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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열정/산도르 마라이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4. 1. 6.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헨릭은 어느 날, 쌍둥이 형제처럼 지낸 절친한 친구와 사랑하는 아내에게 기만당한 것을 안다. 존재를 뿌리까지 송두리째 뒤흔드는 이 갑작스러운 사건은 결국 세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다. 친구 콘라드는 말 한마디 없이 세상의 다른 끝으로 정적을 감추고, 삶의 양지 쪽에서 부족함 없는 삶을 영위하던 헨릭은 배신감과 절망에 휩쓸려 고독으로 칩거한다. 그리고 한 집에 살면서도 가혹하게 팔 년 동안 침묵을 지키는 남편과 비겁하게 도주하는 연인 사이에서 헨릭의 아름다운 부인은 결국 죽음을 택한다. 그러나, 헨릭, 노 장군은 사랑서 친구를 기다린다. 오로지 이 기다림 때문에 그는 분노와 절망, 고독 속에서도 오랜 세월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그는 보이는 현실 이면에 숨어 잇는 진실, 즉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으며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마침내 죽음을 앞둔 인생의 황혼에서 콘라드가 돌아오고, 헨릭의 독백이나 다름없는 대화를 통해 사십일 년 전 서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겼던 세 사람을 파괴한 드라마가 서서히 우리 앞에 펼쳐진다. 마라이는 오모하게 결합한 수정의 한 면 한 면을 보여주듯이, 짧고 응축된 언어로 비밀에 덮여 있던 지난 사건을 불러낸다. 동시에 그는 사랑과 정열, 우정과 신의, 진실과 거짓, 자긍심에 대한 문제를 냉정하고 단호하게 끝까지 파고든다. 성찰과 사건은 서로 맞물려 긴장을 고조시키고 사건의 깊이를 더하면서 사랑과 증오, 배반과 분노의 교향곡을 엮어낸다. 이와 같이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끝까지 추적하면서도 극적 긴장을 유지하고 독자를 사로잡는 뛰어나 기교에서 마라이의 높은 예술성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왜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으며, 이런 비극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과연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작가 마라이는 사랑과 우정이 빚어낸 비극의 원인과 비극 앞에 선 인간의 혼란과 갈등을 파헤치기 위해서 인간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여러 가지 존재론적인 문제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예와 신의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고 현실의 삶에 충실한 부류와, 현실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정신과 예술을 좇는, 삶의 다른 기슭에 선 부류, 두 부류로 인류를 가르는 인간 존재의 이원성, 운명과 삶과의 관계, 타고나 본성이나 성격이 삶에서 하는 역할의 문제 등이 집약적으로 전개된다. 결국 마라이는 우리 인간들은 살면서 부딪히는 중요한 문제들에 말이 아니라 삶으로, 전 생애로 대답한다고 결론짓는다.

 

 

긴 밤을 지새면서 지난 일 을 돌이킨 다음 새벽 녘, 일흔다섯 살의 노장군은 말한다. .“어느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다고 자네도 생각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산 것이 아니겠지?” 목숨을 바칠 정도로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분노와 배신감 때문에 죽게 내버려둔 그의 회한어린 이런 고백에서 우리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성과 이 본성에서 비롯되는 운명에 대한 깊은 인식이 깔려 있다. 우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잘 모를 뿐 아니라, 안다 해도 대부분 원하는 것과는 다르게 행동한다.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나머지 인생을 보내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었다는, 죽음을 앞 둔 노인의 고백 앞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소설 <열정>이 발표된 지 반세기 이상 지난 지금 다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소설의 외면적인 구성은 간단하다. 어린 시절부터 24년 동안 거의 언제나 형제처럼 붙어 지냈던 두 친구가 헤어진 지 사십일 년 만에 만나 하룻밤 동안에 나누는 대화가 소설의 내용을 이룬다. 그러나 이 간단해 보이는 소설의 배후에는 삶과 운명, 사랑과 진실에 대한 마라이의 깊은 인식과 성찰이 자리하고 있다. 존재의 심연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인간의 본성과 심성을 정확하게 꿰뚫고 묘사한 문학은 예로부터 시공의 제약을 뛰어 넘어 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힘을 발휘했다.

