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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빨간 옷 숙녀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3. 11. 20.

 

알렉산더는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자신의 몸에 어떤 힘이 가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만났던 그림자정부의 비밀요원중의 하나가 말한 사실이 퍼뜩 머리에 떠올랐다. 우리는 인간의식에 영향을 주는 전자시스템 개발을 5년 전에 끝냈어요. 그것뿐만 아니에요. 개발 중인 여타의 향정신성 무기들과 결합한다면 완벽하게 한 인간의 행동과 결정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죠. 간단하죠. 버튼 하나만 누르면 돼요. 우리는 이 시스템을 M.F.라고 부르죠. ‘남을 자유자재로 조종한다.’는 뜻의 mind fuck의 앞 글자를 딴 것이죠. 이 말은 버튼하나로 모든 사람들을 우리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말과 같아요. 알렉산더는 그 비밀요원이 일부러 알렉산더에게 경고하러 왔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것은 곧 그들의 공격이 임박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여 알렉산더는 다소는 초조하게 그들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공격을 맞을 것을 대비해 부쩍 알렉산더는 혼자 있을 때는 명상에 들어갔다. 어느 곳이든지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을 셌다. 감은 눈으로 호흡을 세는 횟수가 많아지면 곧 호흡마저도 잊어버린다. 가수면 상태에 들어간다. 그 상태에서는 알렉산더는 프로토콜을 사용한다. 즉 외계인들과의 교신 언어인 프로토콜로써 현재 자신이 처한 곤경을 알리는 것이다. 설사 알렉산더가 그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지 않아도 이미 그들은 그림자정부가 알렉산더에게 가하는 위험을 먼저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알렉산더 또한 그들이 이미 알렉산더의 곤경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감은 아마도 자신의 한계에 의한 감정일 것이다. 그들과의 교신을 통해 알렉산더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보고 싶었다. 이러한 과정중의 하나가 명상을 통한 것이었다. 하여 요즈음 늘 혼자 있는 시간은 사색과 명상의 자세가 되곤 하였다. 그런 훈련 덕분인지 자신에게 쏟아지는 강한 전자파를 느낄 때는 잠시 아찔하였다. 그 순간에 알렉산더는 눈을 감고 자신내부로 쏟아지는 공격을 맞을 준비를 했다. 정중앙 이마를 타고 흐르는 푸르스름한 빛을 감은 눈으로 확인한다. 그럼으로써 전자파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었다. 공격에 맞서 다시 한 번 알렉산더는 프로토콜을 사용한다. 그림자정부가 보낸 전자파가 프로토콜을 타고 밖으로 빠져 나가 곧 힘을 잃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알렉산더는 안도의 숨을 내 쉰다. 하지만 언제든 그들의 공격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다.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자판을 두드리는 미륵의 책상위로 뜨거운 민트향이 코끝에 감돌았다. 유난히 민트향을 좋아하는 미륵에게 바치는 마 고의 선물이었다. 미륵은 민트의 향기만큼 진한 마 고의 마음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밖에선 고개를 넘지 못한 바닷바람이 앙탈을 부리고 있었다. 곧 첫눈이라도 내릴 기세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단칸 셋방이 그나마 따뜻한 것은 마 고 때문이었다. 오늘도 마 고는 하루 종일 부산 할 것이다. 미륵의 방 밖에선 바람소리 못지않은 쉿쉿 소리가 끊임없이 음악처럼 들렸다. 쉿쉿 쉬이익, 쉬이이익, 쉿쉿. 마 고의 다리미가 내뿜는 수증기 소리였다. 참 이상했다. 도시 배울 수 없었을 것 같았던 마 고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딱 두 달 만에 다림질을 배웠다는 것이 아무래도 신기하기만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날 구멍이 있다는 게 이런 경우를 뜻하는 것이구나. 민트향을 들여 마시며 잠시 미륵은 아버지와 마 고의 일을 더듬었다. 그렇게 반대하던 마 고와의 결혼을 아버지가 승낙하다니 그것 또한 불가사의 한 일이었다. 승낙하시고 딱 두 달 만에 아버지는 돌아 가셨다. 노환도 아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 년 만에 아버지마저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미륵 곁엔 마 고가 있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마 고는 세탁소를 운영했다. 대형 체인점에 밀려 겨우 밥벌이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하는 마 고의 기척을 들으면 미륵은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미륵은 마 고로 부터 받는 100퍼센트의 사랑에 취해 오늘도 자판을 누르는 손에 가속도가 붙는 것인지도 몰랐다. 갑자기 전화기가 부르르 떨렸다. 필시 원고 독촉일 것이다. 대필을 해주고 있는 것을 뒤로 미루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지금 쓰고 있는 미륵은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계약금을 받은 터라 무시할 수도 없었다. 이제 7일 남았다. 중간 점검이리라. 하지만 아직 반도 못썼다. 마음이 성가셨지만 무시하고 싶었다. 끊어졌다 다시 부르르 거렸다. 할 수 없이 미륵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국제 전화였다.

