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Autumn in Gunsan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3. 9. 26.

 

 

 

 

 

 

 

이건 뭘까?

예지몽?

 

 

"나는 흙진주 테후라를 보았네

유황빛 눈을 가진 테후라

저 꿈틀거리는 알 수 없는 신비와 두려움

그 태고의 신비와 두려움 속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 싶네

 

 

 

 

고갱과 말론 브랜도가 걸었을 법한

알 수 없는 우주의 정령들이 춤추는

태고의 신비와 어둠속을 걸어

마침내

나는,

테후라를 만났다네

 

 

 

 

 

   강바람은 제법 뽀얀 미세한 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변 둑 기슭에 오후 네 시의 햇살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 한 노인네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특이하게도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의 한쪽 귓불엔 어울리지 않을법한 피어싱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빨간 스웨터에 스카이블루 진바지를 입고 백구두를 신은 노인네의 한껏 모양을 낸 차림이 충분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그의 목에 두른 스카이블루 스카프가 바람이 부는 쪽으로 날리고 있었다. 휠체어에 탄 몸으로 어떻게 저렇게 단장을 했을까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다. 또 어떻게 강둑까지 올라왔으며 그것도 스카프를 두른 목에 무게가 느껴질 정도의 카메라를 메고 있다니.

   하지만 곧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쪽에서 햇살을 등에 지고 데,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 하나가 휠체어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한 손에는 콘 아이스크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그녀의 목에도 역시 작은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소녀의 몇 걸음 뒤로 키가 껑충하고 여자의 완숙미가 한 눈에 느껴질 만한 어딘지 현실의 세계가 아닌 아프리카나 남태평양 같은 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의 흙진주 미녀를 연상케하는 시커먼 동공에 유난히 하얀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 성큼 성큼 소녀의 뒤를 따라 휠체어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건 분명 예지몽인 것이야. 참 신기하지. 어떤 슬프고 씁쓸한 결말로 끝을 내리라 작정했는데 또 해피엔딩, 요것이 나의 한계일까? 새벽녘을 하얗게 새우고 이른 아침 겨우 몇 시간을 내리 잠들었는데  이런 꿈을 꾸고 말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가 소설을 쓰고 있는지 소설이 소설을 쓰고 있는지 도시 모를 일이었다.

  행여 잊을세라 잠자리에 누워 재빨리 전화기의 메모란에 꿈속을 배회했던 결말부분을 서둘러 적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나, 오늘 칼국수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그래, 난 뭐 칼국수 별로지만 너와 함께 라면 먹어주겠어."

   10월 말 개인전시회를 앞두고 스트레스 만땅으로 볼멘 그녀의 목소리가 몹시 애잔했다.

   "있지, 나 예지몽 꾸었나봐. 아침에서야 겨우 잠들었는데 지금 쓰고 있는 '오후 네시'란 이야기의 결말이 꿈에 뵈더라. 이건 뭔 쪼간일까?"

   "암튼 만나서 이야기하자."

   서둘러 한 시간 후에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고 채 자리를 털지 못한 몰골로 부지런을 떨었다. 오늘은 모처럼만에 ETERNITY 를 확확 뿌리며 스카프를 메었다.

   "음, 이정도로 충분해. 지금 나는 가을 여인이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흡족해 하며 나서는 발걸음은 어느 새 나부끼는 스카프만큼이나 가벼웠다.  즐겨 찾는 은파 어귀의 녹차메밀칼국수, 덤으로 만두까지...

  사실 칼국수를 좋아는 하지만 소화가 잘 안돼 늘 먹고 싶은 것을 참는 편이었다. 조심스레 그녀의 기분에 맞춰 주느라 앉아있는 마음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녀의 하소연과 내 예지몽에 대한 수다를 끝내고 다음 순서는 친구들 씹기...

   "야, 어찌 가시네가 그렇게 비 인간적일 수가 있니?  아무리 샌드위치가 짜다고 해도 사장을 불러 그것도 많은 손님들이 붐비는 시각에 샌드위치를 내밀며 먹어보라고 할 수 있니. 하여서 내가 사장을 제지 했지. 창피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얼른, '아 괜찮아요. 가셔도 돼요.' 나도 모르게 끼여 들고 말았더니 **이가 나에게 서운하다고 지랄을 떠는 거야. 난 솔직히 정 떨어지더라. 늘 그러는 그애와 밥을 먹을 땐 긴장이 돼. 맘이 편하지 않아."

   "그러게 가시네 이 나이에 그리도 유난을 떨고 싶을까?"

  역시 최고의 반찬은 친구들 씹는 맛이다. 그런 벌이었을까? 나오다 그만 가스를 연결하는 파이프에 '쿵'걸려 넘어지고 만 나, 벌 받아 충분했다. 그 사이에도 얼굴 안 다치려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끌어 당겨 식사하는 앞 테이블을 건들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일제히 식당안의 사람들의 놀란 시선이 느껴져 당황에 아프기까지. 무릎이 시꺼멓게 먹이지고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아, 이건 또 뭐시람?"

   염치없어서 아픈 걸 참고 웃고 나왔지만 며칠은 끙끙대야 할 것 같다. ( 이 대목에서 우쌤과 서쌤의 웃는 소리가 귓가에 흔들렸다. 거구 80키로의 육중함이 느껴지겠지만 참아 주시람.)

   애초의 계획은 밥벌이고 뭐고 상관없이 점심을 먹고 휑하니 가을바람을 맞으며 월하성 쪽으로 바람이 나고 싶었는데 그만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다. CD의 볼륨을 올리니 마침 'Autumn in New York'의 선율이 흘렀다.

   "아이고 이게 바로 하늘의 뜻인가 보다. 오늘 저녁은 영화 Autumn in New York' 에 취해 봐야겠당."

Ella와 Louis의 목소리와 Richard와 Winona가 보여주는 가을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는 날들이다.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숙씨가 병세씨에게 1  (0) 2013.10.03
2013년 9월 28일 전주한옥마을 나들이  (0) 2013.09.2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유혹  (0) 2013.09.24
2013년 9월 22일  (0) 2013.09.22
즐거운 추석 되세요.  (0) 2013.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