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유감
인생이란 초벌그림은 완성작 없는 밑그림, 무용한 초벌 그림일까?
그녀는 사랑했으며 여전히 사랑한다는 사실, 또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그에 대한 사랑에 수치심을 느꼈다. 그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건조한 그녀의 일상을 상쇄시켜줄 낱말로 포장된 것은 아닌지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전날 밤을 상기하며 그녀는 명치끝이 아려왔다.
“당신을 다 가질 수 없어서 유감이지만 어쩔 수 없는 내 한계를 느껴요.”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침묵이 관계의 골을 더 깊게 파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팔을 뒷머리에 두른 체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그녀는 솟아나는 눈물을 삼켜야했다.
어쩌면 그로서도 그녀의 말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몰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집요하게 그녀에게 위로를 가져다주었다. 눈가에 어리는 눈물 때문인지, 눈을 부시게 하는 햇빛 때문인지, 그녀는 눈을 감았다. 저절로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가만히, 가슴 아프게 고독을 되씹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은빛 물결이 내부의 고독을 건져 올리며 그녀의 존재를 환기시켰다.
그 순간 그녀는 열 살은 더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삶에 굴복한 나머지 피로해 지친 자신을 발견한 셈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오랫동안 유보해왔던 현실을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맞닥뜨려야만 했다.
“나만 사랑해줘요.”
실현가능하지 않았던 꿈을 꾸며 뻔뻔할 만큼 지독한 열정을 퍼부었던 그와의 지난 시간들이 얼마나 부질없었던 것인가, 그녀는 지금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동시에 그녀는 그에 대한 고통스런 욕망을 느꼈다.
“나는 두려워. 나는 겁이 나. 제발.”
충동 뿐, 입 밖으로 내 뱉고 싶었던 말들이 거세게 소용돌이를 치다 침몰했다. 어쩌면 그도 누구에겐가 진심으로 그런 말들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말이다. 단지 그의 상대가 그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그토록 힘들었을까? 그녀는 자조의 입술을 깨물었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쾌락이 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쯤은 우둔하고 때로는 상스러운 욕망에 거침없이 몸을 맡기리라 예상되는 그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변하고자 하는 어떤 의지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육체의 쾌락이 그의 삶의 진부함을 상쇄해주리라 기대하며 사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일으켰기에 얼마간은 참아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새삼 그에게 반감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일까 그녀는 곱씹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그 없이, 그를 사랑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그들은 여섯 개의 연속적인 우연을 거쳐 서로에게 이르렀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 사랑했고 함께 죽었다. 슬픔이란 그들에게 마지막 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행복은 그들이 함께 있다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에게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Muss es sein? Es muss sein. Es mus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선율의 비장함이 그들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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