“미륵, 나야. 왜 이렇게 통화하기 힘들어?”

전화기속의 목소리는 네오였다.

“그래, 오빠. 여전히 목소리엔 힘이 넘치네. 잘 있었어요?”

미륵은 아득한 곳, 자신이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살고 있는 네오의 전화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네오를 통해 다다의 소식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네오와 헤어진 지가 엊그제 같은데 자그마치 20년이나 지났다. 그 사이 미륵은 부모님을 여의고 마 고와 결혼했다. 네오는 엄마를 따라 미국으로 가서 지금은 NASA, 미합중국항공우주국에 근무 하고 있다. 다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여의고 엄마를 찾아 그녀의 고향 사하라로 떠났다. 네오가 다다와 연락이 닿았다. 하여 다다의 소식을 가끔씩 네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네오는 다다의 이름으로 ‘사막별 여행자의 노래’란 연재코너를 잡지에 싣고 있었다. 실제로 다다가 보내온 일종의 명상록 같은 것이었다. 일군의 매니아 층을 형성해 네오는 난감한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그 코너의 독자들이 작가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요청이 쇄도하자 잡지의 편집자가 그만 다다에 대한 이야기를 흘린 것이었다. 다다를 만나기 위해 극성맞은 독자 몇은 다다를 찾아 실제로 사하라를 헤맨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 뒤 소식이 궁금하던 참이었다.

“마 고는 어때?”

“응, 우린 여전해.”

“다행이다. 세상에서 너네 둘이 가장 행복한 것 같아.”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다다가 더 행복할 거야.”

“다다에게 물어봐줄게.”

네오는 짐짓 그 말이 하고 싶어 전화한 것이었다. 다다가 머지않아 한국에 다녀갈 거란 이야기였다. 다다의 입국 날짜에 맞춰 자신도 한국에 들어오겠다는 소식을 전했다. 미륵은 가슴이 뛰었다. 고등학교 이래로 보지 못했던 다다를, 미국에 간 이래로 보지 못하고 목소리로만 안부를 나누었던 네오를 다시 만난다는 생각을 하니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서지 않았다. 그 길로 마 고에게 달려갔다.

“마 고, 다다랑 네오가 다음 달에 한국에 온데.”

마 고는 아직도 잠옷차림으로 뛰어나오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미륵을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채 미륵이 소리치는 이유를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미륵은 다시 한 번 마고에게 뛰어들어 마 고를 품에 안았다. 마 고를 안으려 했지만 워낙 큰 몸이라서 미륵이 마 고의 품속에 안긴 꼴이 되었다. 이럴 때 마 고는 흥분되었다. 사랑스럽다 못해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미륵이 예뻤다. 이유도 모른 체 마고도 기뻤다.

“마 고, 다다랑 네오가 다음 달에 한국에 온데.”

그제야 마 고는 알아들었다.

“정말? 다다랑 네오랑?”

“응, 다음 달 스무 밤만 자면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어.”

마 고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었던 다다였다. 할아버지의 사건만 없었다면 아마 다다는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사고였지만 마 고는 다다에게 참으로 미안했다. 마치 자신의 할아버지가 저지른 잘못을 자신이 저지른 것 마냥 마 고는 슬프고 아팠다. 그 날 일이 생각나자 마 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한기가 찾아왔다. 안고 있던 미륵마저도 섬찍했다.

