 옥정리 고씨 문중이 싹쓸이 된 것 아닌감?
갸가 인공시절, 이 근동의 누구보다도 큰소리를 쳤던 인물아닌감?
내 하나도 빠짐없이 금수씨 일은 꿰뚫고 있으니...
금수:(분을 참으며) 그것만 아시는감유?
지 동상들 둘도 국군 학도병으로 나가서 이자까지 소식도 없는디유.
일표:아, 고것이사 내 조사도 혀 봤지.
또 금보란 동상은 서울에서 헤어졌다믄서.
갸의 행적도 좀 수상허고.(호통치 듯)
내사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린가?
빨갱이들 잡는 자리이고. 자네 아들이 탄 배는 이북으로 갔는가빈디.
금수:(하얗게 질려)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감유?
일표:(정색하며)귀가 멀었는가. 해망동 박선주 배가 이북으로 갔다니께. 금수씨 아들이 그 배를 탄 것이라면 틀림없이 갸도 이북으로 갔을 것이니께.
긍께. 내가 다시 말혀면 고석동의 자식으로 고종팔이란 금수씨 새깽이가 지금 이북으로 넘어 갔는디,
갸가 간첩질 허는 것이 아닌가.
지금 조사중이구먼.
고종팔이라는 자네 아들이 그짝에서 지 애비라고 생각혀는 고석동이라도 만났는지?
금수:고것이 무슨 말인지 지는 하나도 믿겨지지 않는구먼유.
일표:참, 이자 나이 먹은께 말귀가 어두워졌나본디.
이 사건은 간첩사건잉께.
내 더 깊은 이야기는 헐 수 없고.
이자 고만 가보아야것는디.
내도 집무를 계속혀야것고.
내 일간 금수씨를 한 번 사적으로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헐팅게,
오늘은 고만 돌아가는 게 좋을 성싶은디.
금수:(애원하듯 손을 모으며)
서장님, 부탁인디유. 자세한 이야기 꼭 듣고 잡구만유.
CUT TO마지못해 경찰서를 나오다가 금수 계단위에 앉아 망연한 표정.
44. 금수의 해망동 집 마당(이른 아침)
금수가 손을 털고 일복차림으로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종팔이 방문을 열고 따라나옴.
금수:(깜짝놀라며) 어디?
종팔:(신을 신으며) 잠깐 할무니 집에 좀 다녀올까봐유.
금수:째보선창에? 무신 일루다?
해망동 선창가로 깃발을 올린 목선들이 속속 눈에 들어오고 뱃전을 향해 사람들이 왁살스럽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내려다보이고.
종팔:할무니한테 전해 줄 말이 있어서유.
금수:뭔 말인디. 나 한티 허면 내가 전해 주꾸마.
종팔:엄니헌티 뭔 헐 말이 있겄씨유, 할무니헌티 인사나 허고 올라고 그랴지유
쏘아 부치 듯 말을 내뱉고 종팔은 성큼성큼 골목을 내려가고 있고금수는 망연히 아들 종팔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금수:어찌 그리 지 아비랑 저리 판박이일까.
INS(금수의 회상)
일표: 긍게, 하룻밤 인연이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 못 들었는가?
금수는 며칠 전 끔찍이 싫은 늙은 영감탱이가 술 냄새를 풍기며 자신을 찾아왔던 일을 회상하며 몸서리를 친다.
금수:그래, 종팔이면 족혀, 더 이상 무얼 바래?
45. 째보황씨집 안방(낮)
황씨 골망대로 담배를 태우고 있고 오봉댁 그 옆에 누워 있다가 바깥 기척을 듣고 폴짝 일어나 문을 열어보는데 종팔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라 반갑게.
오봉댁:하이고야, 내 새끼왔냐?
오봉댁:(오봉댁이 버선발로 뛰어와 종팔을 안고) 내 새끼 이자 괜찮냐?
오봉댁은 닿지도 않는 종팔의 얼굴을 감싸려고 손을 뻗치고.
종팔:할무니, 건강 하셨지라우?
오봉댁:(종팔의 팔을 끌며)오야, 오야. 내 새끼, 고상 많이 혔제?
종팔:(미소띠고) 고상은 뭘유. 엄니 돌봐 줘서 고맙구만유.
황씨:(마지못해) 왔는가비, 고상 많았다.
황씨는 가늘게 뜬 눈으로 금수의 아들, 종팔을 뚫어지게.
종팔:(황씨에게 큰 절을 올리며) 그간 별고 없으셨지유?
오봉댁:오야, 오야. 내 새끼. 벌써 이렇게 사내가 됐구만냐. 벌써 이렇게...
오봉댁이 종팔에게 바짝 다가앉으며 감격스러운 눈물을 찍어댔다.황씨:글씨, 고상 많이 혔을틴디 괜찮은가? (가래 끓는 소리)
종팔:괜찮구먼유. 고상은유?
오봉댁:그랴, 다시는 배 안 타야것다.
종팔:지도 그럴 생각이구만유. 이잔 엄니 곁에서 안 떨어지겠구만유.
오봉댁:그랴야지, 암먼. 니 엄니가 니만 바라보고 상께. 니도 그려야지.
오봉댁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종팔의 손을 조몰락거리고.
황씨:아를 그렇게 조몰락거리지만 말고 뭣이라도 내오소.
오봉댁이 서둘러 일어나고 오봉댁의 뒤를 따라 나오며 종팔.오봉댁의 손의 끌고 눈치 빠른 오봉댁이 종팔의 손에 몸을 맡기며 집 밖으로 나오고.
CUT TO
종팔:죄송혀유, 할무니.
오봉댁:(호기심작렬) 무신 조용히 할 말이 있는게구나?
종팔:네. 할무니.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아버질 만났지유. 큰외삼촌이랑 막내외삼촌이 이북에 살고 있다고 했어유.
오봉댁:(눈이 휘둥그레지며 휘청거린다.)
종팔:(휘청거리는 오봉댁의 팔을 붙잡으며) 놀랬지유?
오봉댁:우리 금동이와 금철이가 살아있다구?
종팔:그려유. 아버지를 만났는디. 절 찾아 오셨드라구유. 니가 종팔이냐며 눈물을 흘렸구먼유. 허지만 전 실감이 안 나서.
오봉댁:긍게, 그게 참말여. 갸들이 이북에 살아 있다구?
종팔:지는 기억이 없는디유. 아버지란 분이 그려셨어유. 전쟁 때까지 지랑 함께 살았다구유.아버지란 분이 할무니께 전해 달라구 혔어유. 잘 계시다구유. 삼촌들은 멀리 있어서 못 왔다고 혀며, 다들 잘 사니께 염려일랑 마시고 사시라구유.
오봉댁:(주저앉았다)야아, 엄니헌티는 말혔냐? 느그 아부지 만났다고.
종팔:아니유. 말허지 말라고 혀서 말 못혔어유.
오봉댁:갸가, 그러디?
종팔:(고개를 끄덕이고)
오봉댁:아야. 더 야기 해보더라고. 그랴서 니 삼촌들 이야기는 더 뭐시라고 허더냐?
종팔:다른 말씀은 없으셨구유. 꼭 그 말씀만 할무니께 전하라고 혔구만유.
오봉댁:그 말 뿐인감. 참말로 그 말 뿐인감?(목이 메이고 눈물)
종팔:(오봉댁을 일으켜 세우며) 그려서 지가 그 말씀 전혀 주려고 왔구만유. 인사도 드릴 겸.
오봉댁:오야, 니 엄니 헌티는 말혀야 쓰것지 않것냐?
종팔:아니구만유. 그쪽에서도 말 혀지 말라고 헜지만서두. 지도 말 안 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구만유. 소식만 들으면 뭐허것어유.
오봉댁은 종팔의 등을 다독거렸다.
종팔:높은 양반인 것 같았지유. 비서까지 대동혀고 나타나신 걸 보니."
오봉댁:그럈냐? 긍께말이다. 갸가 상고까징 나왔씅께.
(측은한 듯 종팔을 올려다보고) 그랴야. 어찌 내가 니 맴을 모르겄냐.
종팔:(깊은 한 숨을 쉬며)그러게요, 할무니. 지가 이런 이야기를 엄니랑 허겠시유, 나랏님이랑 허겠씨유, 경찰이랑허겠시유? 참말로 답답허기만 하구먼유.
오봉댁 또한 진이 빠진 듯 푸석 땅바닥에 몸을 부리고. 종팔은 할머니를 일으켜 세워 집안으로 들어오고. 황씨가 무슨 일인가 방문을 열고 밖의 동정을 살피는가 싶더니 그대로 방문을 닫으며 쇤 기침소리를 내지르고.
종팔:(황씨 들으라는 듯) 지는 이만 가보아야겠구만유.
방안에선 아무 대꾸도 나지 않고. 오봉댁이 종팔의 소매를 끌며.
오봉댁:밥이라도 먹고 가야지. 그랴. 장허다. 일케 살아 온 것이 장혀다. 내 일간 느그 집에 갔꾸마.
종팔:그려유. 할무니, 지는 그만 가보겠어유.
오봉댁:아야, 조심혀라.
종팔은 오봉댁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문밖으로 나오다 잠시 어디
로 가야할 지 모르겠다는 듯, 한 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INS(종팔의 회상)
석동: 느그 엄니한티는 내 살아있다는 말 전혀지 마라. 허지만서두 내 꼭 살아생전 느그 엄니 만나고 죽을 것잉게.
폭풍 같은 오열을 하며 종팔을 품에 안았던 아버지 고석동의 굽은 ·등.
곽일표:긍께, 그짝에서 니 애비 고석동을 만났어, 안 만났어?
CUT TO
종팔의 발등위로 툭툭 눈물 떨어지고. 선창가 매서운 바람이 종팔의 덥수룩한 머리를 휩쓸고 지나가고. 종팔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종팔은 방향을 정한 듯 성큼 발을 떼고 종팔의 어깨는 다부졌고 널따란 등짝엔 사내다운 풍모의 뒷모습. 이제 째보선창 부둣가에서 붕붕 요란한 뱃고동 소리가 들리고. 발을 떼던 종팔은 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종팔:(혼잣말로) 나는 지금 어디로 가야할까?
깊은 숨을 내쉬며 종팔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 종팔의 얼굴엔 두려움과 불안감대신에 무엇인가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는 굳센 의지의 표정이 역력. 주먹을 불끈 쥔 종팔의 팔에서 힘줄이 불룩대고. 종팔의 등 뒤로 째보선창 뱃고동소리가 긴 꼬리를 끌며 따라 붙고.
47. 학교 앞(오후)
수업이 끝났는지 한 무리의 까까머리 중학생들이 쏟아져 나오고.
종대가 교모를 삐딱하게 눌러 쓰고 시시덕거리며 다가오고.
종팔:(큰소리로) 어이, 박종대.
종대:(놀라더니 뛰어오며 종팔을 안고)고종팔, 니 참말로 왔냐?
꼰대 헌티 들었구만. 니 쬐매 더 있어야 한다고 허딘디.
종팔:(야속한 듯) 야, 씹새끼야, 그려도 연락 한 번 없냐?
종대:(미안한 듯 찝적거리며) 우리 모처럼 만에 한 판 붙어볼까?
종팔의 눈앞에 팔의 근육을 보이며 힘자랑을 해보고 싶은 종대.
종팔:(가소롭다는 듯 희죽 웃으며)얌마, 아서라. 이 몸은 바다 싸나이다. 짠물 먹고 살았응께.
종대와 함께 쏟아진 아이들이 종팔을 흘낏거리고.
그들의 흘끗거림에 기분이 상한 종팔은 앞장서 성큼성큼 그곳을 빠져 나오고. 종대가 종팔의 발걸음을 따라잡으며 나란히 걷고.
종대:(호기심) 긍게, 니 참말로 인민공화국에 갔었구마?
종팔:(화난 표정)치아 뿌려라. 내 그 야긴 그만 둘란다.
종대:(깐죽거리며) 참말로, 지령 받은 것은 아니겄지?
종팔:(가소롭다는 듯 한 숨 쉬며)
INS(종대의 회상)
약간 어두운 해망굴 안. 조연화 서있고 종팔과 종대 일행과 곽중근 일행이 대치해있고. 종팔이 곽중근가 일 대 일 대항.
종대:(종팔 뒤에서) 야, 씨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여자를 달고 다녀? (침을 갈기며)
중근:(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종대를 노려 보고)
종팔:어이, 붙어보지.(중근을 약 올리며)
중근이 먼저 종팔에게 공격. 엎치락뒷치락. 종팔 전세 불리. 종팔과 종대 일행 중근 일행이 맞붙고 치열한 난타전. 종팔 일행이 밀리려는 찰라. 최태풍과 필대와 일행이 도착해 중근 일행을 평정.
종대:(감격해) 형. 필대형. 백골 난망.
필대:(손을 털고 찡긋 윙크하고 사라지며) 잘 혀봐.
조연화 바들바들 떨고 있고 곽중근 일행. 팬티만 입고 무릎을 끓고 있고. 종대 툭툭 그들의 머리를 치고 왔다갔다.
종팔:야, 고마해라.
종대:(이죽거리며) 니들이 독립군파라고. 돌아가신 안중근 의사가 웃것다. 중근이라, 중근. 니 애비가 예전에 다카끼였나며?
일본경찰 서장 다카끼?
중근:(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부르르 떤다.)
종팔:좆 나게 도망가. 지금. 어, 아가씨도 어서 가소. 맘 바뀌기 전에.
팬티만 입은 독립군파들이 슬금슬금 일어나 도망치고 조연화 그들을 따라 달려감.
CUT TO
종대:삼삼하다. 그 때 일.(희죽거린다.)
그랴, 고등핵교 가야 안 쓰겄나? 씨펄. 니 새끼가 울 꼰대 배만 안탔으면 그 사단 났것냐?
종팔:난 고등핵교 안 갈란다. 돈 벌어야 쓰겄다.
종대:그랴도, 핵교 나와서 취직혀서 돈 버는 게...
종팔:내는 지금부터 뭘혀서 돈을 벌어야 쓰까 알아보아야것다.
종대:(머리를 긁적이며) 그랴면 다시 배 탈래?
종팔:(종대에게 눈을 흘기며) 무신, 내 죽어도 다시는 배 안 탈끼라.
(잠깐 발 멈추고) 그 있잖여. 니네 사촌형 소개 시켜주그라.
종대:(놀라며) 뭐라. 우리 사촌형 필대 말인가?
종팔:그려. 니기 사촌형 필대가 군산극장 기도 아닌가?
종대:(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렿지. 필대형이 군산극장을 지키긴 혀지만. 니는 아직 어리잖혀. 아직 스무 살도 안 되었는디.
종팔:(답답한 듯) 나이가 무신 상관인가. 그것은 내가 알아서 헐티니, 니는 내말대로 필대형이나 소개시켜주면 된다.
종대:(머리를 굴리고 생각하다가)
그람. 내가 말은 넣어 볼 것이지만 그 다음은 내는 모르겄다.
48. 군산극장 안(낮)
최태풍과 그 일당 몇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종팔은 한 쪽 구석. 화면엔 영화 오발탄의 끝 장면, 종팔의 눈에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고.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종팔은 혼잣말로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난 전쟁 중에 잘못 발사된 오발탄 같구나.”를 되 뇌이며 눈물 뚝뚝 스크린에 “끝"이 올라가고 사람들 떠나도 종팔은 한 참 울며 마지막까지 앉아있다.
49. 양키시장 (밤 11시경)
최태풍이 종팔을 데리고 양키시장 순찰. 미군부대에서 쏟아진 미군 물건들이 양키시장 내 수북이 쌓여있고. 막 셔터를 내리는 사람들.
