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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벽/정용준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4. 1. 4.

 

 

 

누군가의 무엇인가의 벽이 되는 과정은 가히 상상도 하기 싫은 만큼 폭력적이다.

벽 앞에서 본능 적으로 절망하나 생존하기 위해 자신 또한 누군가의 무엇인가의 벽이 되어 버리고 마는 인간의 실존,

나 또한 누군가의 무엇인가의 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하기도 싫은 상상.

 

정용준 소설집 가나 중에 ‘벽’을 만났다.

 

 

 

공원 벤치에 누워만 있던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그저 누워만 있었다. 어느 날, 남자에게 누군가 찾아왔다. 단정한 하늘색 투피스차림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핑크색 립스틱을 칠한 사십대 여자, 그저 누워 있는 남자를 향해 ‘선생님’이라는 경어를 붙이며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시민연대> 총무 한 연주, 남자의 눈에 유독 ‘이웃’‘사랑’이라는 단어가 도드라졌다. 남자는 그녀에게 신분증과 명의를 빌려 주는 댓가로 국가에서 주는 첫 번째 지원금 오십 만원을 받는다. 그것의 결과로 <한국신용협회> 소속의 과장 박종식에 의해 염전이 있는 굴도로 끌려간다. 그리고 오직 숫자 21이 된다. 숫자 1,2,3....염전의 증발지에 속한 사람들의 주민등록증... 그곳에서 상상하기 싫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폭력과 마주친다. 햇볕 아래서 하루 종일 쌓여만 가는 소금을 긁어모으느라 쉬지 못하지만, 그 마저도 능률이 오르지 않으면 무차별 적인 폭력으로 흔적 없이 죽어 나가거나, 초점 없는 눈을 뜨고만 있는 벽이 되고 만다. 그리고 오직 숫자 21이 된다. 숫자 1,2,3....염전의 증발지에 속한 사람들의 주민등록증... 그곳에서 상상하기 싫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폭력과 마주친다.

 

 

 

극단의 폭력과 모멸은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앗아간다. 죽음이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곳에서는 죽는다는 것이 의미를 갖지 못한다. 염전에서의 죽음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죽음이 너무도 사소하고 끊임없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능은 다르다. 때리면 맞지 않으려고 몸을 웅크린다. 본능은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가장 정직한 반응 중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본능을 일으키는 지속적인 자극은 노력으로 이어진다. 몰아붙일수록 삶의 포기는 선명해지고 생존 본능은 강해진다는 원리는 사내의 생각 중 가장 창의적인 것이었다. 염전은 생존 본능이라는 에너지를 동력 삼아 움직이는 낡은 기계와 같다. 탈출의 욕망보다는 잡힐 것이라는 두려움이, 불만보다는 지금의 상태라도 유지하고 싶은 무력감이 지배하는 땅, 모든 곳이 벽으로 막혀 움직일 수 없는 염전에 실꾼들이 숨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그들이 함께 모여 웅크리고 자는 막사뿐인 곳이다.

 

 

 

염전의 구성원인 9에 대한 서술이다.

 

 

 

“9는 더 이상 염전 너머를 보지 않는다. 보게 되면, 보고 싶은 것이 생긴다. 보고 싶은 것이 생기면,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없는 현실이 괴로운 법이다. 충분히 괴로운 상황이다. 이 상황에 결핍감을 보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어떤 이에게 희망이 살아갈 힘을 줄지 모르지만 이곳에서의 희망은 마약과도 같다. 희망은 거짓 기대와 헛된 욕망을 만든다. 기대와 욕망은 몸에 열을 공급한다. 배출되지 않고 누적되는 열은 결국 자멸에 이르게 한다. 자멸은 곧 벽이다. 염전에서의 희망은 벽 앞에서 늘 산산이 부서져왔다. 9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그 어떤 것도 희망하지 않는 무감한 마음을 갖는 것이었다.”

 

 

 

눈물이 났다. 나에게 남아있던 유일한 희망, 그 어떤 것도 희망하지 않는 무감한 마음을 갖는 것, 그런 내 한 시절이 스쳐갔다. 내가 마주칠 수 있는, 우리가 바라다 볼 수밖에 없는 벽은 도처에 있다. 다만 벽의 색깔과 강도만 다를 뿐. 벽은 곧 한계의 결정판이 되고 나, 우리의 나약성은 벽 앞에서 처절하게 드러나고 만다. 무감한 마음을 갖는 것으로.

 

 

 

그들이 모여 함께 웅크리고 자는 막사, 절망 속에서도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쓰면서 절제가 쉽지 않다. 감정의 결핍과 과잉을 조절하는 것이 내 글쓰기의 관건임을 느끼는 즈음이다. 치밀하지만 거리두기를 완벽히 구현해 낸 작가가 참으로 부럽기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