“마 고, 왜 그래? 또 그 생각 때문에?”

마 고의 표정을 살피던 미륵은 서둘러 가게 문을 닫았다. 혹시라도 마 고가 경련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이웃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마 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미륵이 서둘러 마 고를 부축해 방안으로 들어왔다. 마 고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마 고 미안해. 내 생각만 하고. 하지만 마 고, 이젠 그만 잊어. 마 고의 잘못 아니었어.”

미륵은 마 고를 향해 할 수 있는 한 다정하게 말했다. 손으로는 가만 마 고의 얼굴을 더듬었다. 마 고가 미륵의 손을 가져가 자신의 가슴위에 얻는다. 필시 얼마나 자신의 가슴이 뛰는지 그 박동소리를 들려주려는 의도였으리라. 신기하게도 마 고의 심장박동 소리는 미륵의 손을 얹게 되면 속도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미륵이 말하는 약손이었다. 급하게 달음박질 하던 심장 박동이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미륵은 가만 마 고 옆에 누었다.

“마 고, 다시 한 번 말하겠지만 할아버지 잘못이 마 고의 잘못은 아니었어. 할아버지도 뭔가 그 순간에 귀신에 홀렸을 거야. 우리 이제 그만 잊고 그냥 다다에게 그만 미안해하자.”

할 수 있는 한 다정하게 미륵이 마 고에게 말했다.

“마 고, 할머니가 그 순간에 나타났는지도 몰라. 엄마가 그랬어. 마 고 할머니가 나타났다고.”

미륵은 마 고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했다. 마 고의 할아버지는 말을 잘 하지 못했다. 마 고의 할머니가 어느 날 할아버지를 버리고 도망쳤다고 했다. 다다가 살던 아파트를 짓는 공사현장에서 밥집을 하던 마고 할머니는 공사장 인부와 눈이 맞았다고 했다. 아파트 공사가 끝나자 마자 할아버지를 버리고 그 남자와 함께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사건 후엔 알게 되었다. 그 후유증으로 마 고 할아버지는 영영 말을 잃고 정신마저 오락가락 했다고 했다. 어느 날 주황색 꽃무늬를 입은 다다할머니의 뒷모습을 본 마 고 할아버지가 그만 착4각을 해서 다다네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말았던 사건이었다. 그 사건으로 다다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다다는 엄마를 찾아 사하라로 떠나게 된 사건이었다. 그렇게 떠난 다다는 한 번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하라에서 아버지를 만났다는 소식은 네오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사막의 은자였으며 투아레그족이었던 다다 아버지는 다다를 자신의 종족에 거주하도록 허락했다고 했다. 그들 종족의 교육을 받으며 다다는 강한 은유를 품고 있는 메시지를 세상에 보내고 있게 된 것이다. 다다가 꿈꾸던 사막별 여행자가 되어서 모든 지구별 여행자들에게 교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고아원에 네오를 맡기고 간 엄마가 어느 날 나타나 네오를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머리가 비상했던 네오는 과학자가 되어 지금 NASA의 ‘외계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네오의 꿈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네오는 어린왕자가 되어 우주를 여행하는 지도 몰랐다. 자세한 것들은 알 수 없었지만 미륵은 그저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런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마 고는 어느 새 잠이 들어 있었다. 이것 또한 마 고가 자신을 안정시키는 방법이었다. 필시 살고 싶은 자기보호본능이리라 미륵은 눈물이 났다. 마 고처럼 다훈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은 사십을 못 넘긴다는 통설을 미륵은 알고 있었다. 부모님들이 마 고를 반대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유일한 딸이었던 미륵이 정상인도 아닌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 자체도 힘들었지만 자기들이 이 세상에 없을 때 혼자 남게 될 미륵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오래도록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을 견딜 수 있기를 바랐던 부모님들이었다. 도저히 마음을 돌리지 못했던 미륵을 보고 마침내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마 고에게 미륵을 부탁하며 마지막 눈을 감은 아버지 생각이 엄습했다. 미륵은 왜 이렇게 기쁜 날 갑자기 슬픈 생각을 하는 자신이 싫었다. 얼른 눈물을 훔치고 쌕쌕거리는 마 고를 다시 한 번 안아보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미륵은 텔레비전을 켰다. 다행히 마 고는 잠이 한 번 들면 누가 떠밀어도 모른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글을 계속 쓸 수도 없었다. 마침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촛불집회였다.