이곳 저곳에서 최태풍에게 아는 체를 하는 상인들...
태풍:(애기봉분만한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거들먹)
봐라. 종팔아. 울 엄니 못 먹어 각혈을 허다 돌아가셨다. 내 여동생 갸, 서울로 식모살이 갔는디 여직 못 찾았는기라. 언젠가 다시 만나면 내 양키시장 사장 시켜 줄끼라.
종팔이 잔뜩 호기심을 느끼는 표정...
50. 최태풍의 사무실(오전 10시경)
사무실 한 쪽 벽엔 서재처럼 책이 즐비하게 있고 부하들이 앉아있고 최태풍 거들먹거리며 앉아있음. 부하중의 하나가 주요한의 ‘아네모네 마담’이라는 책을 읽고 있고 최태풍 눈을 지긋이 감고 낭독을 즐기는 중. 낭독이 끝나자 최태풍 한 참을 생각에 잠긴 듯 표정
태풍:(꿈꾸 듯) 내 고향은 순창 진메라코 허는디. 섬진강이 흐르고
푸른 초원이 망망혀고. 내 열 넷에 쪽바리 순사하고 맞짱뜨다
이 모양이 된 것 아닌감.(자신의 눈 밑 흉터를 가르키며)
부하들 머리를 조아리며 최태풍의 이야기에 집중. 최태풍 심심한지
종팔을 부르고.
태풍:야, 종팔아, 그려 그린필즈, 푸른 초원 한 번 뽑아봐라.
종팔, 기타를 들고 이상한 영어 발음으로 그린필즈 노래를 부르고
최태풍은 눈을 지긋이 감고 감상. 부하들 최태풍 흉내내고.. 노래가
끝나고 열렬히 박수
태풍:야, 새끼들아. 더 크게 박수.(최태풍 눈을 부라리며)
그려. 내도 푸른 초원을 함께 걷고 싶은 여자가 있는디.
필대:(생각난 듯) 그 분 말씀이시지유?
가마타고 댕김서 소리혀고 춤 추셨다는 분 말이지유?
태풍:그려. 그 누님을 찾아야 허는디.
필대:혹시 말이에유, 성님. 요건 지 생각인디. 종팔이 엄니가 아닐지유?
태풍과 종팔 둘다 놀래며?
필대:제 사촌 동생 종대헌티 들은 일이 있는디. 종팔 엄니가.
(종팔의 눈치를 보며)
태풍:(호들갑을 떨며 종팔을 쳐다보며) 뭣이라고, 종팔 엄니가?
그럼 느그 엄니가 혹시 송금수?
종팔:(놀라며) 그런디유, 성님이 어떻게?
태풍:(감정이 격하며) 느그 엄니가 참말로 송금수여사님이었다고?
그랗께. 종팔 니 상판때기에서 송금수 여사의 콧날이 보이는구먼. 버선코 같은 날렵한 콧날, 야리야리한 이 눈빛...”
느그 엄니에게 가서 물어 보그라. 최태풍을 아느냐고.
종팔:(화난 표정, 묵묵부답)
태풍:내 당장 송금수여사님을 한 번 만나 보아야겄구먼.
종팔:(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고것이 뭣 땜시
태풍:(애가 타듯) 송금수여사님,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시는가?
종팔:(머뭇대고)
태풍: 뭣여, 얼릉 대랑께.
종팔:고것이요.
태풍:그랴면 내가 너그 집에 찾아가야쓰겄다.(당장이라도 나갈 듯)
종팔:(당황하며) 고것이요. 지금 엄니가 집에 안 계시구먼요.
엄니는.
태풍:(화를 내며) 이 새끼봐라. 자꾸 말을 돌려.
필대:형님, 고것이요. 종팔이 엄니는 해망동에서 생선을 팔고 있대유.
태풍: 무시라꼬? 송여사님이 생선을 팔고 계시다꼬?
한 번도 해망동에선 보질 못혔는디.(필대를 향해)
필대:그려신다는 말을 들었구먼유.
종팔:(몹시 화난표정으로 필대와 태풍을 번갈아 바라보고)
태풍: 그렸구먼. 당장 해망동에 가야겄구만.
최태풍이 일어나 나가자 부하들이 최태풍을 따라 나가고 종팔은 화가 난 표정으로 주먹을 꼭 쥐고 부르르 떤다.
51. 해망동 선창가(낮. 여름 햇빛 작렬)
금수는 뙤약볕아래서 햇빛을 가리는 지푸라기 모자를 쓰고 쪼그리고 앉아있고. 최태풍이 부하들을 이끌고 금수 앞으로. 종팔 최태풍
뒤 맨 끝. 필대가 최태풍에게 금수를 가르키자. 금수 앞에 쪼그리고 바짝 앉자 금수 놀라 뒤로 넘어질 뻔. 최태풍 재빨리 금수 팔을 잡고. 바짝 금수 앞으로
태풍:참말로 송여사님이신가유?
금수:(긴장한 목소리로) 뉘신데 그려유?
태풍:절 모르시갔지유. 저 순천 촌놈 최태풍이에유.
금수:(유심히 최태풍을 보며) 최태풍이라니유, 지는...
태풍:(금수의 손을 잡으며) 지, 모르시겄어유? 그 쪽발이 서장 다카끼”금수:(가만 생각을 하는가싶더니 무릎을 치며 알았다는 듯)
아, 그 순해터지고 땅딸막했던 인력거꾼. 순창에서 왔다던?
(이제야 생각난 듯 활짝 웃고)
태풍:그려유, 송여사님. 지가 바로 그 때 그 머시마예유.
금수:(유심히 최태풍을 들여다보고)
태풍:(입을 열고) 이 이빨 보시랑께유.
금수:(바짝 얼굴을 최태풍의 입안을 보려고 가까이 가져가고)
태풍:그때 그 씨발 새끼헌티 얻어터진 후로 이 모양이 되었구먼유.
최태풍의 나란히 새로 박아 넣은 금니 두개가 햇빛을 받아 빛나고.
금수:(활짝 웃으며)그 길로 보이지 않더니만. 걱정되기는 혔는디.
태풍:누님. 이곳에 있으시지 말고 저 다방에라도 가서 그간 소식이나 들읍시다.
CUT TO금수와 태풍 예전 다카끼와의 일을 생각하고.
최태풍이 금수를 부축해서 다방으로 가는 듯. 종팔 졸래졸래...
52. 종팔의 집(아침)
금수와 종팔이 밥을 먹고 있다. 뾰로통한 종팔의 얼굴. 종팔의 안색을 살피는 금수.
종팔: 그려도 어머닌 앞으로 그 양반 다시 만나시지 마세유.
금수:뭘 그려냐. 좋게 뵈더만.
종팔:(눈을 부라리며) 그 양반이 뭣시 좋게 보이던가유? 깡패새낀디.
금수:내 말은.
종팔:엄니는 지가 끝까지 책임질팅게 아무에게나 맴 주지 말란 말이구만유.
금수:(체념한 듯) 알것다. 걱정하지 말그라.
그려. 니는 내 아들잉께. 암먼. 니 말고는 하늘아래 그 누구도 의지혀선 안되지.
종팔:(화가 안 풀린 듯 수저와 젓가락을 상 위에 탁 놓고..)
53. 물망초 다방 앞(낮)
물망초란 간판이 보이는 다방 앞, 최태풍과 금수와 부하와 종팔이 다방 앞에 서 있다.
태풍:(간곡하게) 누님, 이자 그 고생혀지 말고 여기를 맡어 주시랑께유.
금수:(휘 둘러보며 종팔의 눈치를 살피고)
종팔:(태풍의 눈치를 보며)
아니구먼유, 지 엄니는 지가 책임지것구만유.
태풍:(화가 치미는) 뭐시라꾸, 깡패라고 날 무시허는 것이냐?
종팔:(약간 주눅들어) 그것이 아니구먼유.
태풍:그럼, 고것이 아니면?
종팔:엄니는 화류계 생활에 적합혀지 않을 것 같아서유.
태풍:(가소롭다는 듯 껄껄 웃으며) 다방이라는 것이 웃음을 파는 곳이여, 몸을 파는 곳이여. 어먼소리 말고.
태풍:(금수를 향해)어떠유, 누님.
금수:(종팔의 눈치를 보며 대답을 망설이고)
최태풍이 험악한 얼굴로 종팔 쏘아보고.
부하들도 일제히 종팔에게 인상을 쓰고
종팔:(마지못해. 퉁명스럽게) 엄니 내키는 대로 하소.
태풍:(기쁜 듯) 그럼 이자부터 우리 누님은 이 다방 주인 마담이 된 것인게유. 다방의 이름은 아네모네 랑께유.
모두 놀라 일제히 시선 최태풍에게로. 부하중의 하나가 용감히
부하1:아네모네가 무엇이당까유?
태풍:(과장되고 험한 얼굴을 지어보며) 이 똥대갈통아. 꽃 이름이여.
금수 입으로 아네모네를 몇 번 뇌까려보고 부하들도 우스운 듯 아네모네를 입에 올리고 최태풍은 신이 난 듯 거들먹거리고...
CUT TO
시내전경. 선거 프랭카드 나부끼고. 박정희 사진. 선거 벽보.
54. 다방 아네모네(낮)
금수 한복을 입고 있고. 다방 레지 둘 왔다갔다. 손님 몇 테이블.
최태풍이 앉아있는 앞 테이블에 금수 앉아있고. 최태풍이 금수에게
몸을 기울이며 속삭이듯.
태풍:누님, 지가 누님헌티만 살짝 귀띔을 해 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디요
금수:(흐뭇한 미소) 무신 재미있는 일이 있는가?
태풍:(사방 눈치 살피며 목소리 낮춰) 이참에 통쾌한 복수한 번 헐려고 칼을 좀 빼야겄는디요.
금수:(손사레) 그랴면 안되지.
사람 목숨을 그렇게 가볍게 여기면 벌 받는 다니께.
태풍:(실실 웃으며)아따, 누님. 지가 정말로 칼을 뺀다는 것이 아니구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유.
금수:(정색) 그랴. 사람목숨 귀중헌지 알고 살아야 헝께.
태풍:아시잖어유, 다카끼, 곽서장유.
금수가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고
태풍:그 영감탱이가 요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혔다는 것을 아시지유?
금수:(속삭이 듯)알다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이곳에 납시어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는구먼. 이곳에 오시는 손님들이 보통손님들인가?
태풍:그 씨발놈이 지가 그때 그 인력거꾼이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 못혀고 지를 찾아 왔지유.
금수:(호기심 보이며) 동상을?
태풍:그려유. 지 도와달라고 허드만유.
금수:(긴장하며) 그려서 뭐라고 혔어?
태풍:이 참에 그 잡놈헌티 그때의 복수를 헐 참 이구만유. 물론 도와준다고 철석같이 약속은 혔지만서도. 절대 못 도와 준당께유.
금수:약속도 혔다믄서?
태풍:약속은 혔지만 지가 괜히 혔것써유. 지는 어차피 공화당을 위해 충성을 맹세한 사람인께 겉으로는 곽서장을 밀어야할 입장이만서도. 다 뒷구녕으론 그 잡놈에게 불리혀도록 공작을 꾸미고 있구만유. 이번에 곽서장과 대결하는 신민당 구화진에게 이롭도록 말이어유. 지는 누가 돼도 상관 없씨유. 곽서장을 떨어뜨리기만 혈 수 있다면유.
금수는 최태풍이 귀여워 웃음. 곧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뀌고. 걱정 금수의 걱정스런 눈빛을 받은 최태풍이 금수를 바라보며 찡긋.
태풍:그 당시 우덜은 참말로 그 눔이 쪽발이인줄만 알았잖어유? 근디 조선 사람이었다니, 참말로 기도 안 찰 노릇이구먼유. 친일했던 행적을 낱낱이 저 짝 편에다 살짝 흘렀구먼유. 어디 친일 뿐 만이것써유. 그 새끼 이것이 몇 명인 줄 아시유?
최태풍이 새끼손가락을 흔들며 야릇한 웃음을 흘리고 금수는 민망했고 부끄러워 하는 표정.
태풍:그 자석 친일행적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구유. 알려지지 않은 인공적 일들도 지가 다 조사혀서 갖고 있구만유. 그 자석 고향이 미면인디 드러내놓고 빨간 완장을 두르진 않았지만 그 시절 목숨부지헌것이 암먼혀도 수상혀 조사혀보니 글씨 누구도 모르게 인민군에게 협조혔던 증거가 한 두건이 아니었어유. 하여 그 증거를 저 짝에다 흘렸으니께, 지가 아무리 날 뛰어 봤자 국회의원은 물 건너 갔당께유. 이번 국회의원 나선다고 논도 열 베미씩이나 팔았다고 허던디.
최태풍은 고소한지 이른 웃음을 웃고 어쩐지 금수는 최태풍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곽서장에게 죄를 짓는 일인 것 같아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고.
55. 아네모네 다방 (한 달 뒤 낮,)
최태풍 다방 문을 제키고 신이 난 듯 들어와 두리번거리다 금수를 발견하고 서둘러 금수 앞에 앉으며 속삭이 듯, 희열에 들떠.
태풍:누님, 누님. 드디어 해냈시유. 누님이유. 글쎄 900표 였대유.
최태풍의 호들갑에 금수의 입 꼬리도 올라가고 하지만 누구의 눈이라도 뜨일까봐 금수는 두리번거리고.
금수:글씨, 차근히 말혀야지.
금수의 은근한 목소리에 덩달아 최태풍도 목소리를 낮추고.
태풍:글씨 신민당 구화진헌티 졌다니께유, 다카끼, 곽서장이 말이여유.
최태풍의 기쁨에 차 번들거리는 눈동자는 금수를 향해 찡긋.
금수:(능청스럽게) 그렸디야?
금수, 자꾸 실실 웃음이 나는 듯.
태풍:누님은 우짰어요, 설마?
금수:고것이사.(망설이다가) 수고혔어, 동상. 근디 조심혀야쓰겄어.
태풍:그려유, 누님. 해도 요샛 날 이번처럼 지 가슴이 벅찬 날이 없었지유.
금수:긍게말여. 세상사 세옹지마라고 안 허든가.
태풍:명심허것씨유. 누님.
최태풍 자꾸 좋아 죽겠다는 웃음....
56. 군산극장 앞(오후)
군산 극장 앞, 몇 몇의 양아치들이 담배를 물고.. 필대와 종대가 머리를 맞대고 쪼그리고 앉아있고.
필대:나, 월남 갈란다. 좇나, 깡패 짓이 심심혀서. 장래성도 없고.
종팔:(호기심으로)장래성?
필대:그러야. 어차피 군대는 가야것는디. 월남가면 한 달 월급이 30불이 넘는디야. 일 년이면 논 서, 너 배미는 살 액수랑께.
종팔:그렇게 큰 돈을 벌수 있단 말이지?
필대 고개를 끄덕이고 종팔의 심각한 얼굴...
57. 금수의 신흥동 집(오후)
종팔이 멍하니 누워 천장을 보고 있고. 넋 빠진 표정. 월남전 생각.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 종팔이 끄덕 하지 않자 문소리 삐꺽. 최태풍이 방안으로 들어오고. 깜짝 놀란 종팔, 벌떡 일어나고.
태풍:헤이, 월남 싸나이 종팔. 뭔 지랄여.
종팔:(짜증이 밴) 무신 일루다?
태풍:(살가운 목소리) 그랴, 누님이 걱정하시드만.
그랴서 일부러 왔는디. 일 혀야지, 사내새끼가. 내, 심정은 충분히 아는구만. 그랴도 엄니 생각혀서 그랴면 안되제. 그랴, 누님도 내 하는 짓을 탐탁히 여기지 않는 것을 아닝께. 그 일은 접어두고.
