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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8.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09. 9. 17.
지은이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010903
장르
나라별 시 베스트셀러보기
책 속으로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저자의 세 번째 시집. 인간의 의지와 다짐, 그리움, 절실함 등을 노래했다. 적멸 외 80편을 수록했다. 어두운 시절의 조선팔도, 모든 명당은 초소라고 한 시인이 말했었지 이제 정정한다 도처의 네온 불빛들이 밤새 만들어내는 불야성 그래서 전혀 어둡지 않은 대명천지 대한민국의 명당은 이제 다 모텔이다 이곳은 웬 나그네들이 이렇게 많은가... -25시 모텔 중에서-
이 책은..
나의 평가
보통입니다보통입니다보통입니다보통입니다보통입니다

"9월도 저녁이면 바람은 이분쉼표로 분다."

이 한구절 때문에 나는 이 시집을 샀다.

 

        적멸

 

지친 불빛이 저녁을 끌고 온다

찬물을 말아 넘긴 끼니처럼

채 읽지 못한 생각들은 허기지다

그대 이 다음에는 가볍게 만나야지

한때는 수천 번이었을 다짐이 문득 헐거워질 때

홀로 켜지는 불빛, 어떤 그리움도

시선이 닿는 곳까지만 눈부시게 그리운 법이다

그러므로 제 몫의 세월을 건너가는

느려터진 발걸음을 재촉하지 말자

저 불빛에 붐비는 하루살이들의 생애가

새삼스럽게 하루뿐이라 하더라도

이 밤을 건너가면 다시

그대 눈 밑의 그늘이 바로 벼랑이라 하더라도

간절함을 포기하면 세상은 조용해진다

달리 말하자면 이제는 노래나 시 같은 것

그 동안 베껴썼던 모든 문자들에게

나는 용서를 구해야 한다

혹은 그대의 텅 빈 부재를 채우던

비애마저 사치스러워 더불어 버리면서

 

이 시집 첫 페이지에 실린 시이다.

이 시를 읽고 나는 다음 쪽을 넘기지 못했다.

며칠씩이나.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한 참을 지나 마음의 충전을 다시하고

다음 시들을 차근 차근 읽어 내려갔고

급한 김에 뒷편에 실린 이숭원님(문학평론가,서울여대 교수)의해설을 읽어봤다.

 

이 시는 인간의 의지라든가 다짐, 그리움, 절실함 등을 모두 포기하고 적멸의 세계에 젖어드는 자아의 내면을 명상적어법으로 점묘한다. "지친 불빛이 저녁을 끌고 온다"는 첫 행감을 시각적으로 환기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지칠 수 밖에 없고 모든 것이 소멸되어가는 저녁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의식이 이 시행에 깔려 있다. 생각은 끝없이 머리에 일어나지만 내면은 공허하고 그대와의 만남도 아쉽게 종식될 뿐이다. "어떤 그리움도/시선이 닿는 곳 까지만 눈부시게 그리운 법이다"라는 시행도 인간 의식의 한계를 뚜렷이 단언하는 시행이다. 시선의 경계를 초월하는 그리움, 어떤 것으로도 충족되지 않는 도저한 그리움, 그러한 강인한 그리움의 지평은존재하지 않는다는 완강한 한계의식이 시행의 전면에 머리를 내민다.

어떤 그리움을 지니고 있건,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떠하건, 사람들은 저마다 "제 몫의 세월"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시의 후반부에 이어진다. 이것 역시 한계의식의 다른 표현이다. 어차피 모든 것이 운명에 귀속되는 것이니 서두를 필요도 없고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다는 생각, 우리의 삶의 고통과 실추의 되풀이라 하더라고 "간절함을 포기하면 세상은 조용해진다"는 생각은, 앞날을 내다보려는 일상적 의지조차 허무의 늪으로 밀어넣는, 운명에 대한 투항 선언 같다. 세상의 부재와 그 부재를 채우던 비애마저 버리고 도달하는 적멸의 공간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슴 미어지는 고통도 그곳에는 없겠지만, 창조의 기쁨과 좌절의 참담함도 없는 그곳에는 생의 꿈틀거리는 드라마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에 대한 해설을 읽으므로써 내가 왜 다음 쪽을 넘기지 못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허무의 눈으로 바라보는 운명에 대한 투항 선언"

바로 그것 때문이었나 보다.

 

가슴이 먹먹하다.

 

그러나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의 또 다른 측면이다.

운명에 대한 한계의식을 강하게 느끼면 느낄수록 그 한계의식을 벗어나려하는것이 또한 생명의 법칙이며 우리의 운명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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