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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에피소드 28. 사랑하고 쓴다는 것은 지금 내게 가장 좋은 것이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5. 14.


<최진영/구의 증명 중에서 작가의 말>



"지난날 애인과 같이 있을 때면 그의 살을 손가락으로 뚝뚝 뜯어 오물오물 씹어 먹는 상상을 하다가 혼자 좋아 웃곤 했다. 상상 속 애인의 살은 찹쌀떡처럼 쫄깃하고 달았다. 그런 상상을 가능케 하는 사랑, 그런 사랑을 가능케 하는 상상. 글을 쓰면서 그 시절을 종종 돌아보았다. 그리고 또 많은 날 나는 사랑하면서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하고 분명 살아있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버린다. 그러니 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지만 사랑하고 쓴다는 것은 지금 내게 가장 좋은 것이다. 살다보면 그보다 좋은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더 좋은 것 따위 되도록 오랫동안 모른 체 살고 싶다. "



최진영 구의 증명의 일부


이곳은 적막과 공의 세계, 벌판도 바다도 하늘도 아닌 그저 공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끝없는 공허 속에서 실체 없는 나를 분명히 느끼며 눈이 아닌 온몸, 온 마음으로 나는 본다. 하지만 나는 혼자 여기서 이렇게 너를 충분히 느끼고 있어도, 네가 내 옆에 있어도 너는 여기에 없다. 아니 내가 없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분명 여기에 있다. 나는 여기에 있고 너도 여기에 있는데 나는 여기에 없고 너도 여기에 없다. 이렇게 빤히 보이는 한 공간에 함께 존재하지만 닿을 수 없으니 우리의 우주는 전혀 다르다. 겹치지도 포개지지도 않고 미끄러지는 세계, 담은 분명 여기에 있지. 하지만 이곳은 담이 없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