(뜸을 들이다가) 내가 말여. 건실한 사업체를 하나 꾸려가고 있는디. 조카가 이참에 그 짝 일 좀 안 허겄는가? 긍께. 조카가 월남전에 간 이후로 군산 비행장 쪽으로 회사를 하나 설립혔지.
종팔이 자세를 바꾸고 태풍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태풍:아메리카타운 주식회사라는 회산디. 상가가 오십동이나 넘는 큰 회사여. 조카가 관리 쪽 일을 혀주면 서운치 않게 월급도 줄팅게,
어쩐가?긍게 말여. 고것이 대통령님의 새마을 운동 아닌감? 미군들을 위한 위락시설이긴혀도 갸들이 우리안보를 책임지고 있응께, 고것이 꼭 돈만 버는 것이 아니고 빨갱이로부터 우리나라를 지키는 임무니껜, 쬐께 보람도 있을 것이제.
종팔이 고개를 끄덕이며 듣자 태풍 신이 나서...
태풍:긍게 말여. 우리 회사에선 조카가 할 수 있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닝께. 잘 생각혀보드라고. 사장도 내 앞에선 설설 기는기라.
어뗘?
종팔:쪼매 생각혀 볼께유. 엄니하고 상의도 혀고.
CUT TO
금수와 종팔 방안에 앉아 있고.
금수:그짝 아들이 좀 남새스럽든디.
종팔:고런 것은 염려혀지 마셔유. 다 지 헐 도리만 허면 되니께유.
58. 군산 아메리카 타운
비행장 못미처 논 한가운데에 있는 평범한 마을. 울긋불긋한 슬레이트 지붕사이로 타운의 모습은 흡사 서부영화 속 한 장면. 마을 입구는 잘 포장이 되어 있었고 시내 어느 곳보다 휘황찬란한 색
영화 속에서 있을 법한 서구식 술집.술집에서 새어나오는 음악과 괴성. 몇몇 미군들이 양색시와 함께 수다. 종팔이 오토바이를 타고 아메리카 타운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
59. 아네모네 다방(오후)
김추자의 노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울려퍼지고 다방레지가 똥꼬가 보일둥 말둥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껌을 씹으며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고. 한 가운데 노인들 몇이 아가씨의 엉덩이를 훔쳐보며. 화이바를 들고 입장하는 종팔.
숙희:(문소리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오빠?
종팔:(대답하지 않고 한 쪽 구석에 털썩 앉고)
숙희:(엉덩이를 심하게 흔들며 종팔에게 다가오며)
말씀 많이 들었어요, 오빠.(감탄하며) 월남에서 돌아온 고상사.
(껌을 뱉어 종이에 싸며 황홀한 표정으로)
을마나 사장님이 오빠야기를 많이 하셨는지. 참말로 장혀요. 장혀.
종팔 무심한 척. 숙희 물 컵에 물을 따라주며 연신 생긋거리고.
태풍 등장. 큰소리로 공숙희를 ‘깜치“라고 소리치며 또르르 일어난 공숙희 태풍을 반갑게 맞이하고. 숙희가 왼쪽 코 옆으로 도드라진 까만 사마귀도 함께 웃고. 종팔 미간 찌푸리고.
60. 금수의 신흥동.
밥상머리. 금수와 종팔 아침밥을 먹으며...
금수:갸는 어뗘?
종팔:(뜬금없다는 표정)
금수:오랜 동안 지켜봤는디 없는 집 가시내이긴 혀도 진국잉께,
유심히 보드라고.
종팔:(밥숟가락을 상위에 탁 올려놓고 불만표시)
CUT TO(종팔 회상)
아오자이를 입고 웃을까 말까한 얼굴로 손을 흔들던 월남여자 흐엉.
공숙희 얼굴위에 흐엉 얼굴 오버랩.
61. 아네모네 다방안 (낮)
김추자 님은 먼 곳에 노래 흐르고 손님 몇 테이블. 공숙희가 종팔 앞에 앉아서 애교를 떨고 있고 종팔이 작은 소리로 기타줄 튕김.
숙희:그려, 오빠. 난 오빠 같은 사람헌티 시집가고 싶어.
신사임당 같은 아내가 되고 싶은디.
INS(숙희 회상)
군산여고 교정 심사임당의 동상.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 하교.
공숙희가 뚫어져라 심사임당 동상을 바라보고 있고.
CUT TO
종팔:(낮은 소리로 기타를 치며 노래)
예스터데이 올 마이 트러블즈 심드 소 파어웨이...
공숙희가 턱을 괴고 종팔 앞에 바짝 얼굴을 가져다 대며 황홀한 표정으로 종팔을 들여다 보며 입을 달싹 거림. 마치 노래를 따라 하는 것처럼. 종팔 묵묵히 노래를 부르며 가끔 숙희의 달싹거리는 입술에 눈을 줌.
숙희:동생 둘, 중학생, 고등학생, 아버지는 어렸을 적 바다에 나가 돌아오시지 않았어. 어머니는 아프고. 내가 벌어야할 팔자지만 쬐매만 기다려 줘. 난 우리 태수를 꼭 판사로 만들거야.
종팔은 무심히 노래만...
숙희:갸가, 대학을 가서 판검사만 되면 그 이후쯤 내는 오빠헌티 시집 갔으면 좋겠어.(얼굴 붉히며)
CUT TO.
금수:어뗘?
종팔:고개 저음(싫다는 의사표시)
62. 군산시내 모습
황금사자기 우승 플래카드가 이곳저곳 나부끼고. 시민들 얼굴에 희색 만연. 우승의 주역인 김우근, 송상복, 고병석, 김일권, 김준환을 비롯한 선수들의 카 퍼레이드가 중앙로를 거쳐 시청까지. 군산상고 학생 뿐 만아니라 온 시민이 선수들을 환영하기 위해 시내도로를 접수해 왁자지껄...종팔, 종대. 태풍, 양아치들의 얼굴도 보이고..
63. 아네모네 다방(밤 늦은 시각)
다방 탁자 위에 어지럽게 베리나인 골드, 맥주 등의 술판. 종팔 벌겋게 단 얼굴. 종대등 서넛... 술이 머리끝까지 취한 친구들 비틀거리며 나가고 종팔과 숙희 둘만 남아있고. 종팔의 눈앞에 숙희의 얼굴위에 오버랩된 월남여자 흐엉 얼굴 겹쳐지고...종팔 숙희를 와락 끌어안고. 부비부비(야한 장면들)
아득한 하늘에 유성이 꼬리를 끌며 지상으로 떨어지듯 그렇게 종팔도 함께 낙하하고. 여자의 뜨거운 몸은 불꽃을 튀기고. 여자가 내지르는 소리는 환청처럼 아득하고 자꾸만 여자는 종팔의 품으로 파고들고. 종팔은 가만가만 여자를 안고 등을 쓸고 여자가 운다는 느낌이 들고 종팔은 알은 체를 하지 않고. 여자를 안은 손에서 종팔의 손이 자꾸 힘이 빠지고. 흐엉인지, 공숙희의 얼굴이 오버랩돼 종팔에게 아른거리고...
CUT TO (다음날 새벽)
종팔과 숙희 벌거벗고 누워있고 숙희 종팔의 품으로 파고 들고. 종팔이 어렴풋이 눈을 뜨다고 깜짝 놀라며 잠시 모른 척.
숙희:오빠. 오빠, 삼년만 기다려줄래?
종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도망치 듯 사라지고 깜짝 놀란 공숙희가 종팔을 붙잡다 놓치고. 망연하게 앉아있고 숙희 울고 또 울고.
64. 금수의 신흥동 주택, 방안 (아침)
종팔, 금수 밥상머리.
금수:(망설이다가) 갸는 안되겠더라.
종팔:(묵묵 밥만 먹고)
금수:(종팔 눈치보며)
갸가 어쩐지 최태풍하고 심심한 사이는 아닌갑더라.
종팔 손 잠시 멈칫. 곧 금수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밥 만 먹는 종팔...
65. 아메리카 타운(2년 뒤, 석양 무렵)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오는 종팔. 분위기 술렁. 삼삼오오 양색시들과 상인들이 모여 숙덕숙덕. 종팔 뭔가 눈치챈 듯. 양색시들이 종팔에게 아는 체. 양색시 하나가 쪼르를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종팔에게 달려와, .화이버를 벗고 있는 종팔을 향해...
양색시1:마리, 마리가 죽었데.
종팔:(뻥한 표정)
양색시1:안테나 줄에 감긴 채 불에 타 숨진 걸 저녁때야 발견했다는구먼. 출근을 하지 않자 찾아가보니 그렸데야..
종팔 호기심에 양색시들과 사건 현장으로.
CUT TO(마리의 쪽방)
경찰 저지선이 쳐 있고, 몇 몇 경찰과 미군헌병. 곽중근의 모습 보이고. 구경 온 양색시들을 제키고 종팔 안을 들여다보고. 경찰이 마리의 시체를 잠깐 들여다보고. 주검의 얼굴 왼쪽 코 옆으로 난 새까만 점. 종팔 놀라 안색 변하고.
종팔:(옆에 있는 양색시에게) 마리가 본명이여?
써니:(이죽거리는 목소리) 공숙희여.
종팔:(경악의 표정)
써니:(원망하는 표정) 그려요. 야가 하제처녀 공숙희여. 씨팔.
자꾸만 다리에 힘이 빠져 종팔 주저앉고. 타운안의 열 명 남짓한 양색시들이 함께 주저앉아 울고. 종팔은 눈물도 나지 않고. 멍하니 하늘 만 바라보고. 경찰 곽중근이 종팔을 째려보고. 초여름의 햇빛이 스러지고 있고 자꾸 스러지는 햇빛을 따라 막 20살이 지났을 법한 공숙희의 째진 눈이 울고 있고.
66. 신흥동 종팔 집 (대낮)
손도 대지 않은 밥상을 옆에 두고 종팔 누워 멍하니 정신줄 놓고 있고 금수 안타까운지 ...
금수:젊은 것이. 엄니는 어떡하라고?
(달래 듯) 갸가 죽은 것이 네 탓이 아닌게.
종팔, 묵묵부답. 누워있는 얼굴위로 눈물 흘리고.
INS(종팔 회상)
써니:마리의 첫사랑은 종팔씨였대요. 가끔씩 종팔씨 몰래 마리가 종팔씨를. 갸가 을마나 울었는지 알아요?진정 혀줄 말이 있는디.
종팔:그만혀. 갸와 나와의 인연은 거기까지 였는겨.
67. 아메리카 타운 ( 한 달 뒤 저녁)
써니의 방앞에 양색시들 진을 치고 있고 경찰과 미군 헌병들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고. 종팔 경찰 저지선 앞에 앉아 침통한 표정. 양색시들 쑥덕쑥덕.
양색시2:분명혀. 마이클. 그 씹새끼여. 마리도 죽이더니 써니까지.
양색시3:근디 왜 저 씨펄놈은 잡아가지 않는겨. 오살놈의 한국 경찰 새끼들을 뭐 씹하기라도 허는 겨?(지독한 욕설)
양색시2:마리를 안테나 줄에 감겨 살해하더니 이번에는 칼로 다 찔러서.
양색시3: 부대로 쳐들어가자.
앉아있던 양색시 무리.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누군가의 입에서 죽여, 죽여, 하는 함성이 곳곳. 순식간에 몰려온 처녀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부대로 뛰기 시작하고 불같이 일어난 그녀들은 마산방죽을 따라 비행장으로 몰려가고 마치 삼일운동처럼, 동학농민항쟁처럼 오백여 명도 넘는 여자들과 몇 몇의 남자들은 길고 긴 저수지를 어떤 이는 맨발로, 또 어떤 이는 신발 한 짝을 신고, 아우성치며 달려가고. 들불이 되어 인근 부락의 주민까지 합세. 종팔의 모습도 보이고. 경찰들 따라오며 진압하기 위해 안간힘. 곽중근이 종팔을 따라붙으며 경찰봉으로 종팔을 때리고..
68. 군산비행장 미군 부대 앞.
총을 든 미군이 철문 앞에 서있고. 몰려든 양색시와 주민들..
뒤집혀진 미군용 트럭이 불타고. 당황한 미국 헌병들은 방망이를 마구 휘두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밤새도록 모깃불을 피워놓고 부대 앞에서 데모하는. 고종팔이 선두에 앉아 소리치고...
한국 경찰 무리를 빙 둘러싸고, 곽중근 모습 오버랩되고...
69. 재판장 내부(오전)
종팔을 비롯한 양색시 몇, 죄수복을 입고 판사들 앞에 고개 빳빳이 들고 있고. 방청석에 최태풍, 금수 최태풍의 부하들 보이고...
종팔이 2년 형을 언도 받는 장면 연출...
70. 감옥 안(달빛 희미한 한 밤중)
수감자 몇, 종팔이 달빛이 비치는 창을 쳐다보며 벽에 등을 기댄채 혼잣말로
종팔: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멀리서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소리에 종팔의 눈물.
71. 신흥동 종팔 집( 2년 후 아침)
종팔과 금수 밥상머리.
금수:야야, 조심혀야 겄다.
INS(금수의 회상)
아네모네 다방안. 손님들이 몇 테이블...금수가 커피를 내려놓으며 귀 쫑긋.
손님1:(낮은 소리로) 시방 광주는 빨갱이 소굴이 되어가고 있다든디요.
종팔 꾸역꾸역 밥만 먹고 있고.
72. 해망동 허름한 술집(밤 9시경)
종팔이 친구 종대와 경매쟁이 조씨와 함께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고. 왁자지껄 다른 손님들 주위에.
종팔:(종대를 향해) 고맙구먼. 자릴 잡게 혀줘서.
종대:(쑥스러운 듯) 그려, 니는 내 불알 친구 아닌감.
그때 울 아부지 배를 탄 이래로 늘 빚진 기분이었당께.
그때 생각혀면 아직도 맴이 켕기니께.
종팔:뭐, 고것이 자네 잘못인가? 다 지난 일잉께 이자뿔자고.
종팔과 종대. 경매쟁이 조씨 막걸리잔을 부딪히고.
경매쟁이조씨:(낮은 목소리로)글씨 말여. 광주 그짝은 전쟁이라든디.
쉬쉬 허드라고.(주위를 불안한 눈으로 둘러보고)
종대:(주위 둘러보고)세상이 흉흉할 땐 납작 엎드리고 살아야 혀.
종팔도 경매쟁이 조씨도 고개를 끄덕이고.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직직거리며 노래. “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따라하며...젓가락에 장단을 맞추고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73. 아네모네 다방 안(오후)
손님 몇 테이블. 혜은이 노랫소리 들리고. 한가한지 금수 카운터에 앉아 있고. 최태풍이 떠들썩하게 들어오며...
태풍:누님, 종팔이 나왔다믄서유?
금수:(화들짝 일어서며, 반갑게) 그랴 동상. 요즈음 사업이 잘 되는가벼? 코빼기 보기 힘들었구먼.
태풍:(높은 톤으로) 그랴요, 누님 지가 엄청 바빴구먼유. 죄송혀요.
그나저나 종팔이는 유? (휘휘 둘러보고)
금수:(최태풍 맞은 편에 앉으면서, 하소연하 듯)
갸가 어서 맴을 잡아야 헐 틴디. 장가를 가야 맴을 잡을까혀서 처녀들 사진을 디밀었더니 들은 척도 허지 않는구먼.
태풍:(레지가 가져온 물컵의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갸가, 쬐매 마음 추스르기에는 시간이 필요허당께유. 한 번 감옥을 댕겨 오면 세상이 달라 보이는 법이지유. 긍께 염려허들 말고 쬐매 기다리셔야 겠어유. 다 시간이 해결해 줄팅게유.
