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이 보내주신 힌트 고맙습니다.
키쉴롭스키 감독은 제가 한 때 좋아했던 감독이었군요.
삼색시리즈며 베로니카의 이중생활과 언급하셨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등을 보았고 십계는 디비디를 사놓고 모셔만 둔 상태입니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은 다시 찾아보아야 할 듯요. 보내주신 파한남에 대한 글은 천천히 사전 찾아보며 읽을게요. 제가 너무 함부로 파한남을 격하 시킨 것은 아닌가 조금 미안한 감도 들고요. 죄송!
감독님 검색하다가 어딘가에서 한국의 키쉴롭스키라고 하던 글을 읽은 것 같아요.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들과 주제의식(검색 만으로요. 아직 감독님 영화 많이 못 보아서)이 좀 닮은 것도 같고. ㅎㅎㅎ
핑크에서의 강산에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었군요. 저는 도대체 강산에가 왜 나오나 모를 일이었어요.
다만 강산에의 노래는 정말 끝내줬어요. 유투브에서 똑같은 노래 찾아 들었지만 영화 속의 느낌은 아니더라고요.
노랫말이 특히 좋았고요. 핑크는 세 번 정도 보았는데 강산에 노래 부분은 몇 번을 더 돌렸네요.
전 오랫동안 제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며 하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자식을 낳아본 적이 없어서 아이들에 대한 애틋함이 있거든요.
하여 언젠가 나이 들어 조금 재산이 있다면 미혼모 아이들을 돌보며 작은 집에서 함께 살다 죽는다면 훨씬 외롭지 않겠다, 그런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것을 직관으로 느낀다잖아요.
하여 저도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에 빨간 체크무늬 담요로 무릎을 덥고 휠체어에 탄 채 아이들이 시끄럽게 노는 소리를 배경으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를 들으며 석양을 바라보다 죽는 이미지를 상상했죠.
그렇게 죽는다면 내 삶이 더 이상 외롭거나 비루하지 않을 것 같은. 축복 받은 생이라고 자조하면서 죽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 소설을 쓰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죽음의 순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꽉 잡고 죽어야겠다고. 결코 놓지 않겠다고. ㅎㅎㅎ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의 순간을 어떻게 그릴까요? 딱 한번 10살 무렵 저를 키워준 외할아버지의 죽음의 순간을 목격한 적이 있었어요.
외할아버지의 혼이 방문을 열고 훨훨 지붕으로 올라가면서 하늘 저편 어딘가를 헤맬 것 같았던 상상을 했어요.
제가 한 때 외국에서 떠돌 땐 어떤 두려움이 찾아오면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혼이 날 지켜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으로 견뎠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야겠어요.
당신은 죽음의 순간을 어떻게 맞고 싶은가요? 그렇게.
그런 것을 토대로 제 소설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그려보면 어떨까? 어쩌면 제 소설이니 제가 죽고 싶은 순간의 이미지를 그릴 것이 분명하겠지만...
되 집어 보니 제가 이 소설을 처음 구상하던 때가 2014년 3월이었더군요. 2년 6개월 정도 매달린 이야기였어요. 물론 중간에 해찰을 하기도 했지만.
처음 구성과 많이 다르게 지금 끝나는 지점에 이르게 되니 군산을 배경으로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가 되고 말았어요.
또 생각해보니 배설처럼 휘갈겨 쓴 제 모든 습작품들 속의 코드는 줄곧 사랑이더군요. 물론 성폭행, 동성애, 소외된 사람들, 남자 없는 여자들의 질주, 인연, 지고지순, 혼혈아, 관계의 단절 등을 배경으로 가지면서...
제가 감독님께 도움을 받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쓰고 있는 작품 <벚꽃> 어쩌면 <노란 각시붓꽃>이란 다른 이름을 가질 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6월 말 혼불 문학상공모에 출품하려고 하거든요.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아요. 제 실력에, 부끄럽지만 도전만은 하려고요.
그러나 더 큰 꿈이라면 이 작품으로 영화시나리오를 쓰려고 해요.
