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고기념 자축연을 혼자 치루며 해롱거렸던 밤, 아무리 잠들려 해도 도무지 잠이 안와 그만 꼴깍 날 밤을 샜다. 늘 생각이 많아 질 땐 잠이 밀려나고 머릿속엔 온갖 이야기들이 마치 장날 시장 통처럼 수런거린다.
어젯밤과 새벽 그리고 이 시간까지, 다다와 뚱보 마 고 뿐만 아니라, 지영과 지수와 석현의 이야기 까지, 아니 은실 누나와 K, 그리고 그녀의 남편, 비밀의 향연 속의 나와 유나 등등 체 제 갈 길을 가지 못하고 붙잡혀있는 내 이야기 속의 모든 주인공들이 아우성을 쳐댔다.
“열중, 쉬어, 차렷.”
아무리 근엄한 목소리로 구령을 외쳐 봐도 이놈들은 이제 막 입학식을 끝낸 초등학교 일 학년생들이다. 도무지 말 발도 서지 않고 막무가내로 떠들기만 한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아무리 가르마를 타려고 해도 서로들 양보하려하지 않는다.
“그래, 내 맘이야. 기분 내키는 대로.”
다독다독 달랜다.
장편 하나씩을 끝날 때 마다 성취감에 벅차기도 하지만 내 안에서 어떤 것들이 썰물처럼 일시에 빠져나간 빈 바다를 본다. 허허로워 며칠을 지랄을 떨어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제 자리를 찾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와 해야 할 이야기 중에 무엇을 먼저 해야지?
다시 묻는다. 늘 곧추서는 갈등이지만 여전히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난 연애 소설을 많이 쓰고 싶어. 그것도 삼류 연애 소설을.”
이라고 누구에겐가 못을 박은 일이 있다. 하지만 나는 내 한계를 안다.
“연애 소설은 밑천이 딸려.”
내 인생에 짝 사랑만 열 손가락을 꼽는다. 그 중에 딱 두 번쯤 상대에게 고백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그러하니 연애 경험이 전무후무하다. 얼추 또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 몇 년 쯤은 무지막지한 사랑을 받은 것도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던 것도 같다. 가짜 심리학 박사인 그녀는 지적 질을 한다.
"넌 지독한 에고이스트며 나르시시스트야. 너 자신을 너무 즐겨. 사랑, 그 딴 것 넌 못해."
ㅎㅎ, 뭔 이런 망발을!!!
어쨌든 난 연애 젬병이 임에 틀림없다. 이런 형편에 연애 소설이라니, 참으로 가당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왜 연애 소설이 쓰고 싶을까? 연애에 恨이 맺혔나? 혼자서 히죽거린다.
오늘은 내 안의 빈 바다를 달래기 위해 하루 종일 서성댈 것이다. 가끔씩은 나를 다 보일 수 없지만 또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누군가와 진종일 놀고 싶기도 하다. 이런 날 말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내 인생도 꼭 빈 바다일 수만은 없겠다. 늘 밀려왔다가 가고, 또 오고, 가고. 그래서 모든 인연이 새삼 새롭다. 그 인연들이 만들어 갈 새로운 이야기들에 또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