금수의 얼굴에 침울. 최태풍이 위로하려고 하는 때. 덜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곽일표와 곽중근...
곽일표:어야, 송마담, 그간 잘 살았는가비네. (최태풍을 보고)
어야, 이게 누구신가? 양키시장, 쌍칼아녀?
태풍:(날카롭게 쏘아보고)
금수:(허둥대며, 벌떡) 어서 오셔유. 그간 안녕하셨지유?
곽일표:긍게, 안녕허질 못허기사 허지만 내 이렇게 아직 멀쩡혀서 쬐께 놀랐는가? (최태풍 앞에 앉으며)
야가 내 아들잉께 잘 보드라고.
순경모자를 쓴 곽중근 금수와 최태풍을 쏘아보고. 금수와 최태풍은 순간 떫은 웃음. 금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최태풍은 젊은 순경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 마치 눈싸움이라도 하듯 최태풍과 곽중근 서로를 응시하고.
곽일표:야가, 이번 참에 경장으로 진급한 아들 중근이여. 아야. 인사혀라.
곽중근:(마지못해 고개만 까닥)
금수:(아부하 듯) 참말로 아들이 잘 생겼구먼유.(비웃듯 살짝 웃고)
곽일표:(거드름을 피우고) 어디 잘 생겼다 뿐인가, 중근 아녀, 중근. 거 독립투사 안중근의사님의 본을 받으라고 지은 이름 아닌 가비네. 이름값을 톡톡히 혀는구만.
곽일표는 거들먹거리며 껄껄. 순간 최태풍과 금수의 눈이 부딪히고.최태풍의 미간이 찌푸리고.
곽일표:간첩도 몇 명 때려잡았고.
태풍:(억지로) 축하혈 일이구먼유.
곽일표:앞으로 우리 아덜 덕을 좀 보아야 혀지 않것는가?
태풍:(비꼬듯이) 긍게유. 그럴 일이 있을까 모르것소만유. 암튼 이렇게 인살혀서 반갑구만유.
최태풍은 그 자리를 서둘러 벗어나고 싶은지 금수를 향해 찡긋거리고 일어선다.
곽일표:(아쉬운 듯) 바쁜가비네. 허기사 쌍칼혀면 감둑이고 양키시장통을 휩쓴다고 허든디 돈 많이 버소. 내 다음 선거에 쬐매 거들어 주고.
(미간을 오무르며 과장되게 나가는 최태풍을 향해.
어이, 플레이보이에서 한 번 봄세.
곽일표는 떠나는 최태풍의 뒤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최태풍은 못 들은 척 사라지고.
곽일표:.저 새끼 눈여겨봐라. 니 순경질 잘 혀야 헌다. 저런 놈은 사회의 악잉께, 알았제.
곽중근:(아버지 앞에 앉으며) 긍게, 저 놈이 사사건건 아버님 선거에 깽판을 치고 있단 말이지유.
곽일표:그뿐인가? 이쁜 가시나들을 빼가곤 헌다든디. 며칠 전에도 클럽에 나타나 깽판을 한 바탕 치고 갔다고 허더라. (목소리를 낮추고)
곽중근:긍께, 저 자식이 바로 그놈이군요. 누님이 성가셔 죽겠다고 허든.
곽일표:그려, 바로 저 깡패새끼라고 안 허드냐.
곽중근:(미간을 찌푸리며)긍게요. 한 번 손 봐줘야 쓰겄네요.
곽일표:(큰소리로)그랗께, 송마담. 앞으로 장사혀먹고 살려면 내 아들허고 알고 지나는 게 좋을 것 같여서 내 오늘 왔는디 여전히 최태풍, 쌍칼 저 놈허곤 사이가 좋은가비네.
금수는 섬뜩한 마음에 못 들은 척 애꿎은 화병의 꽃잎을 뜯어내고.
곽일표:그려, 아들, 그 뭐시더라, 종팔인가, 광팔인가는 감옥소에서 나왔는감?
금수:(놀라며) 그렸구먼유.
곽일표:조심혀라고 혀. 문제 만들지 말고. 빨간줄 달고 사는 놈들은 뭐가
하여간, 세상이 말세긴 말세여. 인력거 끌고 머리를 조아리던 놈이 큰 소리 치고 사는 세상이라니.
금수 부리나케 차디찬 오비맥주 두병을 곽일표 탁자위에 올려놓자.
곽일표:(부드러운 목소리로)자네 육자배기소리는 언제 들려 줄랑가?
금수가 맥주를 따르자 벌컥벌컥 마시는 곽일표 은근한 눈초리로
금수를 쳐다보며.
곽일표:아따 요 고상하지 말고 은마로 한번 나오소.
금수:(못 들은 척) 그나저나 요새 세상은 어뗘유?
곽일표:아따 세상이 시끄러운께 조심혀라는 것 아녀.
곽일표는 거드름을 피우며 금수에게 핀잔. 무엇인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곽일표는 표정으로 아들 곽중근의 눈치를 살피고. 곽중근은 아버지 곽일표를 향해 고개를 젖고. 금수는 그들 부자의 태도를 유심히 살피고. 아들의 태도에 곽일표는 뱉으려는 말들은 삼키는 듯.
곽일표:이왕지사 내 놓는 것 한 병 더 주소.
맥주 두병을 연거푸 벌컥거리던 곽일표는 썼던 모자를 내려놓고. 눈치 빠른 젊은 레지가 과일안주와 맥주 두병을 탁자로 더 가져오고.
때마침 시청소속 공무원 몇이 다방으로 들어오고. 금수는 핑계 겸 자리를 뜨고,. 곽중근과 시청직원들이 큰소리로 서로 아는 체를 하고. 덩달아 곽일표의 목소리도 커지고. 눈으로 금수를 쫒으며 금수가 듣든 말든 하고 싶은 사설을 한 참이나 늘어놓던 곽일표는 비틀거리며 일어서고 아버지 곽일표 뒤를 따라 나서기 전 곽일표의 아들은 다방 구석구석을 휘더듬더니. 곽일표는 아들 곽중근의 부축을 받으며 잠시 금수를 향해 야릇한 웃음을 흘리더니 문을 빠져나가고. 금수는 그저 지켜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까닥거리며 아버지를 앞세우고 나서는 곽중근의 어두운 뒤태 쳐다보다가 금수는 한 숨을 내쉬고.. 금수는 머리를 흔들고 불안한 표정.
74. 해망동 술집 안(밤)
종팔과 종대 술잔을 기울이고... 둘다 얼굴이 뻘개져..취한 듯.
종대:그때 그 자석 생각나는가?
종팔:(까닭모르겠다는 듯 종대만 쳐다볼 뿐..안주먹으며)
종대:아, 그때 말여. 우리 중학교 때 해망동 굴에서의 혈전.
(씁쓸하게 웃으며) 해결사 아니었든가비?
종팔:(쓴 웃음) 그랬던가?
종대:그 자석 있잖혀. 종팔 네 주먹 한 방에 뻗은 놈?
그 자석 빌빌 기었잖여. 그 자석, 독립군파 두목 말여, 갸 홀랑 벗겨 고것만 달랑달랑 달고 도망쳤잖혀.
종팔:(장면이 떠올라 실실 웃음)
종대: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여동상뻘 되는 가시나를 폭행혀서 본때를 뵈여 준다고 말여.
종팔:(고추를 씹으며) 그 자석이 뭐?
종대:글씨 얼마 전에 그 새끼를 해망동에서 만났는디.
(실실웃으며) 갸가 군산 경찰서에 근무한디야.
종팔:그랴서?
종대:그랴서는 뭣여, 그 때 그 시절 생각도 나서 그 자석하고 술 한 잔 혀야겄다고 생각혔는디. 글쎄 그 자석이 바쁘다고 핑계를 대드만.
종팔은 관심을 두지 않은 듯 연거푸 맥주잔을 들이키고. 그 뒤에도 한 참이나 종대는 뭐라 뭐라 그때의 일을 지껄였지만 종팔은 듣고 있지 않는 표정.
종대:혹시라도혀서. 다 어릴 적 눈에 뵈는 것 없었던 시절이긴 혔지만.
그 자석, 지가 뭐 독립투사 안중근이라도 되는 양, 그 이름 뭐냐? 그려 독립군파였지. 미면의 독립군파.
종대는 재미있다는 듯 껄껄 대며 한 참을 웃고
종대:갸,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몇 번 나왔다가 낙선했다지. 일재시대엔 다카끼란 이름으로 포악을 떨었다고 하더니만, 자석의 이름은 어찌 안중근의 이름을 따 중근이로 지었을까? 다들 웃더구만.
75. 해망동 굴(밤 늦게 자정 전)
희미한 굴 속. 종팔이 비틀거리며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를 부르며
종팔:(혼잣말로)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자조의 웃음) 그려, 집으로 가고 있는가비.
우리 엄니가 있는 집 아닌가벼.
나 같은 인생이 태어나긴 왜 태어난 것인감?
막 해망굴을 빠져 나오자 순경 둘이 종팔 앞에 서서
순경1.이봐요, 아저씨.
종팔이 다른 사람을 부르는 줄 알고 뒤돌아본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순경 둘이 종팔에게 다가서며 양팔을 걸고. 얼결에 양팔을 잡힌 종팔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세차게 몸을 흔들고. 흔들수록 잡힌 팔이 옥죄며 둔탁한 무엇인가가 머리를 내리치고. 잠시 종팔은 정신을 잃고.
76. 유치장안 (새벽)
까까머리부터 육순 노인네까지 열 명 남짓한 사람이 앉아있고.
종팔이 어떨떨한 표정으로 휘 둘러보다가 유치장 창살에 대고 소리소리지르고. 아무도 나타나지 않고. 최태풍 가부좌 틀고 앉아있고.
태풍:고만혀.
종팔:(깜짝 놀라 뒤돌아보고) 아니, 무슨 일로다?
태풍:뭔 일인가는 아침에나 알 것잉게. 야들이 알아보고 있으니 진을 빼지 마라니께.
흔들리지 않는 최태풍의 표정, 종팔은 다소 안심하는 표정.
77. 경찰서 밖 계단
곽일표와 곽중근 계단에 서있고 그들 주위로 데, 여섯 구경군들.
총을 든 순경들의 호위를 받으며 20여명 넘는 사람들이 수갑을 찬 채 군용트럭에 태워지고, 종팔과 최태풍이 섞여있고.
태풍:(곽일표와 곽중근을 쳐다보며) 저 씨팔 개새끼.
최태풍은 트럭에 태워진 후 밖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고. 최태풍은 두리번거리고. 종팔 또한 불안한 눈초리로 최태풍의 시선을 쫒고.
CUT TO
군용트럭은 덜컹덜컹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둘러싼 포장사이로 언뜻 보이는 팻말에 ‘횡성’이라는 글자. 석양이 질 무렵, 차가 멈추고 도착한 곳은 인적이란 전혀 없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하늘 만 보이는 산속. 거제도 포로수용소와 같은 으스스한 풍경. 족히 500명은 넘을까 생각되는 무리들이 이미 운동장을 차지하고 있고. 도착하자마자 군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깎이고 지켜야할 수칙에 대한 훈시를 받은 후 곧바로 훈련에 돌입. 주로 P.T 체조. 종팔은 견디는 표정. 최태풍은 땀범벅이 되어 행동이 굼뜨고. 최태풍을 향해 훈련조교의 개머리판과 군화발이 날아오고. 최태풍에게 날아드는 군화발의 충격이 그대로 종팔에게 전해져 종팔은 마치 자기 몸에 맞기라도 하듯 깜짝 깜짝 놀라고. 그들 조교 속에 필대가 보이고. 필대를 알아차린 종팔 깜짝 놀라고. 최태풍은 필대를 보지 못하고 전전긍긍. 땀 범벅. 살기등등한 필대 모습 오버랩...
78. 삼청교육대(낮)
화장실 뒤 몇몇이 모여 바닥에 나둥그는 꽁초를 주워 피우는 훈련생들. 파주 변씨가 “꿀맛이구먼.” 뇌까리자. 꽁지만 남은 담배꽁초를 한 모금씩 번갈아 피우는 장면. 최태풍 입에 담배꽁초를 물리자 최태풍 손사레. 종팔 찡그리며 그저 멍청하게 앉아있고.
거제강씨:아따, 딱 한 모금 남아 뿌렸네. 인심도 참 야박하게.
(최태풍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자네 어디서 왔나?
최태풍:(묵묵부답)
거제강씨:(바짝 최태풍에게 다가가) 자네 혹시 거제출신 아닌가비?
최태풍:(묵묵부답)
거제강씨:(이리저리 최태풍을 살펴보며) 이것이 말여. 자네랑 나랑 똑 닮지 않았는가? 혹시나 혀서 말인디. 자네가 잃어버린 내 쌍둥이 동상 같은디.(좌중을 훑어보며) 안그런가?
모인사람들 고개를 갸웃, 끄덕.. 종팔과 최태풍은 그저 무관심.
필대:154번
종팔:(벌떡일어나며 놀란다.)
필대가 담배 한 보루를 던져주고 가고 최태풍 곤혹스럽게 필대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남은 사람들 담배를 서로 가지려고 아우성대고.
최태풍:(나직히 종팔에게) 갸였어?
종팔:그러게요. 군에 못 박았다고 혀든디.
79.. 삼청 교육대 연병장(낮)
훈련병들이 P.T. 체조를 하고 있다. 반복되는 훈련 중에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담배 갑이 툭 떨어지고.
조교1: 누구야?
훈련병:(오돌오돌 떨고)
조교1:담배의 출처는? (윽박 지르고)
성큼 최태풍이 앞으로 나서자.
조교1:뭐야, 이 쓰레기 깡패 새끼가.
무자비한 조교의 발길질이 최태풍을 쓰러지고. 그야말로 묻지마 폭행. 아무리 발길질에 개머리판에 채어도 최태풍은 끝내 필대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거의 죽을 정도로 얻어맞은 최태풍을 눈앞에서 바라보는 종팔은 하마터면 필대의 이름을 외칠 뻔. 최태풍이 맞는 사이에 종팔을 향해 손사래를 치고 종팔은 고개를 끄덕. 주먹 같은 눈물이 종팔의 얼굴에서 떨어지고. 종팔은 불끈 주먹을 쥐고. 공포에 질린 얼굴들...
시체처럼 널브러진 최태풍을 감싸는 종팔, 종팔 위로 구둣발이 쏟아지고.
종팔:차라리 불지 그랬어유?
태풍:글면 갸는?
멀리서 일그러진 표정의 필대. 눈에선 땀인지 눈물인지 쏟아져 내리고.
80. 유치장(새벽)
종팔과 최태풍이 수갑에 찬 채 둘만 있고. 허연달빛에 최태풍 억지로 일어나며 부은 얼굴로 종팔을 지긋이 쳐다보고.
태풍:(담담하게) 야, 미련한 자석아. 니라도 살아서 나가야지 난, 이제 더 이상 못 견디겠다‘
유치장 문 따는 소리에 종팔, 태풍 놀라며. 필대가 들어오고.
필대:형님.
최태풍도 종팔도 대답하지 않고.
필대:형님, 죄송혀유. 지도 착출되였지유. 처음에는 형님이랑 종팔이를 못 알아봤지유. 근데. (울먹이며) 세 사람씩은 때려죽이라는 명령이 떨어 졌지유.
태풍:(담담한 목소리로) 군이 아닌가비.
필대:독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시유. 지들도 상급조교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있구먼유. 일 계급 특진이 걸려 있응께 모다 눈에 불을 켜고 있구먼유.