시나리오 공모전에 딱 2번 작품 제출을 해보았지만 그냥 책에서 읽은 것을 참고로 하여 저 혼자 쓴 것이라서 도대체. ㅎㅎㅎ
좋은 시나리오를 쓰게 되면 좀 유명한 감독(임권택 감독이면 좋겠지만, ㅎ 그냥 꿈요. 이준익이나 허진호)에게 보내보면 어떨까 계획하고 있어요.
군산 곳곳을 배경으로 쓴 작품이기에 어쩌면 군산시와 딜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군산시가 아무리 돈이 없다 해도 지금 추세라면 광고에 쏟아 붇는 액수보다 영화 한 편에 투자하는 게 여러모로 더 나을 성 싶은데.
물론 제 개인적인 소견이죠. 영화 핑크는 군산의 어두움이 배경이지만 제 작품은 군산을 사람 냄새나는 아름다운 도시로 부각시킬 수 있을 만큼 적당히 띄어놓은 부분도 상당히 많이 있고. 한 개인의 역사는 그 지역의 역사가 되고 그 지역의 역사는 그 나라의 역사가 되고 곧 나라마다의 역사는 세계의 역사가 되는 뫼비우스 띠처럼 결국 다시 한 인간의 역사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한 개인의 역사를 조망하게 되면 우리의 역사가 되곤 하잖아요. ㅎㅎ 하여 군산이란 도시를 띄우게 되면 이건 한국이라는 나라를 띄우게 되는 것이고 결국...ㅎㅎ
군산하면 떠오르는 소설가 채만식작가님이 계세요. 탁류라는 장편 소설과 많은 중단편을 썼지만 과거 친일 행적 때문에 문학적인 성과가 부각이 안 되었어요.
저는 한 때 채만식 작품들에 감탄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 읽어도 새록새록 참 좋은 작품들인데, 안타까움이.
꿈을 꾸게 되어요. 소설가 채만식의 뒤를 잇는 리얼리즘 작가로서 군산을 그려보자, 뭐 이런 것...ㅎㅎㅎ
넘 사설이 길었네요.
결론은 제가 제 소설을 시나리오로 다시 쓰는데 감독님의 도움을 받고 싶다는 것이죠.
지금 제 기분이 이래요.
제가 한 때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에 경도되어 9편 정도의 그분 영화를 보았거든요. 처음 나쁜 교육이란 영화를 보고 그에게 메일을 썼어요. 결국 못 보내고 말았지만. 그분의 작품은 여러모로 다른 감독들과 구분되는 특이함이 있죠. 뭘까 어떤 열정이 즉각적으로 느껴져요. 삶에 대한. 강렬한 원색의 배치, 사실 좀 넘쳐난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인생이 심드렁해질 때 뭔가 자극이 되기도 하죠. 그때 재즈에 막 미쳐있을 때인데 그분의 영화 속 배경음악들도 좋았고. 컴필레이션 음반도 냈길래 아마존에서 구입까지 했죠.
그런데 지금 제가 그때의 망설임을 극복하고 알모도바르 감독과 버금가는(? ㅎ 쬐께 아부) 분에게 메일을 쓰고 있다니. 사실 감독님이 다녀가신 후로 저의 어떤 면이 상당히 자극을 받았죠.
“내 인생은 뭔가? 저 분은 일가를 이루었다는데.” 이런 생각요.
또한 글을 쓰면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스크린에 옮겨놓 듯 그리려는 제 자신을 발견했고요.
갑자기 제 글이 좋아지고 있구나, 그런 기분은 좀 더 작품 속으로 나 자신을 밀어 넣더군요. 지금은요.
온통 마치 첫사랑의 홍역을 앓고 있는 것처럼 쓰고 있는 작품에 흠뻑 빠져 있어요. 다시 청년으로 돌아 간 저를 만나고 있다니, 하루하루가 그분(속칭 글 귀신)이 강림하신 것 같은 도취감. 아시죠? ㅎㅎㅎ
암튼 제 사설이 너무 길었고요.
제가 쓴 메일에 답을 하시지 않아도 되어요. 감상문을 쓰고 누군가에게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답니다.
저는 이제 아침 산책을 나가려고요. 마지막 겹복사꽃이 흩어져있는 산책길을 어슬렁거리며 제 소설 속 그 장면들을 상상해야겠어요.
건강하시고 즐필 하시길요.
곧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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