“오늘 서울역 광장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오후 4시 반부터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비판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오후 7시부터는 촛불집회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주최 측은 오늘 행사에 7500명이 모일 걸로 보고 있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이들은 시내 곳곳으로 흩어져 시위를 계속할 것을 예상됩니다. 경찰은 세종대로와 남대문로, 여의도 공원 등에서 교통 체증이 빚어질 것으로 보고 교통경찰 750여 명을 배치하는 한편 시민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어지러웠다. 뒤를 이어

“검찰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고의적으로 폐기됐다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15일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 사건과 관련해 "회의록 삭제 및 미이관이 모두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의원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곧이어 통진당 의원들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는 소식이었다.

"이석기 의원은 지하혁명조직(RO·Revo lution Organization) 비밀회합을 통해 북한식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는 내란을 음모했다."(검찰)

"RO는 실체가 없다. 국가정보원이 만들어 낸 상상 속 조직이다."(이 의원 변호인단)

12일 오후 2시 수원지방법원 110호 대법정. 이곳에서 열린 이석기(51)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첫 공판에서는 검찰과 이 의원 변호인단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이날 법정에는 수원지검 공안부 최태원(43) 부장검사를 비롯한 8명의 검사와 변호인단 16명이 총출동했다.”

소식을 전하는 아나운서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비록 삼류소설가에 불구했지만 다다의 삼촌 위대한씨는 미륵에게 늘 관대했다. 마치 다다 대신에 미륵을 조카로 여기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 함께 이 소도시까지 내려왔을 때 미륵을 불러내 식사를 함께 할 정도였다. 그 때 소개 받았던 인물 중의 하나였다. 그는 정규방송의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로 알려져 있던 사람이었다. 왜 그가 뉴스진행을 맡았을까? 그것도 정규방송도 아닌 종편채널에. 미륵은 궁금증이 일었다. 알 길이 없었다. 미륵은 잠시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위대한 삼촌과 그 아나운서가 한 참 설전 중이었다.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어? 웬 쓰레기 같은 기사들만 줄기차게 내 놓는 건가? 그런 연애인의 사생활 같은 사건에 우리는 넌더리가 난다네.”

“그래야 하니까.”

“그래야만 한다니? 왜 지금 현재 일어나는 중대한 사건에 대해 자세히, 사건의 진실 그대로 보도할 수 없냐고?”

삼촌은 술기운에 객기를 부리고 있었다.

“그거 알아. 그래야만 내가 밥 먹고 살지.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사건을 그대로 몰아붙이게 되면 아마도 난 잘리고 말 걸. 내 권한 밖의 일이야. 즉 말이야. 중대하고 민감한 이야기들은 뉴스에서 잘리고 말지.”

“그래도 기자의 양심을 걸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내 보내면 되잖아.”

“그게 그렇지 않아. 설사 세세히 집중취재를 해서 기사를 작성했다 하더라도 윗선에서 자동커트 되지. 자네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런가?”

그가 위대한 삼촌에게 짜증 투로 대꾸했던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위대한 삼촌은 ‘그림자 정부’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 말이 생경해서 미륵은 호기심으로 삼촌의 말을 새겨들었다.

“자네 말이야. 경제학자니깐 그림자 정부라는 말을 알거야. 일루미나티(Illuminati) 또는 광명회(光明會)는 과거와 현대 그리고 실재와 가공의 세계에서 주목받는 몇몇 집단의 명칭 가운데 하나이지. 통상적으로 현대에 들어와 구체화하였거나 바이에른 일루미나티가 지속하여 이른바 권력 뒤에 숨은 그림자 세력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와 기업들의 정세를 살피며 세계를 지배하려 드는 음모 조직으로 일컬어지고 있지. 바로 이것이 그림자 정부의 원형이야. 이 일루미나티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획하기 위해 비밀리에 회합을 가진다네. 세계의 재력가와 권력자 등 영향력을 지닌 일부 인사들로 구성된 모임이지. 1달러의 지폐 뒷면에는 미국의 국새와 보조국새가 찍혀있지. 국새가 바로 화살과 올리브가지를 움켜쥔 독수리이고 보조국새가 미완성 피라미드지. 그리고 일루미나티의 전시안은 이 미완성 피라미드위에서도 빛나고 있다. 이것으로 일루미나티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미국의 1달러 지폐의 디자인에까지 행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네. 미국인들은 매일같이 1달러를 사용하면서도 지폐의 뒷면에 그려진 기이한 그림들의 의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 이제 그 그림들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겠네.