태풍:(나직이 나무라 듯) 그려도 사람 새끼들 아닌감?
필대:긍게요, 형님.
태풍:야, 사내새끼가 눈물을.
필대:형님, 죄송혀유. 꼭 살아서 나가셔유.
필대는 한 참을 주억거리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가고. 필대가 나간 자리에 은하수 담배 한 보루와 안티푸라민이 놓여 있고.
81. 숙소(자정무렵)
종팔 옆, 최태풍 누워있고. 바짝 종팔 옆으로 붙으며 소곤소곤.
태풍:종팔아, 안 되겄다.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어차피 죽은 목숨잉께. 나 탈출혀야겄다.
종팔:그러다 무신 일이 나면유?
태풍: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날 튀어야겠다. 그런 날은 경계가 좀 느슨허지 않겄어. 마지막으로 필대에게 부탁혀야 겄다.
종팔, 아무 말도 못하고...뒤척인다.
CUT TO (며칠 후 눈보라치는 칠흑 같은 밤)
태풍:필대가 손을 좀 써놓았다고 혔어. 그랴도 갸 밖에 없드라.
꼭 다시 만나자.
최태풍 빠져나가고 종팔 그대로 누워있고. 5분쯤 지나나 우당탕 거리는 발자국 소리. 총성소리. 무리들 밖으로 우 하고 몰려가고. 연병장에 서치라이트 불빛이 휘황하고 연병장 철조망 한 가운데 최태풍 같은 인물이 서서 무엇인가 소리치는 가 싶더니 총탄이 울리자 소리 없어지고 서치라이트 거지고 군인들이 교육생들을 위협하며 다시 잠자리로 가라고 몰고 들어가고. 다시 조용해지고..그러다 이쪽 저쪽에서 숙덕거리는 소리.
훈련생3:거제 강씨도 사라졌는디.
82. 종팔의 신흥동 주택(낮)
종팔이 방안에 누워 멀건 눈으로 천장 응시.
CUT TO(.종팔의 회상)
태풍:그 씨팔 놈의 영감, 곽일표, 그 놈의 새끼. 곽중근. 잊지 말거라.
공숙희와 이영순이 근무하던 ‘플레이보이’라는 클럽의 주인이었던 곽일표의 아들, 곽중근. 공숙희의 친구 이영순 사건 당시 불같이 일어났던 데모대를 향해 사정없이 곤봉을 휘두르던 얼굴. 중학 시절 종팔이 옷을 벗겨 쫒아냈던 미면의 독립군파. 곽중근
태풍:종팔아, 혹시라도 내가 죽으면...”
(목이 메인) 내 복수는 니가 해라.”
깜치, 공숙희 그아네 식구들을 한 번 찾아가봐야 안쓰겄나?
곤혹스런 얼굴 종팔, 뒤척이고...
83. 월명 체육관 실내(낮)
복싱연습을 하는 사람들..종팔 절룩거리며 스파링...
필대가 평상복차림으로 들어와 종팔을 찾고 ...
필대:괜찮은가?
종팔:(깜짝 놀라며)어어!!
필대:가야할 곳이 있는디.
다짜고짜로 종팔을 부축해 밖으로 나오고, 노란 포니승용차에 종팔을 태우고.
필대:이잔 택시운전이라도 혀서 먹고 살아야겄어.
84. 차안
필대: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는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차창을 통해 금강이 보이고 보릿대가 막 누렇게 익어가고 있어가고 언뜻 ‘익산’이라는 푯말이 스쳐지나가고 숭림사란 절의 팻말이 가까이...
필대:이곳 주지스님이 형님의 오랜 지인이싱께.
차는 숲속으로 느리게 방향을 틀고 울창한 벚꽃나무들이 빼곡 진한 잎을 달고 그늘을 내리고 있고 숭림사라는 사찰의 현판이 보이고 제법 오래되었을 법한 사찰의 담 너머로 파릇파릇 짙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다. 오랜 세월의 깊이를 품고 있었던 사찰은 규모도 작고 일주문조차 없고.
85. 숭림사(낮)
차가 멈추고 필대와 종대 내리고. 곧장 필대가 사찰 안으로 성큼 걷고 종팔 절룩거리며 필대 뒤를 따르고. 열어젖힌 불당을 모신 건물을 비껴 익숙한 듯 필대는 곧장 스님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직행. 멈춰서.
필대:형님, 종팔이 왔는디요.
방문이 열리고. 종팔은 어두운 방안을 응시. 사람의 형태.
태풍:그려. 어서들 와.
종팔:( 놀란 표정)
필대는 종팔이 높은 마루로 올라설 수 있도록 손을 잡아끌고.
태풍:그려, 이자 몸도 좀 추스렸는가?
나여.
혼이 빠진 종팔. 필대에게 이끌려 방바닦에 앉으며 태풍 확인.
태풍:(담담하게) 나 대신 총알받이가 된 것은 거제 강씨였어.
그려. 목숨을 담보로 꾸민 일이었응께. 거제 강씨헌티는 목숨 값을 빗진 셈이지만.
이자 몇 달은 더 몸을 추슬러야겠구먼. 그동안은 필대를 필두로 조직을 재편혀야 쓰겄어. 혀서 조카를 부른 것잉께. 필대를 좀 도와주라고. 복수도 혀야 것고.
종팔:형님, 죄송협니다. 지는 지 계획대로 살아야 것 씁니다.
필대:그런가. 그려도 형님이 이리 되셨는 것은?
태풍:아니여. 그럴 만도 혀. 야는 그럴만도 혀.
최태풍 시선 멀리 숲으로. 종팔은 고개를 숙이고. 한 참을 묵묵.
태풍:그려, 니가 혀. 혼자서라도 조직을 재 정비혀. 백안관파 야들이 내 없는 틈에 조직이 커지고 있다고 혀니. 니가 제동을 걸어야 안 쓰겄나?
종팔:죄송혀요.
86. 군산으로 돌아오는 필대의 차안.
필대:형님 말씀대로 몸을 잘 돌보아야 쓰겄다. 대신 복수는 우리가 혈게
87. 아네모네 다방 (밤)
아네모네 다방 앞. 휘황찬란한 영화동 불빛아래 이름뿐인 아네모네의 깨진 간판. 희미한 간판 아래서 종팔은 멈칫거리고. 담배 몇 개비를 피우며 망설이는 모습. 종팔이 문을 열고 다방 안으로. 어두 컴컴한 다방. 손님이 없고. 종팔이 들어오는 모습을 확인한 금수,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며 스친 물컵이 떨어져 깨지고. 금수 앞에 낯선 사내가 앉아 있고. 종팔, 의아해 금수를 쳐다보고.
금수:우짠 일여?
어머니 금수 당황한 모습에 종팔 멈칫거리다 다시 나가려고 몸을 돌리자 금수가 서둘러 와 종팔의 팔을 잡고.
금수:이리 와 봐라.
종팔:(고개를 돌리고 의아한 표정)
금수ㅣ아버지이시다.
종팔:(멘붕)
금수:앉아봐라.
종팔 뚫어져라 어정쩡 서 있는 사내를 바라보고. 상대 또한 종팔 응시.
종팔:무신?
금수:이분이 아버지이시다.
금수가 종팔의 손을 끌어 남자의 손에 쥐어 주고. 상대는 잠자코 종팔의 손을 쥐고. 남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고. 남자는 종팔의 손을 자꾸 쓰다듬고.
금수:그만 앉거라.
남자가 종팔의 손을 놔주고. 종팔은 의자에 앉으며 탁자 위에 놓인 물 컵의 물을 들이켰고 금수가 재빠르게 다시 물을 채우고 종팔은 벌컥벌컥 몇 잔을 더 마시고.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어머니 금수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다섯 잔의 물을 마시고나서야 종팔은 의자를 끌어당기며 바짝 몸을 곧추세우고.
겐조:(서툰 한국말로) 종팔?
금수:내가 죄인이다. 한 번도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못혀서.
(울먹이며)그려. 친부여. 해방 나던 해에 널 낳았고. 네 친부는 일본사람이었고. 바로 이분이시다. 모다 일본놈의 핏줄이라고 헐까봐 내 말헐 수 없었으니께. 그랴, 고석동이 아버지라고 생각혔지. 차마 아니라고 말 못현 것은...겐조, 네 친부가 해방 나던 해에 갑자기 일본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본사람들이 쫓겨나던 판국이었으니께. 그 뒤 고석동이 너와 나를 거뒀다. 그땐 입에 풀칠할 형편도 아니었응께. 언젠가 세상 물정을 알 때쯤 말혀야지 혀야지 하며 살았었는디. 말하기 쉽지 않은 세월이었지 않았것냐?
INS
종팔 이북에서 만났던 고석동 생각. 경찰에서 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취조 받던 영상 오버랩...
88. 월명산 조각 공원 (달빛이 훤한 밤)
소쩍새 우는 소리. 겐조 사미센을 앞에 두고 앉아있고. 금수는 한복차림으로 서있고. 겐조가 소리를 내자 어머니 금수가 학이 춤을 추는 것 몸짓을 했다. 종팔 금수의 춤을 넔놓고 보다 눈물 흘리고.
금수 춤을 끝내고 종팔을 안고 울고. 겐조 금수와 종팔을 안고 울고.
89. 종팔의 방(자정 무렵)
종팔 누워있고. 어렴풋이 한국말과 일본말이 섞인 소리 들리고.
한참을 뒤척이다 잠드는 종팔.
90. 아네모네 다방.
택시에서 내리는 종팔, 금수. 겐조. 다방 안으로 들어간다.
셋이 탁자에 앉고 레지가 물컵을 가져오고...물을 마신다.
금수:그렇게 너른 땅이 구로즈미의 땅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종팔:(흥분해서)죄다 생각 나셨는가 봐유?
겐조:(고개를 끄덕인다. 심각한 표정) 나와 함께 일본으로 가지 않겠나?
금수:(놀란 후에 뜸을 들이다) 그랴, 우리 함께 일본으로 가자.
종팔:(겐조와 금수를 번갈아 보다가)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구먼유.
겐조:(천천히 종팔을 다시 바라보고) 잘 생각해보고.
종팔:(금수에게)
어머니, 그랴도 지는 이곳을 쉽게 떠날 수는 없을 것이구먼유.
금수도 종팔도 긴 한 숨.
91. 월명 체육관( 오후)
이쪽저쪽에서 수근대는 사람들...종팔 의아한 표정.,
체육관장:자자,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운동들 혀자 잉.
회원1:관장님 친구 아니신교?
체육관장:글치. 초등핵교 같이 나오지 않았나.
회원2:우짜다가 그렇게 된 것인지, 원.
체육관장:뭘 어쩠것어. 갸가 국회의원 몇 번 떨어지고 가세 탕진혀고 후처 자살하고 마누라 능쌀에 몰려 술을 원청 마셨구먼. 어제도 술마시고
자전거 타고 오다가 논두렁에 넘어져 죽은 것이여.
회원1:그것이 아니라고 허든디유.
회원2:그려유. 깡패들이 복수 헌 것이라고 허든디. 지금 수사중이라도만유.
체육관장:남의 애기 글케 함부러허면 안되니께 얼릉 운동이나 허세.
곽중근 체육관의 문을 제키고 씩씩거리고 들어오다 종팔쪽으로.
곽중근:(종팔의 멱살을 잡고) 어제 행적을 말혀 보드라고.
종팔:(캑캑거리고)
체육관장:(황급히 말리며) 체육관 시합이 있는 날이어서 야도 익산에 있었는디.
곽중근 좌중을 훑어보니 회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종팔 주저 앉아있고. 곽중근 씩씩대며 사과도 없고 그대로 나가고.
92. 종팔의 신흥동 집(이른 아침)
잠자리에 있는 종팔. 대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경찰1:고종팔이 여기 삽니까?
금수 나가는 소리.
금수:일요일인데 무신 일인가?
경찰2:고종팔씨가 예 살죠?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경찰이 대문을 확 열고 집안으로. 방문열고
종팔을 확인하자 다짜고짜 수갑 채우고, 속옷차림 종팔 끌려나오고.
종팔도 금수도 발악하고. 경찰차에 태우고 사라지는...
92. 전주 보안대 취조실(밤)
몇날 며칠 고문에 시달린 종팔 모습. 종팔 앞에 앉아있는 곽중근.
자술서를 쓰는 종팔.
곽중근:그만 되얐써. 순순히 받아쓰면 그것을 끝여.
CUT TO
재판정에서 종팔은 납북귀환어부로서 국가기밀 탐지. 수집 및 찬양. 고무 행위로 10년형을 언도받는 장면.
93. 최태풍 사무실.
최태풍과 금수 마주보며 앉아있고.
태풍:누님 지가 자세한 것을 알아보았는디. 긍께요. 갸가 이북에 납북될 당시부터 간첩질을 혀고 이번에 일본에서 겐조라는 조총련이 다녀 갔담시유. 그 일을 미끼로 갸들이. 다카끼 곽일표 새끼 곽중근이란 놈이 갸를 취조혔다고 혀든디요 .뭣인가 야로가 있음이 틀림없구먼유.
금수:(사색이 되어)그 야가 무슨 오해를 현거 같은디. 지 애비가 죽었을 당시 어떻게 알았는지 종팔이 운동하는 체육관까지 찾아와 설랑은 큰소리를 치고 가만 안 두겠다느니 어쨌다느니 하였다드만.
최태풍의 얼굴이 어두워지고 금수가 연신 눈물을 훔치고.
94. 신흥동 금수의 주택(오후)
금수 아픈 듯 누워있고. 밖에서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 들려도
꿈쩍도 안하고...한 참을 듣다가 겨우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심재술:(뾰족 대문 위로고개를 들어올리며)송금수씨 계신가요?
금수:(짜증 밴 목소리로 대문도 열지 않고) 지가 송금순디요.
심재술:(공손하게)죄송혀요. 선생님.
금수:(대문을 열며) 누구신디요?
심재술이 금수가 대문을 열자마자 덥썩 금수를 안는다. 금수 깜짝 놀라 심재술을 밀치며. 심재술 뒤로 넘어질 뻔. 휘청.
심재술:죄송해요. 선생님. (명함을 건넨다)
명함을 받아들고 가늘게 눈을 뜨며 금수가 ‘전통예술연구가 심재술’을 보며 얼떨떨해 명함과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고.
심재술:선생님을 오래도록 찾아다녔습니다. (신문조각을 꺼내 읽는다.)
겹겹 고운 한복 차려입고 앞가르마를 가지런히 탄 정수리 끝에 가야금처럼 비녀를 꽂은 송금수는 한 마리 나비였다. 어깨위에서 머리끝 사이를 미세하게 움직이며 자드락길 걷듯 오르내리는 섬섬옥수, 시나위 선율을 탄 외씨버선은 우화등선의 경지였다.
심재술이 읽던 오래된 신문조각을 금수에게 내밀고. 금수 가늘게 뜨고 신문지를 들여다보고.
심재술:요것땜시 그동안 선생님을 찾아 다녔지요. 동아일보 방일선씨의 기사. 직접 그분을 통해 선생님이 군산에 계실 거라는 소문만 듣고 지난 몇 년 만에 선생님을 이렇게 뵙는 것이죠.
금수:(단호하게) 지는 이자 춤 안 춥니다.
심재술:선생님, 선생님의 춤은 대한민국에서 제일입니다.
금수:내 춤을 보기라도 했단말이요?
심재술:그런 것이 아니라요, 선생님. 곧 있으면 올림픽이 열리거든요.
선생님 춤이 필요허구먼요. 대통령이 그러라고 시켰지유.
금수:(놀라며) 대통령이라구유?
