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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니꼴라이 고골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4. 8. 18.

 

 

 

 

  술자리였다. 이야기 끝에 심한 공격을 당했다.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구차함이 느껴져 꾹꾹 억눌렀다. 차마 내 뱉지 못한 말들이 분노라는 형태로 자꾸 울컥거렸다. 그 날 밤 꿈속에서 명확하지 않은 상대를 향해 이유모를 화를 폭발시켰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은 좀 찝찝했지만 속은 후련했다.

  생각해보니 화를 밖으로 표출하는 일이란 나에게 일종의 두려움이었다. 분노란 얼마든지 참아도 마땅한 일이며 자신을 억누르는 일은 습관이자 미덕처럼 여겨졌다.

 

  “날 좀 내버려둬요.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

 

  꿈속에서의 분노의 발현은 바로 내 안의 아까끼인 작은 인간이 외치는 소리였다. 19세기 고골이 표현한 아까끼란 인물은 인간적인 동정과 연민을 받아야 마땅한 오늘 날의 바로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고골의 뻬쩨르부르그 이야기에 나타난 공통 테마는 혼돈과 무질서의 도시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속물성과 탐욕이다. 속물들은 추상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주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하다. 그들의 주요 관심은 주로 세속적인 욕망으로 의, 식. 주, 성, 부, 명예, 승진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러한 속물성은 단순히 도덕적이며 인간적인 결함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속물성은 어떠한 창조성도 결여한 채 그 사회의 가장 저열한 정신만을 모방하고 있는 자의 속성인 것이다.<작품해설 318쪽>”

 

 

  “인간은 누구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사실 성취욕이 악은 아니다. 그러나 지나친 욕구는 일그러진 욕망으로 변하고 왜곡된 행위로 나타난다. 자존심이 부패하여 교만이 되고, 물질적 안정을 추구하는 마음이 지나쳐 탐심이 되고, 개인적 친교를 바라는 바람이 타락하여 욕정이 되는 것이다. 고통은 분노가 되고 굶주림은 과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숭배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질투가 되고 휴식을 바라는 마음이 게으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309쪽>”

 

 

“악마란 외부의 초자연적인 어둡고 불가사의한 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양심을 저버렸을 때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그를 정신적 파멸로 이끌어가는 인간의 내면에 살아 있는 존재인 것이다. 악마성은 인간이 어떤 가치 추구 하느냐에 따라 수십 배로, 확대되어 나타날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것이 발붙일 공간이 없을 정도로 극복 가능한 것이 될 수도 있다.<310쪽>”

 

이러한 인간들의 속성에 대한 고골식의 해답은 이러하다.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성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수도와 정진을 통해서 악의 힘을 물리치는 것, 바로 종교적 귀의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309쪽>”

 

  그렇다면 내 안의 작은 인간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 인간으로 변하게 할 수는 없을까? 없다에 한 표다. 인간 내면에 마그마처럼 들끓는 모든 세속적 욕망을 근절시킬 수 없으므로.

  우리 내면에는 악마도 천사도 공존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다만 우리 안의 속물적 근성에 주눅 들지 않고 보편적인 사회통념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설계한 자신의 이상향으로 가기 위해 정진할 수 있을 때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마다 다른 자신의 이상향은 분명 인간의 본질과 충돌하겠고 그 충돌 과정 중에서 자신의 성찰을 늦추지 않는다면 그 충돌은 곧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근접해 가는 하나의 계단이 될 것이다.

  고골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게하고 씁쓸한 미소를 짓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