미륵은 도시 무슨 말인지를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미륵은 작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재빨리 삼촌 일행이 나누는 말을 받아 적었다. 일종의 습관이었다.

“우선 피라미드 하단부의 MDCCLXXVI라는 철자가 보일 것이네. 그것은 로마자로 1776년을 뜻한다. 바로 일루미나티의 창립연도를 나타낸 것이지. 그리고 전시안의 위로 역시 라틴어 문구가 적혀있는데 ANNUIT COEPTIS, 이것은 신이 우리가 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뜻이라네. 하지만 지폐에 있는 다른 문구와 조합하면 전혀 다른 메시지가 들어나지. 피라미드 밑을 감싸고 있는 NOVUS ORDO SECLORUM의 문구와 조합해보도록 보면 새로운 세계 질서의 탄생을 신이 좋아할 것이라는 뜻이 되어버린다네. 신세계질서. 이것은 일루미나티의 궁극적인 목표로 모든 정부와 민족주의 그리고 조직화된 종교를 무력화시키고 자신들이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새로운 질서를 뜻한다는 말이지. 그리고 그들은 가까운 미래에 그러한 역사를 도모하겠다는 의지로 1달러에 자신들의 표식을 담아 넣은 것이란 말이네. 피라미드뿐만이 아니네. 미국의 국새인 독수리에도 일루미나티의 표식은 담겨져 있다고 하더군. 독수리가 오른발로 움켜쥔 올리브가지, 왼발로 잡고 있는 화살, 독수리 머리 위에 있는 별 그리고 방패에 그려진 줄무늬의 숫자들을 각각 13개이지. 예로부터 13은 불운을 뜻하는 숫자로 서양인들에겐 좋지 않은 숫자로 인식되어왔지. 13일의 금요일도 있지 않은가. 헌데 어째서 미국 건국의 지도자들은 그렇게 고집스러울 정도로 13이라는 숫자를 국새에 새겨 넣었을까? 바로 일루미나티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하더군. 13은 일루미나티를 상징하는 숫자이지. 17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도록 하지. 당시 바이에른 정부는 일루미나티를 기성 교단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탄압을 서슴지 않았다네. 그리고 그 탄압은 날로 심해져 일루미나티의 지휘 체계에 있던 구성원 13명이 공개처형당하는 사건도 일어났다네. 이후 일루미나티 회원들은 지하로 숨어들거나, 독일을 벗어나 도망칠 수밖에 없었지. 바이에른 정부는 일루미나티의 위험성을 다른 국가들에게도 경고하였고, 그렇게 일루미나티는 와해되어가는 듯 했다지만, 당국을 피해 도망친 회원들은 일루미나티의 이념을 잊지 않았다고 하더군. 그들은 바이에른 정부와 유럽통치자들의 눈을 피해 일루미나티라는 조직명을 금지어로 정하고 라틴어로 13을 가리키는 트레디에침을 새로운 조직명이자 암호명으로 사용했다네. 처형당한 13인에게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언제까지고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말이야. 그때부터 13은 일루미나티를 상징하는 숫자가 되었지. 트레디에침은 위험을 피해 당대 최대의 비밀조직이던 프리메이슨에 융합되기도 하면서 순조롭게 위험을 넘겼지. 그리고 훗날 일루미나티는 다시금 부활하게 되었다는 말이네. 이 일루미나티 회원들의 운영하는 단체를 우리는 통상 그림자 정부라고 일컫는 다네. 이 그림자 정부는 전 인류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관장하고 통제하고자 몇 가지 계획들을 추진 중에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전 인류의 몸 안에 베리칩을 장착하려는 계획이지.”