 

 

작가 마라이는 인물과 사건을 가차 없이 냉정하고 정밀하게 해부하고, 의식적으로 정확하게 언어를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언어는 수식이 없이 간결하면서도 낱말이나 문장 하나 하나에 깊은 뜻이 응축되어 있다. 이 시적인 깊이로 인해서 그의 문장들은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지면서 한 편의 시와도 같이 독자를 빨아들인다. 감동적인 선율이 인간의 마음을 울리고 긴 여운을 남기듯이, 그의 글은 마음 깊이 파고들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과연 우리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삶이 많은 장벽을 뛰어넘어 사랑과 우정의 법칙에 충실했는가?

 

 

이 글들은 책 뒷면의 옮긴이의 글을 재구성한 것이다. 내 글쓰기의 방향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한다.

 

이런 주인공 하나 쯤 만들고 싶은 이 욕구는?

 

 

여기 이야기속의 한 주인공인 크리스티나를 묘사한 헨릭이 말이 있다.

 

그녀의 혈관에는 여러 종류의 피가 흘렀어.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게다가 아버지쪽 친척의 폴란드 피 한 방울...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말로 규정하거나 확정짓기는 매우 어려웠네. 어떤 민족, 어떤 사회 계층도 그녀를 완전히 싸안을 수 없었어. 계급이나 혈통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는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를 자연이 한 번 창조하고자 시도한 것 같았지. 그녀는 마치 동물 같았네. 정성 어린 양육, 기숙사 학교, 아버지의 교양과 애정은 크리스티나의 행동거지만을 바로 잡았지. 그녀의 내면은 길들이지 않은 야성 그대로였어. 내가 줄 수 있었던 모든 것, 재산과 사회적 신분은 사실 그녀에게 별 가치가 없었네. 이 내적인 자유분방함, 그녀의 본질을 이루는 자유에의 충동 때문에, 내가 그녀를 인도한 세계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 그녀의 자부심은 신분, 혈통, 재산, 사회적 지위나 특별한 개인적인 능력에 대한 자부심과는 달랐어. 크리스티나는 그녀의 심장과 신경 속에 독소처럼 깃들여 있는 고귀한 야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어, 이 여인은 내적으로 구속이라는 것을 몰랐네. 오늘날 그런 사람을 보기가 어려워. 구속을 모르는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아주 드물지. 분명히 그것은 혈통이나 사회적 신분의 문제가 아닐세. 그녀는 모욕이라는 것을 몰랐네.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설 줄 몰랐고, 제한이라는 것을 참지 못했지. 게다가 그녀에게는 여자들에게서 보기 드문 점이 있었네. 그녀는 자신의 내적인 품위를 책임질 줄 알았지. 자네 우리의 첫 만남을 기억하나? 자네도 틀림없이 기억할 게야. 그녀 아버지의 악보가 커다란 책상에 널려 있던 방에서였지. 크리스티나가 들어오자 작은 방 안이 온통 밝은 빛으로 채워졌네. 그녀가 가져온 것은 젊음만이 아닐세. 아니, 그녀는 정열과 오만, 조건 없는 감정을 좇는 자유로운 자의식을 가져왔지. 그 이후로 나는 세상과 삶이 선사하는 모든 것에 그렇게 완벽하게 일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네. 음악, 숲에서의 새벽 산책, 꽃의 색깔과 향기. 예지에 찬 말 한 마디, 우아한 천이나 동물을 크리스티나처럼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은 없네. 나는 삶이 주는 소박한 선물에 이 여자처럼 기뻐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어. 사람과 동물, 별과 책, 그녀는 모든 것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지. 그러나 잘난 척하거나 전문 지식에 사로잡힌 고루한 사람들과는 달랐네. 삶이 보여주고 선사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애정을 가지고 인생을 즐기는 사람의 선입견 없는 기쁨이었지. 이 세상 모든 현상이 그녀의 개인적인 일인 듯이. 이 선입견 없는 친밀함에는 겸손, 삶이 커다란 은총이라는 인식이 배어 있었네.

 

 

보통은 이야기 줄거리를 본류를 해서 소설을 구성해 나가지만 그녀, 크리스티나의 묘사를 읽어 내려가면서 느낀 생각은 소설속의 인물 설정을 먼저 한 후에 그 인물을 중심으로 소설을 구성해나가는 방법으로의 글쓰기를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깊어가는 새벽에 나는 크리스티나 적인 인물을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