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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그늘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네요 - 日常茶飯事 82 탄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3. 8. 5.

  '의자'라는 시로 유명한 이정록 시인의 산문집을 읽고 있습니다. 늘 어머니의 말, 모어의 대궁를 타고 꽃을 피우고 슬픔을 주렁주렁 열매를 맺게 하는 시인, 눈물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며  어머니 말씀을 옮겨 작품을 만드는 시인이지요. 
  시인의 이야기가 여기 있습니다.

 

  어머니의 별명은 '농사 천재'이다. 청년회장이 붙여준 이름이다. 바로 그늘 농법을 개발해서 어머니가 받은 별호이다. 연유인즉, 마을 가로등이 생기자 그 가로등 밑의 여남은 평을 주차장으로 쓰도록 동네에 기부하게 되었다 합니다. 원래 가로등 밑은 농사가 안 되기에. 헌데 바로 가로등 밑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비닐하우스 모퉁이 가로등 밑에 방울토마토 네 그루를 심었는데 비닐하우스 천장까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토마토를 매달았답니다. 하우스라 따뜻하고 또 밤에도 가로등이 눈부시게 비추니까 밤낮없이 방울토마토가 자라 동네 여남은 집 다 먹고도 남아돌았다 합니다.

  또 하나 고추 재배법에 관한 것이지요. 원래 고추란 햇볕이 좋아야 탄저병에 안 걸리고 잘 여무는데 어머니는 아삭이 고추를 담벼락 후미진 그늘이 있는 곳에 심었답니다. 근데 이 오이고추가 맨날 그늘이 드니 여물지 못하고 자꾸 풋고추만 매단다는 것이어요. 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한 바가지씩 나눠줘도 되었답니다. 라고 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인생농사도 그늘 농사라고 했지. 아내 그늘, 자식 그늘, 제 가슴속 그늘!  그 그늘을 잘 경작해야 풍성한 가을이 온다고 말이여. 돈이니 여자니 술이니 화투니, 재밌고 따 순 햇살만 쫓아다니면 패가망신 쭉정이만 수확하니까, 그늘 농사가 중하다고 말이여. 그늘이 짙으면, 노을도 되고 단풍도 되는 거야. 사과도 홍시도 다 그늘이 고여서 여무는 거야. 뭣도 모르는 것들이 햇살에 익는다고 하지." 


  시인이 옮긴 어머니의 이런 이야기들을 읽는데 가슴 한쪽이 울컥 합디다. 혹여 내 인생이 따순 햇빛만 쫓아 달려온 인생은 아니었을까? 혹은 내 속의 그늘엔 무엇이 있을까? 나는 그 그늘 속의 것들을 어떻게 경작해야 할까? 이런 생각들로 말입니다.

 

"그늘 농사 잘 지어야 인생 늘그막이 방울토마토처럼 주렁주렁 풍년이 되는 거여."라는 시인의 어머님 말씀이 내내 귓전에 맴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겐가 그렇게 묻고 싶습니다.

 

"그대의 인생 농사는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