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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파스칼 키냐르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4. 1. 3.

 

 

 

 

모처럼 만에 가슴이 떨린다. 마치 섹스의 강렬함에 처음으로 압도된 노처녀처럼 말이다. ㅋㅋㅋ. 섹스 후에 조차도 멈출 수 없는 후희를 즐기는 중이다. 그 뜨거움이 사라지기 전에 우선 고맙다는 말부터 먼저 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필님.

 

 

 

"글을 쓰는 행위는 아마도 애초에 익사하지 않으려고 매달린 나무토막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고립되기 위한 핑계, 각성과 그로 인한 감시와 타인의 관심에서 벗어나려는 속임수였을 것이다."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선수 친 그가 얄밉기만 하다.

 

 

 

파스칼 키냐르

1948년생.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 내가 좋아하는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의 원작자. 이력도 화려하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1993년)

문학 창조에 관한 동화와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삶의 철학과 도덕,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충돌하며 발산시키는 슬픔과, 기쁨 절망과 환희를 환상적으로 조율해 놓은 작품이란다.

본문은 총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장은 '아이슬랜드의 혹한'에서 언어를 기억하지 못해 일어나게 되는 사건을 다룬 어떤 동화를 쓰게 된 경위를 말한다. 두 번째에서는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이라는 동화의 내용이다. 세 번째 '무데사에 관한 소론'에서는 언어, 침묵과 관련된 작가의 유년기에 대해 들려준다. 이어서 이 동화에 자신이 16세 때 또 다시 자폐증에 걸렸던 비밀이 들어 있다고 전제 한 뒤, 다시 총 5부로 나누어 키냐르 자신의 시론과 삶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글쓰기, 그것은 잃어버린 목소리 듣기이다.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내어 그것을 알아맞힐 시간 갖기이다. 잃어버린 언어 안에서 언어를 탐색하기다. 거짓말 혹은 대체물과 알 수 없는 지시 대상의 불투명성 사이에 벌어진 틈새를 끊임없이 편력하기다. "

 

 

 

"글쓰기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작가가 책을 저술하는 바로 그 순간 추구하는 바는 결코 글을 이입해서 생겨날 작품이 아니라 허탈일 것이다. 그것은 글을 쓰는 바로 그 순간 나 자신에 의한 나 자신에 대한 일체의 반성적 사로잡힘에서 나 자신이 이탈 할 수 있는 가능설이다. 내가 만들어진 곳에 이를 때까지 이탈하는 것이다. 마치 연어가 산란을 위해, 즉 죽기위해 일생 동안 필사적으로 거슬러 오르는 모천이다. 모천에 다다르면 산란하고 죽는다. 글쓰기는 산란하기이다. 산란과도 같은 빈칸이다. 쾌락에서 흘러나온 정액 방울 같은 빈칸이다."

 

 

 

"언어는 하나의 화면이다. 의지는 시야에 생긴 얼룩이다. 의식은 위성 중계하는 악마이다. 이 모두가 살인과 죽음에 봉사한다. 통찰력과 이성, 현재 통용되는 언어는 무한한 정성으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끊임없이 고사하는 관목들이다. 우리 내부에서 어떤 토양도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바람 속에서 한결같이 서로에게 매달린다. 우리는 사막에서 쉬지 않고 뿌리를 더듬는다. 끊임없이 어둠과 침묵에 합류한다. 마치 물이 도랑으로 흘러들 듯이..."

 

 

 

그렇다. 도랑으로 흘러드는 물은 결국 바다에 이른다. 가없는 언어의 바다에서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생물들로 넘쳐난다. 누군가는 그 언어의 바다에서 오늘도 낚싯대를 드리우며 월척을 낚는다. 이 시간의 나처럼 말이다.

 

 

 

두 번째 장의 동화까지를 읽을 때는 넘 시시해 우째 이 책을 읽으라 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난 의심이 많은 인간이니깐, 더더군다나 말이다.

 

 

 

죄송혀요, 필님.

 

 

 

오랫동안 내 안에 무정형 상태로 아우성쳐대는 언어의 욕망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익사할 지도 모르는 내 현실에 글쓰기는 단연코 하늘이 내려주신 밧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 언어를 하나하나 고르게 되었다. 누군가 말했다. 그것은 마치 자신내부의 달빛 건지기와 비슷한 것이라고. 달빛을 건질 수 있는 내가 되어 행복한 시간이다. 아마도 오랫동안 나도 키냐르와 함께 허탈을 경험할 것이고 종내는 어떤 단어가 어떤 문장이 내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되는 순간을 지나 수태의 순간이나 융합의 장소로 이동하는 순간을 경험할 것을 믿는다.

 

"키냐르의 책 한 권을 읽는 것은 다른 책 1000권을 읽는 것과 다름없다."

 

그를 만나기 위한 다음 여행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