“나도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네. 설마 했는데 그런 일이 세계 속에서 일어난다는 말이 사실인가?”

“처음으로 베리칩에 관한 얘기를 들었을 때, 내가 느꼈던 소름끼친 감정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네.”

미륵은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그림자 정부에 의해 모든 것을 지배당하고 있다네. 우리나라에선 날조된 사건이 진실을 지배하고 덮어버리고 오보를 내게 하지.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을 제대로 자기들 이로운대로 통제하고 관장할 수가 없는 거야. 마치 조지 오웰의 1984속의 빅브라더에 의해 지배를 받는 세상처럼 말이지. 빅브라더가 내가 말한 그림자정부가 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선...”

그 다음 말은 하지 않았다.

“아, 기억하네. 1984란 작품 속의 말, 모든 사람들이 당이 강요하는 거짓말을 받아들이고, 또 모든 기록들이 같은 소리를 말한다면 그 거짓말은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될 것이다. 무서운 일이야.”

“모든 것의 정점은 권력에 있어. 인간의 DNA속에 저장되어 있는 본능 중에 하나이지. 누가 그 권력을 얼만 큼 쥐고 흔드냐 에 따라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한 국가도 인류전체의 미래도 결정되는 것 아닐까?”

그 뒤에도 숱한 논쟁이 오고 갔었다. 하지만 미륵은 더 이상 메모를 하지 않았다. 미륵이 소화하기에는 벅찬 내용들이었다. 호기심으로 메모를 하면서 미륵은 작가적인 영감을 얻었다. 그래 그림자 정부에 대한 것을 소설로 쓰는 거야. 그렇게 시작한 것이 알렉산더와 외계인의 이야기 였다. 이제 미륵은 텔레비전을 끄고 다시 자판위에 손을 올려놓고 자판이 이끄는 대로 집중하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오늘 “빨간 옷 숙녀”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임을 기억했다. 저녁 만찬에 초대받았다. 필시 그녀는 그림자정부의 핵심요원임에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더는 그녀의 초대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알렉산더로부터 어떤 정보를 끌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 정보로 가지고 그녀는 또 얼마간의 보조금을 타낼 수 있을 것이고 그 보조금은 그녀의 개인적인 생활을 위해 쓰여 질 것이다. 이 지점까지도 알렉산더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여도 알렉산더는 자신과 외계인의 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정보를 원하는 누구에게라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알렉산더의 신념이었다. 그의 신념을 넘어서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마땅히 취해야할 행동이었다. 그것이 또한 알렉산더의 철칙이기도 했다. 그 점을 그림자정부의 요원들은 교묘히 이용을 했다. 알렉산더로부터 얻은 정보를 토대로 또 어떤 거짓정보를 세상에 내놓게 될지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외계인과의 전정한 교신을 방해하기 위한 그들의 공작이 점점 거세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알렉산더처럼 몇몇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도 그들이었다. 이러한 공격을 통해 그들이 노리는 것은 단 하나, 진실을 은폐하고 우주 공동체라는 인식의 확대를 막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림자 정부가 온 우주를 지배하며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알렉산더씨, 당신이 추진하고 있는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빨간 옷의 숙녀는 이미 알고 있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알렉산더의 프로젝트에 대해 파악하고 있음을 알렉산더 또한 알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생각했다. 왜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을 반복해서 들으려 할까?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알렉산더는 짐작할 뿐이었다. 알렉산더는 그녀가 원했던 사항들을 일일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당신이 그러한 일을 하려는 진짜 이유는 무엇 입니까?”

마치 취조하듯 그녀는 물었다.

“세상에는 자신의 임무를 이해하고 끝까지 해보려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나는 영적이고 다정한 사람들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을 한데 모아 우리의 미래를 설계해야함을 느꼈습니다. 나는 내 직관의 안내를 받아 우주적 보편성을 완전히 자각함으로써 서로가 소통하며 두려움과 갈등을 극복하는 평화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만이 환경오염, 가난, 전쟁, 질병과 같은 부조리로부터 인류를 구원해 새로운 시대를 맞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새로운 시대란 결국 지구인과 외계인의 통합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그런 것이죠? 당신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 것일까요?”