심재술:(변명하듯) 직접은 아니구유. 올림픽에 앞서 우리문화를 키우자
뭐 그런 야기지요.
금수:그럼. 내 한가지 부탁이 있소.
심재술:말씀만 하세요. 춤만 추신다면야.
금수:시방 우리 아들 고종팔이 감옥소에 있는디 꺼내줄 수 있소.
심재술:그럼유, 그럼유, 힘이 되어줄 수 있지요.(너털웃음을 웃고)
95, 국립국악당 우면당(오후)
세계명인열전 프랭카드. 공연장 가득 관중. 대통령과 부인도 앉아있고. 금수가 무대에 나와 춤을 추고. 춤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불이 꺼지고. 이곳저곳에서 소란.
금수:꿈아 꿈아 무정한 꿈아 오시는 아드님을 보내는 꿈아. 오시난 아드님을 보내지 말고 잠든 나를 깨워를 주지. 언제나 보고 잡은 아드님을 만나서 이별 없이도 살거나.(육자배기)
어둠 속에서 웅성거리던 관중석은 점점 조용해지고 멈추었던 고수의 북소리가 다시 울리고. 곧 불이 다시 켜지고 관중들 우레와 같은 박수. 사과방송 나오고.
96. 청와대 만찬장.
일본, 중국, 한국의 명인들 식사 중. 심재술. 금수 등등..
대통령 비서가 심재술에게 속닥 거리고. 심재술 금수 대동하고
대통령에게. 대통령 금수 손을 잡고 의자에 앉히고...
대통령:사연이 있으시다구요?
금수:(망설임없이) 우리 아덜이 시방 감옥소에 있구만유.
억울한 누명을 쓴 아들이 생각나 노망이 난 것이지유.
대통령:(비서에게) 송금수여사님 아들 건을 조사해보고...
금수:(벌떡 일어서더니 갑자기 대통령에게 큰절)
97.최태풍 사무실
최태풍과 종팔 둘만 앉아 있다.
종팔:그란데 묻고 싶은 말이 있구먼요.
태풍:(종팔을 지긋이 쳐다만 보고)
종팔:혹시 곽중근과 지 간첩누명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것인가요?
태풍:(한 참을 망설이다) 고것이 갸가 오해를 헌 듯 싶은디.
종팔:무슨 오해를? 갸 아버지의 죽음을 지와 연관 시켰는가요?
지를 마지막에 취조하고 진술서를 쓰게 한 놈이 누군 줄 똑똑히 기억하고 있구만유.
태풍:긍께. 내도 아들한티서 들었는디.
종팔:(유심히 태풍을 살피며)혹시라도 곽중근 아비의 살인 사건에 지가 관계되어 있다고 갸가 생각헌 것은 아닐까요?
태풍:(종팔의 눈을 피하고)
종팔:(다구치며) 참말로 그런가유?
태풍:(묵묵부답)
종팔:(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혹시라도 형님이 그 양반을?
태풍:(짜증난 얼굴) 고것이, 그 때 알다시피 내는 사찰에 있었응께.
종팔:(뚫어지게 태풍바라보며) 그렇다면 필대 가요? 형님 대신?
참말로 그런 것인가요? 헌디 애먼 내가 감옥에 간 것이구만유.
분노의 불길에 종팔의 목소리가 떨리고. 최태풍은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태풍:고것은 살인사건이 아니었다고 한께. 결론 났잖혀. 썩을 놈의 영감태기가 술 처먹고 골로 간 사건으로.
태풍:이자 어짜것냐?
종팔:(주먹을 쥐고 부르르)
태풍:10년 언도에 7년. 이자 엄니 덕분에 풀려 났응께. 엄니 위해 살아야지. 누님 고상 고만 시키고.
종팔:(분노로 일그러진 얼굴)
태풍:그러지 말고. 양키시장에서 장사혀라.
누님이 니 없는사이 명인이 되야서 번 돈으로 점포하나 샀다.
이자 장가도 들고.
98. 양키시장내 종팔의 가게(낮)
종팔의 가게 라디오에서 팝송 흘러나오고. 가게 안은 온통 카세트 테이프. 엘피. 라디오. 스피커등의 음향기기 쌓여있고. 한쪽에 기타보이고. 노래책도 있고. 옆 옷가게 장씨와 종팔 나란히 앉아있고
장씨:내 그 때 시절이 눈에 선혀. 선혀. 피난와서 입에 풀칠혀기 힘들어서 먹고 살려고 시작헌 장산디. 아들 딸 대학갈치고 시집, 장가 보
내고 이렇게 나이 먹었응께. 손님 없어도 이잔 괜찮혀. 먹고 살기 이만혀면 되얐고. 이자 사람구경 헐라고 나와있응께.
종팔:그려도 일케 사람 코빼기도 보기 힘들어서야. 지 같은 사람들은
목이 거미줄 치겄써유.
장씨:긍게. 예전 감도가에 감이 수북히 쌓여 있을 땐 이러지 않았는디.
감도가 옆으로 계림이라는 양조장이 있었거든. 양조장이 생기자 근처에 하나둘 대폿집이 생겼는디. 특히 '연화네'라는 대폿집은 유명혔어. 주인과부가 딸을 하나 델꼬 장사혔는디. 그 딸 이름이 연화였어. 간판도 없었는디 그냥 손님들이 과부가 딸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렇게 부른 것잉께. 손님들이 그 과부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겠다고 난리 부르스 였당께. 워낙 미인이었응께. 요샛말로 미스코리아 깜이었지. 아니 배우 문희보다도 예뻤으니께.
종팔:어르신도 가끔 목도 축이셨겠구먼유.(실실 웃으며)
장씨:그렸지. 통금 전에 잠깐 들렀다 갔응께. 막걸리 한 사발이면 하루 피로가 다 풀렸으니께. 근디 연화네라는 대폿집이 미어터지자 하나 둘 대폿집대신 유흥주점이 들어섰당께. 방석집인 셈인디, 어느 사이 남새스런 여자들이 옷을 훨훨 벗고 손님을 기다리더라고. 감둑에 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시절엔 사람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았지. 처음엔 눈요기하기도 좋았고 사람들이 더 많이 왔다 갔다 했으니 우리덜 주머니도 더불어 두둑혔으니께.
종팔:그때 돈 다 모으셨것어유?
장씨:그렸지. 푸대에 담아갔고 가는 날도 있었으니께. (농담처럼 웃고)
근디 고것이 끝이 없는거였어. 사람들을 유혹하는 색시들로 치장된 술집이 우후죽순처럼 번져 여느 도시처럼 집창촌이 되고 만것이제. 수많은 홍등들이 깜박거리며 오가는 이를 유혹하곤 혔어. 내도 가끔은 구경삼아 들락거렸지만. 그 시절이 눈에 선혀구먼.
99. 양키시장 종팔가게.(비오는 대낮)
종팔 혼자서 기타를 튕기며 나직히 노래부르고 있고. 어느 새 옆 쉬파리 골목 늙은 아가씨 둘이 종팔 앞에 턱을 괴고 앉아 노래 감상 중.
아가씨1:종팔 오빠. 한 곡 더혀봐. 김현식 노래. 그 노래 부를 때 오빠가 제일 멋져.(애교 작살)
종팔:(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기타에 치며 노래 부르고)
연화:(지긋이 감상하다 노래 끝나자 감탄하며 박수 치고)
종팔:(연화에게 눈길 주다가)
INS연화의 얼굴위에 공숙희의 얼굴이 오버랩 되자 종팔 고개를 젔고.
100. 양키시장내
하나, 둘씩 가게 셔터 내리고 있고. 종팔도 셔터를 내리는 중.
시장상인1: (호들갑 스럽게)사건여. 사건.
일제히 시장 상인들이 집중하자
시장상인1:조연화여. 수정궁 조연화가 시방.
사람들 우루루 수정궁 쪽으로 몰려가고 종팔도 ...
수정궁 앞에 덩치가 산만한 깡패차림의 사내가 조연화를 때리고 있고. 사람들이 소리지르며 그 주위에서 구경만 하고 있고. 조연화 널브러져 있고. 구경꾼 사이로 종팔이 끼어 들여다보다가 사람들을 헤치고 나가 절룩거리며 사내를 향해 발길질과 주먹질. 종팔과 사내가 몸을 엉겨 붙고 엎치락뒤치락. 조연화 눈물진 얼굴로 종팔을
쳐다보고 종팔과 순간 눈길이 부딪히고. 사내가 종팔을 면상을 향해 주먹을 날리자. 종팔 간신히 피하고. 종팔 밑으로 사내가 깔리고 종팔 사내를 향해 사정없이 주먹을 날리고. 구경꾼들이 환호성 지르고. 깔린 사내 간신히 일어나 줄행랑치고. 아가씨 하나가 조연화를 부축해 수정궁으로 들어가고. 종팔 툭툭 옷을 털고. 얼굴에 피나고. 절룩거리며 사라지고...
111. 종팔의 양키시장 가게.
태풍과 종팔이 앉아있다.
태풍:조심혀야 쓰겄다. 백안관파 새끼들이 널 노리고 있다 허든디. 뭘라고 끼어 들었냐?
종팔:(가게 물건 배열..딴청 부리고)
태풍:니는 우리 그랜드파가 아닌디. 갸들은 니를 우리 그랜드파라고 생각혀나 보드라.
종팔:(묵묵부답)
태풍:우리도 조심혈팅게.
최태풍 흘끗 종팔을 한 번 보고 멀어져간다. 태풍이 가고 옆가게 장씨가 종팔 가게로 들어오며.
장씨:갸가 빚이 좀 있던 가빈디. 여유 있으면 빚 갚아주고 데꼬 살아보면 어뗘?
종팔:(뜬금없다는 듯 장씨를 쳐다볼 뿐)
장씨:긍께. 연화 갸가 바로 그 연화 아닌감?
종팔:(호기심을 보이며)
장씨:긍께. 그 대폿집 연화가 바로 저 연화랑께. 갸가 지 엄니 따라 당시 경찰서장이었던 곽씨네 미면 본가로 지 엄니 따라갔지. 지엄니가 첩으로 들어간 모양인디. 몇 달 안 되어. 지엄니가 자살혔디야. 그 집에서 온갖 구박 다 받고 컷는디 초경 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부터 곽씨 큰 아들. 그러니까 지금 경찰 서장 곽중근에게 폭행을 당혔다고 허드만. 그랴서 아를 가졌는디 곽일표 각시가 양잿물을 먹여 애를 떼고 쫒아냈디야. 그 뒤로 술집 전전하다가 이리로 온 것 아닌감. 갸 팔자도 참 기구혀구먼. 지 엄니 팔자 맨키롬.(목이 메이는 듯)
종팔:(웃으며 고개를 가로 젓기만 할뿐)
112: 양키시장 종팔 가게(낮)
젊은 상인하나가 뛰어 오다가 종팔 가게 앞에 멈춰서.
상인:소문 들으셨어유?
종팔:(의아한 듯 쳐다만 보고)
상인:(종팔 가게로 들어오며) 그랜드가 일망타진 되었데유. 쌍칼 최태풍이파가 백안관파헌티 당혔더드만유.
종팔:(걱정스런 표정) 차분히 말혀보세.
상인:고것이유. 군산 경찰서장 곽중근 헌티 모두 잡혔디야유. 아편 소지한 혐의로다유. 줄줄이 그랜드파가 엮어 들어갔다고 혀드만유. 쌍칼만 빼놓구유. 쌍칼은 그때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고 혀드만유.
장씨 신문을 들고 종팔에게 뛰어오고 종팔에게 신문을 보여주고
신문에 ‘군산 아편 밀수 사건’ 대서특필되어 있고.
113. 종팔 신흥동 주택(밤)
종팔과 금수 최태풍이 앉아있고. 술상 차려있고.
종팔:(태풍에게 맥주를 따라주며) 몸 조심혀야 쓰겄어유.
태풍:(꿀걱 마시고)
그려 조심혀야 것다. 어머니 계시니 니는 조심혀야혀.
금수:그려, 동상. 동상도 나이를 생각혀야지.
태풍:(서류봉투 하나를 내밀며) 누님, 이것을 맡아주소.
종팔, 금수 어리둥절.
태풍:(비감한 표정)
혹시라도 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누님이 종팔에게 전해주소.
금수:(서류봉투 잡으며)동상. 우리 함께 오래도록 이렇게 지내세.
태풍:(만감이 교차하는 표정) 참말로 누님, 지는 열여섯. 누님은 스무 살 안쪽이었을 당시의 그 일을 평생 잊지 않고 살았구먼유.
종팔 슬그머니 일어나 나가고.
금수:생각혀보면 동상과의 인연도 보통이 아니었구먼. 자석 빼고 내 곁을 늘 보아준 것도 동상뿐인 것 같은디.
태풍:지에게도 누님은 어머니였고 누님이었고 애인이었당께유. 남새스럽지만 누님은 제 영원한 빨간 아네모네였으니께유.
최태풍이 희미하게 웃고. 금수도 피식 웃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 들리고. 금수 낮으막이 ‘가슴아프게’ 노래 부르고...최태풍 젓가락 장단 맞추고.
114. 종팔 신흥동 주택(아침)
금수와 종팔 아침 식사중.
종팔:흠 있는 여자지만 데꼬 살아야겠습니다. 어머니가 이해하소.
금수:(놀라 숟가락 떨어뜨리고 종팔만 한 참을 쳐다보다가 )
그려. 한 번 델꼬 와봐라.
종팔:이따 점심 먹은 후에라도.
금수:알았다.
CUT TO (오후)
노란 물방울 원피스를 입은 조연화가 금수 앞에 앉아있다.
금수:그려서, 혼자 왔냐?
연화:같이 올려고 혔는디 손님이 온다는 연락이 와서.
금수:(고개 끄덕이다가 연화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이름이 무엇인가?"
연화:조연화라고 혀요.
금수:(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연화라, 조연화.
그랴면, 부모님은?
연화:지 아버지는 그냥 조씨라고만 알고 있구요.
지 어머님은 김자 연자 숙자되는 분이셨구먼유.
금수:그랴면 혹시 조연화라는 이름은?
연화:지 엄니 말로는 지 큰이모의 함자를 따서 지 이름을 지었다고 혔는디.
금수:(깜짝 놀라며) 그러면 외갓집이 해망동 말랭이 아니었든가비?
연화:(더 놀라며) 어떻게 그걸?
금수:혹시 이모님이 기생 아니었든가비?
연화:그렸다고 들었는디 지는 이모님의 얼굴도 한번 못 봤으니께요.
금수:(감격하며)그려. 참말로 니 얼굴에 연화, 바로 연화의 얼굴이었구먼.
부모님은 은제 돌아 가셨는가? 형제자매들은 없는가?
연화:(망설이다가) 지 엄니는 감독 근처에서 막걸리집을 허시다가 지 여덟살 때 미면 군산 경찰서장 첩실로 들어갔구먼유. 근디 농약을 먹고 자살을 혔고 지가 오갈 데 없었는디 식모살이 하는 것처럼 살았지유. 초경무렵 그 댁 큰 아들에게 폭행을 당혀 아를 뱄는디 그 집 마님이 애를 떼게 하고 쫒겨내서 술집을 전전하다 수정궁까지 오게 되었는디.
금수:그려. 네 사연은 내 충분히 알았으니께. 차후로 네 과거는 더 묻지 않겄다. 하나만 약속혀라. 이자부터 절대 냄편 종팔에게 니 과거 어찌 살았는가, 자세한 이야기는 허덜 말거라. 한 때 니가 곽일표의 집에 살았다는 것도 아를 잃었다는 것도 절대 종팔에게는 함구혀라.
연화:(눈물 흘리며 고개를 끄덕) 네. 알것구먼유.
