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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천둥이 아우성치는 새벽에...日常茶飯事 78 탄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3. 7. 3.

  요란한 빗소리와 구름이 맞짱을 뜨며 부딪히는 소리에 잠을 깼다. 나는 감각기관중 청각이 가장 예민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소리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하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여름 소나기를 새벽에 들을 수 있어서 참으로 좋다. 빗소리도 잦아들고 오랜만에 켜놓은 촛불이 은은하다. 유튜브에서 에릭샤티의 짐노페디를 찾아 배경으로 얹혀놓으니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한 곳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누군가에게 횡설수설 긴 편지를 쓰고 심심하다 못해 이곳저곳 카페와 블로그를 전전하다가 돌아왔다. 주인들이 쌕쌕 잠들어 있는 새벽녘에 남의 집을 엿보는 재미도 나름 좋다.

  내 이야기를 쓰려고 내 집에 돌아왔더니 웬일인지 그냥 수다가 피우고 싶어졌다. 의미없는 아무것이나 지껄이고 싶은 욕구말이다. 마치 어둡고 텅 빈 무대에 관객도 없는 무언극을 하는  느낌이다. 한 배경이 지나고  에릭샤티는 돌아왔다. Erik Satin unities '88 - unities '99 (full album: 1999), piano: Bianka Parlic.'으로. 피아노만의 단순함과 여백 사이로 너울대는 촛불의 그림자를 타고 이제 나는 여행을 나서고 있다. 어둡고 느리게….

  수많은 상상을 한다. 도대체 내 머릿속 어느 구석에  그 많은 상상이  쳐밖혀 있었을까 궁금할 정도다. 그들이 요사이는 마구마구 아우성을 친다.

  "나를 밖으로 꺼내주세요. 바람과 햇빛 속에서 구름을 보고 새들을 만나고 초록빛과 놀고 싶다고요."

  그것들이 질러대는 아우성이 때론 가엾어 가끔은 몇 놈을 꺼내 이곳저곳으로 마실을 보내곤 한다. 어떤 놈은 다시 돌아오기도 하지만 어떤 놈은 방향도 모르고 저 혼자 겁도 없이 사려져 버린다. 한꺼번에 꺼내줄 수 없는 내 능력의 한계가 아쉬울 뿐이다.

  시간과 재능과 공간, 어쩜 가장 큰 이유는 돈일지도 모른다. 아이고, 돈이 있을 땐 말이다. 그땐 내가 나를 잘 모를 때였다. 혼돈 속에 있었으니깐. 가난해져 보니 더 뚜렷하고 확실한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난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부자의 혼돈보다 가난의 단순함과 여백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하였더니 어느새 나는 정말 나로 돌아와 세상 것이 모두 내 것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아니 내가 원하는 것은 모두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착각 말이다. 그 원하는 것이 예전보다 아주아주 작아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혼자 배시시 웃으며 내 소박함에 즐겁기만 하다.

  삶이란 말이다. 때론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을 때 더 잘 보일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촛불을 켜 놓으면 촛불의 몸통을 벗어난 정도가 더 밝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하여 자신을 들여다볼 때 너무 가까이 너무 부지런히 아주 요란스럽게 너무 깊이 다가가지 않기를 주의하기 바란다. 그래 한 마디로 둘 사이에 셋 사이에 나와 너 사이에 공간, "여백의 미" 내가 나를 바라다 볼 때 뿐만 아니라 상대를 바라다 볼 때도 이 여백이 주는 미감을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관계의 미학이 조성된다. 자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와 연계된 그 모든 것들…. 바람과 소나기와 초록 것들과 심지어 무생물들까지도 말이다.

  문제는 그 여백, 공간의 거리를 얼마쯤 주어야 적당한 거리가 될까? 그것이 나, 우리의 숙제이다. 늘 거리 재기의 서투름으로 인해 때론 나도 아프고 내가 너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 그것이 일종의 나의 두려움이다. 다만 내 진심을 네가 바람과 소나기가 초록 것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시간, 빗소리는 어느덧 잦아들고 내 하루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다.