그녀는 알렉산더를 직시하며 직접적인 질문을 했다.

“맞습니다. 지구인과 외계인이 힘을 합쳐 인류의 종말을 막고 새로운 시대를 위해 힘을 합치자는 것입니다. 우리만으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이다.’라는 프로젝트를 만든 것입니다. 나에게 어떤 이익이 있냐고요? 글쎄요. 이익보다는 일종의 사명의식입니다. 우리와 외계와의 통합만이 우리의 살길이며 그 통합의 교량역할이 제 임무라는 인식 말이죠. 마치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알렉산더 대왕처럼 말이죠.”

빨간 옷의 숙녀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알렉산더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당신이 과연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군요. 설사 그렇다손 치더라도 당신은 결국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경고이기도 합니다.”

빨간 옷 숙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알렉산더를 응시하며 말했다. 알렉산더 또한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며 웃었다. 정작 그녀는 그녀 자신이 얻고자 하던 어떤 정보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알렉산더는 그녀의 경고는 이해했지만 그녀가 자신을 만나려 했던 이유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부분에선 전혀 언급이 없었다. 더 이상 물을 것이 없는 것처럼 그녀는 서둘러 알렉산더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먼저 일어났다. 알렉산더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알렉산더가 발견한 것은 푸르스름한 어떤 빛이었다. 바로 외계인들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왔을 때 발견하던 일종의 그런 빛이었음을 알았다. 알렉산더는 안심이 되었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림자 정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알렉산더는 또 한 번 경험한 순간이었다. 알렉산더는 집으로 돌아왔다. 텔레비전을 켰더니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면에는 UFO`가 페루의 마추피추 상공에 또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 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미확인 비행물체에 의해 관광객 3명이 납치돼 사라졌다는 소식이었다. 우울한 소식이었다. 알렉산더는 그것 또한 그림자정부가 무엇인가를 감추기 위해 사람들에게 외계인은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계획임을 눈치 챘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알렉산더는 묻고 있었다.

그 다음에 미륵은 미국이 저지르고 있는 이라크의 살상무기에 대해 언급할 예정이었다. 그때 마 고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륵은 자판에서 손을 내리고 마 고를 뒤돌아보았다. 마 고가 가장 예쁠 때가 바로 이런 때였다. 잠 잘때와 막 깨어났을 때, 마 고의 순진한 얼굴 속에 아직 뱃속에 있는 마 고의 2세가 떠올랐다. 미륵은 가만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어쩐지 엄마의 생각을 읽었는지 배속의 아기가 꿈틀거리는 것도 같았다.

“미륵, 다다와 네오가 온다고?”

마 고는 다시 한 번 미륵에게 묻고 있었다.

“그래요. 이십 밤만 자면 다다와 네오가 온데요. 우리를 만나러 온데요.”

“꿈을 꿨어. 다다가 푸른 옷을 입고 있는 꿈을. 다다가 말했어. 우리는 혼자가 아니야. 기분 좋았어. 다다도 네오도 미륵도 나도 혼자가 아니야.”

마 고는 웃고 있었다. 행복한 꿈이었다. 미륵 또한 행복했다. 알고 있었다. 마 고의 꿈속에서 다다가 그렇게 말했다면 틀림없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는 것이었다.

시계를 확인한 마 고가 텔레비전을 다시 켰다. 마 고가 좋아하는 만화영화 시간 이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는 만화영화를 방영하지 않고 있었다. 그 시간에 빨간 옷을 입고 있는 숙녀가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었다. 마 고는 빨간 옷을 입은 숙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어쩐지 어디 선가 본 듯하였지만 누군지를 몰랐다. 미륵이 물었다.

“마 고, 어디서 본 듯해?”

“생각이 안 나서.”

“엥, 내가 말했잖아. 내 소설속의 빨간 옷을 입은 숙녀야. 그림자정부의 비밀요원”

“맞다. 맞다. 빨간 옷 숙녀”

미륵과 마 고는 웃었다.

  "좀 무섭기도 해. 빨간 옷 숙녀의 나라에선 우리의 웃음도 통제 될 수 있을 지 몰라."

  미륵은 마 고가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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