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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관계의 균열과 불안, 예측할 수 없는 일시적인 문제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4. 5. 14.

 

 

 

 

<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안내문은 그게 일시적인 문제라고 했다."

그렇게 소설은 시작한다. 쇼바와 슈쿠마라는 삼십대의 젊은 부부는 삼년 동안의 결혼생활에서 얻은 아이를 유산하게 된 전, 후의 일들을 담담히 써내려간다.

점점 그들 사이에 일시적인 문제처럼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을 메꾸려 진실게임 같은 것을 하지만...

"슈쿠마는 쇼바의 잔에 다시 와인을 따랐다. 그녀가 고맙다고 했다.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이제 그는 그녀의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를 하려고 무척 애써야 했다. 그녀가 음식 접시에서, 아니 교정지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게 하는 이야기를 하려면 말이다. 결국 그녀를 즐겁게 하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그는 침묵에 개의치 않는 법을 배웠다." <30/일시적인 문제>

"그동안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하나 찾았어."

쇼바가 그의 왼쪽 어깨 너머의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려는 듯 군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어, 말을 이었다. 우린 고통을 겪을 만큼 겪었다.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독 했다. <42>

쇼바가 전등을 끈 것이다. 그녀는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앉았고, 잠시 뒤 슈쿠마도 쇼바와 자리를 같이 했다. 두 사람은 이제 자신들이 알게 된 사실 때문에 함께 울었다.<45>

 

비로소 부부는 그들 사이의 균열을 메울 말하지 않았던 말들을 뱉어내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함께 울게 된다.

 

잠깐 소설가 정이현씨의 말을 들어보자.

 

어떤 책에는 길고 장황한 헌사가 필요치 않다. 세상엔 한 문장의 설명만으로도 짧은 탄성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존재한다. 『축복받은 집』은 줌파 라히리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라히리는 미국에 거주하는 40대 중반의 여성작가이며, 오 헨리 문학상과 펜/헤밍웨이 문학상, 퓰리처상 등을 수상했고 올해 맨부커상의 강력한 후보였다. 그가 동시대에서 소설을 가장 잘 쓰는 현재진행형의 작가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처음 그의 소설을 읽었을 때가 생생하다. 책을 가만히 덮고서 나는 읊조렸다.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플롯은 정교했으며, 문장은 건조하고 정확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이 내 영혼의 어딘가를 관통했다는 것을.

 

 그 뒤 우리나라의 작가들이 라히리에 대한 애정을 수줍게 고백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좋더라. 좋지? 우리끼리는 그런 함축적인 대화면 충분했다.

 

 작가들이란 웬만해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입 밖에 내어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재능을 내심 부러워하거나 선망하기는 해도 여간해서 탄복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라히리는 ‘작가들의 작가’이며, 특별히 빛나는 그의 단편선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새로운 고전의 지위를 확보해 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번에 재번역된 『축복받은 집』에는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맨 앞에 수록된 ‘일시적인 문제’의 주인공은 젊은 부부다. ‘안내문은 그게 일시적인 문제라고 했다. 닷새 동안 오후 여덟 시부터 한 시간 동안 단전이 된다는 것이다.’(15쪽) 아이를 사산하는 사건을 겪고 난 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로를 미워하던 남녀는 매일 강제되는 한 시간의 어둠 속에서 의외로 편안함을 느낀다. 어둠 속에서 그들의 마음은 차츰차츰 풀어지고 암흑은 역설적으로 상대의 눈을 마주보게 한다.

 

 독자는 궁금해진다. 그래서 그들의 관계는 회복되고 다시금 행복해졌을까. 작가는 현실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마법은 없다고, 그걸 몰랐느냐고 냉정히 되묻는다. ‘두 사람은 이제 자신들이 알게 된 사실 때문에 함께 울었다.’(45쪽) 비로소 독자는 우리의 삶이란 일시적인 문제의 총합이자 거대한 전체의 한 부분일 뿐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라히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닿을 듯 말 듯한 진심에 대하여, 한 순간 닿았다고 믿었지만 실은 결코 닿은 적 없었던 관계의 아슬아슬한 비밀에 대하여 날카롭게 포착하여 서늘하게 묘파해 낸다. 칼날을 숨긴 채 예리하고 깊은 자상을 남긴다. 그가 ‘경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인도이민가정에서 성장한 인도계 미국인 2세이고 작품 속에 미국에 거주하는 인도계 미국인 가족을 즐겨 등장시키는 까닭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호명은 적확하지만 동시에 그렇지 않다. 모든 좋은 문학은 결국 경계의 문학, 혹은 이민자 문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를 떠나온 사람들이고, 또 어딘가로 떠나가는 사람들이니까.

 

흔들려도 선뜻 떠날 수 없는 계절, 이 소설을 조용히 권하고 싶은 이유다.

 

 

 

 

 

 

 

 

 

 

편혜영의 <몬순>

 

단전은 두 시간 동안이라고 했다.

단전이 될 아파트의 주민인 태오와 유진. 부부인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위기감이 도사린다. 이직한 사실을 아내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한 태오, 단전이 되는 날 불 꺼진 어두운 집에 그대로 남아 있겠다는 유진.

"우진 씨한테 물어도 믿을 만한 얘기는 별로 말해주지 않았어요. 바람은 부는 방향이 바뀐 후에야 정확한 풍향을 알 수 있다고만 했어요. 내가 다시 물어보니까 등압선을 보면 풍향을 짐작할 수는 있다고 얘기해줬어요. 확신할 수 없지만 짐작할 수는 있다고 말입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짐작할 뿐이라고요” <29/몬순>

그저 최선을 다해 짐작할 뿐인 우리 삶의 예측 불가능성 그리고 그로 인하여 우리 삶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리에 짙게 깃들어 있는 불안이 적절히 비유되어 있는 문장과 상황을 그린다.

 

정전 그리고 아이를 잃은 부부라는 설정이 줌파 라히리의 단편 <일시적인 문제>와 자꾸 오버랩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