금수:식이라도 조촐하게 올리고 살거라. 날짜는 종팔이허고 상의혀서.
뒷 탈 없게 수정궁은 잘 정리하고 차후엔 그짝으로 고개도 돌리지 말고. 알것지야?
연화 금수에게 다가와 금수의 손을 잡고 고개 숙여 눈물만. 금수가 연화의 등을 토닥이고.
115. 수정궁 (오전)
종팔의 손에 검은 봉투 몇 개가 들려있고 쉬파리 골목에 있는 수정궁 2층 계단 앞에 연화와 함께 서있다. 2층 입구가 철문으로 되어있고 자물쇠가 채워져있고. 연화 1층으로 내려갔다 열쇠가지고 자물쇠를 열고. 2층으로 올라온 종팔은 얼굴을 찡그리고 코를 막는다. 좁은 2층 복도에는 간밤의 술판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이고. 2층의 첫방문을 두드린다.
연화:(나직이)숙자야, 숙자야.
숙자:(속옷차림, 잠이 덜 깬 표정. 놀라며)언니?
종팔을 눈치 챈 숙자 문을 닫고 옷을 갈아입더니 문을 연다. 주꼬리만 한 방안에 비닐 옷장하나와 화장대가 보이고. 벽엔 필시 미군부대에서 흘러 나왔을 법한 잡지에서 오려 붙인 홀랑 벗고 난잡한 포즈를 취한 남녀의 사진들로 빼곡히 도배되어 있고. 종팔은 놀라 고개를 숙이고 문턱에 걸터앉고 연화만 방안으로 들어가고.
연화:그려, 괘안치?
숙자:응, 언니 축하혀.
연화:긍게. 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혀서 인사나 왔다야.
(종팔이 들고 온 검은 봉투를 내민다.)
숙자:(봉투 속을 보며) 와, 삽겹살에 소주구나. 고마워 언니. 가시나를 입 찢어지게 좋아허겄다.그려 언니. 우리덜도 세월이 우주선 맨키롬 빨리 지나서 이곳을 나갈 수 있었음 좋컸어.
연화:우리 집 양반 될 사람.
종팔은 엉거주춤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숙자:(밝고 애교 넘치게 미소지으며) 그려요. 형부. 언니를 부탁혀요.
연화:그려. 이자 못 볼 것이고만. 긍게 몸조심혀고.
(눈물 훔치며 어느 새 우는 숙자의 등을 토닥거리며)
이것으로 목의 때나 실컷 벗겨. 아들에게 안부 전혀주고.
CUT TO
수정궁 2층을 내려오는 종팔과 연화.
연화:자들이 당최 눈에 밟혀서시리.(수건으로 눈물 닦고)
116. 양키시장(오전)
종팔과 연화가 이곳저곳 가게를 들르며 인사하는 모습. 장씨 가게로 종팔과 연화 들어가고. 장씨 그들을 향해 웃어주고. 한쪽 벽면에 고흐의 ‘낮잠’ 복사본 액자가 걸려있다. 셋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요란한 싸이렌 소리와 경찰 소리 들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쉬파리 골목으로 몰려가고 있어 셋도 서둘러 그들 뒤를 달린다.
117. 수정궁 주위(오전)
수정궁 2층의 쇠창살 사이로 피어오른 연기는 화마가 되어 번지고.
모여든 사람들 발만 동동 굴리고. 경찰과 소방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수정궁을 태운 건물의 불은 30분 쯤 후에 꺼지고. 사람들은 떠날 줄 모르고. 망연히 눈물을 찍어내는 사람들을 서둘러 쫒아내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 소방관들이 2층에서 불에 탄 듯한 시체를 가지고 내려오고. 연화가 길바닦에 앉아 망연히 눈물을 흘리고 있고. 종팔은 가엾은 눈으로 연화 옆에 쪼그리고 앉아 연화를 달래다 팔을 부축해 사라지고. 사람들도 흩어지고 불에 탄 수정궁의 시꺼만 건물만 을씨년스럽게...
118. 종팔의 방(낮)
연화 누워있고 연화 옆에 손대지 않은 밥상 놓여있고. 종팔이 연화 옆에 근심스런 표정으로 앉아 있고..
종팔:(애처로운 눈길로 연화를 보며)벌써 사흘 째여. 이렇게 밥 한 술 못뜨면 결혼식을 연기혀야 겄어.
연화(겨우 일어나며)혀야지유. 어렵게 잡은 날짜인디유.(머리를 메만지고
119. 금수의 방(밤)
최태풍과 금수, 종팔 술상을 두고 앉아있고.
태풍:이번 참에 내도 아부지 노릇하고 싶은디. 어쩌냐, 종팔아.(눈치보며)
종팔:(뜬금없다는 표정) 술만 마신다.
태풍:그려서 하는 말인디. 결혼식 비용 일체를 내가 부담혀야 쓰겄다.
종팔:(태풍을 빤히 쳐다보며) 그것은 쬐메.
금수:그려. 그것은 쬐메 나도 부담 됭께. 피로연 밥이나 사봐. 동상이.
태풍:긍가유, 누님. 지가 쬐메 서운혀서 그랴지유. 지도 자석이 없응께.
그랴면 종팔아. 빈해원에서 식 끝나고 뻑쩍지근하게 한 판 먹어뿔자. 결혼식에 온 사람들 모다 내가 밥 사겄다. 대신 축의금은 없다잉, 알것자?
종팔:(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태풍:(생각난 듯. 자신이 찬 시계를 풀어 종팔에게 내밀며)
자. 이것은 솔찮이 값나가는 시계다. 일명 명품이란 것잉께. 니가 차라.
종팔:무신 말씀. 밥 사시는 걸로 충분혀유.
태풍:(사양하는 종팔의 팔에 억지로 시계를 끼워주며)
아따, 맘 변하기 전에 얼릉 차랑께. 요것을 필대가 욕심내고 있는 것잉께..(껄껄 웃는다)
종팔:(자기 손목의 시계를 유심히 보며 엷은 웃음)
120. 칠성사 사찰 마당(오전)
종팔은 공들여 맞춘 감색양복을 입고, 연화 고운 남색저고리와 분홍치마를 입고. 금수, 최태풍, 필대. 건달들. 양키시장 상인들. 동네주민들, 스님들, 아이들이 축하객으로. 연화의 손에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모두가 행복한 얼굴들...
121. 빈해원 마당(점심)
종팔의 결혼식을 축하하러온 사람들 속속들이 빈해원으로 들어가고.
웃음을 띠고 있는 종팔, 연화, 금수도 손님들을 따라 들어가고.
마당엔 최태풍이 부하들에게 무엇인가 잔소리를 하던 중. 경찰 두명이 마당안으로 들어오고. 최태풍의 부하가 그들을 막고. 최태풍이 그들을 보자 한 쪽 구석으로 경찰을 끌고 가 속닥거린 후 경찰이 사라진다. 최태풍의 얼굴이 어두어지고 빈해원 안쪽에서 왁자지껄 사람들 소리 울리고...
CUT TO
식사를 끝낸 사람들 속속들이 나가고. 금수와 종팔, 연화, 최태풍 몇 사람만이 남아서 종팔과 연화가 택시에 타는 모습을 배웅하고 있다. 택시에 탄 종팔과 연화 행복한 미소를 보이며 손을 흔들고. 태풍이 택시 안으로 하얀 봉투 하나를 던지고. 금수는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고 있고. 최태풍은 금수를 달래며 손을 흔들고. 나머지 사람들 손을 흔들고 종팔과 연화가 탄 택시가 멀어지고.
122. 온양온천 방(밤)
온양온천의 네온사인이 보이고. 온돌방에 벌거벗고 누워있는 종팔과 연화. 종팔의 팔을 베고 누워있는 연화가 종팔 품으로 파고 들며...
연화:(수줍게)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것어요.
종팔:(연화를 안으며) 무신 그런 소릴. 이자부턴 좋은 말만 하소.
(혼자 생각: 그려 설사 자네가 과거 곽중근과의 인연이 있었다혀도 이잔 다 과거 아닌가비.(연화와 곽중근의 얼굴이 오버랩되고)
(혼자생각: 한 여자의 지아비로서 살아야겄어. 이제껏 지나 온 인생의 모든 고난이 결국 이러한 운명을 다지기위한 것 아니었든가비. 모든 고난을 통해 뭔가 비로소 자신의 삶을 완성해나가는 것은 아닌가? 그려, 이것은 사랑이여. 내 몫의 운명인 것여. 그저 지아비, 지어미로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소박한 내 인생 아닌가비?)
연화:이자부터 행복할 일만 남은 것으로 생각혀야것어요.(품속으로 파고들며)
불타는 신혼 첫날밤. 그러나 차분하게. 배려하는 종팔. 처음으로 남자를 탐하는 연화. 벚꽃이 꽃비처럼 날리는 화면.,..
CUT TO
여관방 늦은 아침. 아직도 연화와 종팔은 벌거벚은 채로 누워있다.
종팔:방에 걸린 그림 보았소?
연화:무슨 그림요?
종팔:그 장씨 아저씨 가게에서 억지로 떼다 걸은 그림 말이오.
연화:(웃으며) 아, 축의금 대신 받아 왔다는 그림유.
종팔:(웃으며) 그려유. 뭐 양키 그램쟁이가 그렸다고 허든디.
생긴 것들은 양키지만 그 그림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당께.
농부부부가 커다란 볏단에 머리를 대고 함께 누워 있는 그림.
세상에서 그 그림 속 부부처럼 행복하게 보인 부부가 없었씅께로.
내가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내 미래를 결정 했응께로.
연화:(웃으며) 그 미래가 뭐시당까유?
종팔:(쑥스러운 듯)
뭣은 뭐여. 이렇게 벌거벚고 누워 있는거니.
종팔이 연화를 안으며 다시 덤벼들고,, 꺄르르 꺄르르 연화 웃는 소리. 다시 한 번 정염의 바다로...
123 택시(저녁)
군산역 푯말 보이고. 역 앞에서 택시를 타는 종팔과 연화. 가방과 꾸러미 들고.
택시운전사:(흘끗흘끗 백밀러로 뒤를 훔쳐보며)
온천갔다 오시남유?
종팔:(웃으며) 그러게유. 참 좋습디다.
택시운전사:어젯밤엔 군산에서 큰 일이 났는디, 그걸 모르시지유?
종팔과 연화 호기심을 보이고.
택시운전사: 경찰 서장이 몰고 가던 승용가가 사고를 당해 즉사혔다는디요.
종팔과 연화 안색이 변하고.
종팔:경찰 서장이라구요?
택시운전수:예예. 곽중근이라고 허든디유. 지 애비도 살해되었다고 혀는디 서장도 그 전철을 밟고 말은 셈이구먼유. 뭔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나 모르것소만. 복수를 당혀도 싸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니 틀림없이 쪼간이 많은 사건이긴 현가보요. 깡패 두목이라고 그러던디요. 사고를 낸 차가. 중앙선을 밟고 돌진현 것을 보면. 어젯밤 서장과 함께 술을 마신 작자라고 혀든디. 술을 마심서 서장과 사고를 낸 최가라는 깡패와 크게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고 술집 주인이 말혔다고 혀든디. 무슨 쪼간인지는 모르겄지만 죄 짓고는 천수를 누릴 수가 없을 것이구먼유.
종팔과 연화 사색이 되어.
종팔:(말을 더듬으며) 상대편 운전자는?
택시운전사:같이 죽었다던디유. 둘 다 현장에서 즉사혔데요. 마치 박치기라도 하듯 달려 들었으니께요. 음주운전을 혀고서. 그것도 자정도 넘은 시각에. 인적도 없는 미면 어딘가 어두운 곳에서 그렸다는디. 솔찬이 계획적이었던가 보드라고요.
INS
종팔이 결혼식장과 빈해원에서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라도 된 듯 양복을 입고 산 달을 앞둔 임부마냥 배를 내밀고 환하게 웃으며 부산을 떨던 최태풍의 모습을 떠올린다.
124군산의료원(저녁)
의료원 마당에 검은 양복을 입은 최태풍의 부하들. 접수대 프라스틱의자에 망연한 표정의 금수 앉아있고 종팔 급하게 어머니를 발견하고 멈추어 섬. 경찰 몇이 왔다갔다 하는게 보이고.
125. 금수의 방(대낮)
아픈 금수 누워 있고 옆에 손 안댄 밥상차려있고, 연화 근심스런 표정으로 금수 옆에 앉아있고.
금수:(눈물 흘리며, 힘없이)긍께, 동상. 개처럼 죽지는 말았어야지. 내 동상 마음을 너무 오랫동안 모른 척 혔구만.
연화:(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금수의 다리를 주무르며)
엄니, 이 이가 경찰서에 갔구먼유.
금수:(누워 연화를 돌아보며 묻는 표정)
연화:뭐, 참고인인가 뭐시랑까. 지들이 그날 아침 수정궁에 들린일루다.
대문이 삐걱 소리가 나고 종팔이 방안으로 들어온다.
연화:(놀라 일어서며) 가신 일은유?
종팔:(연화를 앉히고 자신도 앉으며) 엄니, 이게 무슨 일이다요?
경찰관 말이 수정궁이 제 앞으로 등기가 나 있었다고 허든디.
고건 태풍의 형님 건물인디유.
금수:(힘없이 일어나며 생각난 듯, 서랍장을 가르키며)
연화:(서랍장을 열어보고 서류봉투를 꺼낸다.)
금수;그려, 그것이다.
종팔:(연화에게서 나꿔 채며 안을 들여다본다)
금수:(힘 겹게)최태풍이 맡긴 것이다.
지 신상에 뭔 일이라도 나면 니에게 전혀 주라고 혔는디.
종팔:(봉투를 죽 찢으며 봉투속의 물건을 떨어뜨린다.)
봉투 안에는 등기부등본 하나와 금수 앞으로 된 통장 하나와 도장, 최태풍이 손수 쓴 편지가 있었다. 최태풍의 글자는 온통 삐틀거렸고 맞춤법조차 맞지 않았지만 얼마나 정성스럽게 볼펜으로 눌러썼는지 글자 중간 중간에 강약조절을 실패한 잉크가 살짝 번져 있었고 군데군데 볼펜심이 뭉쳐 있었다. 종팔이 읽고.
종팔 보거라.
내 편지가 니 손에 다으를 때 쯔미면 내는 이 세상에 엄쓸 거시구만. 서운타 생각혀지 마라. 인명은 재천이라고 혀든디 내 목숨은 내 거시니께. 은젠가 니가 물었다. 곽일표의 죽음과 연관되기는 혔냐고. 그 물음에 이제사 대다펴게 되어서 좃나 미안혀다. 내가 필대더러 죽이라고 혀따. 필대와 나 사이에 영원히 비밀로 무더두기로 혀면서 마리다. 그때는 눈이 뒤지펴서 그럇는디 니가 생각도 못혀게 자펴가는 바람에 내는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사럿다. 니가 내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닐팅께 길게 말혀지 안혀거따. 참말로 내 의도는 업써다. 니 때문에 내 마음이 하루도 편할 날이 업써쓴께 니가 이해혀라. 마지막으로 누님을 부탁현다. 니가 어떠케 생각혈지 모르거지만 누님은 열 여서 살 이후에 내 빨간 아네모네여어따. 명심혀라 종팔아. 니 엄니, 내 누님 눈 가무실때꺼정 그분 뜨읏때로 따러 사러라. 니 목과 누님 목스로 얼마간의 돈과 양키시장 점포를 하나 남긴다. 언젠가 내 여동상을 차게되면 갸 줄라코 혀어써어는디. 니가 알끼라. 미안혀다. 종팔아. 장가는 꼭 가서 새끼 하나 더 만드거라. 참 내 언젠가 공숙희, 까무치 그 야 야기를 혀어는디 이자뿔지 말거라. 공숙희가 니 딸을 나았다더라. 내가 백방으로 차자보았는디 외삼춘 미테서 잘 크고 있더라. 해서 더 이상 니에게 말혀지 안났다. 갸 외삼춘 이름은 공태수다. 은젠가 차자 보거라. 공태수 검사는 내 은인이기도 혀다. 말허며는 기러지니께 그냥 그런 주로만 알거라. 니 대신혀서 복수 하고 갈란다.
