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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아즈 사강>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5. 4. 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은 그녀에게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나 할까? 스무 살 때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누구에겐가 속내를 털어 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p57>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노란 장미가 좋아요? 흑장미가 좋아요? 마끼아또, 에소프레소? 비오는 날이 좋아요? 바람 부는 날이 좋아요?’ 등등을 포함한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며 이 호기심은 관심을 대변한다. 이 관심은 무한대의 확장을 계속하며 결국 사랑이라는 색깔로 귀착된다. 상대의 모든 것에 대한 궁금증은 애착으로 까지 이르고 그 애착이 도를 넘으면 고통이 된다.

  이 고통과 신음하던 시절이 까마득하며 이제 그 시절이 그립기마저하다. 어느새 나는 사랑이라는 열병에 기인한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그 누구라도 부러운 나이가 되었다. 그토록 선명했던 내 색깔, 내 자아, 내 정체성은 점점 퇴색되고 있다. 자학하는 심정으로 내 인생을 정리해보면 몇 번씩 서툰 붓질로 덧칠해놓은 탁한 유화, 덕지덕지 파리똥이 묻어있는 이발소 그림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이르게 된다. 독한 양주라도 들이켜고 싶은 밤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을 희구하며 살았을까? 명예와 사랑이라고 답하는 것이 왜 이리 쓰기만 할까? 과연 내가 희구하며 살았던 것들이 나에게 그리 가치가 있는 것이었을까? 가치를 알 수 없었기에 또 그것들에 100퍼센트의 나를 던질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인생의 덧없음을 알면서도 계속 또 그렇게 살아가야하다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남아있는 내 생애에 누군가 다시 이렇게 묻기라도 할 사람이 있을까? 아니라면 나는 또 누구에겐가 그렇게 물을 수 있는 용기와 기회가 오기는 올까?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p44>

 

 

  고독 형을 선고 받고 살아있는 내내 신음해야 하는 내일이, 완성작이 없는 밑그림, 초벌뿐인 인생이 무겁기만 하다. 오늘은.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프랑스 문단의 매력적인 작은 괴물, 섬세한 심리 묘사의 대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그려 낸 사랑, 그 난해하고 모호한 감정

프랑스 문단의 “매력적인 작은 괴물”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번으로 출간되었다. 사강은 스물넷의 나이에 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완숙함을 이 작품 속에 담아내면서, 열아홉의 나이에 『슬픔이여 안녕』으로 등단함과 동시에 이미 하나의 ‘신화’로 자리매김한 자신의 ‘천재’를 또다시 증명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사강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이 언제나 교묘하게 뒤섞여 있는 우리의 일상을 배경으로, 난해하고 모호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진솔하게 그려 냈다.

권태로운 일상에 등장한 봄 햇살 같은 사랑

실내장식가인 서른아홉의 폴은 오랫동안 함께 지내 온 연인 로제에게 완전히 익숙해져 앞으로 자신은 다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구속을 싫어하는 로제는 폴과 달리, 마음 내킬 때만 그녀를 만나고 젊고 아름다운 여자로부터 하룻밤의 즐거움을 찾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폴의 로제를 향한 일방적인 감정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녀에게 더욱 깊은 고독만을 안겨 준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의뢰한 미국인 부인을 방문한 폴은 몽상가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의 시몽과 조우한다. 시몽은 폴에게 첫눈에 반해 수줍지만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퍼붓기 시작하고, 그런 시몽의 태도에 폴은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다른 한편으로는 신선한 호기심을 느낀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소설보다 더 문학적인 프랑수아즈 사강의 삶

프랑수아즈 사강의 삶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바로 ‘중독’이라고 할 수 있다. 10대 후반부터 생미셸 대로의 카페와 클럽을 들락거리고, 골루아즈 담배와 커피 한 잔이 아침 식사였으며, 위스키 잔을 줄곧 손에서 놓지 않았고, 문턱이 닳도록 카지노를 드나들며 인세 전액을 간단히 탕진했고, 재규어와 애시튼 마틴, 페라리, 마세라티를 바꿔 가며 속력을 즐기다가 차가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해 3일간 의식 불명 상태에 놓이기도 한, 다시 말해 낭비와 알코올과 연애와 섹스와 속도와 도박과 약물에 중독된 삶이었다.

그녀의 이러한 삶의 모습 때문에 프랑수아 모리악은 그녀를 “작은 괴물”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몇은 그녀의 도덕성을 문제 삼으며 비난하기도 했지만(실제 그녀는 여러 차례 법정에 불려가기도 했다.), 그녀는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이러한 삶을 통해 구속이나 제한 없이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삶을 불태웠다.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것은 결코 소설로 쓰지 않겠다고도 말했던 그녀는 실제로 작품 속에 그러한 경험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을 매혹적으로 생동감 있게 담아내면서, 결국 미워할 수 없는 천재 문학소녀, “프랑스 문단의 매력적인 작은 괴물”로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