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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화차/미야베 미유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4. 7. 16.

 

 

 

 

화차火車

생전에 악행을 한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

 

<휴직중인 형사 혼마 슌스케는 어느 날 먼 친척 청년 가즈야로부터 약혼녀 세키네 쇼코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결혼을 앞두고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려다 심사과정에서 과거에 개인파산을 신청한 적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 의아한 것은 그녀 본인 역시 자신의 파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눈치였다는 것이다.

단순한 실종사건으로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조사를 시작한 혼마는 시간이 갈수록 그녀 뒤에 또 다른 여자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붙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다중채무자라는 딱지를 내버리고 타인의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려 했던 한 여자. 대체 세키네 쇼코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녀는 왜 그렇게까지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 했는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자기주장을 하는 행위는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9쪽)

 

 

마찬가지입니다. 다중 채무자들을 싸잡아서 '인간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판단하기는 쉽죠. 하지만 그건 자동차 사고를 낸 운전자한테 전후 사정은 전혀 들어보지 않고 '운전 실력이 나빠서 그렇다. 그런 인간들한테 면허같은 걸 줄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과 같은 소립니다. 그 증거로 '자 봐라! 한번도 사고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죠.(142쪽)

 

 

세키네 쇼코 양은 특별히 형편없는 여성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었어요. 그녀에게 일어난 일은 바람의 방향만 조금 바뀌었어도 혼마씨나 저 자신한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입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상황을 항상 머릿속에 넣어 두시기 바랍니다. 안 그러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할 수 있으니까요(148쪽)

 

 

그녀는 도망 다니고 있다. 아직 그 정체는 모르지만 집요하게 자신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그녀는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일을 혼자서 해내고 있다. 그녀는 혼자다. 누구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고 누구의 명령에 따를 필요도 없다.

밝은 꽃무늬 벽지를 한 장 벗겨 내면, 그 밑은 철근으로 지탱하고 있는 콘크리트 벽이 숨어 있다. 누구도 쉽게 돌파할 수 없고 무너뜨릴 수도 없는 벽이.

그 철근과 같은 존재 의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그녀는 그런 여자다. 그리고 그런 여자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는지 모른다.(165쪽)

 

죽은 자는 산 자의 내면에 흔적을 남기고 간다. 사라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벗어 던진 윗도리에 체온이 남아 있는 것처럼, 머리빗 사이에 머리카락이 끼어있는 것처럼 어딘가에 무언가가 남아 있다.(189쪽)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신조 교코는 외로웠고 혼자였기 때문에 타인의 신분을 가로채는 짓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 한명이라도, 그녀의 처지를 이ㅐ하고 구원의 손길을 뻗어 주는 남자가 있었다면, 그녀는 신조 교코라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협력자의 손을 빌려 시조 교코로서 도망갈 일만 생각지 않았을까? 이름이란 타인들에게 불리고 인정받음으로써 존재한다. 곁에서 신조 교코 이해하고 사랑하고 그녀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의 사람이 있었다면 그녀는 펑크 난 타이어를 버리듯 절대로 신조 교코란 이름을 버리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이름에는 사랑이 스며 있으니까.(283쪽)

 

“뱀이 왜 껍질을 벗으려는지 알고 계세요?”

“껍질을 벗는다라면...?”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생명을 걸고 하는 거래요.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나요. 그래도 허물을 벗으려고 하지요. 왜 그런지 아세요?”

“성장하기 위해서요.”

“아니오. 열심히 몇 번이고 허물을 벗는 동안 언젠가는 다리가 나올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래요.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하면서요.”

“별 상관도 없는데 말이죠. 다리 같은 게 있든 없든 뱀은 뱀인데.”

“그렇지만 뱀의 생각은 다른가 봐요. 다리가 있는 게 좋다. 다리가 있는 쪽이 행복하다고요. 여기까지는 제 남편의 말씀. 지금부터는 제 생각인데요. 이 세상에는 다리는 필요하지만 허물을 벗는데 지쳐 버렸거나, 아니면 게으름뱅이거나, 방법조차 모르는 뱀은 얼마든지 있다고 봐요. 그런 뱀한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겨울을 팔아대는 똑똑한 뱀도 있는 거죠. 그리ㅐ고 빚을 져서라도 그 거울을 갖고 싶어 하는 뱀도 있는 거구요.”(311쪽)

 

 

'두 사람은 같은 족속이었다.'

순간 혼마의 뇌리를 스친 것은 바로 그 말이었다. 세키네 쇼코와 신조 교코... 두 사람은 같은 괴로움을 짊어지고 살았던 것이다. 같은 것에 쫓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이 두 사람은 동족끼리 서로 잡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329쪽)

 

자신한테 일어난 일을 그런 식으로 밖에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거란다..... 앞으로 너희들이 살아가야 할 이 사회에는 자기 자신과 현실에 대한 불만을 폭발적이고도 광적인 힘으로 해결하려는 인간들이 더욱더 늘어날 것이라고. 그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것인지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키워 줘야 한다.(373쪽)

 

 

이 세상에는 타인이 하는 일이 전부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이 있대요. 그런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걸 보면 우선 그걸 부숴 버리고 나서 자기한테 편리한 대로 변명을 한대요. 그러니까 보케를 왜 죽였는지 타자키가 아무리 변명을 해도 그런 걸 들을 필요는 없댔어요. 그리고 중요한 건, 어떤 생각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일을 했느냐 하는 거래요.(3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