이만 초오총. 니 영워한 형님 최태풍 배상.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종팔은 눈시울 붉게 물들고. 등기부 등본과 금수 이름의 통장을 보니 통장 개설일도 일 년이 넘었고. 금수 하염없이 울고. 종팔도 눈을 훔치고. 연화 훌쩍거리고.
126. 감옥 면회소
필대와 종팔이 마주보고 앉아있고.
필대:그려, 형님 상 치르느라고 수고혔다. 참으로 맴은 아프지만. 어쩌것냐?
종팔:최태풍 형님에 대해서 긴히 헐 말씀이 있다고 혀서.
필대:(담담히)형님이 병을 알아 챈 것은 삼청교육대를 출소혀고 숭림사에 계실 때 였는가비다.
INS(필대의 회상)
병원 진료실, 필대와 최태풍, 의사 ,간호사. 진료를 끝내고.
의사:(심각한 표정으로 최태풍을 안경너머로 유심히 보며)
위암 3기 인디.
태풍:(놀라다 곧 웃으면서 덤덤하게) 지가 어릴 때 하도 배가 고파 남의 집 장독대에서 된장 고추장을 넘 많이 퍼먹어서 그런 갑소.
의사, 간호사가 웃는다. 필대는 놀란 표정과 걱정스런 표정.
의사:이자, 수술도 못하것고. 먹고 잡은 것 실컷 잡수시고 하고 싶은 것 실컷하고 사소.(담담하게)
태풍:아따 딱 까놓고 말혀보소. 3개월 안에 죽소.
의사:그렇게 빨리 죽고 잡소. 한 일년 쯤은 너끈히 살것소.
CUT TO(다시 면회장)
필대:근데 참 이상헌 것은 1년이나 겨우 살까 말까하다던 형님이 우짠 일인지 그 후 십년 가까이를 더 살았지 않냐. 하늘의 뜻인지 형님 마음 때문인지 내 확실치는 않지만 집히는 마음도 있다. 그려, 누님이라고 부르던 니 어머니였는기라.
CUT TO(필대의 말. 병원에서 나와 승용차 안에서)
태풍:(울먹이며) 누님을 지킬 사람이 자신밖에 없는디.
(가슴을 쓰다듬다가) 종팔 갸가 감옥에서 나오는 날까지만이라도 내가 누님 옆에 있어주어야 허는디.
CUT TO(다시 면회장)
필대:그랬는기라. 니가 니 엄니를 지켜줄 수 없었을 때 형님은 니를 대신해 니 엄니를 지켜주기 위해 살았는기라. 니가 출소혀고 나니 급격히 형님 건강이 악화되었는기라. 하여 아편을 손에 쥐게 된 것이고. 그 무렵 아편을 진통제 삼아 견뎠는기라. 견디면서 하나하나 죽음을 준비 하셨다더라. 니를 대신혀서 꼭 복수를 혀고 죽겠다던 말을 내 한테 만은 말씀혔다. 혀면서 니가 마음이 여려 늘 니 엄니가 걱정이라고. 니 내 꼭 이 말을 혀야만 혔다. 종팔아.
종팔:(고개만 끄덕끄덕)
필대:그려, 종팔아. 이건 내가 형님이 돌아가신 후 면회 온 아들한테서 들은 이야기이다. 내가 직접 형님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아닝께 판단은 니가혀라. 그랬다더라. 니 결혼식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있는 빈해원에 경찰이 나타났다고 혀드라. 깜짝 놀란 형님은 니 몰래 경찰을 데리고 구석으로 갔다고 혔다. 사정을 들어보니 경찰은 너를 만나러 왔는가본디. 뭔가 조사혈 일이 있다고. 아들이 들으니 수정궁 어쩌고 저쩌고 둘 사이에 큰소리가 났고. 아들이 보는 앞에서 형님이 무엇인가 경찰에게 통사정을 하는 눈치였다더라.
INS
종팔은 결혼식 날 빈해원에서 최태풍이 허둥대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종팔에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던 일을 회상한다.
CUT TO(다시 면회소)
필대:경찰은 다행히 서장님께 전혀겼다고 하며 돌아갔고 그날 밤 곽중근과 형님이 은마에서 술을 혔다고 혔다.
CUT TO(필대의 말)
은마라는 간판이 보이고 곽중근과 최태풍이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있고 부하 기출이 태풍 옆에 앉아있고.
태풍:글씨 서장님. 수정궁은 내 껏이랑께유. 지가 살날이 얼마남지 않아서 갸 이름으로 등기혀 놓은 것인께. 책임은 나에게 물으시라니께유. 이렇게 사정허는디.
곽중근;우린 서류로 사건을 집어 나가다니껜. 참말로 답답헌 소리 허네.
태풍:(곽중근 술잔에 양주를 따르며)
그러니께 이렇게 사정하는 것 아니것소.
기출:(두툼한 하얀 봉투를 곽중근 앞으로 내 놓는다)
곽중근:(최태풍을 쏘아보다가 봉투를 최태풍의 얼굴로 던진다.)
태풍:(얼굴표정 굳어지며) 그보다 두 배는 더 줄 수 있는디.
곽중근:모르는갑소. 이건 뇌물죄에 해당허는디.
태풍:그럼 이건 어떻소. 수정궁 땅을 당신 앞으로.
곽중근:그건 필요 없구. 이건 어때오.
갸를 하룻밤 내가 품으면.
태풍:(놀라며) 갸라니?
곽중근:(느물느물 웃으며) 갸가 누구것소. 어릴 때 내 각시였던.
태풍:(얼굴이 벌개질 만큼 분노. 손을 부르르 떨며)
곽중근:이래뵈도 갸의 첫사랑은 나고. 내도 갸를 못 잊것소.
그렇다고 갸를 뺏 것다는 것이 아니라 하룻밤만 품자는 것이니께.
태풍:(화가 나서 술상을 엎는다.)
CUT TO (다시 면회소)
종팔:(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필대:(한 참을 망설이다)
그리고 이건 니 헌티 헐 말인지는 모르것지만서도.
(종팔의 안색을 살피며)
긍께. 기출이 말잉께. 니 처 이야기를 허던 것 같단 야기더라. 형님이 곽중근에게 을마나 화를 내던지. 형님이 당장이라도 곽중근에게 죽을티끼 달려 들었다고 허드만. 내도 무슨 쪼간 인지 모르겄지만.
종팔:(알았다는 듯 고개 끄덕끄덕)
INS종팔의 회상
태풍:종팔아. 니 처가 어찌된 사연이 있다허다라도 다 과거 일인께 묻어둬라. 알것제. 이왕지사 이렇게 된 마당에. 알것제.
127. 금수의 방(저녁)
금수와 종팔, 연화가 저녁밥상머리에 앉아있다.
금수:니 핏줄이니 갸를 찾아야 안 허겄냐?
종팔:다 인연이 닿으면 곧 만날 것 이니께 급하게 생각지 말게요.
금수:나 죽기 전에 갸 손 한 번 잡아보고 죽어야 헐틴디.
종팔:검사 외삼촌 밑에서 고명딸로 살고 있다는 디.
이제사 가난뱅이 지 아비 만나면 좋것소.
금수:그려도 친부 만 허것냐?
종팔:언젠가는 찾아 지겄지요.
금수:그렇게 태연허게 생각혀지 말고. 아가. 니도 쟈를 좀 설득혀라.
연화:그러믄유. 어머님 말씀이 맞당께유. 아무리 외삼촌 밑에서 잘 컷다허더라도 친부만 허것써유. 이자 저도 들어왔응께. 찾아야지유, 암먼유.
종팔:(못들은 척 밥만 먹고 있다.)
128. 국립국악당 우면당
관객들이 꽉 차있고. 종팔과 연화가 맨 앞줄 중앙에 앉아있다.
무대가 걷히고 하얀 한복을 입은 금수가 천천히 무대로 나오면서
북소리 잔잔히 울리고. 장구소리.울리고.
나풀나풀 소매 끝을 올리던 어머니를 감격의 눈으로 바라보던 종팔. 학처럼 무대에서 쓰러지는 금수. 관객들 동요.
119 응급차소리 들리고. 종팔과 연화 우왕좌왕.
129. 병원 응급실.
병상위의 금수. 어쩔 줄 모르는 연화와 종팔.
의사가 뭐라 종팔에게 설명하고 종팔 고개 끄덕끄덕. 바쁘게 돌아가는 응급실 장면들..
130. 수술실 앞.
종팔은 절룩거리며 수술실 앞에서 초초하게 왔다갔다. 연화 의자위에 주저 앉아 눈물을 닦고 있고. 잠시후 수술을 끝내고 나오는 의료진. 의료진 앞으로 가는 종팔.
의사:운명하셨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고질병이 있으셨는데 그동안 참고
지난 듯 싶어요. 죄송합니다.
종팔과 연화 주저앉으며 망연한 표정..
131 월명공원(오전)
벚꽃이 꽃비처럼 내리는 날. 금수의 유골함을 들고 종팔과 연화
월명산 조각공원을 들고 천천히 이동.
종팔은 과거 어머니가 아버지 겐조의 샤미센 소리에 춤을 추던 그밤을 회상하며 눈물 짖고. 연화는 연신 훌쩍거리고.
132: 해망동선창가.
금수의 유골함을 든 종팔과 연화. 유골함을 들고 선창에서
바닷물에 뻣가루를 날린다. 뻣가루와 함께 벚꽃 잎이 날리고...
133. 나운동 시장(토요일 오전)
부산한 나운동 시장. 좌판 사이로 손님들 한 둘 오가고,
봉여사:이놈의 여편네가, 씹도 못하는 주제에.
몽여사:네 년이 봤어. 내가 씹도 못한다고 언년이 그려?
봉여사:육시럴 여편네야. 뭐 언년이 그려. 내말이지. 그러게 너 자식새끼라도 있어야?
몽여사:네 년이 내가 자식새끼가 있는 줄 없는 줄 어이 알아? 내 입으로 자식새끼하나 없다고 떠들기라도 했어?
봉여사:뭣이여. 네 팔자에 뭔 자식이라도 있을까봐. 아직도 처녀 딱지도 못 땠다고 그러든데, 뭘 그려. 영락없는 팔푼이랑게.
아주머니:아이고 그려들 마소. 저기 고선생 납시오.
아주머니가 고개를 돌리는 쪽으로 용달차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고.
용달차 위로 벚꽃이 꽃비처럼 내리고...
봉여사와 몽여사가 다투는 자리 앞으로 간신히 주차를 끝낸 용달차
안에서 절룩거리는 종팔 내리고. 종팔 용달차 포장을 거두더니 휠체어를 내리고. 일순 시장통 아주머니들이 일제히 종팔을 호기심이 넘치는 표정으로 유심히 살펴보고. 종팔 운전석 옆문을 열더니 연화를 앉아 내려 휠체어 앉히고. 봉여사도 몽여사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종팔에게 시선. 종팔 차에서 담요를 꺼내더니 연화의 등 위에 씌어주고 무릎을 꿇으며 연화의 옷을 여며주고. 봉여사도 몽여사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 종팔도 연화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
아주머니1:(옆사람에게) 저이가 영화동에서 분식집을 혔다는디 얼마전에 쓰러졌디야. 쉿파리 골목에서 술장사혀든 여자였는디 고선생헌티 시집가서 호강하나벼.
아주머니2: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팔자 아닌가벼. 저렇게 서방이 알뜰 살뜰 보살펴 주니께.
아주머니1;그러게. 내 서방놈은 내 아프다하면 병원에 처밖아 두고 코빼기도 안 볼 것인디.
아주머니2:그려. 여자는 서방 복이 있어야 하는디...
134. 종팔집 마당(4월 중순. 토요일 9시경)
휠체어가 나와있고 종팔 양복을 입은 말쑥한 모습으로 서성이고.
대문밖에 . 태풍택시라는 소속의 시동을 켠 노란색 택시 기다리고 있고. 택시 운전사가 담배를 켜고 그 옆에 있고. 종팔이 안에다 대고 연화에게 재촉하고 있다.
종팔:(손을 비비며) 다 끝났는가?
택시운전사:(대문 밖에서) 오늘은 체육관 앞이 밀릴 틴디요.
종팔:(안에다 큰 소리로) 싸게 싸게 하소.
연화:(안에서 바깥으로) 가요 가. 에고, 그러다 목 쉬것소.”
곱게 화장을 끝낸 연화 웃으며 무릎으로 기어 마루로 나오자 종팔 서둘러 연화를 안아 휠체어로 옮기자. 바깥에 있던 택시운전사 뛰어 들어와 거들며.
택시운전사:아따, 지가 한당께요. 그러다 무대에서 쓰러질라코 그런다요.
우리 사장님이 신신당부 안 혔것소. 잘 모시라고.
종팔:필대 형님이유. 오늘 오신다요?
택시운전사:오신다고 혔구먼유, 그 짝으로 바로.
종팔: (걱정스런 표정) 실수를 혀지 말혀야 헐틴디.
연화:아따, 이 양반이 오늘은 왜이리 겸손 떠는 감유. 오늘 대상은 따 놓은 당상이랑께요.
연화도 택시 운전사도 웃는다.
종팔:딩동댕 소리 들으면 그걸로 만족혀.
종팔이 연화를 안아 차에 태우고 택시운전사는 연화의 휠체어를 트렁크에 싣고.
연화:송해 오빠 싸인 잊지 마시용.
멀어져가는 택시 뒤쪽에
“군산 벚꽃 예술제, 가수 고종팔, 대상은 따 놓은 당상.”
이라는 특이한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끼고.
‘붕’연화의 한 마디에 무엇이라 대꾸를 하는 종팔의 목소리가 차 시동에 묻혔다. 멀어지는 노란 택시위로 하늘하늘 벚꽃 잎이 휘날리고.
135. 공태수 검사의 집
방안에 10살 먹은 공은희가 어둠 속에 앉아있다.
거실에 있는 공태수 검사와 부인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외숙모(E)(짜증 섞인 목소리) 양색시의 딸을 어떻게?
공태수(E)그래도 핏줄이고. 이제 어쩌것소.
외숙모(E)공씨집안이라니...
공은희 눈물을 찍어내며 두려운 표정.
136. 국립국악당 실내
심재술과 공은희 무대를 돌아보며 상의하고 있다.
심재술:부탁해요. 공감독.
공은희:교수님, 새삼스럽게.
심재술:공감독이 성질은 좀 까칠혀도 일 하나는 끝내주니께.
공은희:(살짝 흘겨보며 미소) 교수님도 참.
이번 무대는 특별하죠?
심재술:암먼 특별하지. 송금수 여사라고. 우리나라에서 제일로 민살풀이 일 인자여.
공은희:알겠어유, 교수님. 제가 언제나 최선을 다 한다는 것 아시죠.
공은희와 심재술 서로 엄지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군산시내의 근대 문화유적지의 건물들이 하나하나 스치고
송금수가 나풀나풀 춤을 추는 장면.
종팔이 어머니를 황홀하게 쳐다보는 장면
공은희의 웃는 표정.
위로 벚꽃이 분분히 흩날리는 장면이 연출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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